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미륵사지저탑금제사리봉안기(益山
彌勒寺址西塔金製舍利奉安記)
절을 세우고 앞마당에 탑을 올린들 연못의 수위가 높아지
겠는지요
흔적도 없이 당신이 왔닥 가신 걸 저는 말하지 못하였
습니다 젊은 날의 햇볕은 과분하였지요
당신이 사택왕후로 오른 이후 저는 구들장처럼 납작해지
고 까매졌습니다 허공을 정으로 쪼아 구멍을 차고 꽃을 피
우는 일로 밥을 벌었지요 하나 매번 꽃받침이 먼저 흐느끼
는 통에 꽃잎은 파당파당 떨었습니다
제 눈썹을 도려내어 폐하의 창가에 초승달로 걸어두었던
걸 아시는지요 삼남의 지평선을 수거해 다림질한 이후에 침
소의 휘장으로 걸었던 것도요
전쟁이 날 때마다 소금쟁이들이 연못 위에 빗금을 그었습
니다 말발굽의 편자를 갈아 끼우는 일도 무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적적하여 밤하늘 한쪽을 몰래 떼어내 솜으
로 뭉쳐 먹통에 넣었던 겁니다
돌 위에 먹줄을 튀겨 당신과 상통하는 것으로 삼을까 합
니다
먹줄을 남긴들 세간의 학자들은 기둥을 세우려고 그었거
니 하겠지요마는 마음 놓으세요 묵두(墨斗)는 태워 멸하였
으니 당신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길 바랍니다 기해년 정
월 스무아흐렛날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시선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