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올것도 없기에 가스 검침이나 배수구 소독이라도 왔나 인터폰을 보니까
왠 첨보는 6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있었다.
마스크 쓰고 나가니 할머니가 본인이 동대표라고 설명함
그리고 대충 기억나는대로 대화 재구성
나 : 무슨일로 오셨는데요?
할 : 아니 그게 다른 동 대표가 지금 경찰에 잡혀있어서 왔어 총각
나 : ? 그래서요?
할 : 아니 그사람이 일을 진짜 잘하는 사람인데 너무 억울하게 잡혀있어서 그래
경찰에서 주민들 싸인으로 탄원서를 내주면 정상참작 해준다고 해서 내가 하고있어. 이거 싸인좀 해줘.
하고 클립보드에 끼운 탄원서 종이를 보여주는데 대충 호수 / 이름 / 싸인 이렇게 표가 만들어져있었고 몇몇 칸은 싸인이 되어있었음
나 : 아니 그 사람은 왜 잡혀있는데요. 저도 뭘 알아야 싸인을 해주죠
할 : 아니 그사람이 정말 일 잘하고 주민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인데 너무 억울하게 잡혀있어서 그래 싸인좀 해줘
나 : 그래서 왜 잡혀있는데요.
할 : 우리 아파트 주민 센터에 헬스장 있잖아. 그거 코로나 때문에 폐쇄되있는데 그 사람이 관리하러 들어갔다가 관리소장 놈이 신고를 해서 잡혀들어갔어
그래서 그사람이 너무 억울해서 나한테 다 부탁을 해서 내가 싸인 받으러 다니고 있어
나 : 아니 그거 폐쇄된게 벌써 언제적인데 무슨 관리를 하러 들어가요.
할 : 아니 그 사람이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정말 주민을 위해 희생하고 정말 좋은 사람인데 관리소장놈이 신고를 했어 여기 싸인좀 해줘.
나 : 제가 할머니 누군지도 모르는데 막 싸인을 해드릴 순 없고요. 그 탄원서를 제출하면 참작을 해준다는 경찰 공문 같은건 없어요?
하니까 클립보드 아랫쪽에 끼워진 다은 종이를 보여주는데 경찰 도장이라거나 워터마크가 박힌 프린트물도 아니고
그냥 붓펜같은거로 읽기도 힘들게 휘갈겨 써놓은 종이였음
나 : 이걸로 어떻게 증명해요.
할 : 총각이 여기 온지 얼마 안되서 모르나본데~ 내가 여기 동대표야 나 믿고 하면 돼~
나 : 얼마 안되긴 뭘 얼마 안되요. 내가 여기 16년 전에 처음 아파트 지어지면서 입주한 사람인데
할 : 아유~ 그랬어? 나는 여기 9층살아~ 우리 이웃끼리 좋게좋게 하자고 싸인좀 해줘
나 : 됐고요. 저는 할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겠고요 이 종이도 증명도 안되고요. 싸인은 못해드리겠네요.
할 : 아유 젊은사람이 정말 왜그래!
하면서 뭐라뭐라씨부리길래 그냥 문 닫아버렸다.
아버지는 뒤에서 지켜보면서
아 : 너 그런거 정말 똑부러지게 하는구나. 나라면 정신없어서 싸인해줄텐데.
나 : 아니 말도 횡설수설하고 여기 살면 한번쯤은 마주쳤을텐데 얼굴도 본적없고 하니까 그랬죠.
하고 그날로부터 몇주가 지났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내 모든 세대에 공문이 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른 동 대표가 코로나 사태 이후 폐쇄 된 아파트 헬스장을 사람이 없는 시간인 새벽 3시쯤에 총 300여시간을 무단으로 사용했고
우연히 씨씨티비를 확인하던 관리사무소가 이를 발견하여 그 동대표를 고소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찰에 조사를 받던 그 동대표는 지인들을 시켜 각 동에 돌아다니며 탄원서에 싸인을 하게 시킨것이었고
이는 엄연히 공공시설물을 개인적으로 무단사용했을뿐만 아니라 방역수칙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싸인을 해주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있었다.
이후 사건이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리사무소에 고소당한 그 동대표는 이번 동대표 선거에 재출마 한것으로 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