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1618년 음력 4월 13일 누르하치는 칠대한을 선언하고 역사적인 첫 번째 대명출전을 개시한다. 이 때 누르하치가 대동한 병력은 약 2만여명으로 추정되며, 목표는 무순과 마근단, 동주로서 명과 여진의 경계에 근접한 교역/방어 지대였다. 누르하치는 만문노당을 기준으로 하여 4월 13일 출정 당일에 군을 두 갈래로 나누어 본인은 무순으로, 다른 한 군대는 동주와 마근단으로 보내 작전을 진행하게 했다.
다음 날인 4월 14일, 비가 내렸다 그치는 등 기상이 좋지 않자 누르하치는 좌/우익군을 총 8갈래로 나누어 분산기동을 행했다. 이 중에서 무순진격군은 저녁에 와훈 오모에 집결하기로 약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당일 저녁 무렵, 누르하치가 이끄는 군대는 와훈 오모에 도착하여 분산되어 움직이던 무순진격군이 모두 와훈 오모에 집결하길 기다리며 잠시간 휴식을 취하였다.
와훈 오모에 흩어져서 행군하던 무순진공군이 모두 집결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록을 살펴 보자면 최소한 그날 밤이 되기 전까지는 무순으로 진격하던 4개 구사의 군대가 모두 와훈 오모에 집결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무순진공군이 모두 와훈 오모에 집결했을 무렵에도 기상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당시 와훈 오모 지역에는 비가 계속해서 오고 그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에 대해 만문노당에서는 그저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와중에 한밤중에 야간행군을 시작하자 비가 그쳤다는 내용으로 해당 진군 내용을 마무리하지만 실록에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때 누르하치는 기상이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은 것에, 팔기의 버일러들과 암반들을 소집하여 향후 기동과 작전이 어려워질 것에 대한 예상을 제시하고 일단 회군을 할 것을 의논했다.
그런데 이 때 누르하치와 함께 종군하던 암바 버일러 다이샨이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었다. 그는 명나라와의 갈등 끝에 우리가 드디어 대군을 동원하여 전쟁을 시작한 이상, 이대로 충돌 없이 그대로 회군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 그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대군이 움직인 사실은 완벽히 숨길 수 없어 회군을 한다고 해도 곧 명나라에서 본인들의 출정 사실을 파악할 것이며, 그리 된다면 오히려 명나라에 공격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논지로 누르하치를 설득했다. 거기에 더불어 현재의 기상 상황은 둔중한 명군에게는 장애가 될 것이지만 철저한 우천 대비 하에 출진한 후금군에게는 큰 장애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진군하는 후금군에게 은신의 효과를 더해주는 이점이 될 수 있으니 꺼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1
삽화 출처 : 칼부림. 다이샨
실록상에 기술되어 있는 다이샨의 논지는 훌륭했다. 사실, 이미 출정을 한 이상에야 더 이상 전쟁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이샨이 거론한 전략적 문제 말고도, 내부사기적 문제 역시 발목을 잡았다. 칠대한을 선포한 뒤 기껏 대군을 동원하여 명나라를 향해 출정을 했는데, 아무런 충돌도 없이 그대로 회군을 한다면 그것은 한껏 끌어올려진 후금의 사기를 그대로 꺾어버릴 수 있는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비 때문에' 회군했다는 사실 역시 사기를 하락시킬 요소였다. '하늘'에 칠대한을 고하고 출정을 했는데, 그 '하늘'이 내린 비 때문에 회군을 한다는 것은 곧 누르하치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결집시켰던 후금 백성들과 군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누르하치가 선언한 대의명분과 그의 천명이 뿌리 째로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누르하치 역시 이 부분을 분명 알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군에 관한 논의를 꺼낸 것은 여러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심상치 않은 기상 문제로 본인의 자신감이 다소 꺾인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기상이변으로 불안감을 가지게 된 휘하 버일러들과 암반들의 의중을 떠보는 동시에 그들의 저하되었을 사기를 고취시킬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기껏 하늘에 칠대한을 고했는데 출정한 뒤 하루만에 날씨가 변덕을 부리며 자신의 행군을 방해하는 것에 그간 '천명天命'에 강하게 집착했던 누르하치로서 일순간 마음이 흔들렸을 가능성이 있다. 사료상에서 드러나는 누르하치의 성격이나 지금까지의 행보상, 그는 당시의 기상 현상에 대해 최소한 지금은 하늘이 자신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실 굳이 누르하치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출병을 하자마자 하늘이 비를 내린다면 누구나 일순간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버일러들과 암반들에게 넌지시 후퇴의 가능성을 이야기 해보며 그들의 상황을 살피고, 이후 다이샨과 같은 이들로 하여금, 혹은 자신이 직접 그들이 의지를 다잡게 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누르하치가 직접 의지를 다잡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아들 버일러가 그 역할을 맡게끔 했을 가능성이 좀 더 커보이는데, 퇴각의 의논이라고는 하지만 누르하치 본인은 '퇴각을 하자'는 논지로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경우 누르하치는 자신의 아들들의 성격, 성향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자신이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면 분명 누군가가 반대를 꺼낼 것이라고 예상을 했으리라는 유추이다.
삽화 출처 : 칼부림
혹은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다이샨에게 미리 넌지시 언질을 주어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할 것을 종용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록에 근거하지 않은 추리의 영역이기에, 여기서는 크게 언급치 않고자 한다.
누르하치가 실제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건간에, 누르하치는 다이샨의 전략안을 상찬하며 본인이 언급했던 철군 논의를 취소하였다. 대신 다이샨의 논지대로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 명군에게 들키지 않게끔 진군하기 위해 야간에 행군을 속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무순 인근까지 가까이 접근한 상황에서 해가 뜨고서야 행군을 시작하면 명군한테 부대의 기동이 포착이 될 수 있었고, 그리 되면 무순이 방어태세를 갖추어 이미 무순에 허위사실2을 유포하여 방위력을 떨어트려 놓은 것이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결국 누르하치 지도하 후금군은 어두컴컴한 밤에 비를 맞아가며 행군할 것을 각오하고 야영지를 철거, 재차 진군하기 시작했다.
후금군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그 날 밤부터는 비가 완전히 그쳤고 날씨가 개었다. 덕분에 후금군은 -비록 진창이 형성되어 진군이 더뎌지긴 했을 터지만- 최소한 비를 맞아가며 행군치는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행군을 속행한 그들은 그 날 (4월 15일) 아침이 되기 전에 무슨 근교에 다다랐다.
1. 『만주실록』 무오년 음력 4월 14일
2. 여진인들이 마시에 참여할 것이라는 거짓정보 살포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5882431 참조
---
작성한 사람 :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