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주경철
출판사 - 휴머니스트
쪽수 - 1046쪽 (각 권 340쪽, 344쪽, 352쪽)
가격 - 54,000원 (각 권 18,000원)
1. 서울대학교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 서양 근대사를 새로 쓰다
―인물로 보는 서양 근대사,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부작 완간
서양 근대사를 공부할라치면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를 지나칠 수 없다. 서양 근대사와 관련해 논문, 저서, 역서 모두 활발하게 펴낸 드문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번역을 통해 페르낭 브로델과 아날학파를 국내에 소개하고, 저서 [대항해 시대]에서 16~18세기 해양 문명과 교류사를 통한 근대 읽기라는 뚜렷한 연구 족적을 남겨 주목받았다. 그동안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양의 근대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하는 큰 물음에 대한 답을 좇아왔다면 이번에 완간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는 그 거대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시대, 특정 지역, 특정 분야의 사람을 통해 세밀하고 생기 있게 서양 근대의 면면을 읽어낸 것이다.
"역사가란 인간의 살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식인귀와 같다"고 말한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말처럼 주경철 교수는 근대 유럽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내 그들의 삶, 생각, 일상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세상을 조망하는 거대한 설명 틀 못지않게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해내는 것이다. 절대군주, 혁명가, 군인, 예술가, 과학자, 종교인, 마녀재판관, 사기꾼, 해적, 기술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근대 유럽의 다채로운 면모를 생생하게 전한다. 세 권의 책에서 24명의 인물을 주되게 다루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총 400여 명의 인물이 출연해, 대표적인 근대 유럽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1권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2권 근대의 빛과 그림자’, ‘3권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3부작으로 완간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통해 근대 유럽의 역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2. 역사 글쓰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다
―디지털네이티브 세대와 소통하는 주경철 교수의 본격 대중역사서
역사 내러티브의 강점을 살린 그의 글은 역사 마니아뿐 아니라 역사 초심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 실린 글은 2016, 2017년 네이버 ‘파워라이터 ON’에 연재한 글이 바탕이 되었는데, 연재글 업로드 당일에 4~5만 회의 조회수, 총 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독자들의 커다란 호응과 찬사를 받아왔다. 60주 동안 매주 한 편씩 온라인 상에 글을 쓰는 이 분주하고 낯선 프로젝트에 주경철 교수가 동참한 이유는 요즘 젊은 세대들과 역사로 소통하고 싶어서다. 청년 세대야말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사람들이기에 세계를 보는 넓은 안목과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복잡 미묘한 일들을 세밀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탐구하는 역사 연구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젊은 독자들이 세계 역사에 한번이라도 더 눈을 돌릴 수 있도록 글쓰기 방식에서도 변화를 추구했는데 온라인 상의 짧고 강렬한 글에 익숙한 독자들을 고려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글 속에 녹아 있는 위트와 유머, 여러 인물의 각양각색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솜씨, 단박에 이해되는 재치 있는 해석 등이 그러하다. 덕분에 우리는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의 시대극처럼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역사를 읽는 재미와 더불어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주경철 교수의 역사를 읽는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도 매력적이다. 그 와중에 복잡한 왕실 내력과 인물 관계, 생소한 사건들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가 힘든 서양 근대사가 한눈에 쏙쏙 명쾌하게 들어오는 것은 덤이다.
