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급히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뛰쳐나왔다.
비행기의 도착시간을 생각해봐도
공주님이 연락을준 시간은 꽤나 늦었다.
질문은 하지않는단 약속이었고,
이런 이해할수없는 행동은 지금와서 보이는것도아니다.
단지, 단지 나는 공주님의 얼굴이보고싶었다.
희미해져만가는 기억에 새로이덧씌우고싶었기에...
만나기로한 장소는 *에비스. *시부야 내 지명
그녀는 오늘밤은 느긋히 보내고싶으니 호텔을 예약해두었다고 말했다.
맨 처음, 그녀의 입에서 그 호텔명을 들었을떄 내 귀를 의심했다.
어딘가의 공원이라던가 오픈카페의 이름이겠지하고 착각했었다.
최고급호텔, 아드막히 먼곳에서 바라본 기억밖엔 없는곳.
평소엔 좀처럼 입지않는, 무거운 느낌의 수트를 꺼내
클리닝을 끝내고 돌아온뒤 셔츠를 입고, 나는 역으로 달렸다.
역앞의 상점가는 활기로웠다. 아마 언제나이정도로 활기차겠지만말이다.
이 모든광경이 내 눈에는 선명하게 채색된듯 보였다.
노점의 지붕대밑에 매달린 할로겐램프들의 불빛과
싸고 맛있다며 호객행위를 서슴치않는데도 시원하게만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
자전거의 긴 열과 싱싱한 생선들의 내음.
하지만 그런 볼거리조차 내 마음을 혹하게 할수는 없었다.
홈에서 전차를 기다리며 점점더 초조해질뿐.
나는 지금, 일초가 급하다.
358
호텔에 도착하여 프론트에 이름을 밝히자.
종업원이 왠지 쓸데없이 멋들어지게만든, 룸넘버가 적힌 금속으로된키를 건넸다.
그러면서 종업원이 먼저 객실에서 기다려줬으면 한다는듯하나
프론트의 번쩍이는 검은 대리석의 바닥을 가로질러,입구가 내다보이는 로비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한시간정도를 기다렸을때쯤.
프론트에 다가가는 눈익은 인영이보인다.
그 인영이 양손에 든 짐은 생각했던것보단 적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는 은색의 머리핀이, 뒷머리를 묶어두고있는게보였다.
나는 재빨리 일어서서 엘리베이터 홀에 향하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내가 뒤에있다는걸 전혀 눈치채지못하고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기내에 오르자 나는 그녀의 시계를 피해 등뒤로 돌아섰다.
목적층의 버튼을 누르는 그녀, 넓은 엘리베이터의 안은, 우리들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어서와」라고 말했다.
침묵이 자리한 이곳에서 갑자기 말을꺼낸 탓인지,
반사적으로 허둥대며 정면에있던 문에 부딪치는 그녀.
그뒤 그녀가 뱅글하고 뒤돌았을때,우리들은 눈이 맞았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어지기 시작하였고,
이윽고는 눈물을 머금으며 표정을 바꾸었다.
울먹이며 내 목에 팔을 감는 공주님.
그녀가 눈물을 머금은 이유는, 아마 재회로인한 기쁨때문인거겠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붙들고서 그간의 인사대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카나가... 돌아오지않아요.] 라며.
359
호텔의 방은 넓었기에 우리들은 그 넓음을 주체할수가없었다.
지나치게사치스런 가구들과, 크디큰 침대. 그 모든게, 우리에겐 어울리지않았다.
넓은방의 커텐을 열어젖히자 한장의 큰 유리가 있었고.
그 유리엔 시부야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시부야의 거리는 한낮과도 같이 밝았으며, 그 빛이 방의 벽에 반사되어
출입문 근처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있다.
불을 끈채인 방의 모퉁이에 몸을 기댄채로 그 어둠에 자리하는 그녀.
