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편하거든 ㅋㅋㅋㅋㅋ
도덕성이고 뭐고 기준없이
오직 내가 편한대로 살아가라는게 존나 좋아보였는데
사람이 기준을 안 세우면 정도가 없더라고 ㅋㅋㅋㅋㅋ
쉽게 말해 지들이 이득이다 싶으면 개호로 짓거리를 하고 다님
지들이 개호로 짓거리를 하는데 유교적인 도덕성으로 지적당하니까
유교를 우스개꺼리로 만든거임
조선을 망친 고루한 사상...
이게 딱 이명박근혜 때 피크 찍음 ㅋㅋㅋㅋ
도덕성이고 나발이고 다 팔아서라도 부자가 되어라
이걸 강조하듯이 진짜 도덕성 미쳐돌아갔음 ㅋㅋㅋㅋ
지금도 기준이 없으니까
미친 새끼들이잖아 ㅋㅋㅋㅋㅋ
쥐박이 이전에도 먹사들이 유교나 전통 사상 폄훼하며 은근슬쩍 자기네 사상을 집어넣긴 했어. 물론 자기 세력 불릴 땐 무속 요소 많이 차용해 쓰고.
정작 유교 관련 연구들 보면 정작 현재 한국 유교는 일제때 왜곡된 게 엄청 많아서 제대로 된 유교사상도 아님.
아마 이 책이 유교비판론의 방아쇠 역할을 했던것 같음 99년도 책이고.. 시대적 분위기가 허례허식, 연장/상급자에 대한 복종 등 유교 사상의 폐단이 심하던 시절이었고, IMP사태로 기존 ‘으르신’들의 추한 모습이 낱낱히 까발려져 유교적 권위가 추락했으며 그 반동으로 반유교 정서가 쌓여가던 중에 타이밍 좋게 또는 필연적으로 저 책이 나오게 된거라고 생각됨. 마침 당시의 X세대는 유교적 제약을 벗어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이런 스택들이 쌓여 지금의 상태가 된 거겠지? 지금 시대는 개인주의를 기본으로 깔고 타인 및 공동체에 대한 적개심...이랄까 일단 배척하고 의심하는 그런게 흐름이 되었는데 그래서 나오는 폐단이 원글에서 말한 문제겠지. 이런 안하무인적 작태에 피로함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나고 적당히 때가 무르익은 뒤에 경제나 무력도발 등의 외부충격이 생기면 유교적 질서로 복귀하자는 운동이 득세할 수 있을거임. 결론 : 혼돈의 카오스는 언제나 우리와 함깨하신다능
효도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봄. 부모의 인과 자식의 의가 조화를 이루어야 바른 효도가 성립이 되는데, 무조건적으로 부모가 시간과 돈을 투자한것 동률과 그 이상으로 자식에게 상환받을 권리로 해석해버리는 거. 자식은 부모의 인생을 빼앗은 태생적으로 후레자식이 되어버리고, 부모는 변변찮은 자식때문에 언제나 고통받는 피해자로 만들어지는데 이것도 세대갈등의 적지 않은 주축이 되니까.
그리고 박근혜는 오히려 중국과 같이 유교연구 한창 지원하던 시절임. 물론 현장 교수님들은 박정희 치적 따라하기일 뿐이라며 싫어하셨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유교로 왜곡된건 좀 있다고 함 정작 그 이전 조선시대나 대한제국 시절 유교 사상 보면 현재랑 완전 딴판임
왠지 예시들은 유교가 아니라 일본문화의 잔재같은데...
쥐박이 이전에도 먹사들이 유교나 전통 사상 폄훼하며 은근슬쩍 자기네 사상을 집어넣긴 했어. 물론 자기 세력 불릴 땐 무속 요소 많이 차용해 쓰고.
다른 나라 사상에 정신팔려서 자국 사상이고 국민이고 다 쳐죽이는(영락교회와 서북청년단 참조) 근본없는 개 호로새끼들.... 어? 잠깐만 이거 딱 중국 공산당 새끼들이잖어?
유교 지우기는 일제시기 있었다는 지적은 있지만 그때는 글쎄?