지식뿐 아니라 상상의 즐거움도 선사한다. ―9**
어렵고 지겹던 역사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논*
대단한 이야기 솜씨!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ds******
각 인물의 삶으로 역사의 지도가 그려진다. ―좋**
주경철 교수의 현대적 해석과 위트는 역사 속 인물을 전혀 다른 인물로 만들어낸다. ―레*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 가득하다. ―똥**
기가 막힐 정도의 글솜씨에 역사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띠***
어렵고 낯선 서양사를 쫄깃하고 흡입력 있게 풀어낸다. 500년 전 이야기인데도 마치 어제 뉴스를 듣는 듯 생생하다. ―묽***
3. 잔 다르크에서 나폴레옹 1세까지, 오늘의 유럽을 만든 인물을 만나다
―24명의 인물을 통해 본 근대 유럽의 속살들
1권은 근대를 향한 문을 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근대 국가의 성립을 재촉하고, 근대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대륙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정신세계를 열어젖혔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국왕을 도와 백년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이단 판정을 받고 화형당한 잔 다르크와 유럽 대륙 중심부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부르고뉴 공작들, 세계를 아우르는 기독교제국을 꿈꾼 카를 5세와 강력한 왕조국가를 만들기 위해 여성 편력도 마다하지 않은 헨리 8세. 실제로는 기이한 중세적 종말론자였지만 바다를 건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신대륙에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탄생시킨 코르테스와 말린체는 대륙의 발견을 넘어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정신세계와 신념을 만들어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르틴 루터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과 종교 개혁으로 한 시대를 뒤흔들며 근대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2권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문명과 야만, 빛과 어둠이 공존한 시대를 그린다. 왕조 국가가 정립되고 ‘과학혁명’이 일어났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골격이 만들어지는 등 물질적·정신적으로 크게 도약하는 시기였지만, 신·구교 간 종교 갈등이 전쟁으로 번지고 가공할 마녀사냥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 ‘생 바르테레미 학살’의 책임을 떠맡아야 했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모략을 일삼는 ‘검은 왕비’라 불렸지만 실은 종치·종교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며 암흑의 역사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인물이다. 오라녀 공 빌렘은 에스파냐의 종교적 탄압에 맞서 빛나는 리더십으로 네덜란드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결국 가톨릭 광신도에게 암살되었고, 천체 관찰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회와의 충돌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스스로 자신의 견해를 부인해야 했다. 제자리를 잡지 못한 국가 체제 하에서 정치 문제와 종교가 얽히면 극심한 갈등이 터져나왔고 이는 마녀사냥과 같은 무질서한 광기로 번지기에 이른다. 같은 시기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왕조국가들이 정립되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절대주의’의 왕이라 평가받지만, 재원을 쥐어짜며 끊임없는 전쟁을 치른 프랑스의 루이 14세, 프랑스와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고 발칸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1세, 합스부르크 근친혼의 유전자 문제가 폭발해 후손 없이 사망해 전 유럽을 전쟁터로 만든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2세. 한편, ‘인플레이션의 아버지’ 존 로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 유럽 사회에 탐욕과 부패의 거품을 일으키고, 오늘날의 로마와 바티칸을 만든 베르니니는 이탈리아 바로크 예술의 정점을 이룬 걸작들을 탄생시킨다.
3권은 왕조국가의 틀을 넘어 국민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 사회제도와 문화에 대한 개혁, 식민지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산업혁명 등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혁명(revolution)’의 시대를 다룬다. 유럽 국가들이 국제 무역을 확대하자 해상 세계에 해적이 넘쳐났다. 정부 공식 인증 해적부터 여성 해적들까지, 세상의 규범을 거부하고 사회 억압에 항거한 이들의 삶은 묘한 해방감을 자극한다. 유럽의 변두리에 위치한 러시아도 근대의 회오리에 휘말렸고, 유럽형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려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러시아가 북유럽의 강국들을 몰아내고 제국의 위치에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재 예술가 모차르트 역시 이 혁명적인 시대 흐름을 감지하고 당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시대를 앞선 음악을 선보인다. 혁명의 절정을 이룬 곳은 단연 프랑스다. 사회 발전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졌음에도 정치 체제와 계급 구조는 여전히 구체제 그대로인 데다 권력자들의 무능까지 더해지자 마침내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혁명의 ‘대상’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이 지배 체제의 부패와 무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면, 혁명의 ‘주체’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삶은 변화를 열망하는 선한 의지가 어떻게 ‘피의 공화국’을 불러왔는지 생생한 대비를 이룬다. 