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 21시 00분.
"안 돼... 가지마... 날 떠나지 마아!!"
소파에 지쳐쓰러져있던 마린은 단말마에 가까울 정도의 비명과 함께 화들짝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심신 양면으로 지쳐 시큐리티 포스를 떠나버린 마린은 그 이후로 꿈에서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또야... 또..."
동기였던 마르가리타를 애프터라이프의 손에 잃고, 짧게나마 우정을 나누던 동료들도 암흑 날개와의 사투에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가고, 미래를 약속했던 그 남자조차 말레우스 일파의 음모에 휘말려 반쯤 그을린 [머시너즈 카넬] 1장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암흑 날개의 몰락도 그녀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주지 못 했고, 끝내 시큐리티 포스에서 손을 떼버린 후 폐인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상태가 되어 죽지 못 해 사는 모양새로나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마린을 루시우스와 그가 보살피고 있는 세 쌍둥이가 보듬어주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마린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 애들이... 오기엔 좀 늦은 시간인데..."
초인종 소리. 세 쌍둥이가 찾아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마린은 누군가 싶어 그의 정체를 확인해봤다.
"누구십니까...?"
"이야기는 얼추 들었지만, 생각보다 심했었네. 나 들어가도 돼?"
시리우스였다. 공적으로야 자신의 상관이었지만, 사적으로는 자신의 친척 오빠인 그가 느닷없이 자신의 집에 방문하자 마린은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고 저러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복직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그거야 네가 판단할 사안이지. 음... 생각보다 집안은 깔끔하네."
"아... 루시우스 씨가 의외로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이라..."
초췌해진 얼굴만 보아도 반 정도는 시체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마린이었지만 집안은 루시우스와 세 쌍둥이 덕분에 집 주인의 현황과는 반대되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식사도 그 사람이 챙겨주는 건가, 혹시?"
"미안하게도 말이야... 애들을 봐서라도 먹고는 있지만... 역시 힘들어..."
삶의 의욕이 완전히 꺾여버린 마린이었고, 일단은 그런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다.
"복직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랬지만... 너를 찾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복직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그 세 쌍둥이는 너더러 뭐라 말했어?"
"그 애들? 그 애들이야 뭐 내가 예전처럼 다시 열심히 뛰어주길 바라는 것 같지만... 무리야, 이젠..."
하지만 친척 오빠인 시리우스 앞에서 마린은 대놓고 소파에 누워버리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버렸다.
"저리 가... 이젠 다 지긋지긋해..."
"역시 그들 때문이지?"
시리우스가 꺼낸 '그들'이라는 말. 원래대로라면 마린도 울컥하는 마음에 달려들었을 것이었지만 시큐리티 포스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요원들의 생사를 날 것으로 마주해야하는 시리우스가 꺼낸 말이었기에 그 무게감도 달랐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다시 시리우스에게 눈을 돌린 마린이었다.
"알면 뭐 어떻게 할 건데..."
"실은 시큐리티 포스 본부에 누님이 왔었다."
"누님...? 오빠가 누님이라 부를 사람이라면... 마즈라위 선배...?"
현직 시절에는 시큐리티 포스 내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로 꼽혔지만 지금은 시큐리티 포스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가정 주부로 전향했다던 그 마즈라위가 본부를 방문했다는 말에 마린도 놀라고 있었다.
"그래. 네 속사정도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었더군."
"그 분이 구태어 여기까지 온 건... 설마 나 때문은 아니지?"
"유감스럽지만 맞아. 무언가를 건내주더군."
그리고는 시리우스는 마즈라위가 건넨 은색 펜던트를 마린에게 건내주었고, 그 펜던트의 뚜껑을 연 마린은 자신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터졌는지 그것을 떨어트리고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뭐냔 말이야!!"
"마르가리타... 그 분의 여동생이었다고 하더군."
"그거 치워! 당장 치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마르가리타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만 마린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그 펜던트를 가져온 시리우스에게 울먹거리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그걸... 왜 이제와서 보여주는 거야...!!"
"너는 네 친구를 잃었지만, 누님은 자기 혈육을 잃었지. 그럼에도 누님은 꿋꿋이 살아나가고 있었다."
