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은 망치소리를 크게 울리며 정숙을 요구했다.
경비역을 맡은 작자들이 흥분해 있는 몇명을 설득해서 자리에 앉게 하자 불만과 야유의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의장의 옆에서 강단에 서 있는 남자는 그런 소동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침착한 태도와 약간은 거만해 보이기까지한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의장은 남자를 바라보고는 분노와 곤혹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피네로 박사……」
박사라는 단어가 약간 강조되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도중에 불유쾌한 소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동료들이 과학에 종사하는 인간으로서 그에 걸맞는 존엄성을 잊어버린채 발언자를 방해했다는 사실에는 놀랐습니다. 이렇게……」
그는 잠시 숨을 돌리고는 얼굴을 굳혔다.
「……비록 아무리 끔찍하게 도발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
피네로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명백하게 상대방을 바보 취급하는 비웃는 얼굴이다.
의장은 머리끝까지 치솟은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을 계속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질서정연하게 끝내고 싶습니다. 당신이 발언을 끝까지 계속 하도록 하고 싶지만, 먼저 주의를 주지 않을 수 없군요.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장 허위라고 알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지성을 모독하는 행위말입니다.
부디 당신의 발언만으로 한정해주기 바랍니다. 만약 발견한 것이 있다면」
피네로는 손을 밑으로 내리고 통통하고 하얀 손바닥을 펴보였다.
「먼저 당신들의 착각을 제거하지 않고 어떻게 내가 당신들의 머리 속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집어넣을 수 있겠습니까?」
청중이 다시 웅성거렸다. 누가 홀의 뒤쪽에서 외쳤다.
「그 사기꾼 새끼 끄집어내! 이젠 질렸다!」
의장이 의사봉을 두들겼다.
「여러분, 조용하시오!」
그리고 그는 피네로쪽으로 돌아보았다.
「혹시 잊어버리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당신은 여기의 회원도 아니고 또한 우리가 당신을 초청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피네로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라갔다.
「무슨 말입니까? 나는 아카데미의 문장이 붙은 초대장을 받았다고 기억합니다만」
의장이 아랫입술을 질끈 씹고는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내가 직접 그 초대장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이사 중의 한명이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훌륭하고 공공심이 넘치는 신사지만 과학자도 아닐뿐더러 아카데미의 회원도 아닌 분입니다」
피네로는 특유의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웃음을 지었다.
「호오? 나도 제대로 알아차렸어야 했군요. 아말가메이트 생명보험의 비트웰 노인 말입니까?
숙련된 수하를 조종해서 나를 사기꾼이라고 몰고 싶은거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사람의 죽는 날을 제대로 맞춰버린다면 누구도
그 양반의 보험에는 가입하지 않을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내 정체를 까발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혹시라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두뇌가 당신들에게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멍청한 짓거리죠.
사자를 쓰러뜨리려고 재칼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일부러 청중에게 등을 돌렸다. 여러명의 속삭이는 소리가 커지면서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의장이 아무리 정숙을 외쳐도 소용없었다. 바로 그 때, 앞 줄에서 남자 한 명이 일어섰다.
「의장!」
그는 기회를 잡고 외쳤다.
「여러분! 반・라인슈미트 박사가 발언하겠습니다」
소동이 진정되었다.
박사는 헛기침을 하더니 멋진 백발을 쓸어 올리고는 세련된 맞춤바지의 포켓에 한 손을 찔러넣었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포즈를 취한 것이다.
「의장님, 과학 아카데미 회원 여러분, 우리는 관용이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비록 살인범이라고 할지라도 국가가 그의 범죄사실을 선고
하지 이전에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는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하의 존재가 되어도 되겠습니까? 비록 선고가 지적인 의미에서 이미 내려진
상태라고 해도 말입니다. 나는 이 권위 있는 아카데미가 회원이 아닌 다른 어떤 동료 과학자에 대해서 베풀어야 할 배려가, 피네로 박사에게도
베풀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찬성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는 피네로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그에게 학위를 부여한 대학이, 우리가 전혀 할지 못하는 곳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비록 그가 하는 말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해를
입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의 원숙하면서도 교양있는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리면서 관중을 다독였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만약 이 걸출한 박사의 태도에, 우리가 호감을 갖는 것과는 전혀 이질적인 점이 있다고 한다면,그것은 박사가 이런 섬세한 문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지역이나 계층 출신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좋은 친구이자 후원자께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발언의 진가를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의뢰해 왔습니다.
위엄과 예절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폭풍같은 박수세례 속에서 자리에 앉으며 지적인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명성을 한결 드높였다는 사실을 기분좋게 인식했다.
내일 조간에는 또다시 〝미국에서 제일 핸섬한 대학총장〟의 양식과 설득력있는 인품에 대해서 기사가 나올 것이다.
어쩌면 비드웰 노인은 다액의 기부금을 선뜻 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박수가 그치자 의장은 작고 통통한 배에 양손을 깍지낀 채 멀쩡한 얼굴로 앉아있는 소동의 중심인물에게 고개를 돌렸다.
「계속하십시오, 피네로 박사」
「왜 계속해야 하죠?」
의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신은 그러기 위해서 온 것이잖소」
피네로는 일어섰다.
「확실히 의장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여기에 참석한 것이 현명한 일이었을까요?
얼굴을 붉히지 않고 적나라한 사실을 직시할 수 있을만큼 도량이 넓은 분이 여기 계십니까? 아마도 안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내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고 하신 저 핸섬하신 신사조차도 이미 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저 신사가 원하는 것은 올바르게 절차를 진행하는 질서이지 진리는 아닙니다. 만약 질서에 반하는 진실이 있다고 한다면 저 분은
과연 그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리겠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약속불이행으로
당신들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세상의 재미없는 작자들은 당신네들 재미없는 패거리가 내 정체를 까발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피네로는 사기꾼이다, 협잡꾼이다라고 말입니다. 그건 전혀 제가 예상한 바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지요.
