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팔관회는 사치스러움=불교 타락?
아까 낮에 유게 보다가 '팔관회가 사치스러운거 보면 불교 타락한것'이라는 내용을 봄
물론 고려 후기 불교의 타락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팔관회의 사치스러움을 바로 불교 타락의 사례로 들기는 힘듬
(일단 무소유=불교라는 점을 맞다고 볼 수 있는지는 패스하고)
이건 고려 전기의 내용들에서 찾아볼 수 있음.
먼저 첫번째로, 팔관회/연등회는 단순히 종교 행사가 아니라는 점임
바로 가져올 수 있는 『고려사』기사 하나를 들면
여섯째, 내가 지극하게 바라는 것은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에 있으니, 연등회는 부처를 섬기는 까닭이고 팔관회는 하늘의 신령 및 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기는 까닭이다. 후세에 간신들이 이 행사를 더하거나 줄일 것을 건의하는 것을 결단코 마땅히 금지하라.
이건 유게이들도 많이 봤을,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에서 다루는 내용임.
여기서 보다시피 팔관회는 단순히 불교 종교 행사가 아니라,
'고려'라는 국가의 상징성까지 띄고 있는 행사임.
따라서 이걸로 불교의 타락을 들기는 힘든 면이 있음.
두 번째로는, 팔관회가 고려라는 국가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 행사였냐는 점임.
'팔관회'라고 『고려사』에서 검색하면 종종 보이는 내용이
11월 기축 팔관회(八關會)를 열자, 송(宋) 상인과 동여진(東女眞), 탐라(耽羅)에서 각각 토산물을 바쳤다.
11월 신해 〈왕이〉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신봉루(神鳳樓)에 나아가 풍악을 관람하였다. 다음 날 대회에서는 대송(大宋)‧흑수(黑水)‧탐라(耽羅)‧일본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각각 예물과 명마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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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들이 상징하는 건, 고려에서 팔관회, 연등회가 열린다는 이야기가
단순히 국가 행사만이 아니라 주변 세력들이 와서 인사, 조공 등등의 하례까지 해야했다는 거임
이건 조금 넓게 보면 동아시아에서 고려의 존재감을 의미하는 해석으로도 가능함
세 번째로, 팔관회는 불교 행사를 넘어서 정치적 행사였다는 거임.
이 기사를 보자.
전(殿)에서 국왕에게 차와 술 및 음식을 올리는 것[進茶進酒進食]과 태자 이하 시신에게 차를 내리고 술을 돌리며 음식을 차리는[賜茶行酒設食] 의례 절차와 음악을 연주하고 멈추는 의례는 모두 소회(小會)의 의례와 같다.
이런거 보면 팔관회 과정에는 국왕-신하간의 접촉이 중요시됨
뿐만 아니라 팔관회 행사 중에서도 보면 의장대의 행진, 무신들의 입시, 군대의 행진 등
생각보다 다양한 정치적 행사들이 많이 시행됨
그런 의미에서 보면 팔관회는 종교 행사를 넘어서 정치적, 왕실의 행사였다고도 해석할 수 있음
따라서, 팔관회가 대규모로 행해졌다는 건 단순히 불교 타락이 아니라
팔관회라는 행사가 가지는 의미성, 중요성이 함께 다뤄져야 한다는 거임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고려 후기에는 불교도 타락해서 팔관회도 이 정도의 중요성을 유지하진 못했지만...
암튼, 행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진다고 무조건 그 기반이 타락했다고만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