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됬다."
안도의 한숨을 뱉는 키스였다. 휴우-한 뒤 벽에 등을 기대면서. 바닥에는 빈 포션 병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미약하게 남아있는 붉은색 액체가 담긴 병이.
"상태는 어때 성운아? 아프거나 그런거 없어?"
"쓰라림이 남았지만, 견딜 만 해."
베어진 상처에서 나온 피는, 하얀색을 검붉은색으로 물들이게 했다. 쓰라림이 감돌고 있었지만, 적어도 맨팔보다는 낫네.
"그것을 떠나서, 포션이 왜 이리 쓰라린 거야? 어째 치료할 때가 더 아파."
"쓴 약일수록 몸에 좋은거랍니다아-"
그 말은 이때 쓰는 게 아닌 거 같지만. 쉐라가 손을 치료했을 때, 왜 비명을 질렀는지 알수 있었다. 보통 아픈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조차 비명을 지를뻔 했는데.
"약의 효능을 이 아름다운 미소녀 연금술시가 직접 맛보아서, 부작용 같은 것은 걱정이 없다고요."
쏙 내민 자신의 혀를 검지로 가리켰다.
"나 이래 봬도 미각 좋거든. 히힛-"
저 쓴 약을 키스가 직접 맛보고 그랬다는 건가. 벌컥-벌컥-콜라 마시듯. 우왕-포션 마시져 라면서. 냅킨으로 입을 쓱 닦으면서.
에이 아니겠지. 그냥 작은 스푼 하나로 혀를 젖힌거겠지.
"...팔."
갸날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려보니, 갈색 단발머리로 표정을 가리려는 듯 고개를 숙인 쉐라가 보였다.
"... 은 어때? 안 아파?"
"괜찮아 쉐라. 긁힌걸로 끝났으니까."
피로 물들여진 붕대로 감싸진 한 팔을 든 뒤, 주먹을 폈다 접었다 하였다. 미소를 지으면서.
"봐봐 아무렇지도 않지? 너무 걱정마 쉐라."
"다음부터 그러지 마."
한손으로 눈 부분을 쓱 닦은 쉐라의 모습에, 키스가 호오-하면서 미소를 지은 체 기어오면서 다가왔다.
"나... 놀랬으니까. 큰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고."
"너 혹시 울고 있는 거야? 쓰으윽-하고 닦는 모습을 보니."
"울고 있는 게 아니거든!?"
한손에 몽둥이를 든 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쉐라였다. 화가나서 그대로 때릴 거 같은 분위기와 함께. 덕분에 겁먹은 키스는 덤.
"얼른 가자고.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에."
쉐라는 그대로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나하고 키스 그리고 블레이즈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번 건 내가 잘못한 거야?"
"변호 불가다 키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장난은..."
"캬악-"
"하지만...
블레이즈 마저 이번에는 편들어 줄 수 없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항상 강아지처럼 따르는 꼬마용도, 자기 주인의 잘못은 커버 하지 않나 보네.
"난 눈물 닦으라고 수건 주려 했다고."
키스의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져 있었다. 자신의 머리색처럼, 분홍색 꽃이 그려진 하얀색의 손수건이.
앞에서 걷던 쉐라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땅 밑을 바라보았다.
"변ㅌ...성운아, 토끼 고기 요리 해본 적 있어?"
"그건 왜?"
허리를 구부린 뒤, 땅에 있던 무언가를 양손으로 들었다. 뿔이 달린 토끼를. 두 마리나.
축 내려간 양손과 다리, 그리고 180도 꺾여진 목은 이미 생명의 불이 날아간 지 오래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다른 손에 들린 토끼는 더 한 상태였다.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먹다 말았는지 살점을 파헤쳐 먹은 흔적이 등에 남아있었다.
"아까 그 고양이가 버리고 갔나 봐. 먹을 수 있을까 해서."
"토끼라..."
소나 돼지고기는 많이 조리해 보았지만 토끼 고기는, 특히 아직 해체 되지 않은 생토끼를 조리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전에 생닭의 털 뽑기조차도 안 해보았는데.
"이상하다."
옆에서 키스가 검지로 볼을 두들기면서, 쉐라의 손에 든 토끼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블레이즈도 언제 왔는지, 키스의 어깨 위에 편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자기가 사냥한 먹이를 왜 버린 거지? 한참 동안 우리를 공격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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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 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안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다는 듯, 먼지로 뒤덮인 무기들이 전시 되어있었다. 검, 창, 활과 화살등을 시작해서, 갑옷 역시 전시대에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찾았어 블레이즈-여기가 딱 맞네-"
"캬아아악-"
으이구 우리 귀염둥이-라면서 작은 꼬마용의 볼에 입을 맞추는 키스였다 블레이즈도 좋다는 듯 미약한 울음을 내뱉었다.
"이런 곳에 무기 창고가 있었다니."
