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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스콜피온’?”
8족 보행 전갈형 전차 ‘스콜피온(Scorpion)’
붉은 렌즈 내부의 카메라로 사냥감을 포착, 8개의 다리를 번갈아 움직여 빠르게 이동한다.
그리고 몸 앞의 집게나 꼬리의 대포로 대상을 빠르게 사살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지나가다 밟을 정도로 거대한 인간에게 자기 방어용 맹독을 선물하는 전갈과도 같다.
AI가 탑재되어 있어, 사실상 전차보다 로봇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 하필 전갈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가장 보편화된 자동보행 병기다.
A구역부터 Z구역까지 적어도 한 대씩은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이 D구역은 라쿠엔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구역이기에 총 5대가 배치되어 있다.
모든 기체가 순찰을 돌며,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압사 혹은 폭사시키는 살상에 특화된 병기
그런 병기가 지금 눈앞에서 망가져 있다.
그것도 등을 바닥에 댄 채 거꾸로 뒤집혀 있다.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같은 곤충들 중에는 날개나 뿔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뒤집히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따지면 전갈은 곤충이라 분류하지 않지만, 꼬리나 집게를 못 쓴다면 전갈도 그런 부류일 터.
빠른 이동이 가능하지만, 뒤집히면 움직임이 봉쇄당하는 것이 이 전차의 최대 약점 중 하나다.
로봇처럼 움직임이 딱딱하고 몸체가 무겁기 때문에, 얇고 가벼운 꼬리나 집게를 활용해 스스로 몸을 원래대로 뒤집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기체는 아마 그레이트 코어가 마키나 스페이스에서 우리가 사는 차원으로 나타날 때, 바닥에 생긴 틈에 휘말려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낙하의 충격으로 망가졌거나, 설사 낙하로 망가지지 않았어도, 스스로 몸을 뒤집지 못해 그대로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 참고로 배터리는 충전식이다.
구역마다 충전소가 배치되어 있다고 들은 바 있다.
일단 눈앞의 이 녀석은 동작 하나 하지 않는다.
주요 부품이 망가졌거나 배터리가 방전되었거나, 아니면 둘 다일지도?
그나마 전자만 아니라면 희망은 있다.
이 빛 하나 들지 않는 공간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다리를 벽에 박아 벽을 타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 덩치 큰 뱀을 찾아내기 수월해질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후자라도 막막할 것 같다.
이곳엔 충전소도, 배터리를 충전할 수단도 없다.
저기 게임 정부의 두 양반이 여분의 배터리라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내 것도 그들의 것도 아닌 목소리가 터무니없는 말을 꺼내 들었다.
“이 ㅅ끼 ‘감자’ 배터리로 움직이는데?”
내가 생각에 빠진 사이, 유카리라는 소녀가 저 기체를 조사한 것 같다.
그런데……뭐라고요?
아니, 혹시 배터리가 그만큼 저사양이라는 의미가 아닐
“놀랄 건 예상했는데, 진짜 감자에 전선 꽂혀 있다고.”
역시 믿을 수 없어 직접 보기로 했다.
그 말이 눈앞에서, 아니 눈앞이라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감자에 구리와 아연이 연결된 전선이 대충 붙어있는 그 모습
확실히 감자나 산성을 띄는 과일에 구리와 아연을 꽂으면 약한 전력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다.
하지만 난 분명 대형 드론 등에 사용되는 대용량 배터리를 예상했는데?
“아, 생각났습니다.”
당황해서 멍 해진 와중에 진의 목소리가 개입한다.
“2개월 전이었나? 반 장난으로 감자 배터리를 꽂은 스콜피온을 구동 시켜 봤는데, 기존 배터리를 사용한 스콜피온들처럼 아주 잘 움직이지 뭡니까? 그 후 D구역에 파견한 적 있었는데, 갑자기 행방불명 됐었죠.”
아니, 이게 진짜라고?
전력이 너무 낮아서 전자레인지는 커녕 전구 하나 켜기도 힘든 이 배터리가 진짜라고?
이런 생각으로 황당해하는 나와는 달리
“관절이나 카메라 등, 주요 기관에 문제는 없어. 등의 튼튼한 철판이 충격을 흡수해 준 덕일지도. 여기서 충격으로 뽑혀 나간 전선을 연결하고, 감자만 다른 것으로 바꾼 후, 스스로 뒤집지 못하는 이 녀석을 우리가 어떻게든 원래대로 뒤집으면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정말 기억상실증이 맞는지, 이 백발 소녀는 우리 중 기계에 가장 박식한 사람들이 사용할만한 단어들을 가장 많이 뱉어낸다.
