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가 있는게
당시 윤리기준으로도 문제 많았음
다만 당시엔 민간인 수천명 죽이는것보다 이름 난 명사 1명 죽이는게 더 까이고 피해입는 시대였고
인맥 혈연 지연 등이 우선이고
조조가 서주대효도 당시엔 규모 안컸지만 나중에 결국 군주로써 출세했고
조조 능력이 출중했던 등등
서주대효도로 인해 생긴 피해 덮을만한 인물이었기에 항우 백기 같이 안된것뿐이지
서주대효도 학살 규모가 컸던만큼 당시 사람들에게도 비난받고 문제 있던건 맞음
위나라에서 자잘한 반란 많이 일어난게 민심 못잡은 곳 있어서도 큰데 민심 박살내는 것 중 하나가 학살인데 문제 적거나 없었을리가...
결국 당시 양민들 벌레 수준이어서 당시 윤리 기준으론 크게 문제 안됐다는 무리가 있음
사람들 학살한게 당시 별 문제 아니었으면 백기, 항우, 조조가 벌인 일이 역사책에 큼직하게 박제되지도 않았을듯
별 문제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유비 아니고 조조 따랐지
왜 자꾸 이 사건을 세탁하려는지 모르겠음 얼룩 수준이 아니라 옷을 똥물에 담군 수준인데
왜 정권잡은 조조가 아니라 그에 맞선 제갈량 관우 장비 유비가 신으로 모셔졌을까
저 때 도겸편들면서 조조한테 반대했던게 유비인데 나중에 여포한테 쫓기니까 조조가 받아주기까지 함. 이걸 단순히 조조가 재능만 있으면 원수도 받아들이는 그릇이어서 그렇다고 보지만 서주 통치를 위해 서주의 지지를 받던 유비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야할 정도로 조조가 서주의 민심을 잃었다고 해석하기도 함.
항우가 이글에 공감합니다
아니..사람을 학살한건데..?물론 서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조조입장에선 분노할만한데..그렇다고....아무죄없는사람들을..죽인건데..
항우가 이글에 공감합니다
항우도 마구 죽여대면서도 잘나가는 것 같았지. 적을 계속 만들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기 전까진...
백가조차도 죽기 전에 "그래, 나는 사람을 헛되이 많이 죽인 죄가 있구나!" 하고 받아들였는데, 항우는 소인배답게 "난 단 한번의 패배가 없었는데 이건 하늘이 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라며 끝까지 남의 탓만 함
백기 오타
항우도 저 시대보다 400년 전 사람임. 거의 고려, 조선 왕조 하나급 세월이 지났고 그 사이에 유학포밍이 엄청나게 됐지
사람들 학살한게 당시 별 문제 아니었으면 백기, 항우, 조조가 벌인 일이 역사책에 큼직하게 박제되지도 않았을듯
아니..사람을 학살한건데..?물론 서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조조입장에선 분노할만한데..그렇다고....아무죄없는사람들을..죽인건데..
강이 메워질정도면 진짜 몇이나 죽인거지.
얼추 십만단위는 될걸??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라고 배송지에 기록되어있고, 학살 이후 서주라는 지역의 생산성이 바닥에 떨어진걸 보면 경제기반이 완전 붕괴할 정도로 학살을 자행한 것이라 추측은 가능
별 문제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유비 아니고 조조 따랐지
유비가 장판파에서 백성들 데리고 탈주한 것도 백성들이 저런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조조가 무섭다고 자기가 살던 땅 버리고 유비를 따라가려고 해서 생긴 일로 기억함
도겸 친지 싹 다 죽이는 걸 목표로 하지 멍청햇어
도겸도 못죽였음 에초에 무리 개인적으로는 도겸죽이려다가 실패해서 화풀이로 생각함
문제없었으면 진시황이 폭군 취급받을 이유가 없지 ㅋㅋ
왜 자꾸 이 사건을 세탁하려는지 모르겠음 얼룩 수준이 아니라 옷을 똥물에 담군 수준인데
오히려 세탁 시도 나올 때마다 얼마나 미친짓인지 들춰지는 느낌인데
저게 조조가 천하통일을 못한 근본 원인이다 수준의 과평가가 지나치다면 모를까 저게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는 소리는 역으로 뇌절친거라고 봐야지
ㄹㅇ 잘한점을 부각하면 모를까 굳이굳이 이걸 세탁하려고 헛소리를...