다시 한번 제 발견을 되풀이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인간이 어느 정도 살 수 있을까를 알 수 있는 기술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사신의 청구서를 죽기 한참 이전에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죽은자를 데리러 오는 검은 낙타가 언제 당신집의 입구에 무릎을 꿇고 주인을 내려놓을 것인지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발명한 장치를 사용하면 오분 이내에 누구라도 당신의 모래시계에 앞으로 몇그레인의 모래가 남아 있는지를 가르쳐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입을 다물고 가슴 앞에서 팔짱을 꼈다. 잠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청중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의장이 입을 열었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겠죠, 피네로 박사?」
「달리 뭐가 더 남아 있겠습니까?」
「당신의 발견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가를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피네로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내 연구성과를 아이들 장난감처럼 내놓으라고 하시는군요. 이건 위험한 지식입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즉 나 자신에게만 보류해두려고 합니다」
의장이 가슴을 두드렸다.
「당신의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위원회를 열어서 내가 실험하는 것을 직접 보면 됩니다. 그 실험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당신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세상에 그렇다고 말하면 됩니다. 잘되지 않는다면 나는 신용을 잃고 여러분에게 사죄를 하게 되겠지요. 이 피네로가 사과하겠습니다.」
홀 뒤쪽에서 호리호리하면서 등을 약간 웅크린 남자가 일어났다. 의장이 그의 발언을 허락하자 남자는 입을 열었다.
「의장님, 그 훌륭하신 박사양반은 어째서 그런 실험을 제안하는 것입니까? 누가 죽어서 박사의 말이 맞다고 증명할 때까지 우리가
이십년이나 삼십년이라도 계속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피네로는 의장을 무시하고 직접 대답했다.
「뭐? 무슨 멍청한 소리를! 당신은 그 정도나 무지합니까? 사람을 많이 모아놓으면 그 중에서는 적어도 한 명 정도는 가까운 시일내에
죽게 된다는 것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럼 다시 제안을 하죠. 이 방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를 테스트한다면 적어도 2주 이내에 죽을 사람의
이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을 날짜와 시간까지도」
피네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청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다른 남자가 일어섰다. 덩치가 좋은 남자로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골라가며 말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실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학에 종사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 슬픈 일이긴 하지만 - 우리 동료 중에서 나이드신
분 중 상당수가 심각한 심장장애 징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피네로 박사가 그런 징후를 알고 있다면 - 물론 알고 있겠지만 - 그리고 이 청중 속에서 한 명의 희생자를 골라낼 수 있다면 선택된
그 인물이 예측대로 사망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훌륭한 양반의 멋들어진 에그 타이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별개로 하고 말입니다」
뒤를 이어 또 한명이 일어나서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세퍼드 박사의 말 대로입니다. 왜 우리가 부두교의 사기술에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것입니까.
내 생각에 이 피네로 박사라고 자칭하는 인물은, 우리 아카데미를 이용해서 그의 주장에 귄위를 덧씌우려고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기극에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사기술의 선전을 위해 우리를 이용할 방법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에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의장, 정례대로 의사진행하기를 제안합니다」
그의 발언은 환성을 일으켰지만 피네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정숙! 정숙!」
의장이 외치는 와중에 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청중을 향해 휘날리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야만인들! 얼간이! 머저리들! 예로부터 위대한 발명의 공표를 방해한 것은 언제나 네놈들 같은 작자들이었어.
관 속의 갈릴레오를 괴롭히려드는 바보같은 놈들은 이제 질색이다. 저기서 사슴 이빨로 만든 부적이나 주물럭거리고 있는 뚱뚱한 멍청이가
의학종사자라고! 인디안 주술사라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데 그래! 거기 작은 대머리 얼간이……너 말이야! 너는 철학자같은 얼굴을
하고는 제 멋대로 주절거리기나 할 줄 알지. 인생과 시간에 대해 말이야. 하지만 인생과 시간 양쪽에 대해서 대체 뭘 알고 있냔 말이야?
기회가 왔는데도 진리를 검토하려고도 하지 않다니, 대체 뭘 배운거야 이 멍청아!」
박사는 강단에 침을 뱉었다.
「너희들은 이런 걸 과학 아카데미라고 부르나! 나라면 장의사집회라고 불러야겠는걸.
선조가 남겨주신 아이디어를 미이라로 만들어서 두고두고 보존하는 것 밖에는 흥미가 없으니 말이야」
잠깐 시간이 흐르자 단상에 있던 위원 두 명이 양쪽에서 그를 붙들고는 무대에서 끄집어냈다.
보도석에서 기자 몇 명이 일어나더니 그의 뒤를 따랐다. 의장은 일시 휴식을 선언했다.
그가 대기실에서 나오자 신문기자들이 달라붙었다. 박사는 마치 춤추듯이 걸으며 휘파람으로 뭔가를 불고 있었다. 좀전에 보였던 격렬한
분노는 이미 흔적도 남지 않았다. 기자들이 피네로를 둘러쌌다.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박사?」「현대의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야, 확실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사후의 생에 대해서
의견을 들어볼까요?」「자, 카메라를 보시고」
박사는 모두에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 한번에 한 명만 해주게. 그리고 그렇게 서두르지 말게. 나도 예전에는 신문기자를 한 적이 있었다네.
그래 이쪽으로 와서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지 않으려나?」
몇분후 그들은 피네로의 침실 겸 응접실에 앉아서 박사의 시가에 불을 붙였다.
피네로는 기자들을 둘러보고 웃었다.
「자네들 뭘 마시겠나? 스카치, 아니면 버번?」
모두가 원하는 것을 가지자 그는 대답을 시작했다.
