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게에 MS가 게임 업계에 던진 질문 "몸매가 과장되진 않았나?" 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걸로 같은 주제의 글이 4번째 올라왔네요.
* MS의 권고 "게임 속 여성, 남성과 동등하게 표현해야"
* MS "게임 만들 때 흑인·성소수자 비율 확인해야"
*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들에게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피하도록 경고한다.
처음과 두번째 글에는 댓글을 달았는데 세번째 글에서는 그냥 포기했다가 네번째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글을 하나 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기에 앞서 저는 작금의 정치적 올바름 (PC) 이 게임이나 영화에 무분별하고 기계적이며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상황에 반대하는 바임을 밝힙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마소는 개발자들에게 다양성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거나 엑빠라서 마소 쉴드를 친다고 생각하고 비추하시기 전에 잠시만 냉정하게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 (저는 멀티 유저입니다).
이런 기사들이 나오게 된 시작은 마소가 GDC 2024에서 개발자들을 위한 "모두를 위한 게임 상품 포용성 실행 체계" (Gaming for Everyone Product Inclusion Framework) 를 발표하면서 입니다 (프레임워크를 어떤 말이 적당할까 고민했지만 실행 체계로 번역하겠습니다). 이 실행 체계는 2019년부터 마소 내부에서 제작되었고 웹사이트화 되어 마소 게임 개발자 리소스에 올라왔죠. 이 실행 체계는 크게 네가지로 분류되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Approchability (친근성)
Representation (대표성 - 적당한 번역을 하기가 힘드네요)
Globalization (현지화)
Accessibility (접근성 - 이게 위의 친근성하고는 다른데 한국말로는 둘 다 접근성이 되어서 approchability는 친근성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항목은 장애인 관련입니다)
여기서 루리웹에 처음에 올라온 기사는 대표성 카테고리의 하위 페이지 하나에 주목합니다. https://developer.microsoft.com/en-us/games/resources/productinclusion/product-inclusion-actions/help-customers-feel-seen/ 이 페이지에서 여성이 게임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강제하는 항목들이 나온다는 이야기였죠. 저 페이지에는 기사에 나온 항목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성에 관한 항목들만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Are you reinforcing any negative gender stereotypes? (부정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습니까?)
- - Are you unnecessarily introducing gender & gender barriers into your code or design? (- 코드나 디자인에 젠더 & 젠더 장벽을 불필요하게 도입하고 있습니까?)
- - Are you creating playable female characters that are equal in skill and ability to their male peers. Are your female characters equipped with clothing and armor that fits their tasks? Do they have exaggerated body proportions? (- 여러분은 그들의 남성 동료들과 기술과 능력에서 동등한 플레이 가능한 여성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나요? 여러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그들의 임무에 맞는 옷과 갑옷을 갖추고 있나요? 그들은 과장된 신체 비율을 가지고 있나요?)
- - When the story allows, do you show male characters who display a full range of emotions, including joy, sadness, and vulnerability? (- 이야기가 허락할 때 기쁨, 슬픔, 연약함 등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남성 캐릭터를 보여주나요?)
