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눈을 아주 천천히 여러번 감았다 떠보았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몸에 열이 있나 확인했다.
목과 어깨를 돌려 뭉친 근육을 풀어봤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그 정체는 확연했다.
그 녀석이 말했다.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두가지였지만 나는 현실적인 답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 알았어.. 받아 들이겠어."
&&&
-x의 미로-
갑자기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편하게 깊은 잠을 자다가 눈을 감은 채로 정신이 들은듯 했다.
눈은 떠지지 않았지만 내가 지금 꿈을 꾸는게 아니라 깨어 있다는 것이 손으로 전해지는 물체의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몽롱하더니 머리가 아퍼오더니 코 끝이 살짝 찡했다.
어제 기억을 되살려 내가 누군지 다시금 되새김질 했다.
나는 최신형 컴퓨터를 개발하는 회사의 회계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굴 알고 지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고작 너무 머리카락이 길다며 내일까지 머리카락을 깍아오라는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머리카락을 깍으러 회사를 나가 미용실로 걸어가던 도중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를 휙하고...
그런데 어째서 나는 회사에서 미용실까지 가는 도중의 과정이 기억이 안나는 거지?
머리를 너무 세게 맞아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린건가 싶었다.
문득 그 누군가가 내 머리를 쳤다는 대목에서 불현듯 내가 지금 어디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 지갑을 노린 강도라면 난 길바닥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닥의 감촉은 콘크리트나 흙이 아니였다.
이거는 쇠.. 하지만 쇠라고 하기엔 따뜻하고 딱딱하지 않은 감촉이였다.
그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들려왔다.
"이제 슬슬 귀가 들릴텐데.. 눈이 뜨여질려면 아직 멀었나?"
"이제 5분 밖에 안 남았어.. 2분 안에 뜨지 않으면 그냥 버리고 가자구."
대화를 들어봐선 납치범들이 할만한 대화는 아니다.. 그런데 5분 밖에 안 남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의무점이 너무 많았지만 눈이 확 뜨여지며 빛이 갑작스럽게 무방비 상태였던 나에게 쬐여지자 난 눈이 타들어가는 듯한 찌릿함에 안면을 찌푸리곤 살짝 괴롭다는 신음을 내었다.
빛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드디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누군지 아까 그 대화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정신 병원에서 환자를 감금할 때 쓰는 방음 방 같은 분위기(하지만 벽의 재질은 방음 방의 쿠션 같은 푹신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털실 같은 것으로 되어있는 쇠와는 거리가 먼 것이였다.)와 온 방의 벽 구석 구석에서 새어나오는 빛이였다.
벽에 문도 있었는데 문은 손잡이가 없이 그냥 평평한 강철 문이였다.
나는 방 분위기를 확인한 다음에서야 사람들을 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2사람과 구석에 앉아서 날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2사람이 있었다.
4사람 다 나에게 말을 걸기는 커녕 그저 나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무언갈 기다리고 있었다.
구석에 앉은 두 사람은 불안한 눈길로 나와 어딘가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이 쳐다보는 무언가를 봐버렸다.
벽의 문 위에는 타이머와 함께 폭탄이 벽에 걸려져 있었다.
놀란 나머지 비명 소리가 나야 하는데... 나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말 할 수도 일어 날 수도 없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 네 사람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보긴 힘들다.
상황 판단을 하건데 아무래도 아까 그 두 사람의 대화에서의 5분은 폭탄이 터지는데 걸리는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납치되어온 사람일 것이다.
왜냐면 저 사람들은 환자용 옷 같은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전부 똑같은 디자인에 똑같은 색이였고 나 또한 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저들 또한 납치되어서 이런 옷으로 강제로 입혀진 사람이란걸 알 수 있었다.
폭탄이 걸려있는 벽 아래의 문은 열려 있었다.
만일 내가 일어나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2분이 지나면 저 네 사람은 날 버리고 그냥 갈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잘도 돌아가는 내 두뇌는 즉각 내가 해야할 일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당장 일어나 문으로 도망쳐라!'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가락 하나 움직여 지질 않으니 손 쓸 도리가 없다.