죄수번호-745705044
그리고 박근혜는 오히려 중국과 같이 유교연구 한창 지원하던 시절임. 물론 현장 교수님들은 박정희 치적 따라하기일 뿐이라며 싫어하셨지만.
정작 유교 관련 연구들 보면 정작 현재 한국 유교는 일제때 왜곡된 게 엄청 많아서 제대로 된 유교사상도 아님.
아마 이 책이 유교비판론의 방아쇠 역할을 했던것 같음 99년도 책이고.. 시대적 분위기가 허례허식, 연장/상급자에 대한 복종 등 유교 사상의 폐단이 심하던 시절이었고, IMP사태로 기존 ‘으르신’들의 추한 모습이 낱낱히 까발려져 유교적 권위가 추락했으며 그 반동으로 반유교 정서가 쌓여가던 중에 타이밍 좋게 또는 필연적으로 저 책이 나오게 된거라고 생각됨. 마침 당시의 X세대는 유교적 제약을 벗어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이런 스택들이 쌓여 지금의 상태가 된 거겠지? 지금 시대는 개인주의를 기본으로 깔고 타인 및 공동체에 대한 적개심...이랄까 일단 배척하고 의심하는 그런게 흐름이 되었는데 그래서 나오는 폐단이 원글에서 말한 문제겠지. 이런 안하무인적 작태에 피로함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나고 적당히 때가 무르익은 뒤에 경제나 무력도발 등의 외부충격이 생기면 유교적 질서로 복귀하자는 운동이 득세할 수 있을거임. 결론 : 혼돈의 카오스는 언제나 우리와 함깨하신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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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예시들은 유교가 아니라 일본문화의 잔재같은데...
딸기찰떡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유교로 왜곡된건 좀 있다고 함 정작 그 이전 조선시대나 대한제국 시절 유교 사상 보면 현재랑 완전 딴판임
자신의 도덕관념이 아니 일본식 수치의 개념만 남은거 같음
누구 조폭이 유교관련 회장?? 한거본거같은대 최모였나 이재앙관련
효도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봄. 부모의 인과 자식의 의가 조화를 이루어야 바른 효도가 성립이 되는데, 무조건적으로 부모가 시간과 돈을 투자한것 동률과 그 이상으로 자식에게 상환받을 권리로 해석해버리는 거. 자식은 부모의 인생을 빼앗은 태생적으로 후레자식이 되어버리고, 부모는 변변찮은 자식때문에 언제나 고통받는 피해자로 만들어지는데 이것도 세대갈등의 적지 않은 주축이 되니까.
조선 후기부터도 소장파 유학자도 아닌 이조판서까지 지냈던 주류 유학자들까지 성리학, 세세하게는 주자학의 경직된 해석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음. 남인 강경파였던 청남 윤휴는 송시열과 주자학의 해석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렸는데 송시열이 나중에 찾아가 아직도 주자의 해석이 그르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공은 어째서 주자만 공자의 뜻을 알고 나는 모른다고 하는가'라고 반문해 다시는 찾지 않았다고 하며(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알려졌으나 숙종의 환국 정치 속에서 희생된 것이고 이건 반대파였던 송시열도 마찬가지였음), 남인의 영수였던 허목은 더욱 강경해 아예 어떻게 사물의 진리를 공자만 아느냐 다른 학문도 진리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아가기도 했음. 다만 이 둘의 주자학에 대한 비판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영역이었고 송시열도 그렇게 받아들였으나 이걸 예송논쟁 과정에 정치적 논쟁으로 끌고가 역적죄로까지 비화한 것은 시조 작가로 잘 알려진 윤선도였음. 사문난적에 역적으로 몰리다보니 두 사람은 언급조차 안되는 죄인으로 취급되었으나 조선 말기 다른 아닌 이완용에 의해 복권되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
내가 잘못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첨언 하자면 유학과 유교이라는 두 명칭 사이의 문제도 있고(유학과 유교는 같지만 다름) 엄밀히 말해 조선은 유학이 아니라 성리학(주자학)의 나라였음 그래서 윗 댓글의 주자만 공자의 뜻을 알고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
(정정) 조선은 유학이라기 보다는 성리학(주자학)의 나라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