창밖을 보며 나는 그 아름다운 사자와같은 여자를 떠올려냈다.
날씬하게뻗어 탄력있어보이는 몸과, 한눈에봐도 날렵해보였다는게 기억난다.
하지만 이젠 어떤 목소리였는지는 기억나지않는다.
한동안 울먹이던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단지 나를 붙들어안은채 떨고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에 메달린 은색의 머리핀.
그걸 자세히보자 싸구려로된 쇠붙이로, 끈 위에는 인도화에 등장하는 신이 조각화처럼 세겨져있다.
이건 분명, 델리근처에서 가져온, 그녀가 말하는 [귀여운것] 이겠지.
어떻게 그녀의 머리를 모아주고있지만, 머리핀이라고 부르기엔 미덥지않기만하다.
그녀가 침대에누워 잠결에 뒤척이는것만으로도 구부러지며, 부러질것만같다.
내가 모르는 인도의 거리.
친구가 건네준 사진에담긴 숫자에따라, 그녀는 움직이고있는것일까?
칠흑과도같은 델리의 밤,
카나가 돌아오지않는다는건, 그 델리의 어둠에 먹혀버린건 아닐까?
360
나는 아무것도 묻지않았다.
한동안있자 그녀는 드디어,
[다녀왔어요.] 라며 입을 열었다.
내게[정말...보고싶었어요.] 라고도 말해주었다.
그뒤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들쑤신뒤,
보기좋게 포장된 만년필이라던가가 들어있을법한 직사각형으로된 상자와,
여러 종류의 담배들이 섞여담긴 상자도 꺼내어, 기념품이라고 말하며 내게 건네주었다.
크래커나 초콜렛,사탕같은, 말하자면 귀여운 패키지들로 밖엔보이지않아,
외견만보고선 담배라곤 생각되지않는다.
그녀는, [직사각형으로된 상자는, 아직 열지않아줬으면 해요.] 라고 말했다.
그러곤 [열어야 할때가 올테니깐요.] 라고도 말했다.
나는 솔직히 [알았어.] 라고 고개를 끄덕인뒤,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뒤 침대에 가자. 라고 말했다.
깊은밤이 다가오자 비가내리기시작했다.
우리들은 침대를 빠져나와 거울너머,
비에 흐릿해져만가는 시부야의 거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 였으려나, 그녀가 이상한걸 말해왔다.
[당신, 영화라던가 좋아하나요?]
[음, 평범하게 좋아하는정도려나?]
[그럼 스토커라는 무서운영화, 본적있나요?]
361
난데없이 왜 묻는걸까? 하고 의아해했다.
그 타이틀로 연상되는건 평범한 범죄라고 생각되는 그것뿐인데
그녀가 영화의포스터에 나온 사진을 묘사하기 시작했을때,그게 무언지 알았다.
타르코프스키의 그것이다. 나는 수긍할뿐인,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미스테리한 영화네.] 라고만 말했다.
그녀가 그 영화에대해 뭔갈 말하고싶은듯했고,
그 내용이 영화광들의 잘난체하듯하는 감상 같은게 아니란건 짐작된다.
그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유리위를 스윽거리며 무슨 그림이라던갈 그리듯 미끄러지게 놀린뒤,
[비.]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영화 속에는, 물이 한가득 사용되었다고 말하는그녀의 손가락엔 물방울이 있었다.
그녀는 유리 너머를 손끝으로 톡톡치며, 물방울을 흘러떨어뜨리고있었다.
426
그녀는 그 영화를 어디서 관람했던걸까.
이젠 오래되었기도하고, 컬트하기도하니,
어찌 생각해봐도 그녀가 즐거이 즐길만한, 훈훈하고 좋은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한두번 관람한건 아닌듯 싶었다.
그 기억은 나보다도 선명했다. 그녀의 이야기로 기억나는 신도 있을 정도다.
