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처음으로 올려쳐준 애들이 누군지 암?
만선사관,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키치임
인조만 까면 모르겠지만 인조를 까는걸 덤으로 이후까지 까내리는것도 그렇고
흐름이 그냥 조선 후기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간간히 보이고
청이나 일본 시점으로 보는 그런 사관의 영향이 남은게 아닌가 싶기도 함
인조가 능양군 소리 들을 정도로 모든걸 다 조졌냐 하면
전쟁 빼고 보면 그렇게까지 못했으면 조선 후기가 성립 됐겠냐는 의문이 남음
효종이 얼마나 하드 케리해야 광해 둘을 겪은 상황을 극복 했을까?
답은 인조는 광해 수준까진 아니어야 맞다임
애초 인조대 되서야 산당이었나? 산으로 들어간 선비들이 다시 정치로 나서기 시작하고
대동법조차 그걸 제대로 시행하자 밀어붙인 김육도 인조 반정 이후에 들어와서 실시한 인물임
인조 개인은 무능하지 않냐 하지만 왕 개인의 유능 무능이 어떻든 그 치세에 왕이 방해만 안해도 되는거고
김육같은 인재가 들어오고 이후대에도 남아서 조선의 후기 전성기를 이끌 정도면 인조의 정치 치세가 광해만큼 개판도 아니었고
효종이 정리해서 이후로도 이끌만한 기틀은 되었단 이야기지
국까들 보면 세종 이후 제대로 된 왕이 없었느니 뭐니 하는 수준의 이야기 하는데
그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전쟁 두가지만을 가지고 그냥 그 뒤의 노력이나 치세를 까내리는데 써먹는 기분도 듬
덤으로 하필이면 그 일제 식민 사학자가 올려쳐준 광해는 올려쳐주는것도 뭔가 기분이 나쁜부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