「그래 여러분, 무엇을 알고 싶으신가?」
「솔직하게 대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닥터. 당신은 대체 뭘 알아낸 겁니까?」
「나는 아주 확실하게 알아냈다네, 자네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십시오. 당신이 교수들에게 던진 이야기만 갖고는 전혀 믿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거 보게 자네들. 그건 내 발명일세. 나는 그걸 가지고 어느 정도 금전적인 이득을 챙길 생각이라네.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그냥
줘버리면 어떡하라는 말인가?」
「박사, 조간에 조금이라도 실으려고 하면 뭐라도 좀 알려주셔야죠. 대체 뭘 사용합니까? 수정구라도 쓰나요?」
「아니, 완전히 다른 것일세. 내 장치가 보고 싶나?」
「물론이죠. 한번 보기만 하면 사실인지 아닌지 조금은 판단이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박사는 기자들을 옆방으로 데려가서 손을 저었다.
「이것이라네, 여러분」
그들의 눈에 비치는 거대한 장치는 어딘지 의사의 진찰실에 있는 X선 장치를 닮았다. 전력을 사용하는 장치이며, 다이얼이 달린 몇개의
미터류를 제외하면 얼핏 봐서는 정체를 알아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요, 닥터?」
피네로는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명이란 본질적으로 전기적이라는 것을, 자네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뭐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일단 이 원리가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
게다가 시간이 4번째 차원이라는 것도 들어봤을 거야. 그것을 믿는지 여부는 차치하고서 말이야. 그런 말은 하도 많이 회자되다 보니 이젠
아무런 의미도 없어. 입만 살아있는 놈들이 바보들에게 잘난척할 때 쓰는 상투구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지금 자네들 눈앞에서 그걸 드러내 보이고 싶고, 느끼게도 하고 싶네」
박사는 기자 중 한 명에게 걸어갔다.
「자네를 예로 들어보겠네. 자네 이름이 로저스였나? 좋아, 로저스군. 자네는 4개의 방향으로 뻗어있는 시공간적 존재일세.
자네는 키가 6피트가 조금 못되고 폭은 20인치 정도일 세. 두께는 10인치정도겠군.
시간으로 보자면 현재의 시공간에서 과거로 아마 1916년까지 뻗어있고 거기서 이쪽의 시간축을 직각으로 잘라서 단면을 보면 현재의 것과
두께는 마찬가지야. 시간축의 제일 끝은 아기한테 뻗어서 쉰 우유냄새를 풍기며 아기용 턱받이를 적시고 있겠지.
나머지 한쪽은 아마도 1980년대에 있는 노인에게로 뻗어 있을걸세.
우리가 로저스라고 부르는 시공간의 존재를 긴 분홍색의 털벌레라고 생각해보세. 오랜 세월에 걸쳐서 존재하며 한쪽 끝은 어머니의 자궁에,
반대쪽 끝은 무덤에 들어가 있는거야. 이 털벌레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존재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한 단면만을
하나의 분리된 개체라고 파악하고 있네. 하지만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 이 분홍색의 털벌레는 물질적인 연속성이 있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서
쭉 펼쳐져 있지. 실제로 그런 의미에서는 인류 전체가 물질적인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네. 분홍색 털벌레는 다른 분홍색 털벌레에게서
분리된 것이니까.
이렇게 확장된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인류는 가지가 여러개로 갈라진 덩쿨풀같은 것일세.
그 덩쿨의 한 단면만을 보고 갈라진 줄기 하나하나를 모두 각각 독립된 개체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지 않나」
박사는 일단 이야기를 멈추고 기자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 중의 한 명, 약간 음침하면서도 고집스러워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거 참 대단한 이론입니다, 피네로 박사. 진짜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사실일까요?」
피네로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대신 미소지었다.
「조금만 더 참아 보게. 나는 자네들에게 생명이란 전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했네.
이번에는 이 분홍색의 털벌레를 전기의 전도체라고 생각해보세. 자네들도 아마 대서양횡단 해저 케이블이 절단된 곳을, 전기기사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서 해안을 떠나지도 않은 채 정확하게 알아맞추는 것을 보았을 걸세. 나도 분홍색 털벌레에 대해서 그와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다네. 이 방안에서 털벌레의 단면을 내 장치에 접속함으로써 그것이 절단되는 곳을 알아내는 걸세. 즉, 언제 사망할 것인가를 말이야.
물론 접속을 반대로 해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아낼 수 있네. 하지만 그런 과거의 일은 전혀 재미가 없지 않나. 자네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음침한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하려는 말은 잘 알았습니다, 박사. 만약 당신이 말한 인류는 모두 분홍색 털벌레고 덩쿨풀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생일을
알아맞추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인류라고 하는 종의 연결은 탄생시에도 항상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전도체는
어머니를 통해서 인간의 최초의 선조에까지 연결되어 있을거란 말입니다」
피네로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었다.
「바로 그걸세, 똑똑한 친구. 하지만 자네는 너무 심하게 추측한 거 같군. 이건 전도체의 길이를 측정할 때와 완전히 동일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네. 어떤 의미에서는 긴 복도의 길이를 끝에서 끝까지 소리의 반사음만 듣고 재어보려는 것과 닮았네. 인간이 태어날 때는 그 복도에
어떤 왜곡이 존재하게 되서 제대로 계산하려면 그 왜곡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반향을 계산하지 않으면 안되네.
하지만 딱 하나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여성이 임신했을 경우, 그 여성의 생명선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선은 구별할
수가 없네」
「증명할 수 있습니까?」
「가능하고 말고, 친구. 자네가 피험자가 되어 보려나?」
기자 중 한명이 끼어들었다.
