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도 느긋하게 써보는 고려사
일단 귀여운 히후미부터
이번에는 고려 초기 외교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쓰고 다시 공부할랍니다.
우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당시부터 시작해볼까요.
일단 그때 중국의 상황을 보자면.
네, 역대급으로 스펙타클한 시대인 5대 10국 시대였죠. 그렇다면 고려가 건국 직후 제일 먼저 손을 뻗은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일단 고려가 제일 먼저 손을 뻗은 나라는 바다 건너편에 있는 오월이었습니다.
왜 굳이 오월일까요? 가깝지도 않고 바다건너고 그리 크지도 않은데?
그 원인은 이 사람입니다.
당시 후백제가 저 오월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거든요,
고려는 후백제와 우호관계에 있던 오월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 오월과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다음으로 고려가 외교에 도전한 국가는 후량과 후당이었는데...여기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이들은 고려를 외교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로 본게 아니라 그냥 군사세력 수준으로 봤다는거죠.
고려는 당연히 국가가 아니냐고요?
이시기 중국 국가들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는 국가가 후백제나 고려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바로
한반도 정세는 어디까지가 신라가 주도하고 있었고, 후백제나 고려는 단순 군사세력 혹은 반란군 수준으로 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기때문에 후당은 고려와 정식 외교를 맺지 않은 겁니다.
이런 정세가 변하기 시작하는 건 928년을 기점으로 합니다. 928년 후당은 고려와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뭐였을까요?
다음아닌 926년...
발해가 거란, 즉 요나라에게 멸망당한 겁니다.
후당의 위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요랑 마주하고 있죠.
이 시기 요는 포풍저그처럼 성장하는데, 중국 국가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웠겠죠.
그래서 이들은 고려와 외교관계를 맺고, 933년에 후당은 고려를 번국으로 책봉하게 됩니다.
이건 다름아닌 중국 국가들도 고려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기 시작했음을 인식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960년, 송이 건국되면서 고려는 송과도 교류를 이어나갔...는데
송은 생각보다 고려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게 많았습니다.
이건 송이 깡패라서라기 보다는...이전 중국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송의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사나 동아시아사를 공부하다보면 연운 16주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여기는 5대 10국 시기에 거란이 차지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지도를 보시다시피 성벽으로 둘러쌓여있죠.
송 입장에서는 저런 꿀땅을 요에게서 다시 차지하고 싶어했고,
끊임없이 고려에 상하관계를 확인하고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고려는
배째라 외교를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아 형~ 나중에 보내준다니까~ 우리 사신이나 받아줘~ 하는 식으로 군사나 지원은 해주지 않으면서, 대신 지속적으로 사신 사절을 보내면서 송의 문물을 계속 가져오는거죠.
그리고 이런 고려의 배째라 외교는 그 유명한 서희의 담판을 기점으로 변하게 됩니다.
교과서에도 많이 나오는 1차 여요전쟁과 서희의 담판입니다.
요는 송을 공격하기 위해서 등 뒤에 있는 고려를 제압해두고 싶어했고, 그래서 송과 결판을 내기 전에 고려를 먼저 공격합니다.
이에 대해서 고려는 송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송은 여태 고려가 지원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지원을 거절합니다.
결국 고려는 서희의 담판에 카드를 걸어보기로 합니다.
서희 담판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j_002r_0050_0130_0050_0010&types=r 원문 링크입니다. 여기서는 각각의 주장만 정리해볼게요.
요의 소손녕이 제시한 침입의 명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음에도 고구려 영토를 침범하고 있다
2. 고려는 요와 인접해있고 송과는 떨어져 있음에도 요가 아닌 송과 국교를 맺고 있다
3. 따라서 옛 고구려 땅은 넘기고 요를 섬겨라
이에 대한 서희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기때문에 고려의 고구려 땅 수복 시도는 정당하다
- 고구려 후손이기 때문에 서경을 수도로 하고 있다(물론 구라입니다.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고 서경인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서경천도시도를 한 적은 있기에 그걸 빌미로 뻥카를 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2. 지금 고려와 요 국경지역에 여진족이 자꾸 끼어들어서 국교를 맺기 힘들다. 여진족을 치워주면 송말고 요와 국교를 맺겠다
- 대신 여기서 여진을 밀어내고 그 영토를 요구했습니다.
이런 서희의 뻥카와 정론은 먹혀들어가서, 이렇게 1차 여요전쟁은 역으로 고려가 영토를 더 개척하는 이득을 봤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때 고려는 지원해주지 않은 송과 단교합니다. 이게 994년의 상황입니다.
이 시기부터 고려는 한동안 요의 번국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 다음은 나중에 틈날때 다시 써볼게요.
양아치 외교의 시작이군요
양아치 외교의 시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