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임진왜란동안 왕이 항왜들을 교관으로 검술과 근접전투 좀 배우라고 해서 진행됨. 물론 현장의 군관들은 어명이고 나발이고 왜놈한테 뭘 '배우는'건 싫다고 야발이었지만.
그래서 환도도 좀 '실전적'으로 길이가 길어지고 그랬는데...
근데 몇십년 좀 조용히 살다보니 금새 또 부병제 찬양에 군축에 검술/근접전투술은 퇴화하고 환도 길이도 그냥 장식용 수준으로 짧아짐.
그리곤 병자호란을 쵸맞게 되지.
임진왜란동안 왕이 항왜들을 교관으로 검술과 근접전투 좀 배우라고 해서 진행됨. 물론 현장의 군관들은 어명이고 나발이고 왜놈한테 뭘 '배우는'건 싫다고 야발이었지만.
그래서 환도도 좀 '실전적'으로 길이가 길어지고 그랬는데...
근데 몇십년 좀 조용히 살다보니 금새 또 부병제 찬양에 군축에 검술/근접전투술은 퇴화하고 환도 길이도 그냥 장식용 수준으로 짧아짐.
그리곤 병자호란을 쵸맞게 되지.
단병접전에 밀린다는 것도 징집병들의 숙련도와 마인드셋 문제였지
전문 직업군인인 무반들이나 갑사들은 왜병들 입장에서는 인간흉기였음
하지만 결국 조선군 병사들의 모랄빵엔 답이 없었지
그나마 정유재란 즈음이 되면 병사들도 왜뱡들을 상대로 백병전을 벌이면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요령이 생김
특히 마상용으로 주로 쓰인 편곤을 병사들에게 지급하자 농사일로 도리깨질 좀 한지라 금방 숙렴도가 얼라서 의외로 왜병들 대갈빡 브레이커로 재미를 쏠쏠하게 봐ㅛ다고 함
조선도 조선초까지는 검술에 상당히 신경을 썼고 수준도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료가 꽤 있음. 근데 중기 들어서 검사들을 천시하고 궁시에 올인하는 식으로 개편되었는데 그 바람에 조선초까지 이어지던 한반도 검술의 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걸로 암.
그리고 그 대가를 임진왜란으로 상당히 피비린내나게 치렀지. 지금 복원되는 조선시대 근접무술의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정립된거임.
임진왜란 전까지는 조선의 주력 무기는 활이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여전히 활이지만 도검 훈련을 많이 했다는거군
마상 쌍검이 공식으로 있었던 건 대체 누가 그렇게 체계적으로 가르친 걸까
너무 짧아서 체급에서 불리한 환도 + 낮은 검 숙련도가 문제였지 그래서 저 이후로 환도 길이도 길어지고 검술에도 좀 신경쓰긴 했다더라
역시 임진왜란이후에 검술부분도 좀 신경썼구나.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검날 길이도 늘리고 검술도 재정비 하면서 새롭게 재정비했지만, 인조반정+병자,정묘호란 연타에 검술이 임진왜란 이전 시기로 회귀하게 됨.
임진왜란동안 왕이 항왜들을 교관으로 검술과 근접전투 좀 배우라고 해서 진행됨. 물론 현장의 군관들은 어명이고 나발이고 왜놈한테 뭘 '배우는'건 싫다고 야발이었지만. 그래서 환도도 좀 '실전적'으로 길이가 길어지고 그랬는데... 근데 몇십년 좀 조용히 살다보니 금새 또 부병제 찬양에 군축에 검술/근접전투술은 퇴화하고 환도 길이도 그냥 장식용 수준으로 짧아짐. 그리곤 병자호란을 쵸맞게 되지.
전쟁으로 발전하는거지 하필 대부분 기마 민족인 여진족 상대로 발달한 대응법이 왜놈들 때거리로 오는거에 안 맞을뻔 했던거지 끈질김으로 버텨서 적응한거지 일본이 대단해서가 아님 전쟁이란게 필요에 의해 적용되는건 옛이나 현대나 똑같음
임진왜란 전까지는 조선의 주력 무기는 활이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여전히 활이지만 도검 훈련을 많이 했다는거군
MANGOMAN
임진왜란동안 왕이 항왜들을 교관으로 검술과 근접전투 좀 배우라고 해서 진행됨. 물론 현장의 군관들은 어명이고 나발이고 왜놈한테 뭘 '배우는'건 싫다고 야발이었지만. 그래서 환도도 좀 '실전적'으로 길이가 길어지고 그랬는데... 근데 몇십년 좀 조용히 살다보니 금새 또 부병제 찬양에 군축에 검술/근접전투술은 퇴화하고 환도 길이도 그냥 장식용 수준으로 짧아짐. 그리곤 병자호란을 쵸맞게 되지.
