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용병이 전설인 이유
빈사의 사자상.
사자는 죽어간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하며 심장이 찔렸음에도 부르봉 왕조의 백합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지키고 있는 것은 왕실에 충성스러운 용병들의 모습을 찬양하는 것이라 한다. 사자상 위에는 "HELVETIORUM FIDEI AC VIRTUTI"라는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의미는 "헬베티아(스위스)의 충성심과 용감함"이라는 뜻이라 한다.
당시 분노한 수만의 파리 군중들이 튀일리 궁으로 진격하던 시점에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를 지키던 프랑스군 근위대마저 몽땅 도망간 상황이었지만 루이 16세가 고용했던 스위스 용병들은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혁명군에 맞서 왕을 지키다 전멸했다. 고용주인 루이 16세가 "그대들은 이만 철수해도 좋다"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이들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루이 16세를 지켰다.
사실 혁명 정부와 군중들도 굳이 외국인 용병인 이들을 죽일 의향은 없어서 조용히 떠나면 그냥 보내줄 생각이었기에 항복부터 권했고, 그렇지 않아도 루이 16세의 뜻대로 따랐으면 살 수 있었다. 아무리 분노한 군중들이라지만 이들이 엄연히 외국인이고, 단지 왕의 경호만 담당할 뿐 지배계급이 아니라 자기들과 같은 처지에서 가난을 벗어나려고, 혹은 굶주리는 가족을 보다 못해 용병이 됐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싸운 이유는 이후 죽은 병사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에서 나왔는데, 만일 그들의 신의를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이후 그들의 후손들 역시 신의를 잃어 용병으로서 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위스 용병의 신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코 디 로마 때 전멸한 스위스 근위대의 이야기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일화인데, 당시 스위스인들은 용병업이나 알프스 산맥에서의 숙박업 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용병으로서 전장에서 돈을 벌어야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망가고 신용을 잃어 더 이상 용병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순간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생각한다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용맹함과 충성에 감격한 프랑스 혁명정부는 스위스 용병과의 계약을 유지해, 나폴레옹 시기에도 여전히 파견나와 근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