이 시기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산업혁명도 빼놓을 수 없는데 제임스 와트와 리처드 아크라이트 등 많은 발명가와 엔지니어가 산업혁명을 한층 가속화시켰다.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에도 혁명의 물결이 휩쓸었고, 선구자 시몬 볼리바르의 위대한 투쟁 이야기를 통해 남아메리카 독립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잔 다르크에서 시작된 근대 유럽인 이야기는 나폴레옹에서 마감된다.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제국 건설 시도가 실패함으로써 ‘분열’된 유럽은 상호경쟁과 갈등 속에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문명의 힘을 키웠다. 하지만 300년 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다시 유럽에 제국이 등장했고, 이 또한 실패로 끝났다. 역사는 반복되는 듯하지만 사실 지극히 다른 양상을 띤다. 나폴레옹 제국은 이전 시대의 모든 발전, 곧 혁명, 계몽주의, 경제 도약, 고전문화의 융성, 군사 발전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체제다. 나폴레옹은 최고의 이상을 품고 최악의 파괴를 자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유럽 사회를 혁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모아진 힘이 다시 분열하며 유럽은 본격적인 제2차 근대로 나아갔으며, 3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유럽의 성과들이 세계로 퍼져나간다.
잔 다르크는 누구인가? 그녀는 역사상 가장 신비한 인물 중 하나다. 역사가들은 잔 다르크와 관련된 일들을 어찌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해한다. 17세 소녀가 어느 날 청와대에 나타나서 자신이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저에게 군사를 맡겨주시면 곧 휴전선을 허물고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상상해보자. 이와 거의 비슷한 상황인데, 프랑스 왕이 실제 그런 말을 믿고 군사를 맡겼더니 아닌 게 아니라 잔 다르크라는 소녀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미루어오던 왕의 대관식을 주선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프랑스는 백년전쟁 중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정작 그녀는 포로로 잡혀 종교재판에서 이단 판정을 받고 1431년 19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했다.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야 이전 판결을 뒤집는 재판이 열려 그녀는 복권되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교황청이 그녀를 성녀로 서품했다. 그러니까 잔 다르크는 마녀에서 성녀로 변신한 인물인 셈인데, 이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다. ...... 잔 다르크는 너무나 많은 조명을 받는 역사적 인물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까마득한 신비의 어둠 속에 잠긴 숨은 매력의 소유자이다.
('1권 1장 [잔 다르크, 성녀인가 마녀인가]' 중에서/ pp.17~18)
18세에 잉글랜드의 왕위를 차지했을 때 헨리 8세는 매력적이고 지적이고 세련된 젊은 국왕이었다. 그러던 그가 점차 비대하고 못생긴 데다가 악의 가득한 늙은이로 변모했고, 부인들을 차례로 죽이거나 내쫓는 동화 속 ‘푸른 수염’ 같은 인물이 되었다. 그는 평생 985명을 사형에 처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왕비 두 명, 추기경 한 명, 대법관 한 명, 공작 12명, 남작 18명, 수도원장 77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가공할 폭력을 통해 그는 절대주의 체제를 이루어갔고 국제적으로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간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으며, 영국 국교회를 만들어냈다. 무지막지한 폭군이 근대 영국사를 주조한 것이다. ...... 튜더 왕조 이전의 잉글랜드는 유럽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국으로서 기껏해야 양이나 쳐서 양모를 대륙에 파는 가난한 국가였다. 그런데 16세기 이후 잉글랜드는 일취월장하여 18~19세기가 되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중심국가로 떠오른다. 잉글랜드가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선구자가 폭군이자 편집증 환자이자 호색한인 헨리 8세다.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겠지만, 역사의 발전은 반드시 선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1권 4장 [헨리 8세, 근대 영국을 출범시킨 호색한]' 중에서/ p.137, p.169)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1492년 아시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겠다며 배 세 척을 지휘하여 서쪽 바다로 항해했고, 그 결과 자신도 모르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으나, 죽을 때까지 자신은 일본이나 중국 어딘가에 갔다 왔다고 믿었다. 이것이 대개 우리가 아는 콜럼버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시대의 콜럼버스 전기에서는 그를 매우 과학적인 인물로 그렸다. 사람들 대부분은 지구가 평평해서 너무 멀리 항해해가면 배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믿었는데 반해,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던 선구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 시대에 웬만큼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구구형설은 상식에 속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미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콜럼버스만 예외적으로 깨어 있는 선구자라는 식의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은 19세기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다. 이처럼 콜럼버스는 수많은 신화적 요소가 덧씌워져서 실제 면모는 짙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 중세적 종말론에 경도된 신비주의자였던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콜럼버스와 너무나 달라서 다소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1권 5장 [콜럼버스, 에덴동산의 꿈으로 근대를 열다]' 중에서/ pp.173~174)
