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케 오다의 시신은
공안이 소유한
도쿄 모처 안전가옥에 방치됐다.
“ 경찰에 신고하세요.”
“ 하지만!”
세 사람을 떨어뜨린 채
혼자 안가를 찾은
신이치는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이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 그럼 뭐 어쩔 겁니까?”
“ 진상을 파악하기 전에 외부에 알리는 건 좀...”
“ 여러분이
형사 경찰입니까?”
“ 그건 아니지만
자칫
쓸데없는 오해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신이치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 쯧쯧!”
신지로도 그렇고
이들도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 진상을 파악해서
뭘 어쩔 건데요?
용의자라도 특정해서
체포할 겁니까?”
“ 나케 오다 외무성 남미총괄국장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우리 내각을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각은 행정기관이지 사법기관이 아닙니다.”
쿠도 신이치가
고이즈미 신지로에게
스파이에 대한 조언을 하며 바란 건
정석적인 사법절차를 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일본 공안의 힘을 빌려
납치와 감금, 협박이란 불법을 버젓이 자행한 응보는
한 구의 시신으로 되돌아왔다.
현장을 건드리지 말라는
강력한 요청으로
시신은
소파에 늘어진 채 방치됐다.
겉으로 보기엔
심한 구타나 고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진짜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타살도
자살로 둔갑하는 세상이다.
“ 나케 오다 씨를 감금한 이후
몇 명이나 접촉했습니까?”
“ 음. 스물두 명?
그쯤 됩니다.”
“ 고이즈미 현 총리나 전 총리님은?”
“ 그게...”
“ 얼버무리지 말고
확실히 말하세요.”
신이치의 날카로운 추궁에
상대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발작하진 않았다.
“ 고이즈미 전 총리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하지만,
첫날 만남 이후
나케 오다 씨는 쭉 살아있었습니다.”
“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나케 오다 씨와 접촉한 전원은
경찰에 진술해야 할 겁니다.”
“ 전부라니,
전 총리님도 말입니까?”
많이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다.
“ 그럼 뭐
말이라도 맞추고
은폐라도 할 줄 알았습니까?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요.
여러분.”
쿠도 신이치는
인상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상대는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그는 손을 휘저어
물러서라고 지시했다.
신호가 가다
고이즈미 신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떻게 됐어?
신이치 군.”
“ 상황이 고약해.”
“ 타살이야?”
“ 그건 부검하지 않고는 모르지.
일단 경찰에 알리세요.”
“ 어디까지?”
“ 다.”
“ 뭐?”
“ 다 까발리라고.”
어설프게 감추려고 했다간
도리어
역풍을 맞을지도 몰랐다.
촛불시국은
현재 진행 중이고
정부는
희생양을 원했다.
여기에
살인사건이란 스캔들이 터지면
상황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급물살을 탈지도 모른다.
“ 오해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 앞서가지 말지요.
형.
차라리 잘됐어.
이참에
사 년 전 인질사건까지 함께 묶어버리면 되니까.”
“ 차라테 인질사건을?”
“ 그래요.”
신이치는 씩 웃었다.
“ 양키를 끌어들여야겠어.”
CIA 부국장이
재빨리 일본을 방문하고
크랭키를 쳐낸 건
스즈키 그룹, 모미지 콘체른 스캔들이
수면 위로 부상해서
혹시라도
미국을 끌어낼까 우려 끝에 나온 결단이었다.
누군가의 석연찮은 죽음이나
불편한 상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미국개입설이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영광을 위해
무고한 이들을 희생한다는 비판이 불거질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한계는 있었다.
“ 기자회견이나 준비하세요.
참고로
형보다는
노인네가 직접 나서는 게 효과가 클 거에요.”
“ 아버지를?”
“ 그만큼 임팩트가 필요해요.”
판만 깔아주고
굿이나 보며 떡이나 먹던
끝판왕 미국을
무대 위로 끌어낸다면
사건이 흐지부지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국가의 이익과 정의는
반드시 합치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 엉뚱한 짓 하지 마.
형.”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신지로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신이치는
단호하게 답했다.
“ 노인네도 그렇고
형도 뭔가 착각하는데
일본 정부는
왕국이 아니에요.
설사 왕국이라도
왕국민 한 명 한 명을 다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림없지요.”
촛불시국이 아니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노려보는
수많은 눈길을 피하기란 요원했다.
“ 내려놓을 땐
확실하게 내려놓는 게 좋아요.”
“ 아버지가 경찰에 출석하란 뜻이구나?”
“ 맞아요.
현재
내각총리임시대행인 형을 보낼 순 없잖아요?
그리고
노인네께서 나서서
관심 좀 받아주면
저들도 좋아할 걸요?
생색도 내고
협상의 주도권도 잡고
얼마나 좋아요?”
“ 왠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찝찝한 기분인데...
알았어.”
“ 이번 기자회견은
다른 어느 때보다 비장하게 보여야 해요.
진짜 전쟁에 나선 장수처럼 말이에요.”
스즈키 그룹과
모미지 콘체른의 발전을 막기 위해
인질을 납치하고
산업스파이를 심고 고위임원을 매수하고 협박하는 등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조금은 과장되게 선전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기업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권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
사람들은 잘 몰랐으니까.
일정 수준 이상 궤도에 오른 우량기업은
품질과 서비스보다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국력에 따라
성장이 좌우됐다.
※나케 오다 외무성 남미총괄국장 죽은 채 발견돼!
※경찰 수사 착수!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 몰라!
※재벌개혁에 공감한 내부고발자란 루머가 확산 중!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자진출두?
무슨 이유일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경시청 앞에서 대국민 기자회견!
그 일언거사로 알려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대국민 기자회견은 엄청난 관심을 받았고
그 내용도
사뭇 충격적이었다.
※4년 전 차라테 인질사건은
스즈키 그룹과 모미지 콘체른을 방해하려는 음모!
※진실인가? 거짓인가?
치열한 기업전쟁은 살인과 납치도 불사!
※경제전쟁은
진짜로 총성 없는 전쟁일까?
아니다!
총성은 있다!
※세계적으로 의문의 실종을 당하는 사람만
한해 수만 명이 넘어!
전 세계적으로
기업소송과 분쟁 때문에
의문사나 실종을 당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단순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이런 불법들은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문제는
증거가 없으니
증명도 어렵다는 점이다.
99.9% 심증이 가지만
0.1%를 채워줄 증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점점 소름이................ 작가님 글을 진짜 정치가들이 보면 뭐라고 할지........
저도 기대가 되기는 합니다. 너무 정치의 민낯을 깐다고 뭐라고 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