안녕하세요. 볼 깎는.. 아니 성당보러 다니는 유리달입니다. 4년 전에 올렸던 우리나라 성당 백 곳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자동차로 모터사이클로 전국을 싸돌아다닐 핑계를 찾아(...) 시작했던 저의 국내 성당 답사가 올 가을의 마지막에 00 번째를 맞았습니다. 2015년 봄에 시작해서 2024년 가을까지이니 딱 10년이 되었군요. 코로나19가 창궐한 2~3년간 저의 여행도 답사도 위축되면서 쪼그라드는 줄 알았지만 종식 후에 보충하겠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죠.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260/read/30549990
혹시 이전 기록이 궁금한 분은 위 링크를 봐주세요. ^^ 처음에는 알려지고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다니다 이름난 건축가가 설계한 현대적인 성당들도 가보고 그런 성당들이 있는 성지도 찾아가고 하더니 나중에는 그냥 성당이라면 일단 들어가보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뭐 없는 뭐 없다고, 우리나라에 특색이나 사연 하나쯤 없는 성당은 없더라구요.
제가 딱히 신앙이 깊은 건 아니어서 성지 순례를 다닐 생각은 아니었건만 성지에 세워진 성당이 건축적으로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곳이 많아 결국 대부분 가보게 됩니다. 김원 건축가의 공주 황새바위 성지의 무덤 경당은 작지만 간절하고(상단 왼쪽) 두 개의 탑이 높이 솟은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 같은 경우는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죠(상단 오른쪽). 특히 2021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어서 관련된 성지 중 남은 곳들을 마저 찾아다녔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국내로 들어올 때 배가 표류하여 처음 닿은 제주 용수 성지의 성당 전면에 세워진 가벽은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상하이 진자샹(金家巷) 성당을 본뜬 것인데(하단 오른쪽), 2001년 상하이 재개발로 원본 성당이 헐리게 되자 한국 천주교는 실측 도면을 만들고 일부 자재를 가져와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용인 은이 성지에 복원하여 세웠습니다(하단 왼쪽).
103위 시성을 전후로 80~90년대에 만들어진 성지에는 크고 기념비적인 성당이 왕왕 세워졌지만 요즘은 낮고 자연 속에 녹아들어가는 그런 성지가 많습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줄무덤 터에 세워진 천안의 성거산 성지는 산 위에서 무덤들과 함께 세상을 내려보고(상단 왼쪽), 백여 명의 순교자들이 처형되었던 보령 갈매못 성지는 피가 흘러내려간 바다를 바라봅니다(상단 오른쪽). 당진의 신리 성지는 내포 평야를 그대로 담았고(하단 오른쪽), 포천의 화현 이벽 성지는 유학자가 추구한 천주교의 진리를 표현했죠(하단 왼쪽).
100년이 넘은 고참 성당들은 대부분 다녀왔지만 전쟁 전후로 세워진 성당들도 이제 70주년 즈음이 됩니다. 옛 성당을 모방한 강릉의 주문진 성당은 작년 본당 100주년(성당 건물은 68주년)을 맞았고(상단 왼쪽), 고딕 양식을 재해석한 대전의 대흥동 성당은 전후 한 피난민에게 밀가루를 지원하여 성심당을 탄생시켰습니다(상단 오른쪽). 극심한 파괴를 겪은 수도권에서는 서울의 제기동 성당(하단 오른쪽)과 돈암동 성당(하단 왼쪽)처럼 단단한 화강암을 사용한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특히 제기동 성당은 거의 요새나 성채처럼 보이죠.
우리나라의 성당이 고딕과 로마네스크를 모방하는 것에서 현대적인 건축으로 넘어가는 기준을 보통 1960년 이희태 건축가의 서울 혜화동 성당으로 보지만, 모던한 성당을 적극적으로 보급한 것은 왜관 베네딕도회의 알빈 신부였습니다. 60~70년대에 걸쳐 122개의 성당을 포함하여 무려 185개의 건축물을 설계했는데... 그 대부분이 경상 지역에 소재한 관계로 저로서는 가보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서울에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건 구로 3동 성당 뿐이고(상단 왼쪽) 제천의 의림동 성당 정도면 가까운 편(상단 오른쪽). 부산 영도의 신선 성당은 나중에 십자가와 결합한 닻 모양의 표지를 덧붙였는데 성당의 외형과 맞물려 정말 배처럼 보이죠(하단 오른쪽)? 영주의 휴천동 성당은 설계에 관련된 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연대나 시기상 알빈 신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하단 왼쪽).
