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애니메이션 회사 카툰 살롱이 오늘 창립 2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네, 이거 유희게에 올라온 글 맞아요. 마 즈그한테는 유희왕만큼 의미있는 건데 조금만 참아주소잉.
아무튼 지난 2월 3일 주최된 도쿄돔 이벤트가 유희왕 OCG의 '처음'이더라고요? 1999년 2월 3일.
그래서 이 동네 25주년을 보는 김에 똑같이 25살인 OCG를 포함해서
각종 유희왕 프랜차이즈의 초창기를 되돌아볼까 합니다
유희왕 만화 - 1996년 9월 14일
1화 이름이 '신의 퍼즐'이군요... 아 그래서 삼환신이....?
아무튼 캐릭터들 머리칼이 하늘하늘했고 유우기 빼고는 주인공 일행에 카툰풍이 적었던 시절입니다
ATM씨는 '유우기의 또 다른 인격'이자 빌런들을 어둠의 게임으로 응징하던 시절이죠
카이바는 M&W 편에서 1회성 빌런으로 등장했다가 DEATH-T편에야 재등장하고요.
토에이판이나 그 때 만화에서 어둠의 유우기가 얼마나 사악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조크의 인격 영향이 있었다는 소리는 나중에 붙은 설정인가
그보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내후년이 유희왕 30주년이라는 뜻입니다.
유희왕 애니메이션 - 1998년 4월
네. 일단 얘네가 먼저죠. 컬트적이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킹덤편 직전까지 온갖 오리지널 넣어가면서 잘 끝냈다고 생각합니다
얘네가 있었던 덕분에 대충 킹덤편에서 어영부영 시작한 DM애니가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거기에 카자마 슌스케의 초창기 국어책 에디션 연기를 생각하면
오가타 메구미 성우 연기가 확실히 안정적이었던 것 같고요
토에이판이 이 시기를 재조명해준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도 가끔마다
M&W의 영향력 없이 게임 싸움만으로 천년 아이템 쟁탈전을 벌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ㅋㅋㅋ
유희왕 비디오 게임 - 1998년 7월
캡슐 몬스터 브리드 앤 배틀이 최초의 유희왕 비디오 게임입니다.
1998년 말에 듀얼몬스터즈 게임도 발매되면서 코나미 OCG의 기초를 미리 닦게 되죠.
이때 만화에서는 한참 킹덤 편이 진행되고 있었고...
M&W의 인기에 힘입어 최초의 미디어믹스들은
이거나 스고로쿠의 스고로쿠나 DDM 빼면 죄다 그쪽을 다루고 있더라고요
원작 M&W 에피소드 발매 시기가 1996년 말인데,
매더개 열풍으로 모자라 막 포케카도 나올 시절이었으니 인기가 많았을 만 하네요.
아무튼 타카하시 카즈키는 카드 말고 다른 게임 얘기를 하고 싶었으니
DEATH-T편 이후로도 몬스터 월드편을 연재했던 거겠지만.
그래도 캡몬과 DDM이 여러모로 상품화되긴 했었네요. 둘 다 어떻게 지금 다시 리메이크해볼 수는 없는 걸까
유희왕 카드 - 1998년
일단 우리가 아는 코나미 OCG보다 1년 전에 반다이산 OCG가 나왔습니다만....
문제는 초창기 코나미 OCG보다도 훨씬 조잡한 규칙이었습니다
M&W 묘사에 충실하기야 했다지만... 매더개 포케카에 버금갈 수는 없었죠 솔직히.
결국 코나미가 판권을 받으면서 우리가 아는 유희왕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OCG - 1999년 2월 4일
만화랑 애니메이션 얘기를 먼저 하느라 이제서야 OCG를 다루는군요. 아무튼 저 팩에서 모든 게 시작됐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불고 있었던 유희왕 열풍은 같은 해 여름 도쿄 돔에서 절정을 이뤘고요.
물론 이 때 OCG를 보면 참.... 어질어질했습니다. 백룡이 최고존엄에 환상의 벽이 필수 카드였고
1턴에 1장밖에 마함을 낼 수(즉 발동/세트 둘 중 하나밖에 못 했다는 뜻입니다)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2000년 4월 신 익스퍼트 룰이 제정되면서 그 해 1월에 나온 크리보의 쓸모가 생기기도 했고요.
