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도적은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 이 때 약간 벗겨진 옷 소매를 다시 내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도적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 곳 하나 뿐이다. 꿰매진 팔목.
“나 사실, 어렸을 때, 잘 기억 안나. 내가 자란 곳이, 내가 태어난 곳인지, 나른 기른 분이, 나를 낳은 분인지… 따뜻한 거, 좋아했어. 약간, 상보적이랄까? 주변을 둘러싼 환경과 대비되었으니까. 다른 말론,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은 것엔, 따뜻함이란 없었어…”
모닥불가에 앉아, 도적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하나씩, 연습을 해왔어… 감정을 줄이는 법, 동정심을 없에는 법… 대놓고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지만, 주위 환경이 날 그렇게 키운 것 같아. 그때쯤의 나는, 아마 날 키우는 사람이 날 낳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했어. 너무 가혹했거든…”
도적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이제는 거의 잊혀져가는 기억. 칭찬이란 없다. 웃음이란 없다. 살아남고 싶거든 남들을 버려라. 너의 옆에 있는 자는 형제나 친구 같은게 아니다. 경쟁자일 뿐. 찔러라. 때려라. 죽이지만 않으면 뭐든지.
빈민가에서 버려졌던 아이였다. 일반적인, 괜찮은, 정상적인 고아원 따위는 사치일 뿐이었다.
“뭐… 예상했던 대로였지. 난 버려졌었고, 마을에서 한가닥 한다는 사람이 키운거지. 주변 또래들도 같은 처지였을꺼야. 어렸을때부터, 모든 것은 경쟁 속에 놓여졌어. 강해지지 않으면 도태되는 밀림과도 같은… 정식으로 맞서 싸우는건 나에겐 무리였지. 키우는 자에게든, 같이 크는 자에게든. 그 때부터일까, 도적으로써의 자질이 나타난 것 같아. 10살이 되던 해에,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단검을 받았고, 도적으로써의 교육을 받았어. 지금까지의 유일한 교육이지. … 시간이 지나고, 13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이용당하기 시작했어. 그 표현이 맞을꺼야. 시키는 자를 ‘제거하는 것’. 그거 하나를 위해서 키워진거나 마찬가지고. 첫 살인을 하고, 너무나도 무감각하다는거에 놀랐어…”
헬레나는 그 때를 회상하듯, 아무 표정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날 난 생각했어. 난 살아있는걸까… 오늘에서야, 아니라고, 확답을 할 수 있겠네. 난 살아있던 적이 없는거야…”
잠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여관은 언제나처럼 활기찼다. 케이엘은 헬레나만큼 이 분위기에 맞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 이 분위기와 어울리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 참이었다.
“…… 첫번째 살인. 그건 곧 두번째가 되고, 세번째가 되고, 네번째로, 다섯번째로…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버려졌어. 이용 가치가 없어진 것 같아. 그럴만 하지. 날 키운 놈은 이제 경쟁자가 없었으니까. 그 어떤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단검 한 쌍만 가지고, 포세이큰을 처치하라며 날 보낸거야.”
약간 헬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케이엘은 헬레나의 표정이 조금 변하는것을 눈치챘다. 약간의 분노.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의. 얼핏 보면 감정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 난 뭐가 좋다고 그놈이 하란 대로 했을까. 언데드 한가운데에서, 꽤 많이 죽였지. 뭐, 이제는 내 동족들이지만. 열몇정도인가 죽였을 때, 누군가가 내 팔목을 잘랐어. 이거… 그때 생긴 상처야.”
헬레나는 팔목을 가르켰다
“그게 인간 헬레나의 최후야. 곧 언데드 헬레나의 시작이기도 하고. 부활하기까지는 잠시의 시간이 있었지. 부활한 후엔,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어. 잠깐이지만. 그 뿐이야. 그때부터 모험을 떠났어. 사람들을 돕고, 공동의 위협을 물리치고. 그러다가 여관에도 오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난롯불은 두 사람을 따듯하게 덥혀주고 있었다.
“… 난 따듯한게 좋더라고. 무언가 빈 듯한걸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 같았어. 뭔가가 나에게서 비어버린듯한, 뭔가 내가 잃어버린듯한 것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 같아서. 방금,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대략적으로 깨달은 것 같아. 난 살아있던 적이 없으니까. 항상 한구석이 비었던 것 같은거지…”
“그래도, 넌말이야, 대단한것 같아.”
“무슨 뜻이야?”
