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일 기본조약 이후의 한일관계는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국력과 국민 생활 수준이 신장되고, 일본과 큰 차이 없는 생활과 문화를 누리는 나라가 되었으나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컨센서스가 전혀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바뀐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파묘가 토대로 삼고있는 소재인,
한국에 빙의된 일본정령, 그리고 그 정령이 지키는 것으로 묘사되는
쇠말뚝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나는 그것을 우리가 지닌 트라우마라고 해석을 하고 싶다.
일단 파묘의 커다란 줄거리를 보면,
미국으로 이주한 한 부유층 가족의 선친 묘지 이장 의뢰부터 시작하여,
그 과정에서 발견된 이장지의 여러 수상쩍고 종교적인 악의의 흔적들, 그리고 그것을 파훼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국 무속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수상쩍고 종교적인 악의는,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행한 여러 주술적 행동을 말한다.
파묘에서 크게 대립되는 건 한국 지맥의 정기를 끊기 위해 동원된 일본정령은
본인이 남산의 신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일제가 일본 국가신토의 신을 한국에 강림시키기 위해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을 뜻한다.
(일제는 패망후 남산신궁에 있던 신령이 조선인들의 손에 수난당하지 않도록 본인들 손으로 파한뒤 일본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일본귀신, 즉 정령이라 칭해지는 존재는 원한관계도 없는 이들을 무조건 헤코지 하는 이로 묘사되며
일본 귀신의 대립항으로 무당인 여주인공을 지키는 주인공의 할머니와
(혈연상의 할머니인지 무속적 관계인지는 영화내에서 자세히 묘사되지 않음)
여주인공이 신령의 힘을 빌리는 당산신이다.
한마디로 이 자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일본 국가신토를 대표하는 격의 정령과 우리 산의 당산신,
그리고 주인공의 가족신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립항에는 제국주의나 침략의 잔재를 전통적 무속과 가족애로 극복한다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존재의 힘, 그리고 전통적인 가족적 관계의 힘을 빌어 일제 잔재를 없앤다는 소재는
90년대~2000년대 초중반까지 넘쳐나던, 한일관계를 묘사한 여러 창작물들의 궤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것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행동원리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주제의식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엄청나게 다른 주제의식이라기보단,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고도로 세련되고 능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의 트라우마란 무엇인지를 생각하려고 하는데,
우리의 트라우마는 일제의 침략 그 자체로 인한 물적피해, 그리고 문화적 피해가 아닌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상상과 같은 정신적 방어기재, 그것이란 말을 하고싶다.
위에서 말한 '지맥의 쇠말뚝'과 관련한 이야기는 진짜 대부분이 뜬소문에 불과한 것이라고 판명이 된 바 있으며,
심지어 영화 내적으로도 '그거 뻥이잔아 구라잔아'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상당히 반제국주의적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지적을 할 정도이니,
나는 쇠말뚝과 관련한 '한국의 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행한 행위'에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1945년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이루었음에도,
2020년대의 창작물에서 여전히 그시절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트라우마가 아닐까
이 트라우마의 원인과 문제에 대해서는 첫번째로,
누군가 '저게 사실이다'라고 말해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일제가 35년동안 갖가지 민족말살 통치행위를 했다는 거.
당장 우리의 육조거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왕궁과 그 주산을 악의적으로 시야에서 가려버리는 위치에
우리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호화로운 청사(조선총독부)를 지었던 일도 있고 말이다.
여기서 일제강점기에 있던, 민족문화 말살을 위한 악의적 통치행위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진 않겠다. 그건 우스꽝스런 일이다.
두번째 원인과 문제는,
한반도는 일제에 의해 35년동안 강제 불법 점령을 당했으먀, 한국(내지는 북괴까지 포함해서)이 해방된지 80년이 자났음에도
이러한 오해와 앙금이 제대로 풀릴만한 역사적 컨센서스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 제대로 형성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컨센서스는 앞으로도 거의 영원히, 민관 모두를 통틀어 형성될 가능성이 없다.
일본정부가 한일관계 및 한일간의 역사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는 굳이 말 할 필요도 없거니와,
한일간의 민간관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성행하고 있음에도,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위험할정도로 무지하다.
한번 꼬여버린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도 언제든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골절된 뼈를 제대로 된 상태로 수복하지 않고 아물게 하는 일은, 겉보기엔 멀쩡할 수 있어도
어떤 형태로든 제대로 기능하려 할때마다 온갖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그 봉합되지 못한 상처가 언제 어떤 형태로 곪아 오를지,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세번째 문제와 이유는,
일제가 한반도에 심어놓은 물리적 쇠말뚝보다 더 크게, 일제강점기의 나비효과로 생긴 정신적 쇠말뚝을 머리에 심고 살게 됐다는 것.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로 말미암아 한국과 북한 모두 19세기와의 문화와 사회를 잃고 거의 단절된 시대를 살고있다는 것.
20세기 내내 경제적 급성장을 하며 우리 스스로 주어진 물음중엔 이런 것이 있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과대평가(국까) 하고 있다'
'아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최고(국뽕)이다'
사실 그 물음에서 우리는 거의 한발자국도 나간 것이 없다.
이 물음이 계속되는 데에는, 일제강점기와 국토 초토화 내전을 통한 민족문화 및 민속문화의 단절과 그 이전 시대와의 불연속성이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분해 해체 재조립하는 국민국가 건설을 하지 못하고,
타인(일제)에 의해 우리 스스로의 개념을 정의당하고 해체당하고 조립당한다는 건, 굴욕이기 이전에 문화적 손실이며,
일제가 악의를 가지고 하지 않은 행위조차도 악의적 결과물로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다.
예를들면, 1000년 농경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밥을 짓는 법을 잊어서 근대화를 거치며 민족문화를 정립한 일본에 가서
'니혼제 고시히카리 맛있다능, 밥 어떻게 짓는지 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배워야겠다능' 같은 것이 해당될 것이다.
표면적으로, 파묘는 우리의 무속을 상당히 힙하게 보여주는 단순한 오락영화겠지만,
파묘의 서사와 대립관계에서 난 그런 것들을 봤다.
사실 일본 귀신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만 묘사하는 대사도 어떻게 보면 좀 우스운 거 아닌가.
산 사람이 봐서 좋을 귀신이 뭐 얼마나 있다고... 스코틀랜드 귀신도 나쁜놈은 나쁘고
제3제국출신 귀신중에서도 선하게 사람을 도우려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정도로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게 커다란 정신적 상처였던 거 아닐까...
그래도 그런 소재들을 예전처럼 싼티나지 않게, 이제는 이렇게 있어보이게 만들어서 문화적 역량을 과시한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봐야 할 것인지 복잡해진다.
삼일절에 이런 영화를 보게 되다니 솔직히 뭔가 묘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런 오락영화는 한번 슥 보고 흘려야 하는데... 괜히 깊게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노량은 아무 고민없이 슥 보고 나올 수 있는 영화였는데...
ㅇㅇ 상처는 남는다는 의미는 엔딩에서도 나오고 그것을 파묘 한것이 이 영화일듯
ㅇㅇ 상처는 남는다는 의미는 엔딩에서도 나오고 그것을 파묘 한것이 이 영화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