[어디서 본거야?] 라며 묻자
그러자 그녀는 다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영상기재나 관객석을 갖춘 바 같은곳이 있는데,
극장공개가 잦지않거나 적은 해외작품만을 한동안 상영하는곳이라 그곳에서 봤어요.
인도사람들은 말예요,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라며 말한뒤
[그리고 거기서 본 스토커란 영화에는
스토커라고하는 안내인과 두 손님이 굉장히 위험한 구역에 들어가는거에요.
그 구역의 근처엔 경찰이 한가득있는데, 이게 군대였었나? 어느쪽인진 잊어버렸네요.]
라고 덧붙여 말하고선 숨을 돌리는 그녀를 보며.
[그랬지, 구역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돌아오지않았고말야.
운이 좋았다면 뭔가를 가지고 돌아올텐데말이지.] 라고 말하자.
[그래요, 다들 돌아오지않는거에요. 카나처럼, 다들 죽어버리는거에요.]라는 그녀..
거기까지 말하자 나는 드디어 눈치챘다.
그녀가 안내인에의해 이끌어지는 투어의 손님이라는걸,
그녀가 그 위험한 여행의 참가자에 자신을 빗대고 있다는것을.
427
관객의 심경이 복잡하다곤하나 영화의내용은 단순하다.
구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장소엔 검은상자가 있으며,
그곳을 국가가 봉쇄하고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역에 숨어들어간뒤 살아돌아온 자들은 보물을 산처럼 쌓일정도로 손에 넣는다.
그렇지 못한자들은 그런 막대한 부에 걸맞을정도로 참혹하게 죽고만다.
나는 이게 이게 합당한건지에대해선 알지못한다.
뱅 돌려말하지않았기에,
그녀가 내게 그런이야길 하는이유에대해 어떻게 알아내었다.
공주님은 분명, 그 영화를 맥주라도 마시며 가끔씩 봐둔거겠지.
시간죽이기를 겸해서, 어디의 누군지도모르는 남자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말한뒤 그녀는벌벌떨기시작했다.
구역의 관광객과 자신을 겹쳐냈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될거라며.
이런 가볍지않은 이야기를 들어주고있는 나는 어째선지 냉정했다.
아마도 그 디스켓을 만졌던 밤부터, 어렷품이 눈치채고있었던거겠지.
즉, 이 이야기를 들은나는 그녀가 내게 거짓을 말했단걸 알았단 말이된다.
그 디스켓의 내용은 두말할 필요없이 위험한것이었다.
보물에대한 소문과 델리라는 이름을가진 미궁의지도가 담겨있기에,
디스켓이 그곳으로 그녀를 부르고있는 편도티켓이기에.
429
그녀는 *인도문과 *로디정원에서 * 델리소재지
같은 남자를 두번이나 언뜻 보았다고했다. 그녀는 그곳에선 관광객이었다.
토산품과 자전거택시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러니 [관광객이 가끔 같은코스를 헤메는건 자주있는 일이잖아.] 라고말하자
그녀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이건 절대 그렇지않다며,
그 남자는 인도인으로 상의엔 *쿠르타를 하의는 데님을 입은남자라고한다 *쿠르타 : 인도전통의상
아무래도 석연치않다며, 눈 앞의 풍경은 안심할수있을만한게 아니라고하고,
그녀는 등골이 오싹하다고말했다. 그뒤 [여권도 재발급받고, 헤어스타일도 바꿔야겠어요...]
라고말한 그녀는 그렇게까지만 말하고선 갑작스레 입을닫는다.
비가내린다.
공주님이 천천히, 응석부리듯이 내게 기대온다.
그녀를 안고서 머리를만지자
그녀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무슨일이 일어날것만같은 이야기가, 마치 옛날이야기처럼들린다.
옛이야기의 잔혹함을, 이야기속에선 정의로 슬쩍 바꿔놓을수있을것처럼말이다.
그런 그녀의 말투가 나는 시원스레 나를 진정시켰다.