「루크, 자네 지금 도전을 받은 거야. 받아들이던가 닥치던가 하게」
「받아들이죠.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태어난 날짜를 종이에 써서 동료 중 누군가에게 넘겨주게」
루크는 그의 말대로 했다.
「그리고?」
「위에 입고 있는 옷을 벗고 그 저울 위에 올라가게. 그런데 자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날씬하거나 뚱뚱하지 않았나?
그런 일은 없단 말이지? 태어났을 때 체중은? 10파운드? 우량아였군 그래. 요즘은 그렇게 묵직한 애들이 없다니까」
「이 잡담은 뭘 위해 하는 겁니까?」
「나는 이 긴 분홍색 전도체의 평면적인 단면의 근사치를 산출해내려는 것일세, 루크군. 자 여기 앉아보게. 그리고 이 전극을 입에 물게.
아, 아프거나 하진 않네. 전압이 굉장히 낮거든. 1마이크로 볼트 이하일세. 하지만 접속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네」
박사는 루크의 곁을 떠나 장치의 뒤로 가더니 머리 위의 후드를 내리고는 제어장치에 손을 댔다.
다이얼 중 몇개가 돌아가면서 기계가 낮은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기계가 소리를 멈추자 박사는 그의 작은 은신처에서 잽싸게 빠져나왔다.
「1912년 2월 며칠이군. 태어난 날짜를 적은 종이는 누가 갖고 있나?」
종이가 건네지고 열렸다. 갖고 있던 남자가 읽었다.
「1912년 2월 22일」
그 뒤에 이어진 정적을, 기자들의 작은 그룹 끝에 있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깼다.
「박사, 한 잔 더 마실 수 있을까요?」
긴장이 풀리고 몇명이 동시에 떠들기 시작했다.
「절 시험해 보시죠, 박사」「내가 먼저요 박사님. 나는 고아라서 진짜로 생일을 알고 싶단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박사? 우리 모두에게 다 실험해 보는 것은?」
피네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둥지를 들락거리는 다람쥐처럼 후드 밑을 들락거렸다. 그들이 모두 박사의 실력을 입증하는
종이를 두 장씩 받아들자 루크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죽음의 예고도 한번 해보시렵니까, 피네로?」
「지원자가 있다면야. 누가 해보겠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몇 명이 루크를 앞으로 밀었다.
「해봐, 똘똘이. 네가 말을 꺼냈잖아」
루크는 할 수 없이 의자에 앉았다. 피네로는 스위치 중 몇개를 조절하고는 후드 밑으로 들어갔다.
낮은 기계음이 들리고 이어서 양손을 문지르며 피네로가 걸어나왔다.
「자, 여러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요. 기사를 쓰기에는 충분했겠지?」
「사망예고는 어떻게 된겁니까? 루크는 인생의 최종판을 언제 받을 수 있나요?」
루크도 피네로를 보았다.
「어떻습니까? 뭐라고 대답이 나왔나요?」
피네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러분, 자네들에게 놀랐는 걸. 그 정보는 요금을 받고 전하는 것이라네. 게다가 이건 직업상의 비밀일세.
오직 의뢰인에게만 전할 뿐 다른 사람에겐 말할 수 없네」
「나는 상관없어요. 자, 다른 사람에게도 말해주세요」
「정말 유감스럽지만 이 자리에선 거절하지 않으면 안되겠는걸. 나는 어떻게 그것을 알아내는가를 보여준다고는 했지만 결과를
가르쳐준다곤 하지 않았네」
루크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짓이겼다.
「이봐, 여태까지 한 건 전부 헛수작이었어. 이걸 보여주려고 이 도시의 신문기자 전원의 생년월일을 조사했던 거라고.
그 수법에는 안속는단 말이야, 피네로」
피네로는 슬픈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결혼은 했나?」
「아니오」
「누구 자네에게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있나? 가까운 친척은?」
「아니오. 갑자기 왜 묻소. 날 양자로 삼기라도 하려고?」
피네로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대단히 유감이지만, 루크. 자네는 내일이 되기 전에 죽을 걸세」
〝학회, 대혼란 속에 종결〟
〝학자는 모두 머저리라고 예언자가 평가절하〟
〝죽음이 타임카드를 눌렀다〟
〝박사의 예상대로 기자 사망〟
〝아카데미 의장은 〈사기〉로 결정〟
〝……피네로의 기묘한 예언이 있은지 채 20분도 되지 않아 티몬즈는 직장인 데일리 해럴드를 향해 브로드웨이를 걸어가던
도중 낙하한 간판에 직격당했다. 피네로 박사는 이 사건에 대해 코멘트를 회피했지만 그가 주장하는 크로노바이타 미터로 티몬즈의
죽음을 예지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로이 경찰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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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가 걱정되지 않습니까?????
점장이에게 쓸데없이 돈을 버리는 것은 그만두고 이제 휴고 피네로 박사(생명 컨설턴트)에게 상담하십시오.
틀림없는 과학적 방법으로 당신의 미래계획을 도와드립니다.
사기가 아닙니다.
영혼의 〝고지〟도 아닙니다.
예지가 틀렸을 경우에는 몰수당하는 조건으로 보증금 1만 달러를 공탁합니다.
신청만 해주시면 바로 자료를 보내드립니다.
시간의 모래사
마제스틱 빌딩 700호
공고
관계자 제위에게
저, 「윈스롭 윈스롭 디마스와 윈스롭 법률 사무소」의 죤 캐봇 윈스롭 3세는, 현재 우리 시에 거주하는 휴고 피네로로부터
합법적인 미합중국 통화로 1만달러를 위탁받아, 제가 지정한 거래은행에 다음과 같은 지시서와 함께 조건부 예금으로 위탁하도록
지시받았음을 공지합니다.