여기까지 보면 분명 마소는 이런 항목들을 개발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보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걸 발표한 엑박 보도자료를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Product Inclusion Framework is not meant to be a checklist or any sort of mandate of what makes an “inclusive game.” Rather, the resources and tools within the framework are designed to be a guide for developers, to help enable them to make an intentional decision to either open or leave a door closed, based on the game experience they’re trying to create. The goal of bringing this level of intentionality into games is to expand player reach and deepen player engagement in a meaningful way. That is going to look different based on different gaming experiences, so this framework was designed with that flexibility in mind.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할 점은, 상품 포용성 실행 체계는 체크리스트라거나 "포용적인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어떤 종류의 의무 사항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실행 체계 내의 리소스와 도구는 개발자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 경험에 따라 의도적으로 (이 실행 체계를) 넣든지 빼든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가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준의 의도성을 게임에 도입하는 목표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플레이어 도달 범위를 넓히고 플레이어 참여를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게임 경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으므로 이 실행 체계는 유연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의무 사항도 아니라고 발표시 보도 자료에서 이미 밝히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넣든지 빼든지 선택하게 한다는 것은, 만약 게임 경험이 다양성을 지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 게임 경험 수준을 (그 쪽으로) 높히기 위해 이런 것들을 오히려 뺄 수 있게도 하는 가이드라는 것입디나 (뒤에 나오는 게임 경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자들이라면 적어도 원출처는 찾아보는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그런데도 논란거리가 되는 것만 골라서 사실 체크를 하지도 않고 기사로 올리는 소위 게임 기자들은 정말 참 기가 찹니다. 일요일에 집에서 놀면서 잠시 찾아본 저같은 평범한 사람도 알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백번 양보해서 강제 의무라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같은 페이지 내에 있는 다른 항목들도 다 강제라고 봐야하는데 그 부분들은 쏙 빼놓고 기사를 올렸죠. 두번째로 올라왔던 기사는 제목에 마소가 흑인과 성 소수자의 비율을 확인하라고 했다는데 기사에서 예로 든 페이지에는 딱 집어서 흑인과 성 소수자가 아니라 다양한 젠더와 인종이 포함되는가...라는 항목만 있습니다. 또한 만약 위의 항목들이 강제 의무라면 같은 리소스 페이지에 위치하는 현지화도 의무라고 봐야 할텐데 https://developer.microsoft.com/en-us/games/resources/productinclusion/globalization/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죠. (URL상 비슷한 위치라는 것을 알기 위해 일부러 링크 걸지 않고 풀어썼습니다)
게다가 이건 마소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소니도 비슷한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마소는 이번에 이걸 크게 발표했다는 것이고 동서양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다양성이 강조되는 미디어에 피로해져 있어서 까기 쉽다는거죠. 게다가 루리웹에서 요즘 제목에 마소만 들어가면 일단 마소 망했네 그럴줄 알았다 조롱과 욕설이 뒤섞인 댓글들이 잔뜩 올라오는면서 조회수가 높아지니 안성맞춤인 주제였을 겁니다.실제로 위의 글들을 보면 댓글에 전통의 에일로이 사진 (마소 이야기 중인데?), 블리딩 엣지 게임 사진 (캐릭터 여럿 나오는데 예쁜 캐릭터나 돌고래 메카는 안 올리나요?), 페이블 사진 (아 이건 저도 좀...) 등등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이러니 엑박이 망했다 게임 산업 접어라 (저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재무재표로 봤을때 엑박은 판매량은 몰라도 게임부서 자체는 의외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등등 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댓글로 적어도 사실 관계를 알리려고 했지만 포기했다가 이 참에 그냥 이 주제로 글을 하나 쓰는게 나을 거 같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어쨌거나 길게 왔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셨으면 마소가 다양성을 개발자들에게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뭐 이렇게 근거를 들어도 실제로는 모르는 일이다, 내부적으로는 강제할지 어떻게 아냐고 하신다면 저는 마소 내부자가 아니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외국 대기업은 보통 저렇게 대외적으로 발표한 게 있는데 내부적으로 반대로 했다가는 소송이 걸릴 수가 있으므로 그런 위험을 짊어지면서까지 저걸 내부적으로 강제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아래부터는 사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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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마소는 (그리고 소니는) 굳이 이런 걸 만들어서 욕을 잔뜩 먹을까요? 