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흐봉 마법 학원 마도구 개발 동아리]
<불량아의 거래>
(1)
4월.
보흐봉 마법 학원의 신입생인 비이 제스텔은 학원 뒷산에 혼자 올라가 있었다.
“…….”
비이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거인이 칼을 휘둘러 쪼개 놓은 듯한 절벽이 자기 발 바로 앞에 있었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강철의 전사라 할지라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동안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눈을 감았다.
“기다리게.”
“!?”
비이는 어깨를 움찔 떨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안경을 쓴 키 작은 소녀가 씩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지금 그 절벽에서 몸을 던지려고 하는 건가?”
“…….”
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녀를 쳐다보았다.
“아깝군. 실로 아까워.”
소녀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비이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자네. 이름이 뭐지?”
“…….”
“그렇게 노려보지 말게. 나도 자네와 마찬가지로 보흐봉의 학생이야.”
그런 건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안다.
애초에 이 뒷산 자체가 학원 관계자가 아니면 출입 불가능이다.
비이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실실 웃고 있던 소녀가 가슴을 쭉 펴더니 말했다.
“나는 에이 푸치카. 보흐봉 마법 학원 3학년일세. 자네는?”
“……1학년 비이 제스텔.”
“그렇군. 비이라. 비. 비이. 비이이. 너무 단순해서 다른 단어들과 헷갈리겠군. 혼동을 막기 위해 비비라고 불러도 되겠지?”
비이가 다시 한번 얼굴을 구겼다.
“비비. 방금 하려던 대로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자네의 몸은 완전히 부서지고 뭉개져서 도저히 써먹을 곳이 없는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 거야.”
“그게 어쨌다는 거죠.”
“아까 말하지 않았나. 아깝다고.”
비이가 이를 물었다.
안 그래도 조그마한 게 말투만 할아버지 같아서 짜증이 나는데 말하는 내용은 더욱 신경을 긁었다.
“비비. 나랑 거래 하나 하지 않겠나?”
“…거래라뇨?”
“자네의 몸을 내 실험에 이용하게 해주게. 물론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몸 얘기야.”
“실험이라고요?”
“그래. 내 실험에는 생물체, 그것도 마법사의 신체가 필요하거든.”
“…….”
역시 저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비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체실험.
그것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학원에서 용납할 리가 없었다.
“…그러면 제가 얻는 건요?”
그러나 어째선지 비이는 그렇게 물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기가 왜 저 정신 나간 선배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는 비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처럼 씩 웃으며 말했다.
“마력.”
“!!!”
비이의 눈이 커졌다.
“실험이 성공한다면 자네는 이 학원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마력을 가지게 될 거야. 물론 실패한다면 아무것도 못 얻고 몸만 망가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자네는 죽으려고 했으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자살하려던 상대를 앞에 두었음에도 섬세함은 둘째치고 인간성의 부스러기조차 보이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비이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네요.”
그녀가 에이 앞으로 다가갔다.
“거래 받아들일게요.”
“좋아. 그럼 따라오게.”
에이는 그녀에게 등을 보이더니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비이는 그런 에이를 따라 산을 내려갔다.
“여기는… 쓰지 않는 건물인가요?”
비이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중얼거렸다.
낡고 부서진 자그마한 목조 건물.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칭송받는 본관이나 도서관, 기숙사 등과는 큰 차이가 났다.
“옛날에 쓰였던 구 기숙사라네.”
에이가 허리에 손을 얹고 비이처럼 고개를 든 채 말했다.
“십여 년 전, 기숙사에서 발동된 어둠 속성 마법의 여파로 인해 악령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데다가 저주의 위험이 있어 부술 수도 없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더군.”
비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된다네. 방금 말한 건 애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중 하나일 뿐이니까. 적어도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한 번도 악령을 본 적이 없어.”
에이는 그렇게 말하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
비이는 기분 탓인지 조금 전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목조 건물과 멀어져 가는 에이의 등을 한 번 번갈아보았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에이를 쫓아갔다.
에이가 향한 곳은 1층에 있는 공실이었다.
문 옆에는 창고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판이 비뚤게 걸려 있었다.
에이는 문에 걸린 자물쇠로 손을 가지고 갔다.
그녀가 자물쇠에 검지를 대자 마법진이 떠오르며 찰칵 소리가 났다.
그리고 직후 문이 스스로 열렸다.
“!”
비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 여기가 내 공방이야. 들어오게.”
에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비이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천장에 설치된 등에 불이 들어왔다.
바닥에는 널따란 천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금 그것들은 뭐죠?”
“뭐가 말인가?”
“자물쇠랑 천장의 등 얘기예요. 주문도 없이 자물쇠랑 문이 열리고 불이 붙었잖아요.”
“후훗.”
갑자기 웃음소리를 낸 에이는 가슴을 쭉 펴더니 말했다.
“모두 내가 개발한 마도구라네.”
“마도구라고요?”
비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마력 파장을 읽어서 특정 인물이 만졌을 때만 열리는 자물쇠. 사람이 앞에 있으면 자동으로 열리는 문. 그리고 소리에 반응해서 불을 밝히는 등. 대단하지 않나?”
“…….”
비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무엇이 대단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도구들을 만든 건데요? 전부 마법으로 가능한 일이잖아요.”
잠금 해제 마법.
염력 마법.
불꽃 마법.
그것들은 마법봉을 들고 단어 하나만 내뱉으면 되는 간단한 마법들이었다.