휴고 피네로 혹은 시간의 모래사의 의뢰인으로서 휴고 피네로가 예고한 수명보다 1%이상 오래 생존한 사람, 혹은 같은 확률로
예고한 수명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유족에 대해, 양쪽 모두 최초로 발생한 경우에 한해 보증금 전액을 위탁자로부터 몰수해서 지불할 것.
또한 우리는 오늘, 앞서의 지시에 따라 우리 시의 에퀴터블 퍼스트 내셔널 은행에 조건지시서와 함께 보증금을 위탁했음을 공지합니다.
서명
존 캐봇 윈스롭 3세
1951년 4월 2일
서명 알버트 M 스완슨
미합중국 및 주의 공증인
위탁기간 1951년 6월 17일까지
「안녕하십니까, 라디오를 청취하시는 여러분. 뉴스 러쉬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기적의 사나이, 휴 피네로는 천번째 죽음의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이 틀린다면 누구에게라도 지불하겠다고 한 공탁금에는 아직 한 명의 청구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중에서 13명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피네로 박사가 큰 낫을 든 사신 본부와 핫 라인을 개설했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미리 알고싶지 않은 뉴스도 있기 마련이죠. 전국 네트워크로 방송을 하는 저도 예언자 피네로
의 의뢰인이 되고 싶지는 않군요」
판사의 맥빠진 바리톤 목소리가 법정의 곰팡내 나는 공기 속에서 울려퍼졌다.
「윔즈씨, 본 안건으로 들어갑시다. 본 법정은 원고의 가처분 신청은 허가했지만, 지금 원고는 그것을 영구적인 금지처분으로 바꿔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피네로씨는 당신들의 신청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항변하며, 금지명령을 해제하고 피네로씨가 경영하는
간단하고 합법적인 사업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당신의 의뢰인이 그만두도록 명령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법정에서는 배심원을 대상으로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쓸데없는 웅변은 그만두고 왜 피고의 신청을 본 법정이 승인해서는 안되는
것인지를 확실하게 설명하도록 하십시오」
윔즈씨는 신경질적으로 턱을 흔들어 목덜미의 피둥피둥하게 찐 살집을 빳빳하게 풀을 먹인 옷깃 위로 드러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당 법정이 허락하신다면 저는 국민을 대표해서……」
「잠깐 기다리시오. 당신은 아말가메이트 생명보험의 대리인인줄 알았는데」
「형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재판장님.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자면 그 외에 몇개의 큰 보험회사, 신탁회사, 금융기관의 대리도 겸하고
있으며 그 회사들의 주주와 계약자들은 대부분이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특정한 조직에 가입해 있지 않으며 타인
앞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도 않는, 아니면 자신을 지킬 방법을 모르는 전 국민의 이익을 수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코웃음을 쳤다.
「국민을 대표하는 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오……당신에 대해선 - 유감이지만 - 기록에 있는 대로 당신의 의뢰인의 대리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면 이야기를 계속해보시오. 당신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소?」
나이가 꽤 든 변호사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재판장님, 우리가 왜 이 금지처분을 영구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주장하는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만 들어도 충분히 금지처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이 인물은 민법 및 기타 법령에 의해서
금지되어 있는 직업, 즉 점장이를 생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대중을 속여서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흔하디 흔한 점장이이자 떠돌이 사기꾼입니다. 저 박사는 흔히 돌아다니는 집시의 손금보기나 점성술이나 혹은 강령술사보다는 훨씬
머리가 좋지만 그만큼 더 위험합니다.
근대의 과학적 방법을 흉내내서 자신의 마술에 터무니없는 위엄을 덧칠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법정에 과학 아카데미의 지도적 대표자 몇명을 초빙했으며, 그의 주장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 증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두번째 이유는 이 인물의 주장이 설혹 진실이라고 해도 -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단 이런 바보같은 가설이라도 인정하
겠습니다……」
윔즈씨는 슬쩍 미소를 띠면서 말을 이었다.
「피네로씨의 행동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침해하며 특히 제 의뢰인의 이익에 불법적인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인물이 국민에 대해서 생명보험의 크나큰 은혜를 내던질 것을 권하여 국민의 복리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으며, 제 의뢰인에게
경제적 타격을 가하는 발언을 직접 간접적으로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법의 수호자 여러분에게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증거를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피네로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판장님, 한 마디 발언해도 될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소?」
「저한테 조금만 분석 시간을 주신다면 상황을 훨씬 간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윔즈가 끼어들었다.
「재판장님,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기다리시오, 윔즈씨. 당신네의 이익도 보호하도록 하겠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단순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잡음이
적게 날 수록 더 좋은 것 아니겠소. 지금 피네로 박사가 발언한대로 재판을 짧게 끝낼 수 있다면 나는 충분히 그렇게 할 의향이 있소.
계속 하시오, 피네로 박사」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먼저 윔즈씨가 말한 논점의 마지막 부분을 거론해보겠습니다.
제가 저 자신의 주장을 공표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확실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잠깐 기다리시오, 박사. 당신은 스스로를 변론하겠다고 했소. 그쪽이 당신의 이익을 지키기위해 충분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오?」
「저는 제 운명을 하늘에 맡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재판장님. 여기 모이신 우리 친구 여러분, 내가 인정했다는 사실은 간단하게 입증할 수
있습니다」
「좋소. 계속 하시오」
「그리고 그 주장의 결과 많은 사람들이 생명보험 계약을 해약했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만, 그 사실때문에 해약한 사람들이 재산상의
손실을 입거나 타격을 입은 실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원고측에 이의를 신청하는 바입니다.
제가 벌인 사업때문에 아말가메이트 생명보험회사가 손실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입했던 보험계약을 시대착오적인
산물로 만들어버린 제 연구결과에 따른 당연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근거삼아 영업정지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저는 석유 램프 공장을
만들어서 에디슨과 제너럭 일렉트릭이 백열전구를 만드는 것을 중지시키는 소송을 벌일 작정입니다.