그 이유는 기업들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책임은 지속가능한 경영과 더불어 기업들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환경적 책임을 묻는 것이죠.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게 뭐가 잘못됐냐라고 하신다면 생각해보셔야 할 것이, 기업의 이윤추구에 브레이크가 안 걸리면 영국 산업혁명때 5살 애들이 굴뚝 청소하고 노동자들은 줄에 걸려 자고 이런 현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건, 삼성 백혈병 사건, 남양유업의 사건등에서도 보이듯이 기업은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기업일 수록 그건 더하죠. 요즘에는 게임계뿐이 아니라 어느 대기업이든 간에 찾아보시면 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사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에는 다른 요소도 많지만 그 중에 하나는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도 들어가는데요, 구성원에는 여러가지의 사람들이 있기에 다양성, 포용성과 대표성들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잠시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외국에 살고 있는데요, 몇 년 전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동양 남자 + 비 동양 여자 커플들이 이제는 길거리에 심심찮게 보입니다. 자주는 아니라도 이게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신선한 충격이죠. 이것은 스티븐 연이 워킹데드에서 미국 TV상 처음으로 동양 남자와 백인 여자의 키스씬을 찍기도 하고, 두유노우 BTS나 K 드라마들의 선전으로 동양 남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 (Representation) 의 효과로, 미디어에서 노출이 되는 것으로 인해 친근함을 띄게 되는 효과입니다. 흔히들 루리웹에서 잘 생거야 외국 여친 생기고 뭐 이런 댓글들이 농담조로 올라오지만 사실 여기서 비 동양 여친을 사귀는 분들이 다 연예인처럼 생기고 그런건 아니거든요. 호감작이 중요한거죠. 그런데 이제 동양 남자들도 적어도 호감작을 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위치가 올라왔다는게 참 살다보니 감개무량(,,,) 하네요.
그래서 저는, 흑인 에리얼은 개인적으로 정말 정말 싫어하지만, 유튜브에 흑인 꼬마애들이 우리도 인어공주네 이러면서 울었다는 동영상이 올라왔을때 웃기고 있네하면서도 한 편 이해는 갔습니다. 그들도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까요. 단 인어공주 실사 영화의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프렌차이즈에 얹혀간다는 것이 문제지만 뭐 그건 그거대로 큰 주제가 되어버려서 여기서는 줄이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대표성과 접근성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소수자 그룹들은 동양 남자뿐이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여러 다른 인종들 등등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상품들에 대표성이나 접근성이 들어간다면 제가 위에서 느낀 감정을 그 그룹들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업들이 그걸 다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제약 회사들은 돈이 안되는 희귀병 약도 만들고 그런 케이스들이 있죠. 게임을 예로 들자면 셀레스테같은 경우 접근성이 뛰어난 게임으로 유명하고 언챠티드 4나 갓옵워 라그나로크도 접근성 옵션이 뛰어났죠. 사고로 한 팔을 잃었지만 갓옵워가 하고 싶으면 어쩌죠? 이런 류의 질문에 회사들은 나름대로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게임 회사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주는 게임의 경험을 생각지 않고 기계적으로 이걸 적용하는 케이스들인데요, 다양성만을 추구하느라
정작 게임의 재미는 뒷전이 되버리는 케이스들이 많아서 (배틀필드 보고 있나...) 게이머들이 화내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도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싶지 게임에서까지 다양성에 대한 설교를 당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왜 이런 다양성이 각종 미디어에서 화두가 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긴 사족을 붙였습니다.
이런 다양성에 관한 논의는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힘든게 당연합니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사회가 아니라 한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는 사회이므로 나와 다른 사람들, 우리와 다른 사회에 대한 고정 관념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이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곳에 살아도 서로 이해하기 힘든게 사람인데 심지어 다른 말을 하고 다른 문화를 가지며 생긴 것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힘들죠. 그러므로 미국 사람들은 다 이렇다, 중국 사람들은 다 이렇다, 일본 사람들은 다 이렇다 이런 식으로 일반화 시키면 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외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은 다 잘 생겼는데 너는 뭐냐, 뭐 동양 사람들은 다 수학을 잘하는데 너는 뭐냐, 이런 식으로 일반화 시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박탈감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글로벌 시대에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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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하게 쓰느라 다른 글들처럼 자료들을 찾고 할 시간이 적어서 그냥 평소에 알고 있는 걸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썼는데 맥락은 이해가 가실 듯 합니다. 사실 관계에 기반한 논의가 활발한 루리웹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