비이는 어렵지도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닌데 굳이 마도구를 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간단하다네.”
에이가 히죽 웃었다.
“내 꿈은 마도구 장인이거든. 여기 있는 것들은 내 시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지.”
“마도구 장인……?”
비이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구겨졌다.
‘그런 일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마도구라는 건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쓰지도 못하면서 마법보다 못한 물건들이잖아.’
“흐음. 왜 그딴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구만.”
비이의 볼이 꿈틀거렸다.
“뭐. 자네에게 이해를 바라고 한 소리는 아니라네. 내가 자네에게 바라는 건 실험에 사용할 육체니까 말이야.”
에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춤에서 막대기를 꺼냈다.
그건 팔꿈치부터 손끝까지 길이 정도의 작은 마법봉이었다.
“입은 문. 맹세는 열쇠. 걸어 잠근 열쇠 구멍은 영혼으로 막히리.”
그녀가 주문을 외우자 바닥에 빛나는 원이 나타났다.
“이건 무슨 마법이죠?”
비이가 물었다.
“금언 계약의 주문이라네.”
에이가 원 위로 올라섰다.
“서로 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마법이지. 특정 내용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마력이 그 말을 막게 된다네.”
“선배와의 거래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군요.”
“그래.”
에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이를 바라보았다.
“자, 이리로 오게.”
비이는 바닥의 잡동사니와 에이를 쳐다보다가 원 위로 올라섰다.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하게나.”
에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에이 푸치카는 비이 제스텔과의 거래 내용에 대해 이 원 밖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을 영혼에 걸고 맹세한다.”
직후, 그녀의 시선이 비이를 향했다.
비이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말했다.
“…나, 비이 제스텔은 에이 푸치카와의 거래 내용에 대해 이 원 밖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을 영혼에 걸고 맹세한다.”
다음 순간.
원에서 나오던 빛이 더욱 강해지더니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순간에 빛이 사라졌다.
“이걸로 됐네. 그럼 당장 실험을 시작하지.”
에이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하고는 한쪽에 있던 의자를 마법봉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의자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에이 앞으로 날아와 사뿐히 착지했다.
“자, 앉게.”
비이는 의자가 의외로 깨끗하다고 생각하면서 시키는 대로 그 위에 앉았다.
“오늘은 일단 자네의 마력 보유량과 속성 자질 등 기본적인 정보들을 조사할 거야. 그리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갈 거라네.”
에이는 마법봉을 들더니 아까와는 다른 주문을 외웠다.
“걸어라. 뛰어라. 멈추어라. 그대에게 깃든 우주의 본질을 보여라.”
그러자 비이가 앉은 의자 주위로 빛의 문자들이 떠올랐다.
“아윽…….”
비이가 입술을 깨물며 몸을 흠칫 떨었다.
간지럽기도 하고 따끔하기도 한 감각이 그녀의 전신을 자극했다.
에이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고 비이는 사라지지 않는 기묘한 감촉에 불편함을 느꼈다.
잠시 후.
빛의 문자들이 한곳으로 모여서 문장을 이루었다.
“어디….”
에이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에이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흐음. 그렇군.”
문장을 바라보던 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의 양이 매우 적어. 가지고 있는 원소 자질도 바람 하나뿐이고. 이것 참……. 후훗.”
에이가 웃음을 흘리자 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것 봐.’
‘헐. 진짜?’
‘풉!’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학원에 입학하던 날의 기억이 비이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 아주 좋아. 자네는 실험 대상으로 아주 적격이야.”
“네?”
비이는 눈을 떴다.
에이가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에이는 정말로 기분이 좋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변수는 적고 대조도 쉬워. 이거 자네를 데리고 오길 잘했군. 하하핫. 아, 이제 일어나도 된다네.”
비이는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내일부터 수업이 끝나면 이곳에서 마력을 늘리기 위한 실험을 할 거야.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반드시 자네 교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게. 알았나?”
“네….”
“좋아. 그럼 잘 가고 내일 보지.”
에이는 그렇게 말하고 천 위에 털퍼덕 앉았다.
그리고는 마법봉을 휘두르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을 자기 앞으로 소환했다.
비이는 이미 자신이 떠난 것처럼 행동하는 에이를 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공방(?)을 나왔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문이 저절로 닫혔다.
비이는 멍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어딘지 힘이 빠진 발걸음으로 허름한 건물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갔다.
***
다음날.
수업이 모두 끝난 뒤 교실에 있던 보흐봉 마법 학원의 1학년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었다.
어떤 아이들은 학원에서 가까운 마을로 놀러 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어떤 아이들은 오늘 배운 마법의 복습을 위해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런 가운데 비이는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시선을 책상 위로 고정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채 숨기지 못한 불안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야, 제스텔.”
옆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비이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녀가 시선을 돌리자 한 무리의 동급생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히죽거리며 걸어오는, 남녀가 섞인 무리를 보는 비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아직 여기 있냐? 수업 끝나면 맨날 토끼처럼 도망갔으면서.”
“이제 포기했어?”
비이는 고개를 돌리고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야. 무시하냐?”
남자애 하나가 비이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손가락이 그녀의 피부를 짓누르던 그때―
“비이 제스텔!”
커다랗고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실 안에 남아 있던 애들의 시선이 모조리 문 쪽으로 향했다.
똑같이 그곳을 쳐다보았던 비이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어서 나오게.”
에이가 히죽거리는 얼굴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