카트린 드 메디시스만큼 많은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킨 인물도 흔치 않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 여인은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고, 세 아들이 차례로 국왕으로 등극했다가 일찍 죽거나 비참하게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16세기 후반 프랑스가 종교・정치 문제로 위기에 몰렸을 때, 카트린은 모든 갈등을 부추기고 살인과 폭동을 교사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퍼뜨린 것이다.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여왕 마고]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늘 검은 옷을 입고 아들들을 조종하며 배후에서 모략을 일삼는 늙은 여인이 그녀의 전형적인 이미지였다. 그렇지만 실제 카트린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정치 안정을 찾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같으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 2권 1장 [카트린 드 메디시스, 프랑스 흑역사의 주인공]' 중에서/ p.21)
1566년 4월 5일, 그 후에도 지속된 종교 탄압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가톨릭교도와 신교도 구분 없이 하급 귀족 약 200명이 브뤼셀궁에 모여 마르가레트 총독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 이들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자신들은 펠리페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라고 아뢰었다. 다소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총독의 한 고문관이 "이 사람들 거지떼 같네"라고 말했다. 귀족 대표들은 정말 거지처럼 빌기만 했을까? 탄원서 낭독을 마친 후 이들은 갑자기 이상한 포즈를 취했다. 모두들 몸을 약간 사선으로 돌린 것이다. ...... 사실 그 포즈는 마상馬上의 병사들이 일제 사격을 하는 준비 동작이었다. 겉으로는 공손하되 만일 자신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봉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결국 마르가레트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고, 화형을 비롯한 종교재판관들의 활동을 금지했다. 그날 밤 귀족들은 파티를 벌이며 축배를 들 때 자신들이 들었던 ‘거지’라는 말을 되새겼다. 이 모욕적인 표현이 오히려 그들의 흥미를 자아내서 스스로를 ‘거지 기사단’으로 명명했다.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 회색 망토를 두르고 구걸용 그릇을 허리띠에 매는 거지 패션이 유행했다. 더 나아가 ‘거지’는 네덜란드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2권 2장 [침묵공 빌렘, 네덜란드 독립의 영웅]' 중에서/ p.71)
악마와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잡아먹었다는 죄로 페로네트를 빨갛게 달군 쇠 위에 앉게 한 다음 화형에 처한 것은 15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무고한 여인에게 인간이라면 차마 하지 못할 악랄한 고문을 가한 것은 17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마디로 ‘근대 유럽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흔히 마녀사냥은 ‘중세적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근대 초 정점에 이르렀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시대가 바로 마녀사냥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2권 4장 [독일의 악마들, 마녀사냥 이야기]' 중에서/ p.137)
‘인플레이션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로, 좋게 말하면 금융인, 나쁘게 말하면 사기꾼. 그는 사기성 돈놀이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욕망과, 망해가는 경제를 단번에 살리겠다는 허황된 영웅심이 뒤얽혀 있었다. 루이 15세 정부의 막대한 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호기를 부렸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금융 거품만 일으켰다. 그가 구상한 체제는 러시아 혁명 전까지 가장 극적인 경제체제 실험이지만 동시에 역사상 최악의 사업 실패이자 최대 규모의 부정부패 중 하나였다. 사람들을 현혹시킨 거품 경제 사태는 파리와 런던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갔다. 바야흐로 사기와 투기, 공황도 글로벌한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2권 8장 [존 로, 탐욕과 부패의 거품을 일으키다]' 중에서/ p.291)
해적 사업에 탁월한 실력을 보인 나라가 잉글랜드다. 오늘날 영국은 근대 초 해적질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다. ...... 동시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전적으로 비즈니스만 하는 사람들보다는 조국의 적을 공격하면서 위험한 모험 끝에 엄청난 수익을 챙기는 해적들을 훨씬 멋진 사나이들로 여겼다. 이 같은 ‘공인(公認)’ 해적의 대표 인물로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들 수 있다. 1579년 3월 1일, 그가 골든하인드호를 지휘하여 에스파냐의 카카푸에고호를 나포한 사건은 영국사의 전설이 되었다. 드레이크는 이런 공헌으로 1581년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고 그의 이름에 ‘경(sir)’이 붙게 되었다.
