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레오르-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샤드칸 일족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확한 정보가 들려 온지 벌써 몇 달이 지났건만 어째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겁니까?”
“의장님. 국왕폐하께 속히 결단을 내리시도록 간청해 주십시오.”
길게 늘어진 원탁에 백발이 성성한 원로원의 대신들이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원로원의 대신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젊은 사내의 그것과 같은 탄탄한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각기 하나씩의 검을 두른 채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여느 왕국과는 이질적인 풍경이었으나 그것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그들만의 것이었다.
“잠시 진정들 하시오. 이것이 국왕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오. 이미 국정의 흔들림은 시작된지 오래 되었건만 그 대를 이어갈 진정한 용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소. 국왕이 늙은 호랑이이든 이빨빠진 구렁이이든 간에 그가 필레오르의 용자로써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오. 이 부분에 대해 이의 있소?“
“흠...”
중앙석에 위치한 의장의 말에 노발대발하던 대신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의장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안고는 있었으나 그의 심지는 공사의 구분에 정확했기에 이런 말이 가능했다.
필레오르의 왕권은 세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대를 거쳐서든 원로원과 국왕으로부터 진정히 인정받은 용자로써의 자격을 갖춘 자만이 전대의 국왕으로부터 왕권을 물려받는다. 이미 수백년간 이어져 온 왕권의 흐름이었고 그에 대해 원로원도 반발할 수 없음에 왕권을 물려받은 자가 어찌되었든 간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또한 지금의 대에 이르러 다음 대를 이어갈 용자가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 대의 국왕의 심지가 흐려진지 오래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용자의 신체를 가졌으되 소인배의 두뇌를 가진 것이 문제가 되어 이미 지금으로써는 원로원이 필레오르 왕국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실정이었다.
“이번에 샤드칸 일족이 전쟁을 시작하면 필레오르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그 전에 왕권을 교체하고 국력을 강화시키지 않으면 무고한 국민들마저 피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크크크.. 뭐 어찌되었건 국왕인데 벽에 똥칠하는 그 순간까지 봉양해야 정상인게 아니었소?용자 탄생이라고 박수치며 맞이할 땐 언제고 이제야 노발대발 의견이 분분한 게요?“
분위기를 압도하는 비아냥이 들려온 건 원탁의 끝자리에 앉아 처음부터 원로원의 회의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우던 펠릭 원로에게서였다.
“이보시오 펠릭 원로!. 그대는 필레오르가 어찌 되건 상관없다는 거요?”
“오오~ 오해하지 마시오. 필레오르는 나의 소중한 터전이오. 허나 그 터전의 주인이 유희를 즐기겠다 하면 나역시 즐기겠다는 것이오. 그럼 이만. 너무 열내서들 논의하지 마시오. 그래봐야 답은 그에게서만 나오는 것이니.. 크크크“
펠릭 원로는 한껏 회의의 분위기를 흐려놓고는 비아냥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렸다.
“의장님.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것이 명백한 이 시점에 그를 의심해보는 것이 어떨지요?”
“물증이 없소. 또한 그가 필레오르에 뼈를 묻고 있는 일족의 원로이니 누구도 섣불리 그를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오. 지레짐작에 그를 건드렸다간 샤드칸 일족과 전쟁을 치르기 전에 내부가 먼저 붕괴될 수 있소. 잠자코 있으시오.”
말 그대로 펠릭 원로는 필레오르에서 날고 긴다는 명문 일족의 수장과 직계로 연결된 위치에 있었고, 애시당초 필레오르 왕국이 여러 일족들의 힘으로 일구어진 만큼 힘있는 일족의 한마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지 않는 에매랄드를 둘러 싼 분쟁은 벌써 천년의 세월을 다해 가건만 아직도 이 불타오르는 사막은 어느 누구의 것으로도 정점을 뺏기지 않고 있었다.