쉐라는 식탁으로 보이는 테이블 위에 토끼를 대충 휙 던져 놓은 뒤, 벽에 걸어진 검 앞에 다가갔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있으면 좋았-"
"손대지 마!"
자기 손을 잡은 키스의 행동에, 쉐라가 표정으로 어? 라고 말하였다.
"나하고 블레이즈가 먼저 확인 할게. 혹시 이상한 마법이 걸려있거나, 무기 모습으로 의태 한 몬스터 일수도 있으니까."
쉐라의 양 눈이 크게 떠졌다. 키스하고 무기들을 번갈아 가보면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 의태 몬스터에게 한번 크게 당했으니까. 분숫대로 의태하 몬스터에 의해서 말이다.
"사소한 질문이겠지만, 무기들로 어떻게 의태 해? 몸 전체가 검이나 창처럼 생겼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자기 몸에 있는 무늬나 색 그리고 변형을 통해서 원하는 사물로 변하거나 둔갑하거든."
키스가 핑거리스 장갑을 낀 한 손에 푸른빛으로 테이블 그리고 전시대에 있는 무기들을 비추는 와중에 블레이즈 역시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주변을 흩어보고 있었다.
"몬스터란것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야. 무엇이 모험가들을 방심시키는지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지능적인 개체들도 존재하는데."
"캬악-"
"그래서 내가 블레이즈를 데려가는 이유 중 하나야. 몬스터들을 감지 하는데는 블레이즈가 선수거든."
입에서 미약한 불을 뿜는 레드 드래곤이 보였다. 팔짱까지 낀 체. 생각해 보니 분숫대가 몬스터라는것을 먼저 알아낸 게 블레이즈였다. 그때 키스 말대로, 꼬마용이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꼬치구이 해줘야겠네. 지난번 구워주었을때, 엄청 맛있게 먹었던데.
"여기 원래 병사들이 머무는 곳이었나?"
주변을 둘러보는 쉐라였다. 먼지로 뒤덥여진 무기들과 갑옷, 그리고 한쪽 구석에 세워진 과녁판과 훈련용 더미(Training Dummy)가 세워진 방을.
"먼지까지 쌓여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치 되어있었다는 거야. 과녁판도 있는 것을 보면 무기 창고 겸 훈련소로도 쓰인 거 같고."
"생각난 건데 너하고 만나기 전, 갑옷을 입은 백골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등 뒤에 매고 있던 활을 꺼내, 쉐라에게 보여주었다.
"손 아래에 이것을 꼭 쥐고 있었더라고. 곁에 활이 담긴 활 통도 포함해서 말이야."
"잠깐 보여줘 봐."
쉐라가 손을 뻗자, 그대로 활을 건네주었다. 살짝 흝어 본 뒤, 중간에 활시위를 기타 치듯 손가락으로 튕기기도 하였다.
"이거 병사들에게 보급되었던 활이네."
"어떻게 알아?
"특유의 밝은 갈색으로 보아 단풍 나무로 만들어진 활이야. 숲으로 가면 금방 볼수 있는거. 양산하기 좋게 심플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어. 활에 아예 도가 트거나 지휘관급이 아닌 이상, 병사들에게는 거창한 것까지는 필요 없으니까."
"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네? 평소에 활 좀 쏴봤어?"
"별로. 활보다는, 검 같은 근접전 무기를 선호해 나는."
손에 든 활을 미약하게 흔들리자, 활의 양쪽 날개 부분들이 물결처럼 휘청거렸다.
"내가 속했던 부대에서도 보급되었던 무기들이다 보니, 금방 눈에 보이더라고. 나뿐만 아니라, 언니들을 비롯해 내 동료들도 사용했고."
보급 무기 그리고 부대라고 한 것을 보면, 얘 혹시 전장에도 나간 건가? 근접전이 특기(그리고 아까 살쾡이에게 몽둥이 휘두른것을 보면)라고 하는거 보면 전사 체질일테고.
"얘들아! 이것 좀 들어줘!"
"캬악-"
키스는 바닥에 놓인 나무 상자를 들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검하고 방패 그리고 도끼가 들린 상자를. 나하고 쉐라가 같이 들어줘서, 간신히 테이블 위에다 놓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무겁네. 어째 책 여러 개 드는 거 보다 더해."
"그러다 팔 나간다 자칭 미소녀 연금술사씨? 이런것들 생각보다 무게가 나간다고."
"몇 개 정도는 박스로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검 하나는 한손으로 들 수 있어서."
"사용해도 되는 무기들이야 키스? 이렇게 박스 넣고 온 것을 보면 말이야."
"응! 주변의 무기나 갑옷들도 다 안전해."
