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괴괴)코가님과 기사(忌蛇)
내가 아직 본가에서 살고 있었을 때, 우리 집에는 코가 님(古賀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백발을 칠삼 가르마로 단정히 넘긴, 매우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었으며, 항상 백의을 입고, 흰 버선을 신은 모습이었다.
나이로 따지면 당시 아버지와 비슷했으니 40세 전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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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가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2층짜리의 오래된 일본식 가옥이다.
코가 님이 계시던 곳은 **2층 맨 안쪽에 있는 불이었다.
내 방도 2층이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코가 님의 방 안을 본 적이 있다.
8조(畳) 정도 크기의 다다미 방이었고, 정면 깊숙한 곳에는 화려한 제단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약 1미터 크기의, 검게 번들거리는 이상한 조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조각은 보기만 해도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몸통은 허리에 천 조각만 두른 나체의 남성이었는데,
머리는 뿔이 돋은 흉포한 황소의 머리였다.
그리고 그 상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앞에 놓인 대접 위에는 왜인지 쥐나 개구리의 사체가 제물처럼 올려져 있었다.
코가 님은 아침, 점심, 저녁 정해진 시간마다 그 어둑한 다다미방의 제단 앞에 정좌하고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곤 했다.
그리고 밖에서 어떤 일(직업)을 하고 있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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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나도 몇 번이고 부모님께 코가 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코가 님은 누구야?”
“친척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면…”
“왜 우리랑 같이 살고 계신 거야?”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항상 굳은 얼굴이 되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불경한 건 물어보는 게 아니란다.
그분은 정말이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야.”
그리고는 항상 얼버무리듯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단 한 번,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나와 단둘이 되었을 때,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건 네 엄마 뱃속에 네가 있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때는 봄철쯤이었고, 산나물을 좀 캐려고 아침부터 뒷산으로 들어갔었지.
오전 늦게쯤엔 양동이 하나 분량의 고사리를 캐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종아리 부근이 따끔해서 ‘진드기한테 물렸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러곤 계속 고사리 캐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심한 통증이 밀려오더라고.
어찌나 아픈지 바지 자락을 걷어 올려봤더니,
무릎 아래가 보라색으로 부어올라 있더라.
─‘이런, 살무사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어.
머릿속은 뜨거워지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결국엔 서 있을 수조차 없어져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아 이젠 정말 죽겠구나… 하고 각오까지 했던 찰나,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라고.
‘누구지? 벌써 저승사자가 온 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게 바로 코가 님이었어.
수행 중인 수도승처럼 백의 차림의 코가 님은
부풀어 오른 내 오른발의 상처에 갑자기 입을 대더니,
츄-츄- 빨기 시작했어.
어느 정도 빨아낸 뒤에는
이번엔 정성스럽게 기도를 시작했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저 되는 대로 몸을 맡겼어.
믿기지 않겠지만,
그 덕분인지 정신이 돌아오고,
결국엔 간신히 일어설 수 있게 되었어.
나는 정중히 인사하고,
집으로 모셔 와 술과 음식을 대접했지.
이야기 나누다 보니,
자기는 어떤 종교의 창시자인데,
현재는 특정 거처 없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럼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지내주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그 일이 있은 후로,
코가 님은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2층 맨 안쪽의 불단방을 거처로 정한 코가 님은
처음에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집안은 대대로 기사(忌蛇),
즉 저주받은 뱀의 원령에게 씌어 있습니다.
아마도 수대 전에 당신 조상이
뒷산을 거처로 삼고 있던 ‘기사’의 화신,
그 뱀에게 어떤 해코지를 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이 집에서는 뱀과 관련된 재앙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여동생이 중학생이던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다며, 이불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일 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도 전혀 낫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심해졌습니다.
밤이 되자 40도를 넘는 고열에 시달리며, 이불 속에서 여동생은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병원에도 갔고, 약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의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고,
결국 의식을 잃고, 눈을 감은 채로 누워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여동생 모습은, 직접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쇠약해진 얼굴과 팔다리는 푸르스름하게 변색되었고,
완전히 말라버린 피부 여기저기에는 마치 비늘처럼 단단한 것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완전히 달라져버린 여동생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그녀의 머리맡을 지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부모님은 코가 님께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코가 님은 험한 표정을 짓고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 아버님의 재앙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집안은 대대로 기사(忌蛇)라는 뱀의 원령에게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따님은 그 기사(忌蛇)의 원념에 의해 사지를 구속당해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이대로라면 점점 쇠약해져 마침내는 저주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 코가 님은 부모님에게 다음의 부탁을 합니다.
자신의 방에 이불을 깔고, 딸(여동생)을 그곳에 눕혀달라.
뒷산에서 될 수 있으면 큰 뱀을 살아있는 채로 포획해, 방까지 가져다달라.