기억 잃기 전에 엔지니어라도 했나?
하다못해 감자 말고 전지라고 바꿔 말해줘, 제발.
“그럼 감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대체하면 될 것 같네.”
레이의 손에 갑자기 감자 하나가 나타난다.
소지품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이겠……
잠깐만?
그 감자 자세히 보니 싹이 난 상태다.
감자 싹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이 있다.
치명적인 독은 아니지만, 먹으면 한동안 복통으로 고생 좀 할 거다.
저건 못 먹겠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독있는 싹이 아니다.
싹이 났는데, 모양이 조금 아니 많이 이상했다.
그 싹, 콩나물처럼 똑바로 난 상태가 아니다.
번개 모양처럼 지그재그로 꺾이면서 자란 상태다.
거기다 감자 껍질의 얼룩도 번개 모양이다.
그 번개 모양 얼룩, 이 전갈 전차의 배터리로 사용되고 있던 감자에도 있었던 것 같다.
이 감자 설마……?
“그 귀한 ‘일렉트릭 감자(Electric Potato)’? 마트에 내놓으면 2만듀러(한화로 약 3백만원) 정도나 하는, 몇 백만볼트의 전기를 발산한다는 그 감자?”
라쿠엔에서 발견된 돌연변이 감자다.
의외로 최초 발견된 시기는 20년 정도 전 밖에 되지 않는 역사가 짧은 감자다.
“아니, 그거면 충분히 돌아가지, 실물은 처음 봐서 몰랐잖아. 괜히 놀랐네.”
싹이 났어도 전기는 통할 거다.
배터리 문제는 이걸로 OK.
내부 부품이나 전선 상태만 확인하면 작동할 것이다.
덜컹!
소녀가 전선회로의 덮개를 벗겨낸다.
덮개를 대충 뒤로 던진다.
모서리 4곳에 나사가 박혀 있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맨손으로 딴 것 같네?
소녀의 모습이 잘 모일만 한 벽에 기대 그대로 주저앉았다.
오른쪽 무릎을 오른팔로 감싸는 등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으려 하기도 했다.
그냥 방금 예시로 말한 자세가 가장 편한 편이다.
“그럼 저희는 근처 순찰이라도 하고 오겠습니다.”
“그레이트 코어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진과 레이 2인조는 말만 남기고 걸음을 땠다.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져 어둠과의 거리가 약간이나마 벌어진 것 같았다.
그 살짝 멀어진 어둠 속으로 서로 발걸음을 맞추며 두 사람은 사라졌다.
합이 맞는 박자의 발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울려 퍼진다.
그 소리마저 귀에 들려오는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그 둘의 위치가 우리와 거리가 생겼음을 곧 알 수 있었다.
딱, 딱, 딱
호두 같은 딱딱한 것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회로 열고 뭘 하길래 이런 소리가 나지?
“…”
”…”
소녀도 나도 말 한 마디 없었다.
서로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럴 만 도 하다.
대화 거리는커녕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데, 마음의 거리는 멀게 느껴진다.
딱딱 거리는 소리만이 유일한 대화인 것 같았다.
이걸 모스 부호라 쳐도 SOS 신호라고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했다.
“어이.”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나?”
“응.”
이윽고 지칭할 대상이 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뭔가 이야깃거리라도 꺼낼 수 있어? 시간 살짝 걸릴 것 같은데, 너무 조용해서 집중이 잘 안될 지도 모르겠네.”
이 어색한 분위기를 그냥 둘 생각은 없었나 보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했고.
생각해보면 저 소녀는 기억상실이다.
이야깃거리를 꺼내고 싶어도 떠올릴 수 없겠지.
그렇다고 막상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도
“무슨 얘기?”
어떤 주제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럼 내가 주제 제시해도 돼?”
“어떤 거?”
“’가족’ 이라던가?”
가족……
“어……”
사실 별로 떠올리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특히
끼이이이익! 쾅!
여기서 날 리 없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아니, 오히려 그 소리를 떨칠 수도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괜찮아?”
“그쪽이 괜찮으면?”
여기서 ‘가족’이라는 주제를 입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다.
적어도 무거운 이 마음을 덜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같이 살았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까지 넷이서.”
“옛날이라면?”
“다 지난 일이야. 2년 전에 전부 끝났으니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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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고통뿐이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라고 불라야 할지 생각할 뿐입니다.
감자도스가 여기서?!
감자도스가 여기서?!
You know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