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론에 대해서는 작가가 전공자인거 같이 비교경제사와 현대적 경제이론, 경영논리에 입각한 명확한 고증과 방향성을 보여줌
이쪽은 국내에 경제사학자가 워낙 적고 있어도 대부분 낙성대연구소 끄나풀이라 이쪽에 관심을 안줬기 때문에 큰 장점이었음
다만 단점은 경제사학과 비교경제사에 집중하느라 정치논리나 사상적 고증, 당대 지식수준에 대한 고증은 좀 많이 모자람
특히 제일 명확한 실수가 동아시아는 지구가 구형임을 몰랐다는 부분
이건 이미 송나라대에 지구 구형에 대한 계산과 근거계측이 끝났고 이를 통해서 율리우스력과 동일한 계산구조를 가지는 태양태음력을 만들어 썼음
아담샬이 당도하면서 지구구형설을 받아들였다는건 세차와 지구운동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받아들여서 지구구형설과 체계적으로 이어진거니
그 시기까지 동아시아가 지구가 구형인걸 모르고 있던게 아님.
재이론 또한 마찬가지. 이미 성종시기에 재이론을 들여오면서 그거 그냥 자연의 일인데 그걸 왜 왕탓하냐라는 얘기가 같이 나왔는데 이 부분도 무시함
오히려 재이론이 설치기 시작한건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중종 이후부터인데
이 두개는 아래와 다르게 그냥 고증의 미스
또 작중에서 그냥 쑤욱 하고 지나가버리지만 대간을 폐지한 것, 과거를 열지 않는 것, 간언을 무시한거(사실상 없앤거)
모두 일어나기 힘든 일임
성리학파의 정치세력화 자체는 성종조부터 일어났지만 자가개념화는 세종-세조-성종 시기를 거치면서 계속 이어졌던 것이고
연산군대에는 조선의 실질적 선거인단에 해당했음
훈구파라고 불리던(학계에서는 훈구파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하지만) 정치세력이 중종반정으로 승자연합의 자리를 내준건
연산군의 폭정이라는 트리거를 타고 삼한갑족이 정치성을 드러낸 것뿐인데 이부분은 일부러 무시하는 부분이 보임
사실 그거 고증했으면 처음 100화는 성리학자들이랑 논증하느라 보냈을거라 이해는 하는데...
이거 말고도 최근화에서 칭제건원을 하면서 단어를 현대식으로 바꿨다거나 사장이라는 일본식 조어를 작중인물들이 그냥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부분도
언어는 논리를 규정하고 작중에서 과부나 기생의 대우에 대해 얘기하듯 요순지치와 유학 또는 불교를 내재화한 사람들이 현대적인 한자어 조합과 어휘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데
이 또한 그냥 넘어가버림
어설픈 대역에서 제일 쉽게 보이는게 이건데 이건 흠....일부러 한건지 생각이 안 닿은건지 모르겠음
마지막으로 유학과 유교를 분리해서 쓰지 못함
유학이 유교라 불리는건 그 도그마에 있어서 반론을 허용치 않는 교조적 논리 그리고 체계화되지 못하고 불합리한, 불가사의에 대한 것을 논하지 말라했지
부정하거나 믿지 않는게 아닌 부분 때문임(자 불어 괴력난신)
때문에 정치이론으로서의 유학과 그걸 내재화하여 문화화한 유교는 고증을 하는 대역에서라면 반드시 분리해서 쓰고
이걸 정치이론과 결부지어서 써야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매칭은 많이 모자람
역사라는게 어차피 후대에 우리가 일부만을 비추어서 조명한 것을 보는 거라는걸 감안할때 그동안 한국 대역계에서 모자랐던 경제론, 경제사학적 논리를 쓴건 참신하고 좋았음
근데 그 반대급부로 정치이론 특히 성리학적 개념과 그 실제적인 동작에 대한 고증은 좀 더 보충해야하지 않을까 싶음
미시사는 까다롭스키
민속학과 실질행정행위는 코락스
언어사는 김경록
이렇게가 고증을 제대로 하는 작가였는데 여기다가 경제사-라구BP 이렇게 써놔도 될듯
근데 성리학자체가 종교적인 부분을 포함시키고 있어서 저쯤이면 이미 변질되고 있던 와중이긴 함 사림부터가 김종직의 문하에서 시작하는 애들이니까
