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1618년 음력 4월. 2만여명의 후금군 및 종군세력인 바유트, 사할차군은 누르하치의 친정하에 명나라로 진격했다. 이로서 후금/청 세력과 명 세력간에 최초로 본격적인 물리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다.
해당 원정은 음력 4월 13일서부터 음력 4월 26일까지 진행되었다. 누르하치는 해당 원정에서 무순, 동주, 마근단, 그외 주변 명나라 진보와 농장에 대해 공격을 가하며 명군과 교전을 치뤘고 그 이후에는 요동총병 장승윤의 요격군과 전투를 치루었다.
해당 원정의 결과는 누르하치와 후금의 압도적인 승리로 귀결되었다. 명나라에 가짜 정보를 흘리는 동시에 몽골계 세력들과 함께 움직이는 전략을 구사한 누르하치는 결과적으로 요동총병과 요양부총병을 모두 전사시키고 수천여명의 명군을 무척 적은 손실로 전사시켰다.1
비단 타격전과만 높은 것이 아니라 노획전과도 높았는데, 1천여호의 포로를 획득하고 도합 30만의 노획물자(포로포함)을 얻었으며 1천여명의 군병을 포로로 확보, 후금군으로 전향시키고 무순유격이었던 이영방을 그들의 수장으로 삼았다. 비슷한 시기 동양성과 동양진 형제2역시도 누르하치에게 본격적으로 가속을 이끌고 귀순하여 누르하치의 대(對)한인 지배정책의 필두가 되었다.3
허투 알라로 복귀한 누르하치가 행한 일 중 하나는 병사들에 대한 군법 집행이었다. 이전에도 설명했다시피 해당 처벌은 병사들의 긴장감을 유지함으로서 군대의 규율을 확립, 향후의 전쟁에서 병사들의 독단행동이나 항명등으로 변수가 발생하는 상황을 억제하고 전쟁을 보다 유리하게 끌고가 위함이었다.
당시 누르하치의 처벌은 전장에서의 논공행상 이후 허투 알라에서 따로 이루어진 형태였는데 논공행상과 처벌을 분리함으로서 일단 전장에서는 논공행상을 통해 사기를 높이고 복귀한 뒤에 강력한 처벌을 단행하여 규율을 재확립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군법이 집행된 대상과 사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아키(aki)**
직위
병사
죄목
무단 이탈, 무단 약탈, 아군 손실
처벌
능지후 팔기에 조리돌림으로서 군율 상기
특기사항
당시 군법 처벌 중 최대 형벌
2.일아이(ilai)
직위
병사
죄목
교전중 명령 불이행으로 아군 손실
처벌
상해형(귀, 코)이후 아하(노복)으로 강등
3.가르타이(gartai)
직위
잘란 어전(5 니루 어전, 현대의 중령~대령급)
죄목
명령 실패, 부대 감독 실패
처벌
직위 해제, 명목 전리품(olji) 일부 회수
4.창구나(cangguna)
직위
잘란 어전(5 니루 어전)
죄목
거짓 보고
처벌
직위 해제, 명목 전리품 일부 회수
5.나치부(nacibu)
직위
잘란 어전(5 니루 어전)
죄목
거짓 보고
처벌
직위 해제, 명목 전리품 전체 회수
특기사항
창구나와 우이치보다 큰 거짓 보고를 한 것으로 판단됨
6.우이치(uici)
직위
?(잘란 어전 추정)
죄목
거짓 보고, 성급한 행동
처벌
거짓 보고한 사실을 팔기에 포고하여 망신을 줌
7.아시부(asibu)
직위
잘란 어전(5 니루 어전)
죄목
관할 부대에서 이탈하여 숙영
처벌
직위 해제, 명목 전리품 일부 회수
특기사항
내용이 삭제된 처벌 내용 존재. 아마도 그의 아들이나 동생등 친족의 직위 역시 해제한 것으로 보인다.
8.슈사이(šusai)
직위
니루 어전(현대의 대위~소령급)
죄목
부대와 함께 자리 이탈
처벌
직위 해제
특기사항
유일한 니루 어전 처벌 사례.
*이상은 『만문노당』 무오년 음력 4월 26일 기사 참조.