와글와글~
으레 그렇듯 국가의 살림을 보여주는 것은 그 국가의 시장을 보기 마련이다. 대륙의 남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지지 않는 에매랄드의 왕국인 필레오르는 사막 도시인만큼 그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각지에서 모여든 진귀한 물품들로 시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그 틈에 삐쭉 솟아나온 태도를 장비한 아이브 역시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 세상에 저런 것도 있었나?”
연신 눈을 휘휘 돌려가며 듣도 보도 못한 과일이며 생선들이며 갖가지 무기나 방어구, 장신구 등등 새로운 세상에 대한 탐구는 밑도 끝도 없이 아이브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허기가 슬슬 밀려오고 있었지만 수중에 가진 돈은 다분히 아껴써야 할 정도만을 준비해 온 터라 허기에 이끌려 덥썩 아무 음식의 값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아이브는 시장 구경에 더 치중을 두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무구점이었다.
여느 상점이나 그렇듯 외부에 진열된 물품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것들로 이루어져 지출을 유혹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아이브는 외부에선 단지 구경만을 즐기고 있었고 잘 보이지 않는 내부 물품들에 대해선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아이구 이런이런 멋들어진 태도를 장비하신 헌터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델 다 들러주시고~안으로 어서 들어오세요. 더 좋은 무구들이 널렸어요. 여긴 필레오르에서도 알아주게 싸고 좋은 물건들이 많아요.“
“아.. 아뇨.. 전 사러 온 게 아니라..”
“아 괜찮아요. 구경만 하셔도 됩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헤헤”
바깥 물품들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브를 발견한 무구점의 주인은 쥐꼬리같은 수염에 딱 보아하니 상술에 도가 튼 듯 아이브의 팔을 덥썩 잡아끌고는 무구점으로 유인했다. 아이브는 그런 상술에 경험이 없는지라 얼떨결에 주인을 따라 무구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자~ 골라보세요. 음.. 태도를 쓰시니 이쪽 건 어떤가요?”
“와... 멋지군요..”
주인은 다짜고짜 끌고 들어온 아이브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상술을 펼치며 무구점의 내부에 진열된 멋들어진 말 그대로의 ‘물건’들을 소개했다.
아이브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검은 가죽을 두른 멋들어진 태도였다. 도신이 날렵하게 곡선 형태를 꺾어 들어가고 도신을 보지는 못했으되 둘러진 가죽만을 보아도 윤기가 흐르는 것이 보통의 멋만 곁들인 태도는 아닌 듯 보였다. 적어도 아이브에게는....
“딱 한 개 뿐입니다. 우리 무구점엔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만 팔지요. 저건 쇼우시 라는 태도입니다. 동방의 장인이 만든 작품인데 동방에만 존재한다는 전설의 동물을 잡아 그 뼈와 가죽을 이용해 만든 골도 계열의 작품이죠.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그 날카로움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물건이죠 헤헤.“
주인은 손바닥을 연신 비벼가며 넋을 반쯤 잃은 듯한 아이브에게 갖은 아양을 떨며 유혹의 상술을 펼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인은 이미 아이브가 말려 들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갖가지 물건들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태도, 대검, 소검, 방패며 헌터에게 필요한 투척나이프나 소재들을 주루룩 나열하고는 아이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로 혼신의 정력을 쏟아부어 열변을 토했다.
“자자~ 골라보세요. 없는 게 없어요. 그것도 일등품들이죠. 사실 말이죠~ 밖에 있는 것들은 그냥 기본 무구들이지만 여기 이 물건들은 어디 가서 구하기도 힘든 소재들로 직접 장인의 손에서만 탄생된 것들이죠. 한마디로 생명을 불어넣은 무구들이죠.“
“아.. 그렇군요."
정신이 없었다.
단연 헌터에게 있어서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생일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열어보게 되는 가슴 설레는 선물상자처럼 흥분되고 다분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과 같은...
연신 눈을 반짝거리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브의 뇌리로 말이 스쳐간 건 그때였다.