제가 죽음의 예고를 하는 것은 사업으로써 인정하지만, 제가 마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부정합니다. 흑마술이건 백마술이건, 아니면
무지개색의 마술 어느 것이라도 말입니다. 만약 과학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죽음의 예고를 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것이라면, 인구통계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정확한 사망률을 매년 측정해온 아말가메이트의 보험처리사들은 벌써 몇년전부터 법을 어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소매로 죽음의 예측을 하고 있고, 아말가메이트는 도매로 예측하고 있다는 차이에 불과합니다.
만약 그들의 행동이 합법적인 것이라면 어째서 제 사업은 불법이라는 말입니까?
제가 하는 주장이 실제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과학 아카데미의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작자들은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증언할 것입니다. 아니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제가 사용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전문가로서 증언을 할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박사. 윔즈씨, 당신네 전문가 증인이 피네로박사의 이론과 방법에 정통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오?」
윔즈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책상 위를 두어번 두드리고는 대답했다.
「잠시만 유예를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윔즈씨는 동료와 얼굴을 맞대고 급히 이야기를 나눈 다음 판사석으로 돌아왔다.
「재판장님, 심의의 순서에 대해서 한가지 제안하고자 합니다. 만약 피네로 박사가 증언대에 서서 그 이론을 설명하고, 그기 말한 방법을
실제로 보여준다면, 여기 오신 저명한 과학자들이 그의 주장의 정당성에 대해서 본 법정에서 조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사는 이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 피네로를 보았고, 그는 대답했다.
「그 제안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제가 사용하는 방법이 진짜인건 거짓이건 그 방법이 멍청이나 사기꾼의 손에 들어간다면 위험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피네로는 앞줄에 앉아있는 교수 그룹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잠시 숨을 돌리고 짖궂은 미소를 지었다.
「……저기 계시는 신사분들은 잘 알고 계실겁니다. 그리고 정말 맞는지 어떤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굳이 그 과정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닭이 계란을 낳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생물학적 재생산의 복잡한 기적을 굳이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내 예언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 스스로 지식의 관리자를 자임하는 이 조직을 모조리 재교육하면서까지 - 그들의 자의식과잉
에서 비롯된 미신을 타파할 필요가 있을까요?
과학에서 주장을 내세우는 방법은 두가지뿐입니다.
첫번째는 과학적인 방법. 또 하나는 학자적인 것이죠. 사람은 실험으로 판단하거나 아니면 맹목적으로 권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마련입니다.
과학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실험에 의해 도출된 증거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론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기에 만약 실험결과
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폐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아카데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권위가 모든 것을 결정하며, 권위의 옷자락을
깔고 있는 이론에 합치되지 않는다면 사실을 폐기시켜버립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많은 지식의 발전을 막은 것은 바로 이 권위적인 사고방식입니다……반대증거를 내놓을 수 없는 이론에 굴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아카데미적인 사고방식말입니다. 나는 실험에 의해 스스로의 방법을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교도 재판법정에 섰던 갈릴레오처럼 나
또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주장하렵니다.
예전에도 한번, 이 스스로 전문가를 자칭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제가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양반들은 그 제안을 거부
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제안하겠습니다.
나에게 아카데미 회원의 수명을 측정하게 해주십시오. 그 결과를 판정하는 위원회는 아카데미에게 맡기겠습니다.
내가 조사한 예측을 두 장의 봉투에 넣고 봉하겠습니다. 한쪽 봉투 바깥에는 회원의 이름을 써두고 그 안에 죽을 날짜를 넣어 두겠습니다.
또 한쪽에는 안에 이름을, 밖에 날짜를 써둡니다. 위원회가 봉투를 금고에 보관하고 회원의 사망이 발생할 때마다 봉투를 여는 겁니다.
이정도로 많은 회원을 가진 조직이니까, 아말가메이트 보험회사의 조사원이 신용할만 하다면 두어주 안에는 반드시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피네로가 과연 거짓말장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자료가 만들어지겠죠」
피네로는 말을 마치고 작은 가슴을, 그의 작은 배를 죽 당길 정도로 한껏 내밀었다. 피네로는 식은 땀을 흘리는 학자들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판사는 눈썹을 찡그리며 윔즈의 눈을 보았다.
「받아들이겠소?」
「재판장님, 저는 이 제안이 대단히 부적당하며……」
판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미리 경고해 두겠소.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은 피네로씨의 제안만큼 사실을 명확히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네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소」
윔즈는 입을 열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고는 학자들을 돌아본 다음 판사석으로 돌아섰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재판장님」
「좋소. 자세한 사항은 양쪽이 합의해서 결정하시오. 영업정지 가처분은 해제하고 피네로 박사는 영업을 재개해도 좋소.
영구적인 금지에 대한 결정은 증거가 확실히 나올때까지 판결을 보류하도록 하겠소.
윔즈씨, 휴정하기 전에 당신네 의뢰인이 입은 손실에 대해서 한가지 말해 두겠소. 이 나라의 특정 집단 사이에서는 어떤 인간 혹은 법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국민들로부터 이익을 향유해 온 덕분에, 상황이 바뀌고 국민이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도 정부나 법원에 대해 장래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하는 사고방식이 퍼져나가고 있소. 성문법도, 판례도 그런 사고방식을 지지하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소.
개인이건 법인이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법정을 통해 역사의 시계바늘을 멈추려 하거나 혹은 거꾸로 되돌릴 권리는 없다는 말이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오」
비트웰은 짜증을 부렸다.
「윔즈, 뭔가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면 아말가메이트는 새 변호사를 고용해야 할 걸세.
