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국시대 쌀생산량으로
저 광대한 오다령 전체가 600만석
도쿠가와령이 150만석
ㅈ만한 호조령이 무려 250만석이었는데
저 호조령이 바로 지금의 도쿄 간토평야로
과거엔 저게 다 논밭이어서
나머지 산투성이 영지들과 달리
ㅈ만한 크기에서도 압도적인 쌀생산량을 자랑했다고 한다.
과거 전국시대 쌀생산량으로
저 광대한 오다령 전체가 600만석
도쿠가와령이 150만석
ㅈ만한 호조령이 무려 250만석이었는데
저 호조령이 바로 지금의 도쿄 간토평야로
과거엔 저게 다 논밭이어서
나머지 산투성이 영지들과 달리
ㅈ만한 크기에서도 압도적인 쌀생산량을 자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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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령일때는 저기 다 뻘밭이었음. 도쿠가와가 먹고 간척해서 논밭으로 만든거 반대로 얘기하면 뻘밭일때도 저 정도의 생산량이 나왔다는 말이 되지
근현대 전까지는 농담아니고 식량 생산량 = 국력 이라서 평야가 진짜 개사기였음ㅋㅋㅋㅋ
저거도 간척해서 저 크기 아님?
원래 평야는 개발 안하면 농사 못짓는 뻘밭인 경우가 대부분임 쓸모없는 땅인데 사람이 열심히 물빼고 흙 부어서 농사 지을만한 땅으로 바꾼거임
저런 땅을 모두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것도 있는데 그냥 나라의 크기부터가 일본 열도가 우리보다 훨씬 큼
땅이 좋다고 싸움 안했다면 유럽은 이미 통일됬을듯
저거도 간척해서 저 크기 아님?
간척한거 빼도 히데요시 시절 조사한게 250만이니까
간척을 얼마나 한다고 .... 원래 컸음
무지개목장갑
원래 평야는 개발 안하면 농사 못짓는 뻘밭인 경우가 대부분임 쓸모없는 땅인데 사람이 열심히 물빼고 흙 부어서 농사 지을만한 땅으로 바꾼거임
바다 메우는 것뿐 어니라 습지 메우는 것도 간척이라 규모는 꽤 클 껄?
오다령이 존재한다는 건 오다 노부나가 전성기란 뜻이니까, 저 상태는 아직 간척하기 전 사이즈임.
250만이란게 태합검지 조사때 나온 수치인데 그때가 임진왜란일어난 해라서 도쿠가와가 전봉된지 얼마안되서 간척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을때라
대신 군사적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울 듯..
하필 상대가 미군이라 지형은 상관 없었다네요
하핫 폭격기 ㅎㅎ
호조령일때는 저기 다 뻘밭이었음. 도쿠가와가 먹고 간척해서 논밭으로 만든거 반대로 얘기하면 뻘밭일때도 저 정도의 생산량이 나왔다는 말이 되지
뻘밭급은 절대 아니고 원래 관동은 일찍이 쌀농사 혁명이 일어나서 가마쿠라시대 이전부터 이미 여러 무사들이 난립하는 통제불가능 지대였음.(지킬게 생기니 지방무사들이 강해지는 개념) 이에야스를 전봉시킨것도 봉록 가증이 명분이었고 호죠가 도요토미에 개겼던것도 관동 250만석의 체급을 믿고 개긴거임. 이에야스가 더 발전시킨건 중심지를 사가미에서 무사시로 옮기고 해운을 이용해서 지역개발 잠재력을 극대화한거.
히데요시는 저 땅의 가치를 몰랐나? 왜 잠재적 경쟁자인 도쿠가와한테 저 땅 넘겨준거임
당시엔 뻘 밭이었거든
명나라만 먹으면 어차피 짓누를수 있으니까?
그때 당시는 이에야스 세력을 죽이려고 보낸거임 지금 저정도 수확량을 보내는건 똥땅을 이에야스가 죽어라 개척한 결과임
똥땅 + 이에야스 소속이 아닌동네라 반란각이 쎔 반란 진압하면서 힘이나 빼다 망해라는거였는데 그만
우크라이나 같은 이유였을 수도 있음. 아무리 곡창지대라도 지형이 또 너무 평야면 도쿠가와가 덤빈다->도요토미가 대놓고 쳐들어가면 도쿠가와 쪽에 방어할 지형이 하나도 없어서 쉽게 조진다 이런 논리도 성립하거든.