아무튼 '우리가 아는' OCG가 되기까지는 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잔재정 문제들이 있었으니까.
최초의 갤럽 애니메이션 및 수출 - 각각 2000년, 2001년(애니메이션), 2002년(TCG)
"하하 DA☆ME"라던가 "앗! 몬스터가 실체화했다!"라던가 이 1화에도 밈이 많네요ㅋㅋㅋ
아무튼 1996년이 유희왕의 시작, 98년이 미디어 믹스의 시작, 99년이 OCG의 시작이라면
2000년은 갤럽 애니메이션이 시작되는 해였습니다.
이후 2001년 후반에 DM 애니 수출을 시작으로 2002년에 만화와 OCG가 수출되면서 유희왕 열풍은 해외로 이어지죠.
한국 수출 - 2003년
그 카드의 신화가 한국에 상륙하기에는 그로부터 1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이랑 카드가 동시 발매되었으니 빠르기는 빠르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수입사가 대원이었고....
제가 저 시기에 초등학생이 되었었는데 왜 몇 년 뒤에야 유희왕을 접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날로그의 황혼기였으니 동네별 유희왕 유행이 달랐던 걸 수도 있고... 에헤이 모르겠다
세계 대회 - 2003년
아무튼 우리나라가 참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수출 1년만에 월드 챔피언십이 열렸습니다
따아악 올해가 21주년이네요. 작년에 기념 영상 올렸던가 코나미가?
PC 게임 - 2003년
유희왕 비디오 게임이 너무 많아서 지금 WCS랑 TF 시리즈도 생략하려고 합니다만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2005년 유희왕 온라인이 나오기 전, 이 게임이 있었기 때문에 코나미가 PC 시장을 아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유희왕 온라인과 듀1얼 아레나에 이어 듀링-마듀를 스팀에 이식한 것도 이 때문일 터....
무엇보다 이 파워 오브 카오스 MOD에서 YGOPro가 시작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ㅋㅋ
최초의 세대 교체 - 2004년
당시 '저 근본 없는 놈은 또 뭐냐'란 반응을 들었다던 쥬다이.
그러나 1년 방영으로 끝날 뻔한 GX의 인기가 이어지자 쥬다이는 세대 교체에 성공했고
현재의 유희왕 프랜차이즈가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엑스트라 덱을 본격적으로 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
새로운 소환법 - 2008년
DM이 시초, GX가 세대교체였다면 5D's는 새로운 소환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OCG라는 게임의 신규 기믹 정체성을 소환법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입니다.
덕분에 2017년까지 유희왕은 매년 새로운 키워드를 등장시키는 대신
새로운 기믹의 테마를 매 세트마다 등장시키는 한편
새로운 소환법을 몇 년간 발전시키는 식으로 새 기믹을 내 왔죠.
얘가 없었으면 융합 소환이 여러모로 발달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모바일 게임 - 2012년
게임이라곤 애니팡 템플런같은 거만 있던 스마트폰의 초창기...
이 게임이 최초의 유희왕 모바일 게임이었습니다.
지금도 룰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대충 카드 내고 치고박는 식이었는데.
유희왕 껍데기만 쓴 다른 게임 수준으로 규칙이 단순했지만
얘가 그래도 몇 년을 가서 듀1얼 아레나 등등 똥겜 이후로 듀링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피드 듀얼 - 2016년 / 2019년
OCG의 캐주얼화를 위해 코나미가 내놓은 방안은 말 그대로 듀얼을 반도막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최강카드배틀이고 오프라인 강습회고 영 시원찮자 OCG는 듀얼링크스에 이 포맷을 도입했고,
그 인기를 본 TCG 지부가 스킬 카드를 도입하더니 아예 정규 상품으로 내기에 이르렀죠.
러시 듀얼 및 브리지 애니메이션 - 2020년
아무튼 듀링에서 뭔가 교훈을 얻었는지, 현행 OCG 애니가 더 힘들다고 판단한 건지는 몰라도
코나미는 (TCG 지부의 수입 무기한 보류를 감안하고도) 새로 게임을 냈습니다.