‘형제 아이브. 아무것도 사려하지 마. 네가 가진 장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어. 형제 아이브가 정말 좋은 무기를 갖고 정말 좋은 방어구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걸 사용할 능력이 없다면 그건 그냥 장식품일 뿐이야. 필레오르는 그런 것에 도가 튼 동네야. 절대! 아무것도! 유혹에 빠지지 말고! 사!지!마!‘
“헙..”
“왜 그러신가요 손님? 목이 타시나요? 물이라도?”
챠크의 말이 뇌리를 스치자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며 헛기침을 집어 삼키는 아이브였다.
‘지금 가진 소재들은 값어치가 제법 되지만 형제 아이브에겐 당장 필요가 없는 것들이니 무구점에 팔기만 해. 보자~‘
루나르는 맞장구를 치며 넘겨주는 소재의 값을 대충 어느 정도일 것이다라고 하나하나 보여주며 아이브에게 가르쳐 주었었다. 팔기만 할 것. 절대 아무것도 사지 말 것.
아이브는 이 말들이 어찌나 기억에 남는지 마치 칼을 목에 들이댄 것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아닙니다. 사는 건 됐구요. 이것들을 좀 팔고 싶은데요.”
“에? 아... 뭘 팔겠다는 거요?”
아이브의 말에 행동이 돌변한 쥐꼬리 수염의 주인은 굽신굽신 굽혔던 허리를 펴고는 거만한 자세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득이 안되는 손님인 걸 알았으니...
“폿케에서 왔습니다. 오는 중 헌팅을 한 소재들인데요.”
“폿케? 쩝.. 어쨌거나 한번 봅시다.”
폿케에서 왔다는 말에 눈꼬리가 치켜올라가며 흥미를 보이는 주인은 단박에 거절할 기세이더니 슬그머니 관심을 보였다. 아이브는 가죽 주머니를 열어 헌팅을 하며 구한 소재들을 탁자위에 늘어놓았다.
“흠..확실히 이쪽 지역에선 구하기 힘든 것들이 많군요. 머 그래도 진귀한 것들은 아니니 200 이상은 안되겠소.“
아이브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챠크와 루나르는 상승자 중에서도 정예급 헌터들이었고, 대륙 각지를 돌아다닌 적이 한두번이 아닌 사람들이었는데 분명 그 둘이 아이브에게 알려준 소재의 값어치와는 차이가 나도 너무나 차이가 나고 있었다.
“10배군요.”
“에? 뭐가 10배란 거요?”
“에누크 왕국의 근위 헌터단 소속 차크란테트와 루나르나드의 말에 따르면 이 소재들은 적어도 2,000은 할거란 말을 하더군요. 적어도! 헌데 대륙의 남쪽과 서쪽은 돈의 단위를 다르게 적용하는 건가요?“
아이브는 주인의 속임수에 자신도 모르게 헌터로서의 살기를 내뿜으며 주인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또한 에누크의 왕실 근위 헌터단이라 함은 대륙에서도 명성이 자자하기로 유명한 바사뉴 종족으로 이루어진 정예단이었으므로 주인은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고, 잘못하면 사기죄로 연행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험험... 아니.. 다시.. 다시 한번 보겠소. 기다리시오.”
“필요없으니 이리 주세요!”
급기야 식은땀을 흘려대며 급하게 수습해보는 주인이었지만 이미 아이브는 주인의 사기행각에 살기가 돋아버린 뒤였으므로 소재들을 가죽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는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무구점을 나와 버렸다.
무구점을 나올 때 무구점의 맞은 편 골목에서 두 눈동자가 아이브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망할 놈의 왕국이군. 시장판에 있는 무구점에서 저정도로 사기를 칠 요량이면 이 놈의 왕국 안봐도 뻔하겠다.“
투덜거리며 무구점을 나와 다시 시장으로 들어선 아이브는 생각을 비우고 먼저 요기를 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 곳이든 선택이 힘들 경우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좋은 법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브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리던 중....
