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이제 돌아갈 준비하시고요. 문이 닫힙니......"
제헌이 말을 잊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제법 당황한 듯했다. 걸음을 옮기던 미아는 금새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
“작은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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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조심스럽게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미아는 조심스럽게 음성통화를 화상통화로 전환해봤지만 “나린호의 내부는 보안 사항입니다.”라는 메시지만 화면에 떠오를 뿐이었다.
미아는 응답 없는 전화를 계속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온 목적은 모두 다 이루었다. 망설일 것 없이 사촌동생을 불러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로아”
로아를 부른다. 대답이 없어 돌아보니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관측창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이 아직 열려있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호기심보다 불길함이 더 컸다.
“로아! 가야지!”
미아가 재촉하자 로아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로아가 손을 뻗어 창문 너머의 우주를 가리키자, 미아의 눈동자가 비로소 우주로 향했다. 눈이 다시 어두운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해서인지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눈을 끔뻑거리길 잠시, 곧 그녀는 화선지 위에 떨어뜨린 먹물이 번지듯 별빛을 먹어 치우는 검은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게?”
미아가 로아를 바라보자 그도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미아는 눈을 크게 뜨고 불길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라-124!”
미아가 제헌을 통해 사전에 들은 내용대로라면, 방금 전에 우주쇼는 폭발성 미사일을 이용해 우주선의 진로를 막는 소행성의 경로를 바꾸려는 것이었다. 제대로 성공했다면 소행성은 시야 밖으로 밀려 사라졌어야한다. 헌데 라-124는 여전히 눈 앞에 있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제헌이 통화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미아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로아는 우주 속 그림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영상물로 봤던 문어가 깊은 바닷속에서 먹물을 뿌리고 그 안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만 같았다.
- 딩동
단말기의 알람음이 다급하게 울려 퍼진다. 로아의 망막이 전달된 신호를 받아 긴급공지사항을 띄웠다.
- <긴급> 잠시 뒤부터 가벼운 관성이 10여분간 계.
- 성 이민국 포도선 시설안절관리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문장이다. 오타로 인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담당자가 급하게 보내느라 실수를 한 걸까.
로아가 사촌누이에게 메시지가 왔다고 알리려는 순간, 땅이 흔들리더니 우주 속에서 예닐곱 개의 빛의 줄기들이 그림자를 향해 뻗어 나갔다. 빛줄기에 비쳐 어둠이 잠시 자리를 뜨자 울퉁불퉁한 갈색의 바위덩어리가 눈에 잡힌다. 찰나동안 드러났던 모습은 이내 강렬한 빛덩어리들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보안경을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로아의 시신경을 파고든다. 그가 눈을 꾹 감자 절묘하게 다시 알람이 울었다. 어둠 위로 메시지만 덩그러니 떠오른다.
- <긴급> 잠시 뒤부터 가벼운 관성반동이 10여분간 계속될 예정입니다. 반동으로 인한 충격으로 실내외 기자재의 파손이 우려되오니 미리미리 대비하시어 재산피해가 없도록 주의 부탁 드립니다. 또한 부상의 우려가 있으니 가급적 실외 활동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화성 이민국 포도선 시설안전관리팀.
한발 늦었지만 제대로 된 공지사항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처음 받았던 공지사항에서 첫 번째 문장의 내용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시설안전관리팀도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이 분명했다.
“로아 이리와! 얼른 우리도 마을로 돌아가자!”
미아가 언덕을 오르며 사촌동생을 향해 손짓한다. 눈을 감고 있던 로아는 그녀의 손짓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가 감았던 눈을 뜨자 관측창을 향해 먹물 같은 어둠이 날아들었다.
“누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강렬한 충격이 대지로 밀려든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세계가 중저음의 울음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었다. 로아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고 미아는 오르막길 경사 쪽으로 쓰러졌다.
미아가 넘어진 쪽이 오르막길이라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했던지 금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촌동생의 손을 낚아챘다. 로아는 피어 오르는 흙먼지에 두어 번 재채기를 내뱉었다.
“일어나!”
미아는 마음이 급했다. 소행성의 잔해로 보이는 것들이 배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포도선의 최전방, 저 암석덩어리들 때문에 배가 파손된다면 그건 뱃머리나 다른 없는 여기부터다. 그녀는 한 손으로 사촌동생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다른 손으로는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긴급 모드! 가까운 대피소 안내!”
