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물에서 청년기의 양녕대군이 등장했던 때는 1998년도였는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양녕대군은 범재임에도 국왕이 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엇나가고, 동생인 충녕대군에게 일부러 세자의 자리를 양보하는 쾌남아, 풍운아로, 지금 보면 굉장히 왜곡이 된 모습으로 등장함.
사실 지금 현재의 사학계에서는 양녕대군이 일부러 동생인 충녕대군에게 세자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원래 행실이
개차반 그 자체였기 때문에 결국 아버지인 태종을 실망시키고 또 실망시킨 끝에 피눈물을 뽑아내게 하고 폐세자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거든.
하지만 1998년 당시에는 양녕대군에 대한 이미지가 쾌남아, 풍운아스러운 이미지가 지배적이었기 떄문에 용의 눈물의 이환경 작가도
저런 설을 그대로 차용해버리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지. 사실 후반부 용의 눈물의 평가를 깎아먹은 부분이 있다면 단연코 저런 부분임.
그리고 양녕대군 역을 훌륭한 연기력으로 소화한 배우인 이민우 덕분에 양녕대군에 대한 저런 오개념을 더욱 키우기도 했음.
정사위주의 사극이 아니라서 어쩔수가 없음 야사도 많이 섞은지라
그래서 앵간하면 저 시절 정사 위주로 만든 사극좀 나왔으면 좋겠음
아니 그시대에 대세적인 평가를 가지고 만든 물건에 현재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리고 저건 대왕세종때도 그랬지...
근데 나도 어려서 용의눈물 보면서 양녕대군에 대한 이미지 미화가 많이 되긴 했음.....
저건 후반부 평가를 깎아먹을 부분이라기보다는 걍 시대적인 한계라고 봐야 함. 저건 비단 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저 당시 세종대왕 위인전이든 역사만화책이든 죄다 양녕이 깊은 속내를 가지고 세종한테 왕위를 양보했다는 식이라는 분위기였고 주류 사학계의 양녕에 대한 관점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시기라서 그런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뽑다보면 저런 식의 연출이 나올 수밖에 없었음.
예전에 어느 유게이의 설명으로 조선왕조 실록 번역이 덜된 시기라 참고할만한 자료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나도 90년대 세종대왕 위인전엔 열이면 열 형들이 왕세자 자리를 양보하다시피 한걸로 묘사됐던걸로 기억함 당대에 지배적인 가설을 채용한거면 뭐 어쩔 수 없지
이민우가 저때 이미 사극연기 만렙이라...
애초에 뒤주에 넣은거 자체가 영조 최악의 패착이라서, 사도한태 동생이 있었으면 옛저녁에 폐세자 당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거라는게 정설임
정사위주의 사극이 아니라서 어쩔수가 없음 야사도 많이 섞은지라
사스티
그래서 앵간하면 저 시절 정사 위주로 만든 사극좀 나왔으면 좋겠음
제작진 : ppl.... ppl....
조선왕조 500년이라고 있었는데 지금 그거 만들다가 방송국 파산함
???:만들수있게 수신료좀.. ㅋㅋ
그리고 저건 대왕세종때도 그랬지...
근데 나도 어려서 용의눈물 보면서 양녕대군에 대한 이미지 미화가 많이 되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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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늅비
나도 90년대 세종대왕 위인전엔 열이면 열 형들이 왕세자 자리를 양보하다시피 한걸로 묘사됐던걸로 기억함 당대에 지배적인 가설을 채용한거면 뭐 어쩔 수 없지
뉴늅비
나쁘진 안은데 양녕이 양아치로 나왔으면 드라마 서사가 더 좋아질수있음 양녕은 왜 개판일까? 살아남은 적장자 중에서 궁궐밖생활을 경험했기때문 양녕의 아버지가 왕이 되기전에 어땠길래?kill 이런식으로 각색하면 태종의 한계와 양녕 캐릭터성 잘 챙길 수있었는데 걍 우애좋은 형님 이미지만 가져간건 아쉬움
뉴늅비
음...하긴 지금도 판타지사극이라고 해도 종친회에서 연락오는데 당시는 더 했을수도 있겠네
사도 말고 양녕이 뒤주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불쌍하게 뒤졌다며 재평가 될 수 있으니 낄쌈하게 사약 조졌어야
어린사슴아이디어
애초에 뒤주에 넣은거 자체가 영조 최악의 패착이라서, 사도한태 동생이 있었으면 옛저녁에 폐세자 당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거라는게 정설임
사도세자가 똑똑한 아들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다 ㅠㅠ 했다고 했으니 상황파악은 잘했지
저때는 교육용 만화책에도 일부러 개판쳤다고 되어있어서 어쩔 수 없었음
예전에 어느 유게이의 설명으로 조선왕조 실록 번역이 덜된 시기라 참고할만한 자료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양녕이 간지폭풍으로 나오잖아. 이성계 치러가는 이방원 막아서고 명나라 황제한테 개기고.