탁-
스윽~
“엇... 어라?”
아이브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왼편의 어깨를 툭 치며 한 사람이 지나쳐 갔고, 어깨가 부딪히는 그 순간의 정점을 쪼개자 아이브의 감각이 뭔가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고, ‘어라?’ 하던 사이에 순식간에 그 자는 아이브의 품에서 뭔가를 빼내가고 있었다.
“거기 서!”
탁탁탁-
그 자의 감각도 어지간히 뛰어났던지 아이브가 체 몸을 돌리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했고, 추격전은 시작됐다.
“쳇-”
탁탁탁-
스슥-
이곳은 시장이었다.
사람들이 붐비고 각종 장애물들이 너무나도 많아 걸어다니는 것조차 신경을 써야할 만한 곳이었음에도 도망자는 그 사이를 너무도 부드럽게 마치 모든 사람이 길을 열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만큼 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반면 아이브는...
“앗.. 죄송합니다.”
여기 저기를 부딪히게 되자 점점 도망자의 흔적을 놓쳐가고 있었다.
아이브는 역시 이런 인파에 적응이 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아이브도 엄연히 헌터임에 헌터의 본능이 되살아나는 듯 인파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뇌리에 각인되며 자신의 동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아이브는 인파의 흐름을 잠시 응시했고..
“도망쳐봐.”
스슥-
불규칙한 인파의 움직임을 간파하자 시선에서부터 자신이 움직여야할 동선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열리게 되었고 도망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반경이 결정되었다.
-큰 손 래리..
“키키... 멍청한 시골뜨기 주제에.”
도망가던 래리는 뒤를 힐끔 돌아보자 벌써 멍청이라 불린 시골뜨기는 멀찌감치 인파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필레오르의 시장은 래리에게 놀이터와도 같은 곳이다.
고아로 자랐고, 뒷골목에서 살아왔으며 어릴적부터 보고 듣고 배운것은 말 그대로 도둑질. 래리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의 주머니는 용돈벌이와도 같은 것이다. 가끔 대박 물건들을 잘 훔치기도 하는 래리는 뒷골목 도적단인 ‘디새도우’ 라는 조직에서 유명한 큰손으로 통한다.
이번에도 시장을 한바퀴 휘휘 둘러보던 중 왠 얼뜨기 하나가 무구점에서 갖은 상술에 침을 흘려대는 것을 관찰하다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보고는 입질이 온 것이었다.
그 자가 시장으로 다시 나서기만을 기다리던 래리는 기회가 오자 슬쩍 지나치며 그자의 가죽 주머니를 쥐도 새도 모르게 스리슬쩍 훔쳤다. 생각보다 반응이 빨리 왔는지라 래리도 잠시 흠칫했지만 인파 속을 피해다니는 래리를 따라올 자는 필레오르에서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룰루랄라 신이 난 래리는 유유히 인파속을 헤치며 빠져나가고 있었으나...
“두둑하군. 훗... 이정도면 꽤나 받겠는... 어라?”
뛰어가는 와중에도 수확물을 확인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수고를 잊지 않은 래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머.. 머야.. 벌써?”
분명 그 얼뜨기는 처음부터 래리의 손길을 느끼지 않았어야 했으나 엄청난 반응 속도에 한번 흠칫 놀랐는데 또한번 래리를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인파속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던 얼뜨기가 어느새 인파속을 유유히 헤치며 래리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래리가 확인한 얼뜨기의 상태는 절대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수준이었음에도 그 얼뜨기는 래리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면서도 인파에 구애받지 않고 어쩌면 래리와 같은 수준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놀란 래리는 전속력을 내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속한 디새도우의 구역 골목으로 잽싸게 들어섰다.
“거기 서!”
탁탁탁-
아이브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녀석을 잡기 위해 전속력을 내보려 했지만, 어느 정도 인파의 흐름엔 적응이 되었으되 장비로 인해 구애를 받자 녀석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녀석이 시장 모퉁이를 돌기 직전 한 골목으로 잽싸게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아이브 역시 골목으로 진입했다.