이야기를 끝낸그녀는,
[카나에게 가볼까..]
라고 눈을 감은채로 말하고선, 곧바로 침식을 내기시작했다.
꽤나 지쳤던거겠지.
455
그녀를 침대에 뉘여 재워둔뒤, 한동안 멍하니 어둠속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녀가 말한걸, 머릿속에서 되세기며, 생각이 정리가될때까진 그녀의 곁에있었다.
그녀는 어째선지 엎드린채로 자고있다. 깊은잠에 접어들기까진 그 상태로자다,
이제는 팔을굽혀 배꼽에 맞대고선 잔다. 그런 그녀의 예쁜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하고 찌르자,
가려운건지 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난 이런 그녀가 어린아이같기만하다.
그녀의 손목을 살짝 잡아본다, 반응은없다.
나는 침전등의 불빛만에 의지한채로 PC를 켠다.
역시나 고급호텔이다.
DELL의 컴퓨터까지 구성품으로 제공하다니말이다.
처음으로 따닥여보는 키배열인지라 타이핑이 어려워 어깨가 뻐근하지만,
오늘은 그마저 기분좋았다.
오늘의 난 혼자가아니다.
오늘의 난 그녀의 침식을듣고있다.
미약하게 상하로 리듬을 타듯 숨쉬고있는 그녀를 나는 볼수있다.
나는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456
그녀의 고백을 의심하는것은아니나, 그 배경이 알고싶었다.
그런게 만약있다면,이지만 말이다.
귀국하지않은 일본인여성에게, 이유나 원인이있다면 아무래도좋다.
그런 여자들이 일년에 얼마정도의 수인지 어느정도라도좋다며.
보통사람에게있어 그녀의 이야기는 황당무계할뿐이다.
하지만 그곳에 순서를 부여하여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수있는 녀석도있다.
그녀석이 바로 내 친구다.
친구는 움직이는 어둠, 매일이다르게 갱신되는 정보의 파수꾼이었다.
언 더 월드의.
친구는 연예인이나 프로야구의 시합결과나 음악엔 전혀 관심을 갖고있지않지만,
어딘가의 자살지원자에게 매일이고 부지런히 메일을 보낸다거나
오사카의 소규모 공장의 주소를 토대로,어느정도의 자재가움직였다던가, 그런 조사엔 여념이없다.
친구는 방에서나오지않는 동시에 굶어죽는, 아사하지도않는다.
이 말도안돼는 모순.
가능한한 외출도하지않는 친구가 운동화를 갖고싶어한다는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그 콜렉션은 본인의말에 의하자면 꽤나 굉장하다는듯하다.
친구는 동전이한푼이라도 제게 떨어지지않는 개인적인 해킹이나 크래킹엔 흥미가없다.
그런 친구는 정보의 흐름속에서 잠들어있는 사금을 주워낸다.
즉, 히키코모리인 주제에 나보다는 리치이기도 하다.
사금을 주워내는 리치인 친구가 살펴준 데이터들은 제법 신용할수있는 내용이란말이된다.
457
메일을 보내고 담배에 불을붙인다.
그녀의 잠든얼굴을 보고있자 갑작스레 커피가 마시고싶어졌다.
룸서비스로 호출한후 주문을 넣자,
종업원이 갓타내온듯, 따뜻한 커피를 테이블에 앉혀주는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않았다.
문에 노크가 울리는것과 거의 동시였을쯤에, 친구에게서 답장이왔다.
458
>CBS의 *60미니츠에서도 다뤄냈을정도로 문제시된 사건이야. *유명 다큐멘터리
역시 너는 박식하구나, 친구야.
하지만 왠지 즐겁지만은않은걸, 유쾌한 이야기를 네게서 듣고싶어했던건 아니지만말야.
514
그녀를 만나고서 몇번쨰로 맞이하는 아침인지는 기억나지않는다.
