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캐번디시는 18세기에 활동했던 과학자이자 귀족임. 장난 아닌 금수저였는데, 일단 조부는 데번셔 공작이자 대부호였고, 외조부는 켄트 공작이자 해군 사령관이었음. 외삼촌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해 이모들과 함께 외가의 재산도 상당량 상속받음.
그 결과 친가와 외가 모두 공작가인 대귀족 출신에, 6개의 성과 8개의 별장. 수조 원대의 재산을 가진 어마어마한 대부호였음. 이렇게 돈이 많으면 유흥에 돈을 흥청망청 쓰며 살기 쉬운데 엄청난 대인기피증과 여성공포증 때문에 자기 집에 차려놓은 실험실에서 과학 연구와 실험만 하고 살았음. 생계비나 연구비 걱정할 일은 없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음.
세상 물정에도 매우 어두웠는지 예금을 예치하고 있던 은행에서 예금의 일부를 투자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못 알아듣고 화를 내기도 했음. 씀씀이는 상당히 후해 친구나 친척들에게 거액의 돈이나 비싼 선물을 아낌없이 줬음. 하다못해 죽을 때가 되자 누구한테 재산을 물려줄지 유언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냐고 주변 사람들이 충고하자 알아서 물려받으면 된다고 쿨하게 무시해 버림. 실제로 친척들이 그의 막대한 재산을 나눠서 물려받았다고.
그래도 과학자로서의 동료의식 같은 건 있었는지 동시대 또다른 금수저 과학자였던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프랑스 혁명에 휘말려 사형당하게 되자 혁명정부에 라부아지에를 살려주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함과 동시에 영국에 넘겨준다면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주겠다고 제안함(라부아지에는 징세청부업자로서 너무 많은 원한을 샀기에 그런 구명활동에도 불구하고 사형당한다.) 그런 식으로 도와준 과학자가 프리스틀리 등 여럿 있음.
문제는 대인기피증 때문에 한번은 오스트리아에서 그를 추종하던 동료 과학자가 만난 기쁨을 표현하려 하자 도망친 적도 있음. 대화가 사실상 불가능해 근처에서 혼잣말하듯 연구 성과를 중얼거리는 정도가 의사소통의 한계였고 그나마도 대개의 경우는 도주했다고. 엄청난 대인기피증 때문에 초상화를 그릴 수 없어서 위의 그림은 화가가 옆모습만 보고 생김새를 기억해 그린 것임.
이런 식으로 살았는데 어찌 이름이 과학사에 남았냐 하면, 제임스 맥스웰이 그의 사후 논문들을 연구했더니 지구의 질량 계산, 쿨롱 법칙과 옴의 법칙 발견, 물이 산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라는 사실 같은 걸 그가 오히려 먼저 발견했음이 드러남. 맥스웰이 없었으면 천재의 업적이 묻힐 뻔함. 오죽하면 자폐 스펙트럼 또는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설까지 나돌 정도임.
금수저 과학자는 찾아보면 더 있고 캐번디시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가진 과학자도 많으나, 금수저이면서 그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가진 과학자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