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전환용 가정기도서
―B. 브레히트 풍으로
날이 흐리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창문을 닫아라
세상을 끄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틀어라
그대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가끔은 라디오에
서도 흘러나온다
여전히 날이 흐리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작은 플라
스틱 욕조에 몸을 담그고 담배라도 한 대 피워라
아,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대는 오전 열한 시의 일터에서 욕조에 들어갈 수도
없고, 아예 담배를 끊었거나 아니면 아직 담배를 끊지 못
한 우유부단한 성품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그리고 오전 열한 시의 일터에서는 담배를 맘대로 필
수 없다는 상황을
뭐, 그렇더라도 내면의 욕조에 들어 앉아 있다고 생각
하라
욕조에 앉아, 세상을 향한 욕지거리와 조롱을 맘껏 내
뱉어라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욕조의 물은 식고 더러워질 것이다
배가 고파질 것이다, 그러면 추리닝 하나 걸쳐 입고 저
기 전라도 황등 정도에 가서 홍어탕 하나를 맛있게 잡수
시라
인민의 저의가 누락된 곳에
인민의 사랑은 없다
온갖 잉여 인간들이 무수한 잉여와 무력을 생산하는
잉여 인민 무력 공화국에서 더 이상 세상을 향한 사랑
같은 건 없다
오전 열한 시의 일터와 욕조와 담배 연기는 조만간 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인민의 사랑이 결여된 곳에 더 이상의 시는 없다
간혹 이곳에도 바람이 분다
그것이 슬픈 그대를 위한 유일한 기분전환용 가정기도
서일 뿐이다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 달아실시선 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