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극화의 시대가 어떻게 왔는가를 알아보자.
이를 알기 위해선 일단 데츠카 오사무와 관련된 일화를 알 필요가 있다.
1965년작
W3 (우주의 세 용사)
원래 W3는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되고 있었다.
그런데, 작업실에 드나들던 매거진측의 편집자가 데즈카 오사무가 기획하던 작품의 캐릭터를 외부로 발설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이를 불쾌하게 여긴 데즈카는 이 작품을 6회로 연재를 종료시키고, 연재처를 경쟁사인 소년 선데이로 옮겨버렸다.
이 결정에 데즈카 오사무를 스승으로 따르는 토키와 장 출신의 후배 만화가들이 소년 매거진의 연재를 꺼리게 되면서,
간판 인기 만화가가 없어진 매거진은 판매 부수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를 타계해 보고자, 1966년부터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대여본 만화작가들을 소년 매거진으로 불러들여
타겟 독자 연령층도 만화 내용도 수위가 높은 작품을 연재하도록 했다.
이런 시도는 성공하여 소년 매거진은 소년 선데이를 판매 부수에서 따돌리고 발행 부수 100만 부를 찍고,
한동안 업계 최다 판매 만화잡지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런 사건을 통해 만화 업계는 극화의 시대가 찾아오게 된다.
이거 다소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설명하자면
이 내용과 달리
격동의 70년말부터 80년도초에서 이미 극화체의 유행에 대해서 위협하던 세력들이 있었음.
바로 비주류 잡지와 아마추어 동인계를 통해 등장하던 극화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새로운 유형의 [뉴 웨이브] 세력과
시끌별 녀석들 78년도 작.
혜성같이 등장한 다카하시 루미코.
대형 잡지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신인 다카하시 루미코는 그냥 폭풍 현상 그 자체였고.
홀로 업계 자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함.
그 영향력이 홀로 엄청나서 뉴 웨이브계 세력에서 독립시킨거지
사실상 그 극화체 탈피에 대한 뉴 웨이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고 보면 됨.
물론 다카하시 루미코의 경우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 나가이 고의 그림체에서 영향을 받았고
반년간 극화촌숙이라는 만화가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초기 작화에서 극화의 영향이 남아있던 것도 사실임.
근데 이미 70년도 말부터 만화계에서 극화체 유행에 대한 변신에 대한 운동은 계속해서 시도 되어 왔고.
80년에 등장한 토리시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가 그 운동의 마지막을 찍은 거.
그럼 나가이고 그림체=극화체란 말이지?
나가이 고는 만화체에 가깝지. 데츠카의 만화체에 반발하면서 일어선 게(물론 데츠카는 극화, 만화체 다 소화 가능했던 인물이지만) 극화 세력인데. 극화체가 지배했던 70년대에서 뉴 웨이브계와 다카하시 루미코로 인해 다시 일본 만화계가 만화체로 돌아오려는 시도가 반복되다 닥터 슬럼프로 인해 일본 만화계의 유행이 만화체로 돌아온 거라고 보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