왜란 전까지는 북쪽에서 말타고 달려오는 애들이 주 상대라 주요지마다 산성 짓고 멀리서 활 쏘는게 주력이긴 했음
마상 쌍검이 공식으로 있었던 건 대체 누가 그렇게 체계적으로 가르친 걸까
상현LG자이아파트4동 이현우
단병접전에 밀린다는 것도 징집병들의 숙련도와 마인드셋 문제였지 전문 직업군인인 무반들이나 갑사들은 왜병들 입장에서는 인간흉기였음 하지만 결국 조선군 병사들의 모랄빵엔 답이 없었지 그나마 정유재란 즈음이 되면 병사들도 왜뱡들을 상대로 백병전을 벌이면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요령이 생김 특히 마상용으로 주로 쓰인 편곤을 병사들에게 지급하자 농사일로 도리깨질 좀 한지라 금방 숙렴도가 얼라서 의외로 왜병들 대갈빡 브레이커로 재미를 쏠쏠하게 봐ㅛ다고 함
마상편곤이 기병의 주무기로 정립된건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고 임란기에 편곤이 활약한 구체적인 기록은 유성룡이 언급했던 카더라 썰 말고는 없지않나?
역시 임진왜란이후에 검술부분도 좀 신경썼구나.
너무 짧아서 체급에서 불리한 환도 + 낮은 검 숙련도가 문제였지 그래서 저 이후로 환도 길이도 길어지고 검술에도 좀 신경쓰긴 했다더라
그리곤 몇십년 좀 전쟁 없이 살자 귀신같이 다시...
솔직히 보조무기 연습도 중요하지
그야말로 피로 쓴....교범
솔직히 당했는데 그냥 냅두고 안하는게 이상한거라
임진왜란 이전에도 여진정벌,삼포왜란 같은 사건들이 있는데, 검술에 신경쓴건 당연하지
근데 막상 임진왜란 터져서 근접전으로 쓸려나가기 직전까지는 거의 궁시 올인이었음
ㄹㅇ 관상부터가 무관의 관상이네
항왜 분들이 칼 기술 많이 갈켰다고 함 당연히 소총도
무예도보통지를 보면 일본도가 왜검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일본도를 이용한 검술도 나와있음 임진왜란 때 하도 크게 당했다보니ㅋㅋㅋ
저분 표정이 왜이리 힘들어보임
원거리무기가 근접병과를 완전히 압살하게된건 총기와 화기류가 더 발달한 후에야 가능했다
뭐 지속적으로 전란 일어나는거 아니면 이런 교리같은게 발전하거나 유지되긴 힘들지만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검날 길이도 늘리고 검술도 재정비 하면서 새롭게 재정비했지만, 인조반정+병자,정묘호란 연타에 검술이 임진왜란 이전 시기로 회귀하게 됨.
누가보면 광해가 잘하는데 쫒겨난걸로 보겠네 시발 ㅋㅋㅋㅋ
전쟁으로 발전하는거지 하필 대부분 기마 민족인 여진족 상대로 발달한 대응법이 왜놈들 때거리로 오는거에 안 맞을뻔 했던거지 끈질김으로 버텨서 적응한거지 일본이 대단해서가 아님 전쟁이란게 필요에 의해 적용되는건 옛이나 현대나 똑같음
맞음 후기에 칼잘안쓴것도 결국 조총이 군의 주력무기가 되고 뭣보다 일본애들보다도 더한 근접전의 마스터들인 북방민족들이 차지를 해오니까 감당이 안되서 다시 화력및 원거리전으로 돌아선거지
왜놈들 검술에다가 칼도 가져와서 연구하고 했지...
연개소문은 이기어검까지 썼는데 실전돼버리는 바람에 ㅠㅠ
조선도 조선초까지는 검술에 상당히 신경을 썼고 수준도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료가 꽤 있음. 근데 중기 들어서 검사들을 천시하고 궁시에 올인하는 식으로 개편되었는데 그 바람에 조선초까지 이어지던 한반도 검술의 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걸로 암. 그리고 그 대가를 임진왜란으로 상당히 피비린내나게 치렀지. 지금 복원되는 조선시대 근접무술의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정립된거임.
물론 현대 군대와 마찬가지로 쓸 일 없는 부대에선 가라쳤기 때문에 중앙군이 아닌 지방군에선 구한말 즈음엔 대부분 도태됐다.ㅋ
당시 진짜 피해를 입린건 일본의 근접 전술이었던게 큼. 임난초기 왜군의 조총에 겁먹고 진형이 붕괴될때 왜군이 근접전률로 카타나들고 설치기 시적할 때 본격적으로 사상자들이 나왔던터라. 그거에 대한 피로 만들어진 피드백이지
활과 총에 밀렸어
정작 다시 퇴화했으면 뭔 소용이야...
"총"
윗댓처럼 총이 병기로서 역활을 하게되고 북방 민족들이 더 강성해지고 일본의 위협은 적어지니까(일단은 도쿠카와 막부는 쇄국하면서 팽창정책은 안썻음) 일단 붙으면 일본보다 더한 미친 전투병기들을 감당할수없으니까 원거리 전술을 다시 더 채택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