왜 정권잡은 조조가 아니라 그에 맞선 제갈량 관우 장비 유비가 신으로 모셔졌을까
결국 사람들도 시간 지나면 다 아는듯 현자는 수백년 수천년 지나야 인정받는다했지
사실 그 당시도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퍼지고 종합됐을거야
그렇겠구만 옛날에는 입소문 네트워크 참 무서워
송이나 명과 같은 한족 중심 왕조들만이 아니라 원이나 청과 같은 이민족 왕조들도 촉한을 정통으로 쳐주며 제사 올리는 것 지원한 것만 봐도 위용이 다르긴 함 오죽하면 문화대혁명 당시 산동 곡부의 문묘랑 공림은 물론이요, 포청천, 악비의 악왕묘랑 원숭환의 무덤과 시신도 개박살 나던 광기속에서 유비랑 제갈량의 무덤과 사당은 살아남았겠음
저 때 도겸편들면서 조조한테 반대했던게 유비인데 나중에 여포한테 쫓기니까 조조가 받아주기까지 함. 이걸 단순히 조조가 재능만 있으면 원수도 받아들이는 그릇이어서 그렇다고 보지만 서주 통치를 위해 서주의 지지를 받던 유비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야할 정도로 조조가 서주의 민심을 잃었다고 해석하기도 함.
애초에 서주대효도가 조까으면 서주 인사들이 조조에게 일안했지
근데 아무리 인명이 벌레목숨이라쳐도 전쟁때 약탈 방화나 뭐 본보기로 수만을 죽였다도 아니고 저상황에 수만은 죽였다는 좀
근데 저거 말고도 전근대 사회면 학살에 흔했을텐데 저게 유독 까이는 이유가 후대에 조조를 까내리려는 프로파간다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더라 물론 조조가 했던게 정도가 심했을 수도 있고
전근대에도 저정도 학살은 많지 않았음;; 효도라는 명분 있어서 사족 선비들이 대놓고 안깐거지 욕먹을 짓은 맞음. 효라는 명분으로 커버치는게 가능했다 정도임
같은나라 민간인 학살이 뭐가 흔해
사실 삼국지 시대에도 은근히 있긴 했음. 사마의도 요동 특정 지역에서 15세 이상 남성을 전부 죽여버려서 2만이나 되는 장정이 죽고 그랬거든. 손책인가 원술도 그런 적이 있음. 한 놈이 가해자고 한 놈이 피해자인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학살 자체가 까일 거리지 뭘 들고 와도 손가락질 당하지 저거만 인간의 도리를 넘어섰다고 말하는 건 아니잖아 항우고 조조고 다른 외국에서 학살한 놈들이고 다 존나 계속 까여야 하는 놈들임
황건적 요동은 국가공인 반역자를 정벌한거고. 저건 조조가 승상으로 역적을 토벌한것도 아니고 일개 군수 주제에 학살짓 한거임
그래서 망탁조의 라고 한세트로 묶여서 비난받는거 아닐까.ㅎㅎ
황건적 아니야...... 그때 사마의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망탁조의는 학살이 아니라 '황권을 농락한 놈들' 이라는 이유로 묶이는 거.
말도 안되는소리야 조조가 까인게 프로파간다라는건 동양을 관통하는 지배적 사상은 유교라고 유교적 관점에서 백성을 학살한 자는 백번 까여도 싸 조조는 명백하게 유교적으로 보면 범죄자라고 어떤 필요가 있어서 조조를 의도적으로 깐게 아니고 극동인들의 기본개념에 주축이 되는 유교적 관점에서 조조는 극도로 미달의 범죄자야 조조가 했던게 정도를 심하게 넘었어 애초에
삼국시대에 경관 세운게 두번 있는데 하나는 황보숭이 황건적 대파하고 세운 경우고 두번째는 사마의가 공손씨 정권 멸하고 세운 것
그러니까 황건적이 아니라 공손씨라고.
다시 확인해보니까 2만은 일부 주장이고 공식적으로는 7000 + 2000명이네
전근대 민간인 학살은 특이사항인데? 생산력땜시 노예화는 시켜도 저렇게 한꺼번에 떼죽음시키진 않아
수도 있고가 아니라 정도를 넘어선 심각한 일이 맞았으니까 대대로 욕쳐먹은거...
그건 알아. 다만 사람들이 망탁조의 하면서 까는게 황권농락 뿐만 아니라 망탁조의들이 미친 싸패새끼들이라 그런것도 있지.
다른 나라나 이민족도 아니고, 같은 한나라 백성을 학살한거라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보는데
누가 그러던데 장판파에서 조조한테 털릴거 알고도 백성들 끌고간게 유비의 정치적 퍼포먼스였다고. 근데 솔직히 아무리 무식한 백성이라도 조조군이 쳐들어온다는데 도망을 가면 갔지 굳이 느릿느릿 10만명 달고가는 유비를 사서 따라 갔을까?
