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후궁출신의 딸인 정신옹주를 시집 보내기 위해서
용한 점쟁이를 고용해 여기저기 신랑감을 알아보던 중
명문가 출신 이속의 아들의 사주를 알아보았다.
이에 이속은 "궁녀의 딸에게 시집 보낼 아들은 죽었다." 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고려시대의 인식이라면 아무리 아버지가 왕이어도
어머니의 신분이 낮으니 자식도 무시받는게 당연했기에 이속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니었지만
태종은 노비 종부법을 시행하는 등 모계보다는 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펼쳤고
혼인을 거절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서 거절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속은 공공연하게 왕족을 모욕하는 최악의 방법으로 대응했다.
이에 태종도 "나도 이속 가문한테 시집보내기 싫었다. 근데 이놈 말하는 꼴이 좀 아니꼽네?"라고 말했으며
당연히 정신옹주를 디스하면서 생모인 신빈 신씨의 출신과
옹주를 좋은 곳으로 시집 보내줄려던 태종의 노력까지 비웃은게 되버린
이속은 곤장 100대를 선고 받았으며 평소의 평판이 좋지 못했던 것 + 신하들의 충성심 경쟁 덕분에
이속은 재산 몰수 + 유배 + 관노 형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사형에 처하라는 상소 러쉬를 받았으나
태종과 세종이 봐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아버지가 혓바닥을 잘못 놀린 죄로
그 아들도 평생 결혼 금지형을 선고 받았지만 나중에 풀렸다.
그리고 정신옹주와 결혼한 사람은 윤계동이었는데
태종은 혼수로 통크게 당시 유배 중이었던 윤계동의 아버지 윤향을 풀어주고
형조판서에 임명했다.
태종 상대로 “응 니 딸년 몸종 딸년” 시전
자연사네
도발도 아니고 걍 쌍욕을 처박음ㅋㅋㅋ
태종은 살육머신으로 유명하지만 최소한의 살육으로 최대의 정치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릇이 다른 사람이긴 한듯
문제의 정신옹주는, 명문가 출신 윤향의 아들 윤계동에게 시집갔는데 윤향은 이속과 달리 귀양 가 있는 와중에 사주단자를 초스피드로 보냄. 그 결과 왕명이라면 물불 안 가릴 사람이라고 이방원이 기특해해 슬쩍 귀양에서 풀어주고 형조판서로 임명함. 이래서 사람을 봐 가면서 땡깡부려야 함.
왕 상대로 도발이라니 ㅎㄷㄷㄷ
거절은 할 수 있지만 정중하게 해야지 참
자연사네
안죽었..
Into_You
태종 상대로 “응 니 딸년 몸종 딸년” 시전
언어로 자살하기
이숙은 명문가 출신인거에 비해 본인의 능력은 평범한데 성격 하나는 거만하고 괴팍했다는 평이 있는걸로 보아서 그냥 들이박고 보는게 기본이었나봄
지금도 그냥 들이박고 보는게 기본인 양반 덕분에 환율나락감
왕 상대로 도발이라니 ㅎㄷㄷㄷ
거절은 할 수 있지만 정중하게 해야지 참
도발도 아니고 걍 쌍욕을 처박음ㅋㅋㅋ
님 도르신?
을 왕이 직접 시전
저게 이상하게 보인다면 네이버 뉴스 댓글을 보면 알 수 있음 물론 현실에서 그걸 실제로 하는거긴 한데
그냥 그 어떤 이유를 대도 쉴드 불가능한 발언 ㅋㅋ
단체 자살도 있었는데 그게 나주 괴서사건이 맞나? 그걸로 남인들이 몰락했다고 하던데
킬방원 전설은 시전한 본인도 있지만 주변인물도 해달라고 몸부림친것같음 진짜 ㅋㅋ
처가댁중 부인의 동생들의 요구도 선넘어서 쳐냈다는 이야기 들었음
태종의 정치적 쇼였던 난 봐주려고 했는데 니들이 하자고 한거다?였는데 너무 효과적이어서 이후 조선의 왕들이 자주 써먹었지
문제의 정신옹주는, 명문가 출신 윤향의 아들 윤계동에게 시집갔는데 윤향은 이속과 달리 귀양 가 있는 와중에 사주단자를 초스피드로 보냄. 그 결과 왕명이라면 물불 안 가릴 사람이라고 이방원이 기특해해 슬쩍 귀양에서 풀어주고 형조판서로 임명함. 이래서 사람을 봐 가면서 땡깡부려야 함.