우리 본가는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의 단독 주택이었고,
집 뒤편으로 나가면 산림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생업으로 하셨고,
가끔은 해충 구제를 위해 뱀을 포획해 처리한 적도 있었기에,
그에 맞는 도구도 가지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부모님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뱀을 포획하기 위해 아침부터 도구를 들고 뒷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한편, 코가 님은
박제된 황소 가면을 쓰고, 허리에 천 조각 하나만 두른 나체가 되어,
자신의 방 제단을 등지고 정좌한 채,
누워 있는 여동생을 향해 일심불란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어찌어찌해서 큰 뱀을 포획한 부모님은
그 뱀을 포획용 철장에 넣은 채, 코가 님에게 가져옵니다.
그 뱀은 전장 2미터는 너끈히 넘는 대형 뱀이었습니다.
그러자 황소 가면을 쓴 코가 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 더럽기 짝이 없는 뱀의 목을 단칼에 베고,
몸통만 이리로 가져오십시오.”
아버지는 부엌칼을 가져와, 어머니와 함께
온힘을 다해 뱀의 머리를 눌러 고정한 뒤,
목을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아직 꿈틀대는 몸통을 가까스로 코가 님에게 건넸습니다.
그는 그 뱀의 몸통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자, 따님의 입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어머니는 말대로,
의식 없는 여동생의 입을 억지로 열었습니다.
그러자 코가 님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뱀 몸통의 절단면을 여동생 입 위에 들이대고,
그곳에서 뚝뚝 떨어지는 새까만 피를
입 안에 방울방울 떨어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곧 주위에는 비릿한 피비린내가 퍼졌고,
도중에 여동생은 괴로운 듯 헛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고,
이불이나 다다미 이곳저곳이
뱀의 새까만 피로 더럽혀졌습니다.
우리는 그저 몸을 떨면서,
그 끔찍한 광경이 끝나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 잘린 단면에서 피는 멎었고,
코가 님은 뱀의 몸통을 발밑에 떨어뜨리더니
여동생의 머리맡에 정좌한 채 다시 한 번 일심불란하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를 무렵,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동생이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킨 것입니다.
부모님도, 나도 정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날부터 여동생의 상태는 이상해졌습니다.
먼저, 얼굴은 창백하고 표정이 사라졌으며,
눈은 토끼처럼 충혈되어 있었고,
말을 전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움직일 때는 배를 바닥에 붙이고,
사지로 기어가는 식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는 걸 극단적으로 꺼려하게 되었고,
하루 종일 코가 님의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도
여러 차례 여동생을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동생이 걱정되면서도
학교 소개를 통해 오사카에 있는 차량 정비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처음엔 실가와 연락도 주고받았지만,
여동생은 여전히 전과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바빠지면서,
약 반년 정도 연락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직한 지 딱 1년이 지난 오봉(추석) 연휴,
그 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7주기였기에
나는 귀향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해진 나는 별다른 연락도 없이,
규슈에 있는 고향 집으로 직접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신칸센과 로컬 버스를 갈아타고
산자락에 있는 익숙한 일본 전통가옥에 도착했을 때는
태양이 이미 높이 떠 있었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힘차게 현관문을 열고
넓은 현관에 들어선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건,
고요하고 삭막한 실내 풍경이었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현관 너머로 이어진 복도는 어둑하고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상하네…” 하고 생각하며 신발을 벗고,
먼저 1층 안쪽 거실로 가봤습니다.
방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지만,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부르며 1층 방들을 차례로 확인했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2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계단을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중,
나는 “앗!” 하고 무심코 소리를 냈습니다.
어두운 복도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것들.
그것은 뱀의 사체였습니다.
크고 작은, 색깔과 무늬도 다양한 뱀들이었지만,
모든 뱀들의 머리는 잘려나가 있었고,
길게 늘어진 몸통만이 마구 흩어져 있었습니다.
계단 위에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중,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건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 주문과도 같은 소리.
코가 님의 목소리였습니다.
가장 안쪽의 그 방,
즉 제단이 있던 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뱀 사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곧장 걸어갔습니다.
미닫이 문 앞에 다다르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시야에 들어온 광경──
그건:
정면 제단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코가 님.
그 앞에 정좌한 세 명의 흰옷 차림의 인물들.
그들은 부모님과 여동생이었습니다.
코가 님은 그 황소 가면을 쓰고 있었고,
허리에 천 한 장만 두른 나체였습니다.
그 오른손에는 목이 잘렸음에도 꿈틀거리는 푸른 뱀의 몸통이 들려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먹이를 기다리는 잉어처럼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린 채 있었고,
코가 님은 그 뱀의 잘린 단면에서 뚝뚝 떨어지는 새까만 피를
세 사람의 입 안에 차례차례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멍하니 내뱉은 나의 목소리에 반응했는지,
세 사람은 동시에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로,
토끼처럼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가늘게 뜨고,
섬뜩하게 씨익 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