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그때 내가 평소처럼. 경호와 헤어져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면.
아마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거라고.
미소녀로 가자!! - 유린씨 이야기
~ 장난감
3월 29일.
난 평소에 내 돈으로 간식 거리를 사먹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집이 유복한편도 아니고, 엄마도 계시지 않으니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학교 앞에서 파는 100원짜리 과자나, 매점에서 간단하게 사먹는 것 외에는 무언가를 돈을 내고 사먹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단지, 토스트를 너무 먹고 싶었다.
살다보면 갑자기 무언가를 엄청나게 먹고 싶어져서 머릿속에 아른 거릴때가 있는데, 그게 지금인 것 같다.
나는 경호와 헤어진 후 도로변에 있는 분식집으로 향했다.
같이 갈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놈은 '드림 캐스트'를 사야 한다면서 필요없는 것엔 절대 돈을 쓰지 않으니, 같이 먹을 리가 없다.
주변에 전문 토스트집도 있긴 하지만, 그 분식집 토스트는 유명 체인점 토스트 가게보다 낫다.
무언가 특별한 소스를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맛인데다가 1000원밖에 하질 않는다.
걸어서 10여분정도 걸리는 거리기 때문에, 서둘러서 가봤자 힘만 더 들 뿐이므로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진수야."
별 생각없이 걷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쪽을 돌아보았다.
내 이름을 부른 건 아니지만…가까이에서 자신을 향해 목소리를 내면 사람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는 습성이 있나 보다.
돌아본 상대는, 역시 전혀 모르는 굉장히 예쁜 여자였다.
옷 차림으로 보아 나이도 최소 20대로 보였다. 연예인 급은 아니었지만, 미나씨나 예진이보다 한 단계 높은 것 같은 레벨이었다.
막상 나를 부른 것도 아닌데 뒤돌아 보니, 뭔가 스스로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 원래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아?"
그 때 옷 소매를 잡혀, 또 다시 반사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아까 그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나한테 반한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그땐 떠오르지 않았다.
"무, 무슨 일이죠?"
"진수…."
"예?"
"아니…네. 죄송해요."
여자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은채로 내 소매를 놓고 가버렸다.
…뭐지. 이 상황은?
아무튼 나는 곧 잊어버리고 토스트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토스트가 너무 맛있어서 완전하게 잊어버렸다.
3월 30일.
이것은. 위험하다.
용돈은 이제 적신호인데…이미 난 중독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제에 이어서 또 다시 1000원의 행복을 위해 분식집으로 가고 있었다.
돈도 없으면서 '이왕 이렇게 된것, 500원 더 보태서 '핫 소스 토스트' 를 먹어볼까?'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건 순전히 토스트가 너무 맛있다는게 문제다.
"앗."
토스트만 떠올리며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걷던 나를, 어떤 여자가 갑자기 가로 막아서 깜짝 놀라 급하게 멈춰섰다.
이런 예쁜 여자를 내가 알고 있을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했다. 어제도 그렇고, 갑자기 왜….
그냥 지나쳐야 하나, 아니면 잠깐 기다려야 하나…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마치 나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어제 그 남자?"
"?"
"어젠 미안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제라니? 혹시, 어제 그 여자가 이 여자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뇨. 괜찮아요."
그 여자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맞다고 해도 별로 미안하다고 할 일도 아닌 것 같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찮다고 말하는게 예의라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제가 좋아했던 남자애랑 많이 닮아서…."
그녀는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얘기를 꺼냈다.
보통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그런 사적인 얘기는 안 하지 않나….
혹시, 나 지금 작업 당하고 있는 건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생긴것도 아니고.
"예에."
나는 대답할 말도 없어서 그냥 애매하게 말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굉장히 뻘쭘하다.
"서유린, 이에요."
"네?"
"제 이름."
그녀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자기 이름을 밝힌다.
그냥 네. 그렇군요. 라고 말하는 것도 뭔가 이상해서, 할 수 없이 나도 내 이름을 말한다.
"저는 이태진이에요."
드라마도 아닌데, 이런 만남 같지도 않은 만남에서 이런 얘기나 나누고 있자니…무슨 소개팅 나온 것도 아니고. 너무 어색했다.
"태진, 이군요."
"예에."
"저기…."
그 여자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듯 머뭇거린다.
아, 어색해. 그런데 왜 자꾸 말을 거는 거야. 이젠 토스트고 뭐고 그런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차라리 예쁘지 않으면 덜 긴장 될텐데.
이번엔 어제같은 정장 차림이 아닌 사복이었다. 긴 치마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 완전히 청순 가련 스타일의 연상의 미인이다.
연상의 여자라곤 학교 선생님밖에 모르는 내게 있어선 더욱 더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차라도 한 잔 하지 않을래요?"
"…."
대체 뭐가 인연이라는 거죠? 만난지 얼마 된 것도 아니고, 별로 대단한 만남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상대쪽에서 말을 붙여오는것 뿐이다.
솔직히 어색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던 밥을 먹던 할 말도 없을테니….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예쁜 여잔데'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좋아했던 예쁜 연예인이라고 해도, 막상 1:1로 만나서 식사할 기회가 생기면 도망치고 싶은게 보통이다.
하지만, 무조건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내 용돈으론 엄두가 안 나는 카페라는 곳에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어떤거 마실래? 시원한게 좋을까? 여기 키위에이드가 괜찮은데. 아. 파르페 같은것도 좋구."
어느샌가 그녀는 내게 말을 놓고 있었다.
물론 그녀쪽이 연상이긴 하지만, 알게된지 하루. 그것도 제대로 된 만남도 아닌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빠른 전개이다.