미아의 목소리를 인식한 단말기가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홀로그램을 띄운다. 발랄한 글씨체로 “검색중” 세 글자가 홀로그램 가운데로 떠올랐다. 로아가 미아의 손을 잡고 일어서자 다시 땅이 흔들린다. 이번엔 크게 흔들리지 않아 남매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때맞춰 미아의 단말기에서 중저음의 묵직한 남성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20미터 전방에 주민 비상 대피소가......”
“안내 시작!”
미아는 또박또박하지만 느릿한 음성지원 목소리를 중간에 잘라냈다. 언제 다시 땅이 흔들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느긋한 목소리라니.
“안내를 시작합니다. 가시모드를 사용하여 홀로그램으로 위치를 표시합니다.”
미아의 손에 든 단말기에서 홀로그램이 쏟아져 나와 대피소로 가는 길을 비춘다. 대피소는 그들이 넘어온 언덕 바로 뒤편에 있는 것 같았다. 대피소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미아는 안도했다.
“로아 서둘러!”
미아가 앞장 서고 로아가 그 뒤를 따랐다. 겨우 두세 걸음을 옮기는 동안 간헐적으로 그들을 받치고 선 바닥이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흔들렸다. 남매는 발 아래로 화성이나 지구의 탄탄한 대지가 아닌 흙이 살짝 덮인 철판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철판 너머로는 끝도 없는 어두운 빈 공간뿐이다. 그 곳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을 타고 오싹한 기분이 쪼르륵 내달린다. 미아는 소름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휘청거리며 걸으며 몇번을 넘어졌는지 셀 수조차 없다. 고작 20미터일 뿐인데 남매에게는 마라톤 코스만큼 길고 험한 길이었다.
땅은 쇳소리를 내며 부르짖고, 공기는 박자를 맞추어 파르르 떤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직경 500미터의 거대한 원통이 금새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몇번이나 남매를 쓰러트릴만큼 강렬한 진동이 꾸준히 이어진다. 소행성의 조각난 덩어리가 포도선에 계속해서 부딪히는 것인지, 아니면 소행성을 격추하기 위한 미사일들이 발사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되는 진동은 바닥을 뒤흔들어 주변을 온통 흙먼지로 뒤덮었고, 미아의 홀로그램 네비게이션은 흙먼지에 가려 제대로 된 길을 비추지 못했다. 미아는 단 20미터의 짧은 길이 흙먼지에 가로 막혀 찾을 수 없는 길이 된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누나 내가 안내할께. 콜록 콜록"
네번째 쯤 쓰러졌을 때, 로아가 입을 열었다. 흙먼지 때문에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벌떡 일어나 미아를 부축해 일으킨다. 미아는 처음으로 그녀의 사촌동생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로아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대신 직접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연상의 방법으로 네이게이션을 실행시켰다. 가까운 대피소 안내까지 실행시켜 자신의 망막에 투사하자 그의 눈에 제대로 된 길이 표시된다. 미아의 홀로그램 네비게이션과 달리 흙먼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됐어. 콜록. 내 눈에 보이니까 내 손 놓지 말고 따라와. 콜록"
로아가 어느새 흙투성이가 된 손을 내민다. 미아는 말없이 꼭 맞잡았다.
남매는 몇번이나 땅바닥을 굴렀지만 서로를 놓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흙투성이가 된 채로 대피소 입구로 추정되는 발판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다야? 콜록"
문이 따로 없이 그저 사람 한명 설만한 원형 철판 뚜껑에 대피소라고 새겨져 있었다. 로아의 망막에는 "입구를 활성화 시키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떠올라 깜빡인다. 발판? 말이 좋아 발판이지 누가봐도 하수도 맨홀 뚜껑 같아보였다.
우주선에 흙도 집어 널고 다니다니. 저 세계의 기술력 뿐만 아니라 안전불감증도 상당히 높아 보이네요.
아직 프롤로그라 설명이 부족하지만 포도선은 장시간 (몇개월) 이동하는 이주선으로 콜로니의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안전 불감증이 대주제긴 해요... 재난 소설이거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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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탈때마다 상상하면 무서워서 배 못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