“너, 사실 그 전까지 볼 때마다 매번 웃고 있었거든. 언제나 쾌활하고, 명랑한 사람. 난 널 그렇게 생각했거든…”
“틀린 말은 아니네. 나, 웃는거 좋아하니까. 얘기하는 것도. 예전에 자랄 때에도 그랬고, 부활한 이후에도 그렇고.”
“그런데 그러면 도적일하기 힘들지 않아? 내 말은, 도적이라면 뭔가, 조용하고, 침착한 느낌이 들거든.”
“모르겠어… 평상시의 나와, 도적으로써의 나는 전혀 다른 것 같아. 크면서, 그 둘이 점점 나눠지는것 같더라고. 떠들다보면 혼났어. 심하게. 그러다보니까 억지로라도 조용해지더라고. 나중에는 무서워서라도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 그러다가 부활하고 나서야 겨우 한두마디 하기 시작했고,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별로 주위 신경 안쓰고 이야기하는거지 뭐.”
“마지막으로, 딱 하나, 더 궁금한게 있는데…”
“뭔데?”
“널 키우던 그 놈, 어떻게 됐어? 같이 크던 놈들은?”
“같이 크던 놈들은 잘 몰라. 키우던 놈은, 부활한 후 얼마 뒤에 보니까, 이미 죽어 있더라고. 누가 죽인 모양이야.”
헬레나는 어느새 기분이 좀 나아진 눈치였다. 그 대신으로, 배가 고픈게 심하게 느껴졌다.
“너 혹시 음식은 못만들어? 배고프다…”
“아무래도 아직 견습이잖아. 그건 못해. 근데 여기 여관이잖아? 먹을건 있긴 할텐데…”
“돈이 없어. 보통 싸우러 가거나 할 땐 집에 놓고 오거든.”
“에… 난 용돈 다 떨어졌는데…”
꼬르륵. 케이엘은 자기도 배가 고프다는걸 느꼈다.
“어떡하냐…”
케이엘의 말이었다. 그 때, 쭉 두 사람의 대화를 말 없이 듣고 있던 라세인이 말을 걸었다.
“케이엘, 헬레나. 혹시 뭐라도 좀 사줄까?”
“아, 고마워, 라세인!”
“라세인 언니, 고마워요!”
둘 다 활짝 웃으며 답했다.
“여기 닭튀김 3인분만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1골드 30실버 되겠습니다!”
라세인은 두 사람 곁에 앉았다. 케이엘이 말을 시작했다.
“라세인, 너 생각보다 잘 싸우더랴고? 지금까지 싸웠던 상대 중에선 제일 셌던거 같아.나도 여기저기 많이 다쳤다니까?”
라세인은 잠시 말이 잆었다. 잠시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평소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칭찬 고마워. 너도 잘 싸우더라고… 난 지금껏 져본적이 없거든. 진건 처음인것 같아.”
문득, 케이엘은 라세인의 달력이 떠올랐다.
“아, 언니, 뭐 하나만, 실례가 안되면, 물어봐도 돼요?”
“뭔데?”
“아까 전에 달력을 봤거든요. 언니 책상에 있는거. 거기에 달 그림을 빼곡하게 그려놨던데, 왜 그런거에요?”
라세인의 얼굴에 약간 당황하는 빛이 떠올랐다.
“아, 그… 그거……”
약간 고민한 후에, 라세인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가끔... 잠깐씩, 이성을 아예 잃어버릴 때가 있어… 특히 두개의 달이 모두 보름달인 날…… 야성이 그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지… 그래서 난 여관에 있는거야. 하스 스톤브류… 여관주인님, 마법 거르고 힘만으로도 그정돈 제압하실 수 있으신 분이니까. 여기가 아니면 난, 어디 숲 속 같은데에 들어가 있어야 해.”
“예?!”
케이엘과 헬레나의 반응은 같았다.
“지금, 하늘을 보면 알겠지만… 두 달이 모두 보름달이야. 아까 전에도, 난 야성이 이끄는 대로 싸웠고. 중간에 의식이 끊기지 않았으면, 지금쯤 말 그대로 날뛰고 있었을 것 같아. 그런 면에선… 고맙습니다. 헬레나씨.”
“높임말 쓰지 말라니까 그래. 참.”
그 때 닭튀김이 나왔다.
“여기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잘먹겠습니다!”
세 명은 먹기 시작했다.
“아, 전 이것만 먹고 가볼께요. 부모님이 기다리시겠어요.”
“그래, 가봐!”
“다음에 봐.”
케이엘은 헬레나가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웃으면서 닭튀김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