자네가 그 영업정지 재판에서 지고 벌써 십주가 흘렀지만, 그 쥐새끼같은 놈만 돈을 벌고 있잖아. 그 대신 이 나라의 보험회사들은 모두
파산지경이란 말이야. 호스킨스, 우리 손실이 얼마나 되나?」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비트웰씨.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거액의 보험금을 13명에게 지불했습니다만, 모두 피네로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계약한 사람들입니다」
바싹 마른 작은 체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봐요 비트웰, 우리 유나이티드사는 신규 계약은 아예 받지도 않고 있소. 조사에 한층 시간을 들여서 고객이 피네로와 상담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전까진 말이오. 과학자들이 놈의 정체를 폭로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소?」
비트웰이 킁 하고 코웃음을 쳤다.
「당신네는 너무 낙관적이야! 그 머저리들이 놈의 정체를 까발릴 수 있을리가 없잖나. 올드리치, 자네 지금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나?
그 짤막하고 뚱뚱한 녀석은 틀림없이 뭔가 제대로 방법을 찾아낸 거란 말일세. 그게 뭔지는 우리가 알아내지 못했지만 말이야.
우리가 직면한 것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란 말일세. 우리가 손을 놓고 멍하니 있으면 잡아먹히고 말아」
비트웰은 시가를 재떨이에 던지고는 새 시가를 꺼내서 끄트머리를 이빨로 씹어 끊었다.
「나가게, 자네들 모두! 나는 내 방법대로 하겠네. 자네도 나가게 올드리치. 유나이티드는 마냥 기다리면 될 거 아닌가.
하지만 아말가메이트는 얌전히 기다리진 못하겠단 말이지」
윔즈가 걱정스러운듯 기침을 했다.
「비트웰씨, 방침에 특별한 변화가 있을 때는 저한테 미리 상담을 해주셔야 합니다」
비트웰이 으르렁거리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허둥거리며 방을 나갔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비트웰은 인터폰 스위치를 눌렀다.
「OK、그 친구 들여보내」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깔끔한 옷차람의 사내가 입구에 섰다.
그의 작고 까만 눈이 들어가기 전에 방안을 잽싸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발소리를 내지 않고 비트웰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내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눈은 원기왕성한 동물같았지만 얼굴은 무표정했다.
「뭔가 시키실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래」
「누굽니까?」
「일단 앉게, 지금 말해줄테니까」
피네로는 안쪽 사무실의 입구에서 젊은 부부를 맞았다.
「자, 들어오시오 두분. 편히 앉도록 하시오. 그래 이 피네로에게 무슨 용건이실까?
이렇게 젊은 분들이 설마 벌써 마지막 마중이 언제 올것인지 알고 싶어서 온 것 같진 않은데」
청년의 젊고 성실해 보이는 얼굴이 약간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였다.
「저기, 그게 말입니다 피네로 선생님. 저는 에드 하트레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아내인 베티구요. 우리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베티가 아기를 가졌는데, 그래서……」
피네로가 온화하게 웃었다.
「잘 알겠소. 그러니까 아기를 위해서 준비를 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알고 싶다는 것이로군. 현명한 생각이오.
두 분 모두 측정하시겠소, 아니면 자네만?」
여자가 대답했다.
「두사람 모두 받으려고 생각해요」
피네로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게 낫겠군. 당신의 수명을 측정하려면 현재로선 기술적인 문제가 좀 있지만, 어느 정도는 말해줄 수도 있고 아기가 태어난
뒤라면 훨씬 자세하게 판단할 수 있겠지. 그러면 연구실로 가서 시작하도록 합시다」
피네로는 두 사람의 병력을 물어보고는 장치 앞으로 데려갔다.
「그럼 미세스 하트레이부터 합시다. 그 스크린 건너편으로 가서 신과 속옷 이외에 입고 있는 것은 모두 벗어주시오.
나는 보시는대로 늙은이에다 의사한테 진찰받는다고 생각하시고」
피네로는 뒤로 돌아서 장치를 만지며 미조정을 했다.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스크린 너머로 사라졌다가 곧 얇은 비단
속옷차림이 되어 나타났다. 피네로는 흘깃 보고는 그녀의 젊음이 가득한 아름다움과 거기에 동반한 약간의 수치심을 읽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일단 체중을 재어봅시다. 그래, 거기 올라가시오. 전극을 입에 무시고. 아니, 에드 전기가 흐르는 동안에는 부인을
만져서는 안됩니다. 일분도 안 걸리니까 잠시만 얌전히 계시오」
피네로가 기계의 후드 밑으로 들어가자 다이얼 몇개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곧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피네로가 걸어나왔다.
「에드, 자네 부인에게 손을 댔나?」
「아니오, 선생님」
피네로는 다시 후드로 들어가서 이번에는 앞서보다 꽤 긴 시간동안 거기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와서는 레이디를 향해 옷을 입으라고 말했다.
「에드, 준비하게」
「선생님, 베티의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좀 어려운데 그래. 일단 자네 테스트를 해보도록 하지」
청년의 측정을 마치고 나온 피네로의 얼굴은 앞서보다 훨씬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에드가 어떻게 됐냐고 묻자 피네로는 어깨를 어쓱하고는 웃어보였다.
「자네들하곤 상관없는 일일세. 기계가 잠시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야. 측정 결과는 오늘 드릴 수 없겠는 걸.
기계를 완전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겠네. 내일 한번만 더 와주시려나?」
「아, 괜찮습니다. 저기 기계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고장난게 아니면 좋겠네요」
「심하진 않네, 걱정말게. 그럼 사무실로 돌아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친절하시군요」
「저기, 에드. 나 엘렌하고 만날 약속을 했는데」
피네로는 자신이 가진 매력을 총동원해서 그녀를 설득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 없겠소, 아름다운 부인? 나같은 늙은이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즐겁다오.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오」
피네로는 두 사람을 사무실로 안내해서 앉혔다. 그리고 레모네이드와 쿠키를 갖고 오게 한 다음 시가를 권하고 불을 붙였다.