오전중엔 호텔을나가 둘이서 에비스역까지 걸어
나는 회사로, 그녀는 시부야로 돌아갔다.
서로가 돌아가는 길,
[오늘밤은 늦을것같아요.] 라고, 그렇게말한건 그녀쪽이었다.
어젯밤 선물로준상자를 절대로 잃어버리지말라며,
그리고 오늘밤도 그곳에 돌아와줬으면한다며.
그말을들은 나는 회사에서 죽어있는것과 마찬가지였다.
몸상태가 좋지않다며 회의를 제쳐놓고는 회사 근처에있는 공원에서 잠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친구가 문자와 메일을 보냈다는걸 확인했다.
친구는 하룻밤만 기다려달라고말했지만 내가 수신한 메일의내용에는 질문에맞는 답변이아닌,
>내가 아무리 재빠르게 조사한다고 할지라도 하룻밤만으론 너무 촉박해, 그러니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
라고, 이렇게 답장을 보내뒀다.
오후의 공원은 화창하기에 한가롭기만했다.
예전이라면 벤치에 멍하니 걸터앉아 한가로이 구름만 바라보는 샐러리맨을 이해할수없었다지만.
지금의 나는 그들과 완벽한 판박이다.
비둘기가 떼지어 모인뒤 날아오른채로, 머리위를 춤추듯 돈 뒤에 다시 땅으로 돌아온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못할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풍경 뒷면에는 어두막한 밤이 정확하게도 휘감아져가고있다.
이것이 세트와 같다. 라고들한다.
내가보기엔 이 현상 자체가 앞과뒤가 전혀다른 트럼프카드와 같다.
앞면은 틀에맞춘듯한 심심한만이 엿보이는 기하학적무늬.
뒷면은 초승달에 그려진 조커와도 같이말이다.
515
날이저물기전에 시부야에 향했다. 에비스와는 바로 옆이기도하니
마음만먹으면 걸어서도 호텔에 돌아가는게 가능하기도하다.
나는 세이부백화점의 1층플로어를 어슬렁거리며 둘러보다가 눈이맞은 *미츠코겔랑을 하나 샀다. *향수
나무나도 호화스런 디자인의병이다.
제품설명서를 읽어보자, 생산년도부터 80년이고 경과했다고 적혀있었다.
이걸 공주님 나이에 사용하기엔 조금 이른걸지도...
한번이지만 공주님이 그런 병을 호텔의 세면대에있는 하수관에 흘려보냈던걸 본적이있다.
다른 여러 화장품에 섞여서말이다.
하지만 그런 광경이 눈에 들어온건 싫지만은않았다.
공주님이 그렇게끔, 자신의 주위에 흩뜨리는 풍경이말이다.
의자옆에 세워둔 부츠.
침대에 둔 코트와 미니스커트.
그중에서도 저번밤, 호텔을 어지럽힌 가방속 내용물이 인상적이었다.
분홍 해골이세겨진 플로피디스크.
지금에 이르러선 생각하는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 걷자고생각했다.
느긋이 걸어봤자 공주님보다는 일찍 도착할것만같다.
포장을 열어, 세면대에 슬쩍 놔두자.
그러면 공주님은 무의식적으로 가방에 넣어줄지도 모른다.
516
침대에서 꾸벅꾸벅 졸고있자 핸드폰이 울렸다.
공주님에게서[로비까지 내려와줬으면해요.]라는 전화였다.
모처럼 에비스에 있으니 라면이라도 먹자고 말이다.
로비로 내려가자 깜짝놀라고말았다.
로비의 소파에앉아 커피를 마시고있던 낯성 여성의정체는 공주님이었다.
그런 그녀를 못알아본 나는,
두리번거리다 등뒤를잡히고말아 옆구리를 손가락에 콕 하고찔리고말았다.
등뒤에 서있는 그녀, 머리는 짧게 잘려있었고 색은 좀더 밝아진 카라멜색이다.
