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하인켈
1888년생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주조소 견습 기계공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해
이후 제펠린 비행선을 본 뒤로 항공기에 관심을 가지며 개발자로 성장하게 됨
1차대전을 거친 뒤 항공기 회사를 차려 여객기를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베르사유 조약 몰래
독일 공군을 재건하는 일을 맡는 등 루프트바페 부활에 큰 기여하였음
이후 히틀러와 나치가 정권을 장악한 뒤로 하인켈의 회사는 아예 국유화 되면서 ( 협박이긴 했지만 )
직접 루프트바페에 공격기와 폭격기를 납품하는 개발자이자 항공기 사업가가 됨
이제 루프트바페에 비행기를 넘기며 떼돈을 벌기 위해 본격적으로 폭격기를 개발해냄
이것이 HE 111임
당시 독일의 주력이었던 DO 17에 비해 폭장량이나 기체 성능이 뛰어나
폭격기 납품은 하인켈이 따놓은 당상이었음
이제 폭격기하면 하인켈. 하인켈 하면 폭격기가 되나 했더니....
" 지금부터 모든 폭격기는 시시한 수평 폭격이 아닌 급강하 폭격을 해야 한다. "
???
중폭격기에게도 급강하 폭격 기능을 집어넣으라는
무척이나 현명하신 퓨어러의 현답으로 인해 하인켈은 머리를 쥐어 뜯을 수 밖에 없었음
결국 어떻게든 기체를 뜯어 고쳐 겨우 급강하 폭격을 가능하게 만들었더니
느닷없이 나타난 융커스사의 급강하 폭격부터 성능도 더 뛰어난 JU 88을 가지고 와버리며
쌍발 중폭격기 시장을 가져가버림
뒤이어 단발 급강하 폭격기도 만들어볼려고 했던 차에
연합군을 전쟁 초기 공포로 몰고 간 JU 87 또한 내놓으면서 폭격기 시장을 융커스가 쓸어가버렸고
헤인켈의 야심찬 계획은 초장부터 어그러져버렸음
가장 자신 있던 폭격기 분야가 통으로 날아가버렸으니 어쩔 수 있나...
그렇게 복수와 부를 꿈꾸던 헤인켈은 단발 전투기 납품을 꿈꾸며
독일 전투기 시장에 파란을 일으킬 유쾌한 반란 HE112를 내놓게 되는데
문제는 HE 112의 상대는
바로 메서슈미트사의 BF - 109 ....
헤인켈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더 발전된 모델인 HE 100를 만들었지만
이미 BF -109는 전설이 된지라 사업 계획은 다 엎어져버렸음
그렇다고 다 포기하기엔 헤인켈의 야망은 너무 강했고
그리고 자신의 주력은 폭격기. 그것도 매우 정교하고 우수한 전략 폭격기를 만들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음
문제가 있다면 령도자 퓨어러 만큼이나 천재적인 하늘을 모독하는 괴링께서
" 앞으로의 전쟁에서 전략 폭격기는 실로 무용지물 - ! 음하핫. "
라는 아주 위대한 공중전 철학을 가지고 계셨기에 그동안 독일에서 근접 지원 급강하 폭격기를 제외한
제대로 된 폭격기에 대한 개발 자체가 반쯤 엎어진 채 방치되고 있었음....
그렇게 세계 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가서야 진지하게 우랄 산맥 넘어까지
폭격할 장거리/전략 폭격기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전폭기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게 됨
그리고 마침내 하인켈의 주력 분야가 빛을 발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받은 멸시와 모멸을 되갚아주기 위한
루프트바페가 유일하게 사용한 중重폭격기 HE 177 탄생하게 됨
전고 6.40m / 전장 22m / 전폭 31.44m 정도 되었기에
연합군 주력 폭격기 B 17과도 비견되는 크기를 자랑하는 중폭격기임
물론 엔진에 하자가 있어서 갑자기 불타버린다는 것과 그놈의 급강하 폭격 기능 때문에
몰래 부품 몇개를 빼고 테스트를 통과하는 바람에 실물이 화재에 매우 취약한다든가
최대 속도 겨우 488km/h이고 폭장량, 최대 고도, 상승 속도 등
여러 실제 스펙들을 B 17에 비해 많이 딸리기에 사실 크기 빼고 비교하는 것이 B17에게 미안하지만
중中 이상의 크기의 폭격기 자체를 아예 생각도 하지 않던 당시 독일 풍조를 생각하면
이 정도 문제점은 사소한 찐빠로 봐도 될 정도의 기적이라 봐도 무방함
그래서 얼마나 생산되었나
어...
그렇다...
세계 대전 전에는 겨우 프로토타입을 찔끔 만들기만 하였고
전쟁 중기까지 이어지는 히틀러와 괴링의 이상할 정도로 폭격기를 너무 멸시하는 철학,
급강하 폭격 기능이 되는 선에서 최신식 기능을 박아 넣었기에 꽤나 고난이도 생산 기술이 요구되었고
전쟁이 지속되면서 자원이 고갈되는데 괴링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루프트바페가 놀기를 바래서 자원이 루프트바페에 고루 돌아가지 않는 등
결국 폭격기를 신뢰를 하지 않는 상층부 + 무능한 괴링
+ 고난이도 기술 + 자원 부족 상황이 곂치면서 생산량이 매우 저조했던 것임...
거기다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던 시기엔 동부 전선을 말아 먹고
연합군의 전략 폭격으로 기반시설이 작살나다가 마지막 45년엔 아예 생산이 중단이 되어버림
그렇게 헤인켈은 돈도 명예도 유명세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버림
이후 구금과 재판 끝에 독일 항공기 사업 금지 처분을 받았고
다행히 몰래 3국으로 빼돌린 재산으로 하인켈 투어리스트 스쿠터와
스쿠터보다 좀더 작은 모페드를 생산하며 돈을 벌음
중간에 2차대전 당시 노예 노동으로 부정한 돈을 벌어들인 것 때문에 재판을 받았지만
소송을 건 사람에게 너무 늦게 소를 제기 했다며 독일 대법원이 기각을 때렸고
나치 부역 사실을 부정하며 실제론 본인은 반 나치주의자였다는
세탁기 풀가동 자서전을 대대적으로 써내며 살다 1958년에 사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