어떻하지 하곤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갑자기 목에서 무언가 막힌게 뻥 뚫린듯한 느낌이 들더니 연거푸 기침을 하였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이게 어찌된건지 어리둥절 하고 있을 때 날 관찰하던 두 사람 중 하나가 나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이제 말을 할 수 있을 거야. 한번 아무 말이나 말해보지 않겠어?"
나는 그 사람의 말에 한번 말해보기로 했다.
"이게 무슨... 목소리가 나오는군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뻤다.
무언가 부당하게 빼앗긴걸 되찾은 기분이였다.
그때 다리에서 무언가 나사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리가 약간 쥐가 난 듯 저리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움직여보니 다리 또한 움직여 진다.
"와..."
잠깐동안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그래도 지금 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재빨리 다시 떠올리고는 일어나 문으로 나갈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열린 문은 나가는 문이 아닌거 같았다.
문 너머는 또 다른 분위기의 방이였다.
방은 굉장히 넓었고 벽과 바닥은 흙이나 벽돌 같은걸로 만들었는지 무언가 쇠 같은 감촉이 아닌 부드러운 찰흙을 밣은 듯한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껴졌다.
이곳의 조명은 벽 너머에서 비쳐지는게 아니라 천장에 전등 같은 것이 데롱 데롱 한 스무개 정도가 줄을 맞춰 메달려서 비추고 있었다.
구석 쪽에도 강철 문이 있는게 닫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저건 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원치도 않은 것을 깨달아버렸다.
바닥에는 굉장히 심하게 훼손된 시체 20구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순간 목구멍에서 무언가 넘어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역한 기분이 머리를 차지했다.
토할려고 했으나 빈속이라 아무것도 나오진 않고 침과 콧물과 눈물한 쭉 나왔다.
얼굴이 분비물로 심하게 더러워졌지만 고개를 들어 시체들을 볼 때마다 헛구역질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시체 사이에 무언가 총 같은 것이 있지만 그것이 지금 필요하지 않으며 저 사람들이 왜 죽어있는지 알기 보다는 지금 폭탄이 터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아까 그 방으로 다시 돌아와보니 4 사람이 날 문 앞에서 반겨주었다.
아깐 신경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각자 연령대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였다.
내 앞에서 서 있었던 두 사람 중 나에게 말해보라고 말을 건 사람은 노인이였지만 너무 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젊다고 하기엔 어중간한 것이 아마 60대 정도로 보이고 하얀 머리카락에 노란색 눈동자와 하얀 피부는 유럽 쪽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서 있었던 두 사람 중 나머지 한 명은 작고 어린 소녀였는데 선글라스와 지팡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녀가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와 황색 피부를 보아서 아시아계 사람이란걸 알 수 있었다.
아무런 말도 않고 구석에 앉아 있었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붉은 색 머리카락은 뱀눈을 한 사람이였다.
파란색 눈과 하얀 피부를 보아하니 미국인인가 싶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40대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였다.
그녀는 검은 피부와 대조되는 노란 머리카락에 하얀 눈동자와 작은 체구로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예측 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대충 상황 파악을 하고나니 폭탄은 터지기 2분 15초 남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이 방을 나가야 해요! 어떻게 해야하죠?"
노인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을 보니 방 정 중앙에 하나 방의 각 구석마다 하나 씩 총 5개의 버튼이 있었다.
말도 없이 뱀눈의 청년과 흑인 여성은 구석의 스위치를 발로 밣고 서 있었다.
소녀를 부축하곤 노인은 다른 구석의 스위치를 밣고 있게 한 후 자신은 그 반대편 스위치를 발로 밣았다.
그걸 보고는 내가 지금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발로 버튼을 눌렀다.
그때 시한 폭탄의 타이머가 멈추면서 매우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체 반응 확인, 죽은 시체를 올려둔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발임을 확인했습니다.
탈출구를 오픈하겠습니다. 1분 안에 나가지 않으면 출구는 닫히면서 가더가 출동할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시작되었다.
-1번 휴게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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