“헉... 헉... ”
골목 안...
시장과 딴세계를 옮겨놓은 듯한 적막이 고요히 감돌고 있었고, 아이브의 뇌리에 경고성이 조용히 부여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브는 골목안을 조심스레 들어서며 좌우를 살폈다. 길게 이어진 골목은 높은 건물들 사이로 있었고, 위쪽으로 이리저리 휘둘러진 천들로 인해 골목안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하기까지 했다.
저벅저벅-
한걸음 두걸음 조용한 걸음을 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마치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려는 양 커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아이브의 시점....
그것엔 모든 것이 낡아버린 건물의 흐트러짐과 스산한 어둠만이 전부였으나...
아이브를 지켜보는 자들의 시점...
그들의 그것엔 길 잃은 어린 양이 늑대의 소굴로 천천히 들어오는 것처럼 배고픈 자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려는 듯 입맛이 돌고 있었다.
어느 정도를 진입하자...
“클클클... 워워~ 이런데 오시면 안될 듯 합니다만?”
아이브의 걸어온 뒤쪽으로 호리한 체격에 날카로운 눈매의 한 남자가 나타났고, 한손엔 살짝 휘어진 날카로운 칼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정중한 듯 살기를 내뿜는 그의 말 한마디로 아이브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브는 본능적으로 태도에 손을 얹었으나...
곧 아이브는 자신이 헌터이며 사람에게 겨누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손을 내렸다.
“왜? 의욕을 상실하셨나? 보아하니 헌터? 클클클 이거 잘됐군. 헌터는 함부로 사람을 베지 않는다 하더군. 맞나요?”
“다른 건 필요 없어요. 헌터 징표만 돌려주시죠.”
아이브는 한껏 긴장된 어조로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을 돌려받기 위해 흥정을 했다.
“이 바닥에서 내 손에 들어오고 나서 되돌아간 건 단 하나도 없지.”
그를 마주하고 얘기를 하던 중 다시금 아이브의 뒤쪽으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을 짐작하건데 분명 그는 아이브의 주머니를 훔친 장본인이 분명했다. 목소리를 짐작해 보건데 아이브와 비슷한 나이인 것도 같았다.
“이봐. 다른 건 필요 없다. 다 가지고 징표만 돌려줘.”
“어이~ 귀에 뭐가 박혔나? 내 손에 들어와서 되돌아간 건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을 텐데?”
“이봐 래리. 뭐가 들었길래 이 녀석이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보자~ 이거 머 소재들하고 무슨 금속 쪼가리 하나.. 이건 뭐지?”
‘아차...’
아이브가 깜빡하고 있던 물건이 있었다.
“이건?”
“꺼내지마. 잘못하면 죽는다. 절대 가죽을 벗기지 마라.”
그것은 아이브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비늘이었다. 불길을 집어 삼키는 마력을 담은 듯한 그것은 봉인이 뜯어지던 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던 그 물건이었다. 불가마의 불길을 집어삼키는 비늘.
“호~ 뭔가 비싼 물건인건가?”
“가져가봐야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잘못하면 니 주위의 모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정 가지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그 가죽을 벗기진 않는 게 좋을 거다.”
“........”
래리는 가죽으로 꽁꽁 싸매여진 그것을 들고는 아이브의 말을 듣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브의 말은 정말 간절한 어조였으므로 고민에 빠진 듯 했다.
그러다 문득 래리는 자신이 얼뜨기라 생각하던 녀석에게서 충고를 듣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한 듯 허리춤에서 단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이자식이.. 누굴 바보로 아나..”
“워워~ 래리. 직접 요리하시겠다?”
“내가 합니다.”
저벅저벅-
제 3자는 빠지고 난 뒤 래리가 단검을 양손에 나눠쥐고는 천천히 아이브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아이브는 직감적으로 살기를 느끼고 주춤했다.