일본인 여성의 검은눈동자가 보인다.
언제나의 컬러렌즈는 착용하지않았다.
아무리 분위기를 바꿨다고한들 예쁘기만한 그녀다.
우리들은 손을잡고 에비스의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역방면을 향하여 내려갔다.
라면을 먹으려 했던것임에도,어느 가게로갈지는 정해져있지않았다.
우리들은 느긋이걸으며 들어갈 가게를 찾아 거리를 서성였다.
아니지, 우리는 반대로 이걸 즐기고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당신말이에요, 왜 내 손을 잡아주는건가요?]라고 말하는그녀와
역을 지나 *다이칸야마로 간다. *시부야지명
차의 소음에 먹혀버린듯해 그녀의 말이 확실히 들리진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무얼 물으려했는건지는 안다.
나는 아무대답도않았다. 들리지않은척을했다.
입밖에 내자니 멋쩍고 쑥쓰러웠던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리를 내지않고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공주님이 머리를 만지는걸 허락해준 최초의 여자니까.
나를 필요로해준 최초의여성이니까.] 라고말이다.
517
정처없이 발길만을따라 다이칸야마에 향하는도중.
친구가 메일을보내왔다.
짧은 단문메일이었다.
스크롤을 내릴필요없이 전문이 화면에 딱 들어올정도의 내용으로 이렇게 말이다.
>공주님을 붙잡아둬, 알겠지?
내일 일본을 떠나는 비행기에 절대로 태워선 안된다.
절대로 떠나게해선 안돼.
hiroshima.tistory.com
619
그걸 보고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일의 답장따위를 기다려줄만한 위인이아니니말이다.
친구도 자신을 잘 알아주었다고 생각했겠지.
그렇게 단 두번의 수화음을 흘려보낸뒤, 친구의목소리가들려온다.
생각해보니 나와친구는 평소엔 별로 재잘대지않는다.
그렇게 잔뜩 회화를나눈다할지라도 그건 2바이트로 변환되니깐이다.
대량의 문자와 이미지데이터를 조사하고 건네주는 정보의파수꾼,
그와 통화하는 내가 들은 전화기너머의 목소리는 타인과같이 들렸다.
그렇기에 나는 이 남성의 목소리가 본인이라고 생각되기까지
도로위에 부는 강풍속에서 [ 너 내 친구맞아? ]라고 계속하여 외치지않으면 안됐다.
반복하는 내 질문에 답하는 친구의 한마디, 턱없이 짧다는건 알고있다.
그렇기에 나는 태클을 걸어야할지도모른다.
하지만 친구의 한마디를 듣고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에어인디아]*인도항공
라고 친구는 말했다. 항공사 명이다.
내 귀를 통과하는 수많은 잡음속에서도 그부분만은 제대로 울려퍼졌다.
끊겼을지도 모르는길,탐색하기엔 턱없이 좁은길,
그속에서 친구는 기가막힌 천재적능력으로 최후엔 탑승예약데이터 속에서 그녀의이름을 찾아내었다.
그렇게 말한뒤 [운이좋았어.] 라고 말했다.
왠만하면 연락하는것만으로도 수일은 걸릴정도로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라고 말이다.
이 정보를 알아내기위해서 돈이라던갈 썼던거겠지..
친구가 그걸 입밖으로 내진않았지만말이다.
hiroshima.tistory.com
620
그럼에도 내게 [미안하다...] 라고 친구는 한탄했다.
이 외엔 단 하나도 알지못했다면서.
[기억해? 3장의 gif파일 말야. 인도의 3곳의 거리와 자전거택시가 담겨진사진.
그 사진의 배경은 어느곳이고 전자상가가 밀집해있는곳이야.
일본으로치자면 아키하바라라고.
그곳들은 뒷골목에 들어가기만하면 윈도우를 2달러에 살수있어.
