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종이, 화약, 나침반은 중국 민족의 발명품임을 인정하더라도(사실은 종이와 나침반도 우리의 발명품) 인쇄술 발명에 대해서는 의혹을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인쇄술이 중국민족의 발명품일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제작해 낸 우리 입장에서 서서히 우리 나라를 인쇄술의 종주국으로 주장하는 논리들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99년 10월 19일 연세대 상남 경영관에서 벌어진 ‘세계인쇄문화의 기원에 관한 국제 학술 심포지엄’은 중국과 우리 나라의 인쇄술 종주국을 가리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날 화두는 1966년 10월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리니경』.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중국의 판지싱(중국과학원), 샤오동파(중국 북경대학) 교수 등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측천무후 재위시(690~705) 중국 낙양에서 제작됐으며, 이것이 한국에 전래됐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이들은 측천무후 재위시에만 한정적으로 이용됐던 무주제자(武周制子)가 사용된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날 한국 학자들의 반격은 치밀했다. 청주대 김성수 교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제 3장 3행 마지막 글자의 편린인 조(照)를 『고려대장경』 등의 내용과 비교한 결과, 조(照)자로 판명됐음을 밝혔다. 이는 중국측 학자들의 중국 제작설을 뒤엎는 것으로, 당시 황제였던 측천무후의 성이 조(照)씨 임을 감안하면 당시 중국에서는 피휘(避諱-황제의 이름이나 성을 피해 한자를 사용하는 것)로 이 글자를 쓸 수 없다. 따라서 이 점만 보아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류전문가인 박지선 교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종이 재질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종이가 신라지역에서 생산한 닥종이며, 신라 고유의 종이 가공법인 도침법(搗砧法)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또 당시 신라에는 닥종이 제조 기술이 없었다는 중국측 주장과는 달리, 삼국시대 종이류를 정밀 분석한 결과 신라가 이미 8세기 전후로 두께 0.019mm에 불과한 종이를 만들 정도로 훌륭한 종이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입증했다. 따라서 이날 심포지엄은 한국측의 완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심포지엄을 통해 인쇄술의 종주국이 우리 나라임을 입증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중국 쪽은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를 빼앗긴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든 반격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문화유산 등재와 교과서 개정을 통해 세계와 후손들에게 인쇄술 종주국이 바로 우리 나라임을 알리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