오랫동안 호죠가 다스리던 땅이라 그 지역 사람들에게 반감 가져 고생하라고 보냈는데 정치력 만렙 이에야스가 오히려 자기 땅으로 뿌리내려 버림
똥땅아니고 봉록 가증시켜주는 명분으로 보냄. 그리고 에도시대까지도 교토와 오사카일대가 훨씬 잘살았으니 히데요시의 부동산 안목자체는 틀리지않음 ㅋㅋ 이에야스가 자기보다 싸움잘하니까 일단 멀리 보내놓은것
와... 러시아 남서쪽 우크라이나 동남쪽이 세계의 식량창고 역할 하는 이유가 있었네 ㄷㄷ
거기다 토양도 좋으니 심는거마다 풍작이였겠지
게다가 농지에서 가장 등급높은 흑토.
화산토라 겁나 비옥했다며
근현대 전까지는 농담아니고 식량 생산량 = 국력 이라서 평야가 진짜 개사기였음ㅋㅋㅋㅋ
미국: 솔직히 지금도 맞는 말 아닌가? ㅋㅋㅋ 우크라이나: ......
우리나라 강원도만하다는 간토평야
한국이 중세말에 인구수에서 일본에 밀리게된건 저 평야가 요인이 아닐까
그럴거임 한반도는 진짜 평야가 너무 적어...
혓바닥만산놈
그것도 있는데 그냥 나라의 크기부터가 일본 열도가 우리보다 훨씬 큼
그건그럼 으슥한 산골동네인구만 모아도 조선인구 나올듯
사실 중세말기에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아야하는 입장이었고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 때 이미 일본의 인구수가 조선의 2배였음 일본은 전국시대 시작하기 100~200년 전에 이미 모내기가 도입되었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됨 조선이 모내기를 발전시킨 건 조선 후기 헌종 쯤은 가야함 (하지만 모내기 할 줄 모르는 건 아님) 이때에도 모내기를 할 수 있는 땅은 남부의 일부 땅에 불과했는데(= 수로 미비) 거기서 모내기가 되는 것만으로도 조선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일본 인구의 70%는 따라잡게 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상업경제가 발달하게 됨 단순 평야 뿐만이 아니라 기후적으로 생산량이 많이 나올 수 없는 땅에서 조건을 갖춰주지도 않고 기술적으로도 한참을 뒤처졌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었던 거고 생산량은 인구부양력이 되었음 평야는 일부분의 원인일 뿐임
모내기는 평야에서만 할 수 있으니 평야가 우선조건인 건 맞음 그런데 같은 조건 = 평야, 수로 다 갖춰진 조건에서도 가뭄 때에 크게 조진다는 점을 근거로 헌종 대까지도 계속 그냥 땅에 씨 뿌리는 방법을 고집했고 모내기 자체를 자제하라는 명을 내림 반대로 모내기의 금지는 부농의 출현을 늦춰주는 효과를 낳았고 특정 세력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점을 막아줬음 경제력 있는 개인이 없고 잉여생산량이 없이 중앙으로 다 빨려들어갔던 점이 조선의 중앙집권이 오래 유지되었던 이유이기도 함
저런땅에서 왜 서로 못잡아먹어서 전국시대가 옴?
루리웹-3901291472
저런 땅을 모두 가지지 못했으니까.
꿀땅이 있으면 서로 독차지하려고 안달을 하지 보통 저런 개방된 평야는 침략이나 전쟁이 많음
루리웹-3901291472
땅이 좋다고 싸움 안했다면 유럽은 이미 통일됬을듯
중앙집권이란게 꽤나 힘든기라
1100년대에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에게 중앙 권력이 다 날라가서
우리 호남평야도 삼국시대만 해도 뻘밭이라고 되어 있다 오랜세월 개간한거
호조시절만해도 다 논밭 아니야 도쿠가와가 먹고나서 땅 개간했잔
총균쇠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지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지리결정론 반박당한지가 언젠데..
한반도의 여섯배....!!!
진짜 땅 넓은거 개사기야...
일본 열도 자체가 워낙 풍족한 땅이라 농사도 늦게 도입될 정도였지. 수렵채집이 너무 잘되다보니..
일본도 한국 대한민국 우리나라처럼 산지가 많다고 들었음 그래서 저렇게 개척함으로서 평야를 다지고 그게 곧 국력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특히 근현대 기술발전 이전에는 농업이 인구수를 늘려주기 좋다보니 농업생산량이 곧 인구 증가 국력을 결정시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