정치적 퍼포먼스로 목숨걸정도 배짱이면 ㄹㅇ 패왕의 배짱이지. 제코가 석자인데
그렇지 누가봐도 학살이 무서워서 간거가 있고, 그리고 세금이 무서워서 유비따라간 이유가 있지
망탁조의의 조라고… 그리고 유비따라 피난행렬이 나온 원인인걸
항우가 왜 망했는데 ㅋㅋㅋ
저거 말고도 포로로 잡은 원소군 갱살 한것도 있었지
중국 역사 보다보면 인명이란게 대체 뭘까 싶은 생각이 여러번 들더라. 그리 많이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20세기에 대약진운동으로 사람 죽어나간 숫자도 비상식적이고, 19세기에 태평천국의난도 뭐 툭하면 만단위로 죽더라구. 그런 배경이어서 수호지같은 고전도 그렇고 최근의 선협물에서 주인공 아닌 사람목숨은 그냥 숫자인건가 생각이 들었음.
자는 또 낳으면 데수
말 그대로 民草
민중과 사대부의 목숨의 가치는 다르다를 숨기지않던게 저 시대 그리고 그게 현대의 윤리관에 가깝게 바뀐지도 그렇게 오래되지않았음
황건적의 난 당시에 황보숭이 황건적 10만으로 해골탑 올렸다고 하는거 보면 적으로 간주하면 그냥 막 죽임
유교를 국가통치체제로 삼는 국가에서 저ㅈㄹ한게 문제없다는게 미친거지.
민심이 천심이란 말은 개폼으로 있었겠냐고 선양의 예(웃음)도 결국 대외적 이미지가 중요해서 생긴건데
이름있는 명사 같은 사람 죽이는걸 더 안좋게 봤다는 것도 윗놈들 지들 입장에서나 그러겠지
저지랄 덕분에, 조조시기엔 위나라 국력이 생각만큼 안나와서 촉, 오가 비벼볼만 했다더라.
오늘 이게 문제가 된게 웬 촉빠 하나가 오랫동안 나무위키 문서를 사유화했다는게 나와서인데 그 틈에 서주대학살이 별거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놈들이 많아서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8307814#cmt 서주대학살은 분명하게 해선 안되는 일이었고, 조조에게 여러 악영향과 불이익을 줬다고 1. 백성이 조조를 확실하게 불신하게 되어서, 원소시절에 가능했던 민둔이 위촉오 시절 오나라 변경에서 불가능해졌다고 백성들이 강남으로 10만이 도망쳤어 조조에 대한 불신때문에 2. 서주대학살 이후, 유비가 조조에 패해 도망칠때 유비를 따라간 그 수많은 농민들 백성들은 단지 유비가 좋아서만 따라간게 아니야 또다시 학살이 있을까봐 두려워서 유비를 따라 도망간거지 그리고 실제로 유비를 뒤따르는 백성을 조조군은 죽여댔어 유비군이 그거 막느라 오히려 더 느려졌지 3. 서주 인사들은 모두 이후 조조에 대한 감정이 안좋았어 대표적으로 제갈량 서주설이 있지 4. 역사 대대로 조조가 욕먹는 주요한 이유야 옛날 사람이라고 해서 학살에 주요인사만 생각하는게 아니야 일반 백성 죽인게 문제가 안될 수가 없어 하물며 중국이 아무리 인명경시의 마경이라 해도 지배적 사상은 유교였단 말이야. 유교는 맹자를 보면 아는데 절대로 백성을 경시하는 사상이 아니었어 오히려 왕이 제대로 못하면 역성혁명도 된다 그래서 나중에 지배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사상이었지 근데 유명한 사람 아니고 백성죽였다고 별거아니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고대중국이라도
3번은 좀 어디까지나 설가지고 이러네 3번은 좀많이 과대평가나옴
3번은 제갈량까진 좀 오버고, 당시 서주 호족들이 조조파, 유비파로 갈려버렸지 조조파의 대표격이 진등이고, 유비파의 대표가 미축이었지
4.이 진짜 맞는게 명태조 주원장이 숙청 킹이라고 욕을 먹긴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일반 백성들한테도 그렇고 대대로 욕을 안먹은 이유는 일반 백성에 대한 학정은 거의 없었거든. 물론 관리들과 연좌에 걸린 사람들 수천~수만명이 갈려나가긴 했지만.
삼국지보다보면 위에서만 뉴페이스가 자꾸나오는데 시도때도없이 터지는반란 진압하는애들이 출세한거임 민심 창났으니 반란이계속터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