엄청난 노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기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알빈 신부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여 국내에서 성당 건축에 대해 많은 저술을 남기고 또 실제로도 많은 수의 성당을 설계한 분이 단국대 김정신 교수입니다. 제 성당 답사의 절반 정도는 김정신 교수의 책들을 나침반 삼아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건축물로 구현하는 종교적인 이상이 확고한 것인지 교수가 설계한 성당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도 고유한 특색을 마치 인장처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울 우면동 성당, 여주 가남 성당, 평택 송현 성당, 영암 시종 성당)
중곡동 성당에 가려지는 감이 있는 승효상 건축가의 서울 풍납동 성당에도 다녀왔고(상단 왼쪽), 유희준 건축가의 서울 서교동 성당과 반포 성당(오른쪽 상단과 하단)도 건축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반포 성당같은 경우는 원래 재건축을 위해 헐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관계로 연기되는 바람에 제가 답사할 수 있었죠. 성당 여행 초창기 음성의 생극 성당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이일훈 건축가는 인천의 숭의동 성당을 유작으로 남기고 2021년 작고하셨습니다(하단 왼쪽).
근래 세워지고 또 주목받는 성당들은 관습화된 정형에서 꾸준히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바실리카형 건물이라던가 붉은 벽돌이라던가 종탑이라던가 하는 우리나라 성당의 전통적인 요소 대부분이 재해석되거나 변형되죠. 그 와중에 몇 가지 경향이랄까 공통점을 찾자면 성전과 부속 건물(사제관 또는 사무동)을 분리하면서 연결한다, 연결된 둘 또는 세 건물 사이에 중정을 둔다, 종탑 또는 그를 대신하는 상징물을 부속 건물과 합친다 정도일까요?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울 세곡동 성당, 인천 동춘동 성당, 인천 간석2동 성당, 대전 원신흥동 성당)
성당 내부의 성미술까지 확장하면 정말 끝이 없겠지만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색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로 한정한다면 몇 군데 떠오르는 성당이 있군요. 용인의 신봉동 성당은 세계적인 작가이기도 한 김인중 신부의 과감한 색유리화를 제대 벽면을 포함해서 곳곳에 둘렀고(상단 왼쪽), 떼제 공동체의 마르크 수사는 80년대 입국 이후 우리나라에 머물며 많은 부천의 역곡2동 성당(상단 오른쪽)을 포함한 많은 성당을 작업하시고 올해 1월에 선종하셨습니다. (하단 오른쪽은 대전 관평동 성당, 왼쪽은 서울 번동 성당)
다니다 보면 아픔을 간직한 성당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북동 성당(상단 왼쪽)과 함께 1980년 광주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참상을 고발한 남동 성당은 5.18 기념 성당이(상단 오른쪽), 옛 신사터이자 전쟁 전후 학살이 일어난 장소에 세워진 서귀포 중문 성당은 4.3 기념 성당이 되었습니다(하단 오른쪽). 안산 지역의 첫 본당인 와동 성당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희생된 인원 중 열여섯 명의 학생을 품었던 곳입니다(하단 왼쪽).
올레 일주는 진작 마쳤지만 이따금 제주에 갈 때마다 근처 성당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과가 되었죠. 종탑으로 남은 옛 현무암 성당의 일부와 함께 한림 성당은 제주의 특색을 그대로 담았고(상단 왼쪽), 뒤뜰에 내수면 습지와 성산 일출봉을 담은 성산포 성당은 정말 입지가 치트키입니다(상단 오른쪽);; 감귤 과수원에 둘러싸인 표선 성당(하단 오른쪽)과 제주에서 현대적인 돼지, 소, 말 사육을 시작하고 보급한 성 이시돌 목장 옆 금악 성당도 고요함 속에 아름답구요(하단 왼쪽).
그 외에 또 기억나는 거라면 재개발 이후 초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이면서도 당당했던 인천의 송림동 성당(상단 왼쪽),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이태석 요한 신부의 기념관을 건립한 고향 부산의 송도 성당(상단 오른쪽), 국토 최남단의 마라도 성당과 반대로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의 작은 대진 성당(하단 오른쪽), 안팎 곳곳에 새겨진 A자 모양의 디테일이 뇌리에 박힌 청송 성당(하단 왼쪽) 등등이 있습니다. 계속하다간 성당 백 곳이 전부 나올 것 같으니 여기까지~ 각 성당의 개별적인 기록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glasmoon00&from=postList&categoryNo=12
올가을 시즌도 거의 끝나가는데 요즘은 딱히 장기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날씨와 시간 형편에 따라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편입니다. 중장기 과제 중에서는 위에 말씀드린 알빈 신부의 설계를 포함해서 경상 지역의 성당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당일치기가 불가능한 거리다 보니 어떻게 기회가 잘 나질 않네요.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니고 마감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보고 싶은 성당은 언젠가는 보게 되겠죠. 처음에는 50 곳 정도나 볼까 했는데 100곳을 찍고, 설마 했는데 이제 200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어디까지 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한은 아니고 끝이 정해져 있다는 거? 우리나라에 성당(본당)이 약 1,800곳 정도 된다니 이제 10% 조금 넘었습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