이전까지 그러질 못하던건 이황에 이르러서야 주자전집이 조선땅에 실존하는 시대가 되어서고 이전에는 그나마 유학적인 방향으로 갔던건 서적이 그냥 모잘라서였으니까
그러더라도 유학과 성리학, 유교의 구별은 있어야하는데 정치이론으로의 성리학을 얘기하면서 계속 유교유교 거린다구요
그래서 고려 삼은의 제자들로 조선 성리학의 시조라고 하는 사람들도 정작 성리학의 기초개념은 알지 무슨내용인지는 잘 모르니까 조선초에는 개혁적인 성향을 보여줄수 있엇던거지
틀린건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거임 이미 저시기에는 성리학이 뭔질 알법한 시대라는건데 성리학부터 스승에 대한 제사를 시작함 한마디로 이전까지는 문성왕(공자)에 대한 제사는 어디까지나 공씨들만의 제사였다는거임 지들 스승 올려치기를 시작한 교조화의 기반은 이미 성리학이란 사상자체에 있었던 거라는거임
이전시대 성리학자는 성리학자의 탈을 쓴 유학자엿을뿐이고 저시대쯤부터 찐 성리학 유교탈레반이 나오기 시작할 시대라는거임
성리학이전까지는 스승으로써 존숭을 할 지언정 제사를 지내진 않음 동양의 제사는 신을 대상으로 하는게 아닌이상은 어디까지나 본인 조상에 대한 제사지 남의 조상에 대해 하는게 절대 아님 이미 성리학시작부터 종교적인 탈을 쓴거고 기독교인들이 절을 못하겠다고 한는 우상숭배적 형태가 스승에 대한 제사이기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절을 안하는거임
그 얘기를 하는게 아님 이건 책을 봐야지 알거 같은 부분인데 음...... 예악이나 주기론, 가례를 따지는 부분이면 성리학이라고 얘기해야하고 단성론적 도덕론과 그를 통한 왕도정치를 얘기하는거면 유학이라고 하고 교조적 논리에 따라서 요순 외에는 성왕이 아니고 중화이론에 기반한 폐쇄적 논리를 얘기하면 유교라고 하는게 맞음 근데 이 소설은 이 각각의 요소가 나와야할때 이걸 무시 혹은 틀리는 고증 오류가 자꾸 나온다는 얘기임 작중인물이 성리학 혹은 유학을 얼마나 배웠냐는 상관이 없음 작중을 보고 설명하는 작가의 3자적 시점에서의 나레이션에서 자꾸 그걸 구별하지 못하는게 문제라는거지
일반인은 구분 못하지 나처럼 공씨가 아닌이상은 최소한의 이쪽지식은 알아야 아는 지식이니까 작가가 모르고 그랬을 경우도 있지만 작중 주인공이 모르는 일반인이라는 설정이면 그게 맞는건 맞음
솔직히 공씨 입장에서는 성리학이라는 학문자체가 존나 거슬림
이 소설이 주인공의 서술하고 작가의 서술하고 또 구별되있어서 주인공은 몰라도 작가가 경제사 고증하는거 수준만큼 고증했으면 틀리면 안됨
근데 그쪽 전문가 아니면 ㅈ도 모르는게 정상이라는거임 딴건 고증차려도 이쪽은 다 똑같다고들 생각하니까 구분자체를 할 지식도 생각도 없어 거의 100%에 가까운 대역작가들이 유학이라고 제대로 구분한 새끼 본적 없음
조선시대배경으로 하는 대역작가들 머리에는 유교탈레반이 문제다 라는 지식과 생각말곤 없어
그건 님이 좀 잘못 본거 같은데 내가 본문에 언급한 3명은 유교 유학 성리학을 이기론 수준에서 설명할정도의 기반지식 가지고 있고 작중에도 그거 풀어줌 (코락스 첫작인 무왕 단종 빼고)
바꿔말하면 언급한 3명 수준 말고는 없다는 얘기임 그냥 지들이 쓰고 싶은걸 쓰는거지 유학이란건 유교라는건 어디까지나 적폐로써 지들의 소설에서 개혁해야할 대상임
사실 저 3명 말고 조선시대를 고증하는데 있어서 최소한 실록이라도 보는 놈이 드뭄.. 동양사를 안다루긴했는데 마늘맛스낵이 그걸 다루면 가능할듯 명원은 세부적인 고증에서 모자라서 안되고
결국 볼만하다는 거네 네이버 멤버십으로 볼 게 하나 더 생겼구만
지나치게 문장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는 까다롭스키 전개를 위해 인물들이 뜬금없는 행동을 하는 코락스 고증은 좋은데 고증 설명만 하다가 인물이 실종되는 김경록 까지는 괜찮은데 경제왕은 너무 고증오류가 경제 부분 빼고는 심해서 아쉽더라
ㅇㅇ경제부분은 진짜 오우 이런 관점이? 있을정도로 좋은데 나머지 부분은 개판까지는 아닌데 경제부분 고증의 1/10도 못따라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