실제론 수양대군 부추기고, 단종 살해한 개늠.
이민우가 저때 이미 사극연기 만렙이라...
김무생-유동근-이민우 로 사극 연기 만랩들로 3대를 시켰으니…
세종-충녕대군도 안재모였음...
나 어릴 때 본 역사책에서도 그렇게 묘사돼서리
정사가 아니어서 깍아먹은 게 있긴 해도 드라마 인기 자체는 그게 무색할 정도로 높지 않았나? 저거 볼 때만 해도 그 얘기를 주변에서 못 들었거든
아니 그시대에 대세적인 평가를 가지고 만든 물건에 현재의 잣대를 들이대면…
인물평가야 시대가 갈수록 바뀌는거라고 봅니다.
양녕 평가는 시대 보다는 당시에는 정사 번역자료가 부족해서 야사중심이라 저런평가가 나온게 크지 정사보면 그냥 재평가 여지 없는 ㅆㄴ임 그래도 임해순화정원 3형제급 개막장은 아니라는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나
숙종도 예전드라마부터 희빈 치마바람에 헤벨레하는 왕으로 기억되는데. 그나마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야사 정사 비교해보면 이미지가 180도 바뀌는 인간들이 수두룩함 그 중종도 알고보면 유약한 모습을 보인건 맞지만 수틀리면 하룻만에 권신이고 나발이고 싸그리 숙청하는 두얼굴의 사나이였고
저때 충녕대군이 다음작품에선 연산군으로 나온다지?
그다음엔 타방송사 가서 김두한으로 나오고...
그리고 다시 태종 이방원이 되고..
이방원이 되어 아버지한테 너도한번당해봐라 시전함
는 아버지가 맞은 벼루, 자기도 맞음 ㅋㅋㅋㅋ
후속작인 왕과 비에서는 정하연이 문종을 병약하고 심약한 군주로, 수양을 세종의 아들 중 가장 뛰어남 + 신하들에게 권력을 빼앗긴 왕권을 되찾으려는 인믈로 묘사했지
진짜 욕먹을거는 왕과비 쪽인데 성공한 연산군 놈을 준 성군으로 왜곡시킴
수양이 긍정적인 세계는 오직 근육조선 세계뿐이라고
히가시 후미히토라는 작자(소설가출신 매국노로 옛날이름은 김동인)도 수양대군은 ㅈㄴ 찬양하긴 하더라
아버지 살리려고 아버지를 헬창으로 만드려는 이야기?
대신 형도 헬스장식 셈법으로 같이 조짐
소헌왕후가 문종 갈구는게 웃기던데 동생만큼은 하라면서
대수양 그거 ㅋㅋㅋㅋㅋ 그거 작가놈도 사육신 건까지 미화는 힘들었는지 사육신 나오기전에 성군 되겠다는 열린 결말로 끝냄 ㅋㅋㅋㅋ
저건 후반부 평가를 깎아먹을 부분이라기보다는 걍 시대적인 한계라고 봐야 함. 저건 비단 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저 당시 세종대왕 위인전이든 역사만화책이든 죄다 양녕이 깊은 속내를 가지고 세종한테 왕위를 양보했다는 식이라는 분위기였고 주류 사학계의 양녕에 대한 관점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시기라서 그런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뽑다보면 저런 식의 연출이 나올 수밖에 없었음.
저것만 문제가 아니고 정종 캐릭터도 그렇고 대마도 정벌도 있고 그럼
근데 어렸을적 그림책? 같은 역사 책이나 이런거에 저렇게 서술한게 있었던거 같은데,
나도 저 드라마보고 양녕대군을 재능쩌는데 왕이 되는 거 싫어서 여색밝히고 기행하는 걸로 기억하게 되었음.
