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은 국방장관 관사에 있다 근처 육군참모총장 관사에서 보안사 병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체포하기 위해 총을 쏘자 총소리에 놀라 관저를 빠져나와 미8군 사령부로 도망갔다. 그런데 안전한 연합사로 잘 도망가 놓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병력이 없는 국방부로 돌아와 쳐들어온 제1공수여단에게 잡혔다. 미8군 사령부는 북한과 전쟁이 터졌던 쿠데타가 일어났건 한반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거기에 머물며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을 잘 설득해 반란군을 진압하게 하는 게 최선이었고 차선으로 정 국방부에 있고 싶었다면 육본 B-2 벙커(정선엽 병장이 지키던 곳)에서 버텨야 했다. 거긴 북한과의 전쟁 시 군 지휘본부로 쓸 수 있게 지어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거기에서 버틴다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정승화 육참총장 체포를 사후허가해달라는 반란군 장성들에게 국방장관과 상의 하에 허가하겠다고 버티고 있었기에 국방장관의 신병 확보는 쿠데타의 성패를 갈랐다고 할 수 있다. 이건영 제3군 사령관도 국방장관의 명령이 있어야 휘하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다고 했기에 장관이 안전한 연합사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나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병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쿠데타는 실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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