('3권 1장 [해적, 악당들의 반자본주의 유토피아]' 중에서/ pp.20~22)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역사상 강렬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민중 세력을 혁명의 중심으로 끌어올려 역사의 진보를 시험한 위대한 혁명가인가, 아니면 거리의 폭력을 등에 업고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낸 냉혈한인가?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에서 결코 호의적인 영웅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혁명기에 활동한 많은 인물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지만 그에게 바친 국민적 기념물은 없다. 파리의 가난한 지역의 한 지하철 역명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3권 4장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불꽃인가 어둠의 심연인가]' 중에서/ p.137)
나폴레옹은 정말 군사의 천재였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해왔고, 후대의 장군들도 그러한 나폴레옹을 흠모했다. ...... "나는 한 가지만 본다. 적의 몸통! 그것을 깨면 부차적인 문제는 저절로 정리된다." 이런 전술의 실상은 무엇일까? 엄청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재앙에 가까운 희생을 치렀다. 예컨대 1813년 6~9월 에스파냐와 독일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군 15만 명이 사망했고,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도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피해에 버금간다. 그런데도 나폴레옹은 군사 천재로 칭송받고 제1차 세계대전의 장군들은 악당 취급을 받는다. 나폴레옹은 천재라기보다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한 군사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폴레옹은 천재가 아니다. 결국 그가 패배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권 8장 [나폴레옹, 시대를 파괴하고 모순 속에 살다간 황제]' 중에서/ p.325)
목 차
[1권]
1장 잔 다르크, 성녀인가 마녀인가
1. 신이 보낸 여자
2.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하다
3. 반전 있는 최후
2장 부르고뉴 공작들. 유럽판 무협지
1. 부르고뉴령, 유럽 제3세력의 등장
2. 선량공 필리프 3세의 줄타기 외교
3. 부르고뉴, 끝내 좌절된 왕국의 꿈
3장 카를 5세, 세계제국을 꿈꾸다
1. 광녀의 아들, 제국의 상속자
2.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향하여
3. 제국의 황혼이 시작되다
4장 헨리 8세, 근대 영국을 출범시킨 호색한
1.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다
2.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3. 잉글랜드를 발전의 도상에 올려놓다
5장 콜럼버스, 에덴동산의 꿈으로 근대를 열다
1. 신화가 된 콜럼버스
2.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
3.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다
6장 코르테스와 말린체, 구대륙과 신대륙의 폭력적 만남
1.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
2. 말린체는 왜 코르테스를 도왔을까
3. 두 문명의 폭력적인 결합으로 얼룩진 라틴아메리카
7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천사와 악마를 품었던 천재
1. 피렌체의 장인 레오나르도
2. 창조적 천재성을 지닌 ‘미완성’ 인간
3. 시대가 불러낸 ‘경험의 아들’
8장, 루터, 세상을 바꾼 불안한 영혼
1. 영적 시련의 나날들
2. 종교개혁의 길로