"치워! 치우라고! 그런다고...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냔 말이야!"
화를 주체하지 못 한 마린은 아예 손에 잡을만한 것을 찾아 그것을 시리우스에게 집어던지려 했지만 이미 루시우스 등이 마린의 돌발 행동을 우려해 위험할 만한 물건은 최대한 치워놓은 상태였기에 그나마 집어던질 수 있는 것이라곤 TV의 리모컨 뿐이었고, 그나마도 시리우스가 그녀의 양 손목을 꽉 움켜쥐고선 당장이라도 미쳐 날뛰려던 마린을 억지로 붙들어놓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지만, 네 친구의 마지막 흔적이다! 네 친구의 혈육이 네게 맡기려는 소중한 유품이란 말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너를 살려내기 위해서야!!"
고성이 오가고, 평소답지 않은 시리우스의 절박한 설득에 마린도 눈물범벅이 된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 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내 말 잘 들어... 우선 시큐리티 포스... 아니, 네 친척으로서 네 심정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 한 것은 사과할게... 하지만,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건 네게 목숨을 빚진 그 아이들에게나, 그 아이들의 보호자에게나, 네게 호감을 느꼈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나 좋지 않다고..."
"그런 이야기... 왜 하는 거야...?"
"네게 꼭 해야할 말이 있기 때문이지...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해?"
시리우스의 말이었다.
"물론 죽는 순간이라는 것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 칼에 맞아 죽을지, 총에 맞아 죽을지, 불에 타서 죽을지, 물에 빠져 죽을지,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깊은 숨을 몇 번 들이쉰 후, 시리우스가 다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그 사람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한, 그는 죽지 않아. 허나 그가 잊혀지는 순간,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걸어가게 되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마르가리타... 아틀라스... 동기들... 모두 네 곁을 떠나갔지. 하지만 넌 그들을 기억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들은 죽었으되 죽은 것이 아니야."
그들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냐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감정이 복받친 마린으로선 그건 생각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안의 메세지... 이 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마르가리타 자신이 스스로 다짐한 것이야. 그렇다면, 너도 그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 먼저 떠난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경의가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꼭 잊어버려야만 앞으로 나아가는게 아니야. 앞으로 나아갈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어."
힘없이 쳐진 마린에게 시리우스는 마르가리타의 펜던트 이외에 따로 챙겨뒀던 또 다른 유품을 그녀에게 건냈고, 그걸 알아본 마린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아틀라스...!"
"우연히 발견했어. 유품 정리 중에도 찾지 못 했던 걸 어느 신참 요원이 이걸 발견했다고 하더군. 두 사람의 이름이 반지 안 쪽에 새겨져있어서 알아볼 수 있었지."
마린이 이걸 알면 왜 그 중요한 걸 잃어버렸냐고 뭐라하겠지... 일하다 잃어버렸다고 해야하나...
아틀라스가 순직 당일에 잃어버린 은색의 약혼 반지. 그 반지를 잃어버린 당일에 아틀라스는 말레우스 일파의 음모에 불운하게 휘말려 순직하고, 그 죽음은 허깨비나 다름없는 외부의 적을 강조하는 용도로서 말레우스에 의해 모욕당했다. 그것을 한 신입 여성 요원이 발견했고 돌고 돌아 시리우스의 손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아틀라스... 난 여기에 있는데, 넌 어디에 있는거야...!"
검게 그을린 왼손의 약지 이외에는 그 시체조차 온전히 건지지 못 한 불운한 죽음. 그 죽음을 떠올린 마린은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아틀라스의 이름을 되뇌이며 그 반지를 손에 꽉 움켜쥔채 통곡하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그녀가 떨어트린 은색의 펜던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선 마린이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시간을 주고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그리고 약 10시간 후, 아침 7시.
"기분은 좀 어때?"
거실에서 거의 실신하다시피 잠들어버렸던 마린이 눈을 뜨니 자신의 방에 놓인 침대에 누운 자신과 그런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리우스가 보였고, 몸을 일으키니 아틀라스의 반지와 마르가리타의 펜던트가 침대 옆 자리의 서랍장 위에 놓인 것을 발견했다.