“어디 돈많은 집 자식이 유람을 나오셨나 본데 칼을 들었으면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겠지? 어디 한번 보자.“
타탁-
카강~~
두 사람 중 한사람은 검격을 내뿜었고, 또 한사람은 건틀릿의 손등 부분에 덧대어진 갑각을 이용해 방어했다. 헌터의 갑옷류는 일반적으로 자체적인 방어능력을 필요로 하기에 부분 부분이 이중으로 갑각이 덧대어진 부분이 많았고, 금방 아이브가 단검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낸 부분도 그 중의 하나였다.
살짝 그어진 실금이 보이긴 했지만 거대한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고안된 만큼 그 단단함은 강하기 이를데 없었다.
래리는 자신의 공격이 어이없게도 단지 갑옷조차도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열이 받는 듯 했다.
씨익~
‘어라?’
입술을 스윽 훔치며 미소짓는 모습의 래리를 보자 문득 아이브는 한사람이 생각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럴 틈새도 없이 이번엔 사정없이 재빠른 연속 공격이 아이브의 온몸을 쇄도하며 파고 들었다.
쉬익- 쉭 쉭
바람을 가를 정도로 날카롭고 정교한 검격이 아이브의 전신을 압박했지만 아이브는 헌터인 만큼 단순히 피해내기만을 할 뿐이었다. 열심히 공격을 해대는 래리와는 달리 아이브는 단순하고 작은 하나의 동작으로 래리의 살기를 모두 흘려내고 있었다.
“이 자식!”
래리는 자신이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잔뜩 열이 올랐고, 더욱 과격하게 단검들을 휘둘러 댔고 이번에는 아이브도 쉽게 피해내지 못했던지 스탭이 엉키며 그 와중에 바닥에 널부러진 나무 조각을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죽어라!!”
쉬익-
카강-
날카롭긴 하되 둔탁하게 맞부딪히며 불꽃을 토해내는 두 개의 금속물질들은 하나는 목숨을 빼앗기 위해 사용되었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막아내었다.
“이봐 그만해.”
가슴팍을 향해 깊게 파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단검을 막아내지 않는다면 아무리 갑옷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거라는 판단을 내린 아이브는 허리춤에 교차로 장착된 쌍검 중 한자루를 들어 래리의 단검을 막아냈다. 막아내는 즉시 날렵하게 일어선 아이브는 왼손을 내밀어 래리를 저지했다.
“닥쳐!”
스걱-
“윽..”
내민 왼손바닥이 보이자 래리는 그대로 아이브의 왼손바닥을 그어버렸고, 다른 부분보다 얇았던 갑옷은 찢겨지며 살점을 긁고 지나갔다. 붉디 붉은 선혈이 움켜쥔 손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잠시간 두 사람은 주춤거리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 찰나...
“모두 꼼짝마!”
탁탁탁-
“이... 젠장. 다음에 보자 이녀석.”
갑자기 골목이 시끄러워지며 일단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아마도 마을 주위를 순찰하는 정찰병들이었고, 제보를 듣고 순식간에 들이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래리를 비롯한 도적은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무기를 버려!”
“아... 이.. 이게..”
“이 자식 죽고싶나! 무기를 버려라!”
퍽-
“크윽.”
뭔가 변명이라도 한번 하기 전에 아이브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는 이유와 또한 제보를 받은 골목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목덜미를 둔기로 강타당하고는 그대로 팔이 꺾인 채로 체포되었다.
‘으... 말도 안돼...’
아이브는 정신이 아릿해지는 듯 했다....
이대로 간다면....
*안녕하세요 멸화입니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그동안 이래저래 회사에 문제가 많았던 터라 루리웹과 소설을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후훗~
그래요...너므 오랜만에 올려서 앞글까지 봤잖아 ㅎㅎ 잘보구가~~ 오늘두 소설쓰느라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