실제로 양녕 이새끼는 수양이도 왕을 내쫓고 죽이는건 아 쫌... 각이 영... 하는데 양녕이 새끼가 수양이와 대담 자리에서 빨리 죽이라고 윽박지른 걸로 악명 높았지 지금 다시 만들면은 표현할 수 있는 어지간한 살인마로 묘사해도 이상할게 없음
근데 조선 호란이후부터 정설처럼 굳어진 썰이고 불과 1~20년전만 해도 어린이용 책에서 그런식으로 나오다보니... 듣기에는 좋은이야기긴하니까
방원이네 장남 : 아버님도 장남만이 답은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제가 보니 우리 조카도 그렇습니다 ㅋㅋ
지금의 사학계가 그렇게 말한다면 예전엔 아니었단건데. 그럼 저 당시에 걍 학계부터 연구 부족이었던거지 드라마탓인가 이게. 흠.
그래도 아쉬운건 맞음 왜냐면 그때 재대로 평가받기 이전에 정도전을 개혁가로 재평가해서 묘사한게 바로 저 작품이거든 전반기와 후반기를 비교해보면 후반기가 많이 모자라긴 함
그냥 그런 그럴듯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한거 뿐이고 양녕이 강아지인건 당시에도 조금만 관심 있으면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학계탓을 하네 ㅋㅋㅋㅋ
그 때는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을 때인데, 양념의 실체가 저런 놈이었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 1998년이면 정보 습득에도 한계가 있던 떄인데.
조금만 관심있으면의 기준이 꽤 훌륭한가보네
비슷하게 정도전의 경우 실록(정사)으로 보면 개찌질하게 죽는데, 감독인가 작가가 이런 인물이 그렇게 죽을리 없다며 바꾼 케이스. 용의 눈물이 좋은 평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정사와 야사를 잘 섞어 엮어냈다는 점이기도 함. 다른 사극, 심지어 후속인 왕과 비에서도 저정도의 균형을 유지 못함.
딱히 저걸로 평가가 깎이지는 않았을 텐데?
후대에. 당시에는 저거 가지고 거의 별 말도 없었어.
평가가 깎이다 이건 좀 이상한데 어디 이것만 문제더냐??? 대마도 정벌도 그렇고 정종 캐릭터 이상하게 잡은것도 문제 아니냐
정종, 하륜, 이숙번도 실록의 기록과는 거리가 멀게 나오기는 하는데, 양녕대군은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소리가 이후에 많이 나왔엇어. 왜냐하면 다른 케이블 채널에서도 여러번 재방영 됐었거든.
나도 양녕이 일부러 양보한걸로 배웠는데 아니었음?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 그냥 철저하게 본인의 개차반 행실과 처신 문제였음.
양녕의 일화 중 하나. 자기 아들의 첩을 뺏어가 자기 첩으로 삼아버리는 바람에 그 아들은 홧병으로 죽음. 쓰레기도 좀 과분한 놈.
오리려 양녕이 충녕(세종)보고 고자질쟁이라고 싫어했음
그래서 그런지 대왕세종에서도 양녕이 비슷하게 나오더라고요
루리웹-7058724688
심지어 자기 아들 첩을 뺏어가서 자기 첩으로 삼는 바람에 아들이 홧병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음...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알았는데 맹꽁이 서당에서 그렇다 했단 말야
일단 이민우가 연기를 너무 잘했음
애초에 이환경은 왕건 야인시대 연개소문 다 보면 역사적 정합성엔 크게 관심없는 사람이니깐
자기서자 여자 ntr 했다는썰도 본거같은데
저 당시 양녕대군을 개차반으로 그렸으면 오히려 저항 받았을껄?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드라마인데 대세적인 의견을 무시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요즘은 사극 찍는데 워낙 돈 많이 드니까 나중에 기술 좀 더 좋아지면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겠다. 솔까 궁궐. 주택. 관공서. 자연환경. 백성이나 병졸들은 그냥 그 데이터 계속 써도 되잖아. 조선왕조 500년 쌉가능.
서울 동작구에 양녕대군 묘 있던데 거기 뒷산산책길보면 이런게 있더라구. 형제의 의를 다한 양녕대군이라면서. 이것도 명성황후나 원균처럼 살짝 미화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