3.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다
[2권]
1장 카트린 드 메디시스, 프랑스 흑역사의 주인공
1. 신의 은총으로 왕비가 되다
2.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참극
3. 평화를 추구한 여성 정치가
2장 침묵공 빌렘, 네덜란드 독립의 영웅
1. 오렌지 향기를 머금은 ‘개구리 나라’
2. ‘철의 공작’ 알바 공과의 한판 승부
3. 건국의 초석을 놓은 네덜란드의 국부
3장 갈릴레오 갈릴레이, 우주의 실체를 파고든 불굴의 과학자
1. 독실한 신앙인인가, 근대 과학의 투사인가
2. 망원경으로 우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3.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모색한 근대인
4장 독일의 악마들, 마녀사냥 이야기
1. 근대 유럽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나
2. "사실이든 아니든 제발 아무거나 자백하세요"
3. ‘마녀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장 루이 14세, 세상을 암울하게 만든 태양왕
1. 절대주의 권력을 향해 첫발을 내딛다
2. ‘절대주의’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다
3. 끝내 이루지 못한 영토 확장의 꿈
6장 레오폴트 1세와 카를로스 2세,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지도를 바꾸다
1.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 죽음과 유전병의 끔찍한 드라마
2.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의 침략을 막아낸 레오폴트 1세
3.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은 군주, 카를로스 2세
7장 베르니니, 영원의 도시 로마를 조각한 예술가
1. 숭고한 지성인가, 사악한 인간인가
2. 천재 예술가의 굴욕
3. 로마는 당신을 위해, 당신은 로마를 위해 존재한다
8장 존 로, 탐욕과 부패의 거품을 일으키다
1. 세상 물정에 밝은 청년에서 인플레이션의 아버지로
2. 집에서 새는 바가지, 미시시피 들판에서도 새는 법
3. 미시시피 버블에서 남해 버블로
[3권]
1장 해적, 악당들의 반자본주의 유토피아
1. 대항해시대, 근대 해적의 시대
2. 바다의 무법자 해적의 전성시대
3.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스러진 해적들의 유토피아
2장 표트르 대제,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다
1. 러시아 최초로 순방길에 오른 차르
2. "나는 땅을 원하는 게 아니다. 바다를 원한다"
3. 야만적인 방식으로 러시아를 문명화하다
3장 마리 앙투아네트, 구체제의 마지막 왕비인가 최고의 근대적 왕비인가
1. 화려한 지옥, 베르사유궁의 나날
2. 공적 의무와 사적 자유 사이에서
3. ‘인민의 면도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다
4장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불꽃인가 어둠의 심연인가
1. 혼란 없이 이루어지는 혁명은 없다
2. "우리의 혁명이 세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리라"
3. 모든 사람의 머리 위로 평등의 낫을 휘두르다
5장 모차르트, 혁명을 예감한 천재 예술가
1. 위대한 예술가의 답답했던 청년 시절
2. "그의 곡에는 최고의 과학이 깃들어 있소"
3. 하이든의 세계에 머물며 베토벤의 세계를 지향하다
6장 볼리바르, 남아메리카의 해방자인가 독재자인가
1. 에스파냐의 사슬을 끊고 독립을 꿈꾸다
2. ‘그란 콜롬비아’, 그 거대한 꿈을 향해
3. ‘해방자’에서 독재자로
7장 와트와 아크라이트, 산업혁명의 영웅들
1. 새로운 세기, 새로운 ‘힘’이 등장하다
2. 면직물 공업에서 시작된 영국 산업혁명
3. 세계 면공업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8장 나폴레옹, 시대를 파괴하고 모순 속에 살다간 황제
1. 타고난 군인, 프랑스 최고 권력자가 되다
2. 세계 지배를 꿈꾼 프랑스 황제
3. 신화가 된 모순적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