하긴, 지금은 그런 것보다 메뉴를 결정해야 했다.
메뉴판에는 수 많은 종류의 음료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점원이 바로 옆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결정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래서 테이크 아웃점을 좋아한다. 무언의 압박이란것이 너무 싫다.
"…파르페로 할게요."
사실 난 태어나서 파르페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눈에 띄는 메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메뉴를 골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것들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었다. 첫 만남인데 너무 부담을 주는 것 아닌가?
아니,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돈을 내야 할 수도 있잖아? 큰일이다. 전 재산 만원인데.
"그래? 여긴 파르페 트윈 사이즈가 있거든. 그거 하나로 같이 먹자."
그녀는 그렇게 주문을 해버린다.
대체, 붙임성이 너무 좋은건지 아니면 뭔가 목적이 있는건지.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가 되진 않았다.
"몇 살이야?"
"18. 고 2에요."
"좋을때네…. 후후."
별로 좋진 않은데….
"난 몇 살로 보이니?"
"그, 글쎄요? 20? 21?"
"틀렸어. 이래뵈도 24이나 된다구."
그녀는 자랑스럽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다지 동안이라고 생각한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제의 정장 차림을 생각하면 25살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25살. 이라고 말하면 무례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슨 일 하고 있는데요?"
"그냥…. 조그만 회사 다녀."
"어떤 회산데요?"
"음. 그건 비-밀."
나는 놀라고 있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돼서.
여자한테 익숙한 편이 아니라서, 같은 반이 된 여자하고도 쉽게 대화가 되지 않는 내가,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대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느 학교 다니니?"
"기리 고등학교요. OO시장 쪽에 있는."
"그래? 거기 내 친구 다녔었는데. 거기 좀 언덕 아니니?"
"네. 와본적 있으세요?"
"아니. 근데, 걔가 몇 번 그랬거든. 학교 가는게 등산이라고."
"그 정도는 아닌데…. 아, 거기로 가는 길 중에서 좀 가파른 곳이 있긴 해요. 거기로 다니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 주문한 파르페가 나와서 일단 대화가 멈췄다.
아니, 파르페란게 음료도 아니면서 이렇게 빨리 나올수가 있긴 하나? 손님도 별로 없긴 하지만…. 너무 대충 만드는건 아닌지.
"태진이는 꿈이 뭐야?"
난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러므로 꿈 같은 거창한 것이 있을리 없었다.
"그…일단 대학에 가서 결정할 생각이에요."
물론 지금 성적으론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가 않지만, 누구라도 그런 건 말하지 않는다.
"그래. 천천히 결정해 봐. 고등학교 2학년은 제일 꿈이 많을 시기거든."
"네."
"나도 그 시절에 더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을지도 몰라."
"…예에."
무언가 거북한 주제.
일단 파르페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보는 파르페라는건 정말…최고였다. 내가 상상만 해오던 딱 그 맛이었다.
이젠 토스트 같은건 완전히 잊어버렸다.
"혹시, 누나 있어?"
"아니오. 동생만 한 명 있어요."
"그래? 누나가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 한 적 없니?"
"벼, 별로 그럭적은…."
"그래? 동생이 잘 해주나 보네?"
대체 거기서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올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동생이 잘 해주지 않으면,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혜미가 내게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녀가 이어서 한 말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같은건 싹 잊게 만들어주었다.
"내가…태진이의 누나 하면 안 될까?"
"네에?"
갑작스러운 그녀의 어처구니 없는 제안에 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난 꼭 태진이가 동생같이 느껴져."
"…."
"안 될까?"
동생같이 느껴진다고 말해도…어제 처음 봤을 뿐인 사이고, 지금까지 만난 시간을 토탈해도 3시간 남짓인데. 너무 빠른거 아닌가?
아니면, 정말로 경호 효과라는게 존재하는건가?
"저, 저는 상관없어요."
그렇다해도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이런 예쁜 누나를 거절 하기도 어려웠다.
솔직히, 그때만해도…그냥 이름뿐인 의남매고, 가끔 연락이나 하는 사이? 그 정도 관계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누나라고 불러봐."
그녀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난 단지 놀림받는 것 뿐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의 마음에 들어버린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누, 누나."
그 말을 하는 것도 왜 그리 어색한지. 내가 태어나서 누나라는 호칭을 말해본 건 손으로 샐 수 있을 정도다.
사촌 누나도 있지만, 나이 차이가 꽤 있어서 제대로 부를 일도 거의 없고….
"아유, 잘했어요."
그녀는 함박 웃으며 내 머리를 힘껏 껴안았다. 여기에 사람들이 있다는건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가슴에 닿아버린다구요.
"앞으로 친 누나처럼 여겨줘. 태진아."
"예…."
"아니. 아니. 누나한테 존댓말쓰는 동생이 어딨어? 말 놓아."
아무래도 난 그녀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리는 것 같다.
하지만…싫진 않았다. 포근한 기분. 이게 연상의 매력이란 거구나.
그에 비해 연하의 혜미는…완전히 어린애다.
"으, 응. 알았어."
"그래. 그래. 아, 파르페 녹겠다. 빨리 먹자."
난 여전히 어리벙벙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으나, 솔직히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잘 될리가 없는데…이렇게 예쁜 누님이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건지.
그렇다고 내가 무슨 부잣집 도련님도 아니고, 뭐가 있는것도 아니니까 꽃뱀일리도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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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재미있지만 학교에서 읽기에는 민망한 제목이네요 ㅠ.ㅠ
해결책을 제시해드리겠습니다. => 집에 오신후 마음 편하게 읽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