어깨에 앉은 블레이즈를 쓰다듬어 주는 키스였다. 저 강아지나 다름 없는 아기용은 기분 좋은 듯 크르릉-하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거주지로 정할 방도 찾았겠다, 사용할 무기들을 손에 넣었겠다. 우리 블레이즈가 참 큰일을 해냈어. 일석이조랄까."
"캬악-"
"신경 쓰였는데, 왜 이리 방을 찾으려고 한 거야? 어제 하고 그저께 복도 한복판에서 야영했잖아."
"안전성 문제."
키스는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더니,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삐뚤어진 글씨체와 함께.
키스가 그린 지도. 귀여워 보일고 꺅-은 써놓았네.
"우리가 야영했던 곳은 이렇게 양옆으로 복도가 뚫려 있어서,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거든. 몬스터 방지 마법을 걸어놓아도 100% 안전하다고 할 수 없고. 하지만..."
새로운 종이를 꺼낸 뒤, 또 무언가를 열심히 그려갔다. 완성된건 역시 대충 그린 지도.
"여기는 나가고 들어가는 곳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방어 면으로는 이쪽이 더 안전하지. 한쪽만 신경 쓰면 되니까."
"그만큼 여유가 생겨서 방어전 준비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거네."
"맞았습니다 쉐라 학생! 10점을 드리겠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영국에 있는 마법 학교를 주제로 한, 소설에 나올 법한 대사를 하는 키스였다. 얘가 다녔던 아카데미에도 이런 식으로 점수 주는 제도가 있나. 현재 상황에 너무 만족스러운지, 키스는 한손 검 하나를 허공에다 휘둘렀다. 얍얍 하면서.
"그렇게 되면 여기는 참 좋은 방이야. 이렇게 무기들도 주고 말이야. 누가 선물해 준 건가 생각될 정도라고."
"그런 식으로 검을 다루면 퍽이나 몬스터 잘 잡겠다. 선물 받은 거면 제대로 다뤄야지."
쉐라 역시 박스에 담긴 검 하나를 손에 쥐었다. 양손으로 쥐면서, 오른발을 앞으로 왼발을 뒤로 두면서.
"먼저 왼손으로 검 부위 끝자락을 쥐고, 오른손을 크로스 가드 바로 아래쪽을 잡아. 이것은 검을, 특히 롱소드 같은 양손잡이 무기를 잡을 때의 기본자세니까. 그래야지-"
쉐라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은빛의 호를 그리며, 공기를 가르는 그녀의 모습에 키스와 나는 감탄을 자아냈다. 블레이즈도 "오호?" 라는 소리를 감추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휘두르는 것이 가능하니까. 그러면 어떤 상황 에..서..도..."
툭-
무릎을 끓어버린 쉐라였다. 양손에 든 검이 양손에서 떨어지면서.
"허억...허억..."
거친 숨소리와 함께 땀이 비 쏟아지듯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나하고 키스는 그녀를 부추겨 벽에 기대게 했다.
"내가 이렇게 약했나?"
몸 전체가 뜨거웠다. 손으로 전달되는 맥박도 은근히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도 손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주먹을 폈다 접은 뒤, 쉐라는 말을 이어갔다.
"아까 살쾡이랑 싸웠을 때도 고작 몽둥이 휘두른 거 뿐인데 금세 숨이 찼어. 그것도 모자라 눈앞에 있었는데도 놓쳐버리고..."
"아직 석화에서 풀려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거야. 몸을 움직여서 몸을 적응해야되."
"그건 알지만...덕분에 성운이가 다치고 말았잖아. 나를 지켜주느라."
"팔은 걱정하지 마. 제때 치료했으니 금방 나아질 거니까.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매우 감사히 여기고 있어 나는."
"맞아-맞아-우리 쉐라에게 얼굴 흉터 난 것보다 낫잖아? 소녀는 얼굴이 생명이라고-"
"하여간..."
빈말이 아니라, 이 정도로 끝난 것은 매우 다행이었다. 팔로 막지 않았다면, 쉐라의 얼굴이 할퀴어져 눈까지 파헤쳐질 수도 있었을테니까. 한쪽 아니 양쪽 눈 둘 다 실명이 되어서 어둠 속에 평생 갇히게 될지 누가 알아.
"방도 찾았으니 슬슬 뭐좀 먹을까 그럼? 쉐라 너도 기운 좀 낼겸 말이야."
내가 한 말에 두 소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사탕 달라고 조르는 유치원생 분위기로.
"밥 좋지-성운이 네가 해준 밥이라면-"
"어제 먹은 그 국밥 한 번 더 해줄 수 있어? 그거 정말 맛있었는데."
"국밥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맛있는거 해주려고."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경련 조차 일으키지 않는 토끼 두마리를.
"토끼 구이 해줄까 해서. 기운 낼때는 구운 고기 만큼 좋은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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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요새 더워지다 시원해지기를 반복하네요. 더위 먹지 마시길.
p.s 글에 올려진 그림은, 그림판으로 그린것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