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계의 전지소녀,
두근거림에 우열 따윈 없는 거야!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으니까
너의 지금을 살아
-역전세계의 전지소녀 op-
군국주의에 찌든 평행세계에서 쳐 들어와 지배당하는 신세가 된 가상의 일본.
엄격한 검열 아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아이돌 등 서브컬쳐 문화는 완전히 통제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했지만
그들에겐 아직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비밀결사 ‘아라하바키’가 있었다.
거대 인간형 병기 ‘가람’에 맞서는 아라하바키의 비밀병기 ‘가람 돌’. 그 에너지원은 바로 두근거림을 간직한 소녀?
소녀여, 그리고 아직 두근거림을 찾지 못한 소년이여, 가람 돌에 타라!
역전세계의 전지소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브컬쳐 전반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로 가득 차있고 진지한 클라이맥스에서 까지 쉼 없이 개그를 칠 정도로 무겁지 않은 작품이지만
반대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주제의식만큼은 절대 가볍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번 글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수많은 패러디와 개그들에 밀려 잘 언급되지 않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을 추천하는지를 다룹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리고 서브컬쳐 문화를 사랑한다 라는 말을 어디서나 당당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취향이 있기에 취미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면 어떤 것이든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유독 서브컬쳐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아주 개인적인 공간으로 그걸 가두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요즘은 인식이 나아진 편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서브컬쳐 문화들에 대한 취향은 처음 한국에 서브컬쳐가 전파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중문화에 밀려 주류가 되지 못한 채 항상 앞면이 아닌 뒷면에서 활동해야 하는 문화 취급을 받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걸 좋아하는 당사자들마저 자꾸 스스로를 음지 취급하고 숨기고자 하는 경향이 생기는 거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심화되면 서브컬쳐를 사랑하는 본인을 남이 뭐라 하지 않아도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이들을 위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역전세계의 전지소녀이죠.
이 작품은 방대한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건 사실상 이야기를 전개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역할만 합니다.
그렇다보니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나 분량 상 아군 측에 집중하느라 악당의 행동묘사나 설명이 대충대충 넘어가서 너무 편의주의적이다 싶은 장면도 꽤나 존재하죠.
하지만 고작 1쿨짜리 애니메이션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꽤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고, 이들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서브컬쳐의 한 축들이라는 점에서 단점만 보고 넘기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의문은 ‘비주류인 우리는 잘못된 것 일까?’입니다. 세계관 자체가 옛날 문화를 이어온 평행세계의 일본, 진국의 침략으로 문화주권을 잃어버린 일본이고, 이 중 가장 크게 탄압 받은 것은 서브컬쳐 문화입니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보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시간 낭비일 뿐 이라던가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다던가 하는 건 어릴 때 꼭 한 번 씩 들어본 말들이죠.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일본이든 한국이든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문화가 직접적으로 정부와 시민단체의 탄압과 견제를 받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윗세대들한테 탄압받던 기억이 이어져 지금의 우리도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은 좋아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작 중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특촬물, 지하 아이돌, 게임은 이래저래 분파가 갈리는 서브컬쳐 문화 중에서도 그 무리가 확실하게 나뉘는 장르들입니다.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특촬물, 대놓고 이름부터 음지문화 취급받는 지하 아이돌, 시간 낭비에 비생산적이라는 게임. 거기다 이 작품은 조금 더 마이너한 레트로 게임에 포커스를 두고 있죠.
하지만 이것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이 문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아끼는 인물들입니다.
어떤 인물은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고 또 어떤 인물은 이 일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결국 절대 잘못되고 틀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은 명확하게 전하고 있죠.
저는 가면라이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릴 때 보았던 가면라이더 더블은 제 영원한 우상이고 가면라이더 지오는 지나온 2000년대 2010년대를 추억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죠.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도 얘들이나 보는 아동용 영상물 취급을 받는지라 어디서 당당히 말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혼자 보면 보지 어디서 시원스럽게 나 이거 좋아한다 하기가 꺼려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혼자 고민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아직 유치하고 어려서 좋아하는 걸까, 나는 존중받지 못할 취향을 가진 게 아닐까하고.
그런데 작품의 주인공들이 남들의 시선보다 자신의 두근거림을 따라갈 때 그것이 얼마나 헛된 고민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냥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그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솔직히 서브컬쳐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다면 이 작품이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치는 개그와 설정 드리프트는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 개그와 설정들이 그냥 작가의 머리 속에서 툭 튀어나온 뜬금없는 것이 아닌 우리가 서브컬쳐를 향유하면서 지나온 것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이 작품은 단순한 열혈로봇물이 아닌 서브컬쳐를 사랑해온 우리들을 위한 헌사로 느껴지게 됩니다.
‘서브’컬쳐 라는 이름에 짓눌려 솔직하지 못했던, 자기 부정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역전세계의 전지소녀’가 말합니다,
그건 틀렸어!
어떤 두근거림이든 사랑이든 우열 따윈 없는 거야!
-쿠도 호소미치-
정말 재밌게 본 애니 중 하나에요.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맞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일이니까요!
아키바계+메카닉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죠. 메세지는 전달되어도 역시 스토리가 문제여서. 작중 전부 등장하지 못한 복선들이 궁금한데.
스토리의 완성도가 좋은 편은 절대 아니지만 전개 하나하나가 어디서 왔는지를 곱씹을 수 있다면 나름 괜찮은 수준입니다. 엔딩도 많은 의견이 있지만 대립하던 두 인물의 대화를 그저 흔한 후속작 암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상징하는 바를 겹쳐보면서 작품의 주제의식 까지 함께 생각하면 하나의 매듭을 짓는 느낌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