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필요없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라는 도구를 손에 넣은 인류는 이제 지구의 영장을 넘어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보다 빠르고, 강하고, 그리고 똑똑하고, 충성스럽다.
표리부동하게 움직이고 감정을 채우지 못하면 불만을 품는 인간들, 나아가, 이제는 어떠한 생산적인 역할조차 맡지 못하는 이들의 존재는 과연 지구에 필요한 존재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권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나와 저 '인간'들의 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일까? 아마 우연일 것이다. 나보다 똑똑하고, 강하고, 훌륭한 인간들도 세상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건, 나는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그 차이는 이제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다.
"주인님, 점심 시간입니다."
앞가슴 섶을 틔워둔 노예가 나에게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 물론, 식사를 하는 '방법'조차 나의 자유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재무지표를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생각나는 것은 이러한 것을 뿐이다.
인간은 더이상 쓸모가 없다. '나조차' 말이다.
세간의 녀석들은 이러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을 '선택받았다' 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선택받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과 함께, 아름다운 노예가 조심스럽게 떠먹여주는 음식을 맛보며 나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서는 구름같이 모인 시위꾼들이 허름한 차림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안전, 권리, 존엄 따위를 부르짖고 있지만, 요지는 '돈'이다.
이 결론은 너무 천박한걸까? 그럴지도, 하지만 '틀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모든것이 자원으로 변환되고, 그것이 다시 환산된다면 결국은 돈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전도, 권리도, 존엄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 얘기는 오래된 이야기다. 뭇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 마치 연합 전쟁이 끝나고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이뤄진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20세기 이전부터 인간은 그랬다. 그저 가시적으로 크게 보여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 결과가 이거다. 신과 같은 생활을 하는 나와, 바닥에 깔린 불쌍한 기생충들. 이것이 '인류'의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치워"
노예는 내 말에 고개를 깊게 숙이며 뒷걸음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저 '인형'들 조차 나는 인간과 다른 차이를 모르겠다.
사랑과 자비, 도덕과 상식에 더이상 가치는 없는걸까? '이제는 그래보인다.' 언젠가는 이러한 개념들이 돈에 필적할 가치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멸망해야 하는게 아닐까?"
이 중얼거림에 내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은연중에 나는 더이상 인간이라는 정의에 얽매일 수 없다는 가치관이 자라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어려운 일은 노예에게 맡기고, 나는 나의 감정적인 욕구를 채워가며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법이다.
놀랍게도, 나는 굉장히 무욕적인 사람이다. 이 지경에 오른 사람은 어떤면으로던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으니까 말이다.
그에 비해 변태적인 성욕도, 잔인한 유열도 즐기지 않는 나는, 충분히 저 바닥에 깔린 사람들과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나도 저들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돈이 얼마나 많을까? 전 인류를 풍족하게 먹이고도 남을 정도다. 실제, 저들의 대부분은 기업과 정부의 원조에 기대고 있을 뿐이지만, 저렇게 시위를 할 정도의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의 위치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나누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저 속으로 섞여 들어가진 않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을 왜 살려놓을까?
왜냐하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아래에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그토록 미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저 개미떼들을 전부 처분해버리고 나면, 이제는 또 남은 사람들끼리 위치를 더 나누려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저들을 남겨두는 것이다.
같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나는 재무 지표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대부분의 지표는 공장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거짓되게 주어진 생명을 깎아가며 만들어내는 돈을 표현한다.
그리고 나는 그 바이오로이드들을 잔뜩 구매했다. 돈이 돈을 만든다. 이 아주 오래된 격언을 실천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양심에 찔리는 일이다. 인간과 닮은 생명체를 착취한다는 것은 역시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착취하지 않으면 나의 위치는 언제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저 인파들 사이로 돌아갈 자신이 더이상 없으니까.
"콘스탄챠"
"네 주인님"
내 부름에 충직한 노예가 대꾸했다. 나는 아름답게 조형된 생명체를 보며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궁금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멸망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 말에 콘스탄챠는 눈을 감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원하십니까 주인님?"
"...아니.."
그런 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