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은 페이트 사무라이 렘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 께서는 뒤로가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 유이 쇼세츠의 연구관련 서적 표지사진 : https://bookclub.kodansha.co.jp/product?item=0000142678)
유이 쇼세츠 (유이 쇼세쓰) (由井正雪) 는 1605년 일본 스루가 국 (* 오늘날 일본 시즈오카현 오이 강 중부와 북동부 지역 ) 에서 염색업을
했던 요시오카 아야몬 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부친에 대해서는 요시오카 아야몬 말고 오카무라 아에몬 의 아들 혹은
반도헤이시 의 미우라 가문의 서자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건 알수가 없습니다. 17살이 되어 그는 친척집에 고용살이로 살다 성인이 되어
장공당 이란 학당(*한문을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 을 세웠는데 이 장공방 이란 이름은 중국의 전한시대의 전략가 장량 과 후한시대의 군사
제갈량 을 유래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가 가르치전 이들중엔 낭인 (* 주인이 없어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무사 혹은 재수생 ) 들과 영주를 따르는 가신 혹은 하타모토 (*1만석 아래의
무사 쇼군을 만날수 있었던 직책 ) 들도 있었으며 그 수만 해도 3천명이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쇼세츠는 학당에서 군사학 은 물론 정치 및
학문등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육성했다고 전해지며 이들은 학당에 남아 정치 제도 등을 토론하며 국가의 운영에 대해 이야기 를 나눴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초상화 )
당시 3대 쇼군이였던 도쿠가와 이에미츠 (1604~1651) 치세에 펼처진 무단정치 로 수많은 실직자 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원인은
세키가하라 전투 와 오사카 성 전투 로 인해 개역 으로 인해 실직자가 급증한건 물론 시마바라의 난 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으로 쇄국정책을
강화하자 직업을 잃은 낭인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들은 도적이 되거나 도박에 빠져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탓에 막부의 이런 정치에 불만을 가질수 밖에 없었기에 사회적 불안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지요
막부에서도 이런 학식이 뛰어난 쇼세츠를 등용하고자 했지만 쇼세츠는 거절했으며 그런 쇼세츠를 따라 많은 낭인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1651년 이에미츠가 승하 하고 11세의 나이로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쇼군에 오르게 되면서 정치적 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걸
파악한 쇼세츠는 마루바시 츄야 . 카나이 한베 등 많은 낭인들을 모아 반란을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 슨푸성 )
쇼세츠는 이런 상황을 이용 막부를 타도하고 낭인들의 구제를 기치로 내세워 마루바시 츄야가 먼저 에도성의 화학고를 폭파 및 에도성
에 불을 지르게 하여 이에 놀라 성으로 오는 막부의 관계자들을 처단하고 쇼군인 이에츠나를 인질로 삼은 뒤 유이 쇼세츠 자신은 교토로
가서 왕을 납치하여 정치적 실권을 잡는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으니 우쿠무라 하치자에몬 이란 낭인이 막부에 고발을 하면서 사건에 대한 내용을 파악
하게되었고 이에 마츠다이라 노부츠나 는 주동자들인 마부라시 츄야 와 카나이 한베등을 체포하고 군사를 스루가 국으로 급파하여 주동자인
유이 쇼세츠를 체포하라 지시합니다 수세에 몰린 쇼세츠는 결국 스스로 자결하여 생을 마감했지요 쇼세츠의 죽음이 알려지자 옥중에 갇힌
카나이 한베는 자결했고 마루바시 츄야는 십자가에 묶여 창으로 찔러죽이는 책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게이안의 변 이라고 부르는데 이사건은 기슈 (* 와카야마 현 전부 와 미에현 남부) 의 영주 도쿠가와 요리노부가 쓴 문서가 발견되어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는 첩자들을 급파하여 기슈번에 모든것을 조사하라명해고 조사결과는 위조문서 라는것으로 하여 혐의가 없다는걸로 결론
지었으나 무공파의 거두였던 도쿠가와 요리노부 는 막부의명으로 기슈 로 귀국조차 하지못하고 에도에서 감시를 받는 처지로 전략하게됩니다
게이안의 변은 이에미츠 의 무단정치와 무공파 세력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떠도는 낭인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못해 발생했던 일이였기에 막부는
떠도는 낭인들을 재등용 하거나 개역자체를 완화 시키는 방법으로 하는 문치정치를 실시하여 낭인들의 구제에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건 유이 쇼세츠 때문에 수박의 보급이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당시 에도시대 에 수박이 들어왔을 무렵 쇼세츠가 자결한지 얼마안된 해여서
수박의 붉은 과육을 본 사람들은 쇼세츠의 망령이 붙은게 틀림없다 라는 말이 떠돌아 수박보급이 어려워졌다고합니다 이후 1770년대 들어서
수박을 조각으로 잘라 노점에서 판매를 시작으로 수박이 보급되어졌다고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쇼세츠 가 지닌 검중 무라마사 란 명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시다 시피 명검장인인 무라마사가 만든 검이있었는데
하필 이 무라마사는 도쿠가와 가문에게 있어 여러 큰 사건이 있을때 쓰여졌던 검들이라 좋지 않게 보고 폐기했던 것이였는데 쇼세츠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라는 불길한 이미지가 늘어났다고 전합니다.
렘넌트에는 새 인물이 많이 나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