"꿈을 꿨어... 루시우스 씨와 세쌍둥이가 다가오더니...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갔어."
"어떤 곳이었지?"
"시큐리티 포스의 본부. 그리고 거기에... 두 사람이 있었어."
그렇게 말하던 마린은 아틀라스의 반지와 마르가리타의 펜던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둘 다... 왜 그렇게도 밝은 표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틀라스는 반지를 잃어버려서 미안하다고 했고, 마르가리타는... 얼마 만나지도 못 했는데 금방 헤어져서 아쉽다고 하더라. 그리곤... 그 네 사람에게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한다고 하고선 본인들을 호출하는 연락이 왔다면서 먼저 자리를 떠버렸어."
"젠장. 사후 세계에선 좀 편히 쉬어야할텐데 거기서도 일이라니. 죽어서도 시큐리티 포스란 말인가."
마린의 말에 시리우스는 잠시나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오빠. 어제 내가 말했었지. 복직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어... 그랬지."
"그런데... 지금이라도 복직이 가능할지 모르겠는걸."
그렇게 말하던 마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참 시절에 분홍색으로 물들였던 머리는 한동안 피폐한 삶을 지냈던 탓인지 원래의 색상인 검은색으로 돌아갔지만 그 코발트 블루의 눈동자에 비치는 눈빛은 예전에 알던 그 눈빛이었다.
"복직이라. 괜찮겠어?"
"뭐... 어디까지나 조건부로 돌아가는 거야. 나도 시큐리티 포스에 남은 일생을 모두 바칠 마음은 없거든."
그렇게 말하며 욕실로 향한 마린을 보며 시리우스는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되었던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는데 성공한 것이므로.
"오랫만에 입는 것일텐데도 상태는 깔끔하구나."
"그러게 말이야... 루시우스 씨가 가정적인 남자인게 정말 다행이라니까."
아침 8시 25분. 다시 한 번 시큐리티 포스의 제복 차림으로 되돌아온 마린. 신참 요원 시절 이후로 쓰지 않던 베레모까지 다시 쓴 그 모습을 본 시리우스는 이제야 자신이 알던 그 마린이 돌아왔다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준비는 된 거지?"
"물론이지."
마르가리타의 펜던트와 아틀라스의 반지를 찬 마린은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 모두를 위해 다시 한 번 시큐리티 포스로 복직했다.
*
루나 시티의 허름한 건물에 한 장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리나 시티의 작은 건물에 한 장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그리고 오비탈리 시티의 버려진 마천루의 꼭대기에서는 한 대의 헬기가 버려진 헬리패드에서 출발한 상황이었다.
"트와일라잇 시티...?"
바르바스도,
"왜 나를 여기에..."
오리피아도,
"우리 같은 거지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길래 이런대요?"
스카일러와 알핀, 엘피나 쌍둥이도 모두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목적지는 바로 트와일라잇 시티.
==========
이번 에피소드는 본편의 원작자 분의 댓글에서 시작되었읍니다
참고로 시큐리티 포스의 제복은 '테일즈위버'의 이스핀 샤를이 되도않는 남장 시절에 입고 다녔던 인지능력저하 디버프를 걸어버리는 복장을 거의 그대로 따온 것을 생각하고 있읍니다(물론 제 생각일 뿐이므로 실제 복장은 이와 다를 수 있읍니다)
김철수 : 어.... 전 그냥 날개 장식달린 코트입고 다닐래요 시리우스 덕분에 유탄 크게맞은 체스터에게 묵념을
본편의 작가님이 생각하는 실제 복장과는 다를 수 있으므로 아직 철수에게도 희망은 있읍니다 그 와중에 체스터에겐 유감을
12시간이라는 공백의 시간 동안 이러한 일이 있었군요. 그리고 극후반부에 나온 헬리콥터는 과연 어디에서 온 헬리콥터일까요...?? SEM 컴퍼니에서 보낸 헬리콥터인가...??
잠깐, 키벨은요,
키벨과 로제는 원래 트와일라잇 시티에 살고 있으니 말이죠
그것은 나중에 알게 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