40분 후, 박사가 후에고 섬에서 있었던 청년시대의 모험담에 한창 열을 올리자 에드는 열심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베티는 안절부절하면서 돌아가고 싶다는 태도를 보였다. 박사가 시가에 불을 붙이고 잠시 이야기를 멈추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저희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남은 이야기는 내일 와서 들어도 될까요?」
「내일? 내일은 시간이 없을텐데」
「하지만 오늘도 바쁘시잖아요. 비서가 벌써 다섯번이나 전화를 하던걸요」
「몇분이라도 좋으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지 않으려오?」
「오늘은 정말 안되겠습니다, 선생님. 선약이 있어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설득해도 안되겠소?」
「유감스럽지만. 가요, 에드」
그들이 방을 나가자 박사는 창측으로 가서 거리를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이윽고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두 명의 작은 모습을 발견했다. 박사는 두 사람이 길모퉁이로 가서 신호가 바뀌는 것을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절반쯤 건넜을 때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작은 그림자는 순간 망설이면서 돌아가려는듯 하다
그 자리에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자동차 한대가 돌진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차의 밑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린 옷과 잔해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잠시후 박사는 창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고는 비서에게 말했다.
「오늘의 예약은 모두 취소해주게. ……아니……누가 오건 모두 취소야……상관없어. 취소하게」
피네로는 의자에 깊숙히 허리를 묻었다. 시가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꽤 어두워진 뒤에도 박사는 다시 불을 붙이지는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다.
피네로는 저녁 식탁에 앉자 눈앞에 차려진 만찬을 보며 잠시 명상에 잠겼다. 이 요리는 오래전부터 특별히 주문한 것이었고 충분히 맛보기 위해서
좀 일찍 귀가한 참이었다.
명상을 마치고 피네로는 피오르 드 알비니 몇방울을 혓바닥 위에서 굴린 뒤 목젖으로 흘려넣었다. 강하고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서 데워지고
술의 이름이 된 고산식물을 떠올리게 했다. 피네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멋진 식사였어. 훌륭한 요리와 엑조틱한 와인은 잘 어울렸다.
피네로의 생각은 현관에서 들려온 소음에 중단됐다. 나이 든 메이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것을 덮었다. 소음은 복도를 이동하더니 식당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만! 들어가면 안돼요! 주인님은 식사중이란 말입니다!」
「괜찮아, 안젤라. 이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눌 시간은 있으니까. 자넨 그만 물러가보게」
피네로는 쳐들어온 작자들의 두목으로 보이는 덩치좋은 남자를 보았다.
「나한테 볼 일이 있는 모양이군?」
「물론이지. 신사양반들이 네놈의 쓸데없는 헛소리에 질렸다고 하시더란 말이야」
「그래서?」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뒤에서 덩치는 작지만 잽싸보이는 사내가 걸어나와 피네로를 쳐다보았다.
「시작해도 되겠지」
위원장은 소형금고에 열쇠를 꽂고는 금고를 열었다.
「웬셀, 나하고 같이 오늘의 봉투를 찾아보세」
그렇게 말하고 뻗은 손을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베어드 박사님, 전화 왔습니다」
「알았네. 전화기를 여기로 가져오겠나?」
이윽고 운반된 전화기에 귀를 댔다.
「여보세요……네, 접니다만……뭐라고? 아니, 우린 아무것도 못들었네……기계는 부서지고……죽었다고! 알았네!
발표는 중지하도록 하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나중에 다시 전화주게……」
베어드는 집어던지듯이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반대쪽으로 밀어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이번엔 누가 죽었나요?」
베어드가 한손을 들었다.
「조용히 하시오, 여러분! 피네로가 방금 자택에서 살해당했소」
「살해당했다고?」
「그것만이 아니오. 같은 시간에 폭도들이 그의 사무실에 난입해서 그의 기계를 부숴버리고 말았소.」
처음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위원회의 멤버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아무도 먼저 의견을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겨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꺼내게」
「뭘 꺼내란 말인가?」
「피네로의 봉투 말일세. 그것도 여기 있을 거야. 내가 봤거든」
베어드는 피네로의 봉투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봉인을 뜯었다.
「뭐라고 적혀 있나? 읽어 보게!」
「오후 1시 13분……오늘」
모두 입을 다물고 사실을 받아들였다.
극적인 정적은 곧 깨졌다. 베어드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던 위원이 금고에 손을 내민 것이다. 베어드가 그의 손을 막았다.
「무슨 짓을 할 셈이오?」
「내 예언을……거기 있네……우리 모두의 예언이 거기 들어있네」
「그래, 그래. 우리 전원의 예언이 거기 있어. 찾아 보자구」
베어드는 두 손을 금고에 올렸다. 앞에 있는 남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베어드가 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양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있는 남자는 긴장을 풀고 다시 의자에 고쳐 앉았다.
「물론, 자네가 옳아」
맞은 편의 남자가 말했다.
「휴지통을 가져오게」
말하는 베어드의 목소리는 낮고 긴장에 가득차 있었지만 또렷했다.
휴지통을 받아든 베어드는 내용물을 카펫위에 부어버렸다. 그리고 양철로 된 휴지통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반다스 정도되는 봉투를 찢어버리곤 성냥으로 불을 붙여서 휴지통에 떨궜다. 이어서 이번에는 한번에 10장 정도를 찢어서 태웠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베어드는 기침을 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누가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작업이 모두 끝나자 그는 휴지통을 밀쳐버리고는 탁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됐네, 탁자 표면이 다 상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