** 아키의 군법위반에 대해서는 그 서술이 복잡하여 추가적인 보론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고자 한다.
올지는 포로로 해석되는 경향이 많으나 실상은 가축등 모든 노획물의 합산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당 원정에서의 군법 처벌 대상자는 대부분 잘란 어전들이었는데 중견급 지휘관들로서 작전의 중핵이었더니만큼 더욱 엄격한 처벌 대상자가 된 것 같다. 한편 일반 병사급에 대해서는 처벌이 별로 없었지만, 군법 위반자들의 경우 상당히 강력한 처벌이 처벌대상자들에게 집행되었다.
여기서 염두에 둘 처벌대상자중 한 명은 일아이인데, 그는 무순에 대한 공성전 도중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을 뒤따라 바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고 밍기적거려 앞사람이 죽게하였다는 죄목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는 무순 전투가 명나라와 조선의 기록에서처럼 단순히 누르하치의 마시에 관한 거짓 정보 유포와 그로 인한 기습 공격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마시 습격 이후 이영방이 지휘체계를 어느정도 회복하자 누르하치의 지시 하에서 후금측의 기록과 같은 공성전이 벌어졌다는 근거중 하나가 된다.
1. 적어도 후금의 내부 기록에 따르면 시여리 근교 전투에서의 후금군 전사자는 2명이었다. 만문노당 무오년 음력 4월 21일. 누르하치의 대명 1차 원정 자체가 어느 정도 과장성이 존재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어느정도 과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과장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손실은 무척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정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적으로 2명만이 전사했을지도 모르나, 명군의 진형이 붕괴되기 까지 꽤 치열하게 저항했던 명군 지휘관도 있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적다. 다만 시여리 근교 전투외의 전투에서는 추가적인 전사자가 발생했다.
2. 사촌형제이나 여기서는 형제로 표현한다.
3. 동양성, 동양진 형제의 투항에 대해서는 추후 다룸.
오히려 잘란 어전급들이 대거 처벌된 것에서 중형급의 죄를 저지르지 않은 병사들은 대강 눈감아 주고 중견급 지휘관들이 그들을 제대로 통솔치 못한 관리감독 문제에 대해 강하게 추궁 받은 부분임. 누르하치 본인부터가 그렇게 선언하기도 했고.
병사들은 얄짤없이 조지는데 간부는 뭔가 형량의 급이 가벼워보이는 느낌이..
뿌요뿌요라면 터졌어를 실천중
현대에도 병사들은 육체적인 체벌(육교, 영창(사라진거 암), 군기교육) 이지만, 장교는 직위해제와 불명예전역이 처벌이긴 하지....
내용 보면 평상시엔 병사들 많이 봐주는데 선 넘으면 죽여버리는 거고 지휘관들은 수시로 징계받지만 죽이지는 않는 느낌인거 같은데
병사들은 얄짤없이 조지는데 간부는 뭔가 형량의 급이 가벼워보이는 느낌이..
오히려 잘란 어전급들이 대거 처벌된 것에서 중형급의 죄를 저지르지 않은 병사들은 대강 눈감아 주고 중견급 지휘관들이 그들을 제대로 통솔치 못한 관리감독 문제에 대해 강하게 추궁 받은 부분임. 누르하치 본인부터가 그렇게 선언하기도 했고.
선도부장 히나
현대에도 병사들은 육체적인 체벌(육교, 영창(사라진거 암), 군기교육) 이지만, 장교는 직위해제와 불명예전역이 처벌이긴 하지....
계급있는애들은 우리가 남이가 했고 쫄다구는 동강동강 열매 시전했네
환타포도맛
내용 보면 평상시엔 병사들 많이 봐주는데 선 넘으면 죽여버리는 거고 지휘관들은 수시로 징계받지만 죽이지는 않는 느낌인거 같은데
뿌요뿌요라면 터졌어를 실천중
네가 여기서 제일 나쁜 놈이다!
저정돈 해야 여진을 통일하는군....
조선 최정예인 함경도군 3천명이 건퇴 전투에서 부잔타이군 3백명에게 참패했고 그 부잔타이군 1만명이 오갈암 전투에서 누르하치군 1천명에게 참패했다. 확실한 신상필벌은 여진족의 전투력을 엄청나게 올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