왕족 건들인 상대한테 태종치곤 진짜진짜 많이 봐줬네
루리웹-0261028672
태종은 살육머신으로 유명하지만 최소한의 살육으로 최대의 정치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릇이 다른 사람이긴 한듯
핀포인트로 죠져서 실제 유사사례보다 훨씬 덜 숙청했음에도 킬방원이란 타이틀을 따낸것 보면 뭐 ㅋㅋㅋ
무명 선비 몇천명 잡아죽이는거보다 신진사대부의 필두였던 정몽주, 아버지의 의형제나 다름없던 정도전, 이복동생 이방석 셋만 죽이는게 역사에 기록된게 더 크긴 하지. 물론 이방원이 저 셋만 죽인 건 절대 아니었음.
상대가 왕인걸 떠나서 걍 예의를 ㅈ박았잖아...
아무리 고려 지조 때문에라도 곱게 안 보였다하지만 그래도 당대 창업군주한테 저런 욕을 하다니...
고려 지조 찾는사람이었으면 이성계 밑에서 벼슬 안하고 두문동 갔음. 이방원 시절까지 살아있었다는건 뭐...
킬방원인데... 안죽였어??
태종때라 가능했던 짓이긴 했지만 태종때인데 그런짓을 했다는게 놀랍기도 함 ㅋㅋㅋㅋ
곤장 100대 맞고 살았다고...?
풀로 다 맞으면 당연히 죽으니까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나눠 치던가 아니면 속전(贖錢)이라고 맷값 형태로 재물을 대신 내고 맞았다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 개중에서 쌩짜로 다 맞는 건 돈도 힘도 없는 평민이나 천민들인 경우였고 양반들은 대부분 맷값을 내는 게 공식적으로 허용이 됐음. 물론 대역죄 사건이나 왕명을 대놓고 거역한 것 같이 왕한테 단단히 찍힌 케이스는 짤없이 다 맞고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외에는 돈 내고 맞았다 치는 게 대부분임.
소위 귀족들의 문벌의식은 현대기준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범주같아
우리가 기록으로 보는거랑 다르게 이방원이 당시 대외적 이미지 세탁은 잘해놨나? 현대인이 보기엔 쟤 잘못건드리면 죽는다라는 인식이 기본인데 기록 보면 저 사람한테 개긴게 한둘이 아니야...
이복동생을 둘씩이나 쳐죽였는데 대외이미지가 좋았을리가... 그냥 이속이 이방원 못잖은 깡을 가졌는데 생각이 없었던 것뿐임.
쟤만 그런게 아니라 거 안마하다 때리던 궁녀 썰도 그렇고 유독 개긴 사람이 많단말이지. 이정도로 죽이지는 않겠지 싶었던건지
깡없는 놈들은 홍건적이랑 왜구한테 잡혀갔던 시절이었을 수도 있어ㅋㅋ
저시절에 노총각 노처녀 있으면 마을 관리가 벌받는다는 소릴 들은거 같은데 결혼금지를 시켜 버리다니 ㅋㅋ
약간 틀린게 있는게 왕실의 혼례는 우리 자식 결혼 시킬건데 누구 희망자 있으면 사주 좀 보내봐 형식이라 너 사주 좀 보내봐가 아니라 혼례 있을거라는데 사주 보내 보실래요 라고 물어보러 간거고 여기서 생각 없으면 우리 자식은 좀 모자라서 하는식으로 겸양의 말로 돌려보내면 되는거고 만약 사주 보내도 수많은 후보자중 하나를 왕실에서 정하는거라 확정이 아니었는데도 말싸가지를 저렇게 박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