사진속의 그 장소가 골라진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거야. 하지만 그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어.
내가 말해줄수있는건 여기까지다, 미안하다.]
라고말한 친구의 한숨과같은 무언가를 내게 들려준다음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그걸듣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위해
인디아항공의 1개월간의 인도행 항공기좌석의예약상태를 찾아봤다.
그러자 그곳엔 공주님의 이름이 있었다.
공주님이 가명을 사용하지않은점을보면,
이걸로 나와의 이 서성임을 끝내려하고있는게 아닌가 싶기도하다.
물론 내가 말하고있는건 전부 추측일뿐이다.
하지만,
오늘밤 내가 잡고있는 이 손을 놓는다면 그녀는 이제 돌아오지않을것만같다는 생각이든다.
621
이젠 괜찮아 친구야.
공주님은 여기있어.
내 손을 잡아주고있어.
눈을감으면 공주님의 체온을 느낄수있어.
652
다이칸야마까지 걸어온 우리들은 가게를 찾으려하지않았다.
배가 고픈지조차도 알지못하게되었다.
어디에 들어가도좋고 먹지않아도 좋다며.이대로 길을 헤메는것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결국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진정시킨뒤
후레시니스버거에서 나는 오렌지주스를 마셨고,
그녀는 후라이드포테토를 몇개만 집어먹었을뿐이었다.
아무래도 만나기 시작한 그날밤부터 감기기시작했던 밤은,
더이상 감길게없이, 완전히 감겨버린듯하다.
우리에겐 더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지않은듯했다.
그녀가 이젠 내가 알아채버린 그걸 말해주지않은채로
애써서 밝게 행동하며, 날 위해 농담도 건넨다.
그런 그녀는 호텔에 돌아와서도, 내곁에서 떨어지지않고 있어주었다.
653
호텔에 내리깔린 어둠.
그 어둠속에서 그녀는 짐을꾸리기 시작했다.
세면대에 있던 화장품을 모아 정리한후
백에 넣어가져온 어딘가의 샵의 봉투에서 새 원피스를 꺼내어 갈아입고
PC를 켜고선 짧은 메일을 송신했다. 그 뒤 우리들은 침대에 누워 잠시간의 잠을 청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불던 파도가 , 조금의 바람도 불지않은 상태가되어
잔잔한 수면이된다 이젠 잔물결이 하나도 치지않아 완전한 거울과도 같아진다.
그것에 닿은 순간, 나는 이젠 아무말도 할수없게되었다.
그녀는[고마워요.] 라고 말했다.
새벽.
그녀는 호텔방에서 떠났다.
푹신푹신한 융단탓에 발소리조차없이.
그녀는 요정처럼 내 앞에서 사라져 없어졌다.
654
그녀가 남기고간 기념품상자를 열어봤다.
화려하게 극채색된 꽃이그려져 척봐도 인도의 토산품같아보이는 향이나는 상자다.
상자속은 텅 비어있었다.
상자속에 대신 들어있던건 분홍색 곰인형이었다.
상자의 덮개를 열때 , 향수의 향기가 사악하고 퍼졌기에
나는 그 향기를 폐속에 가득 차도록 크게 들이쉬었다.
벌써부터 그리워지기만하는 향기.
그건 그날밤, 그녀의 목덜미에 남아있던 그 향기와 같은것이었다.
도무지 떠오르지않았던,
그 달디단 냄새였다.
-完-
-------------------------------------------------------------------------------------------
출처 : http://hiroshima.tistory.com
[출처] [2ch] 나와 공주님 - 完|작성자 Shirou
당장 수갑이라도 같이 차서 못 가게 한다 해도 언젠간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거같네요
현실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조금 허무하네요...
꽤 긴 글이었는데 1편부터 6편까지 순식간에 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에요?;; 공주님은 인도에 약 팔러 간거에요??? 이렇게 끝~??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