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국공(國公)에 올라 왕태자와 동등한 예우를 받았으며, 그의 생일을 인수절(仁壽節)이라 하고, 국왕에게 올리는 형식으로 그에게 글을 올리게 했다.
아들들이 다투어 지은 저택은 거리마다 이어져 있었고, 세력이 커지자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가고 사방에서 선물로 들어온 고기 수만 근이 날마다 썩어나갔다. 토지를 강탈하고 종들을 풀어 백성들의 수레와 말을 빼앗아 물건을 실어 나르니, 힘없는 백성들은 수레를 부수고 소와 말을 파느라 도로가 소란스러웠다.
이자겸은 지군국사(知軍國事)가 되어 왕에게 그 책봉식을 궁전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하게 했고, 시간까지 강제로 정할 정도였다. 이로 인해 왕은 이자겸을 몹시 싫어하였다.
뇌물로 쓰일 정도면 그만큼 귀했단거 아님?
뇌물로 쓰일 정도면 그만큼 귀했단거 아님?
전근대에 고기는 원래 귀하긴 함 뇌물로 육포 바치면 수명도 늘려주고
고위급 인사나 부자는 많이 먹었다는 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