애니 없는 최초의 시즌으로 모자라 카드 발매까지 반도막날 위기에 처하자 유저들은 열불이 났고
코나미가 여태 짬밥을 다 말아먹었는지 초창기 상품들도 하나같이 참 개떡같았습니다만은
지금은 어찌저찌 자리를 잡아서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한편 코나미는 갤럽과 더 일하기 힘들다고 여겼는지
하필 코로나 시즌에 새로 스폰서를 찾았는데 하필 그 회사도 브리ㅈ
20주년 기념이 n년째 반복됬을때가 생각나네요 사실 지금도 아무거나 20주년이라고 우길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할 정도로 한 때 '반다이가 계속 유희왕 판권 들고 있었으면 유희왕이 이렇게 선공망겜 안 되었을 것이다.' '본토에서도 반다이 시절이 제일 좋다고 한다'뭐 이런 식으로 찬양 받았는데 반다이 얘네는 카드에다가 룰 박아 놓을 정도로 성의 없이 진짜 '카드게임용 카드'가 아닌 '완구용 카드'로 만들어 팔았던 애들인데 왜 그렇게 찬양 받았던 것인가...
전에 주워듣기론 듀링은 사내 정치 밀린 쪽에서 만든 거고 그게 성공하니까 비슷하게 캐주얼하게 룰을 바꿔서 차별화한 게 러시라고 듣긴 했었습니다만.. 뭐 그게 사실인지를 떠나서 스피드 듀얼은 나와야만 했던 룰이었고 충분히 제 역할을 잘 해줬다고 봐요 이걸 조금 빨리 생각했다면 덱 커스텀 팩 같은 건 안 만들었겠지..
n주년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게 유희왕이니까
그런 썰도 있었나요 아무튼 저도 스듀에 자잘한 점들이 찝찝한 거지 스듀 자체는 나올만 했고 역할 잘 했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덱 커스텀 팩 01은 진짜 뭐였을까
20주년 기념이 n년째 반복됬을때가 생각나네요 사실 지금도 아무거나 20주년이라고 우길 수 있지 않을까
n주년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게 유희왕이니까
전에 주워듣기론 듀링은 사내 정치 밀린 쪽에서 만든 거고 그게 성공하니까 비슷하게 캐주얼하게 룰을 바꿔서 차별화한 게 러시라고 듣긴 했었습니다만.. 뭐 그게 사실인지를 떠나서 스피드 듀얼은 나와야만 했던 룰이었고 충분히 제 역할을 잘 해줬다고 봐요 이걸 조금 빨리 생각했다면 덱 커스텀 팩 같은 건 안 만들었겠지..
그런 썰도 있었나요 아무튼 저도 스듀에 자잘한 점들이 찝찝한 거지 스듀 자체는 나올만 했고 역할 잘 했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덱 커스텀 팩 01은 진짜 뭐였을까
n주년이 끝나지 않는다 콘마이...
그게... 유희왕... 최소 다른 동네처럼 '뭐가' N주년인지는 좀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상할 정도로 한 때 '반다이가 계속 유희왕 판권 들고 있었으면 유희왕이 이렇게 선공망겜 안 되었을 것이다.' '본토에서도 반다이 시절이 제일 좋다고 한다'뭐 이런 식으로 찬양 받았는데 반다이 얘네는 카드에다가 룰 박아 놓을 정도로 성의 없이 진짜 '카드게임용 카드'가 아닌 '완구용 카드'로 만들어 팔았던 애들인데 왜 그렇게 찬양 받았던 것인가...
반다이 카드 게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에게 건담워를 보여줘라. 으악 아니야!
이렇게 대답합시다 "유희가 천년퍼즐 맞춘 뒤로 유희왕은 망했어"
반다이로 계속 있었다면 다른건 몰라도 웹한정은 쏟아졌겠네요
반다이의 밸런스감각과 개발력이 궁금하다면 고개를 돌려 슈로대를 보시면 됩니다,남코병합이전 최대 아웃풋이 그거니까(...)
...혹시 엘든링이나 아머드코어에서 반남 로고 뜬다고 그걸 반남이 만들었다고 착각했나?
철권 : ???
철권도 남코꺼죠,한국에선 병합이전은 그나마 전신마괴랑 서몬나이트정도가 슈로대말곤 이름꺼내볼법한 작품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