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요리학교 CIA: 요리의 완성, FOH
듣는 학기에 따라 순서가 약간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CIA 커리큘럼의 마지막은 대부분 FOH 수업으로 마무리됩니다.
Front of House. 직역하면 집 앞.
실제로는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 접객업에서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파트를 의미합니다.
컨시어지, 웨이터 등이 다 FOH에 속하지요.
반면에 주방은 손님과의 직접적인 접점은 없는 BOH, Back of Hous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주방에서 음식 재료와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그렇게 만들어 온 음식을 사람들에게 직접 대접하는 일을 합니다.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당연히 테이블 셋팅.
지금 사진에 나온 셋팅은 단체 손님용으로,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에 달하는 손님들의 식기를 코스 바뀔때마다 일일히 바꿔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식기류를 미리 다 깔아놓고 음식만 바꿔주는 식으로 서비스 합니다.
평상시라면 어떤 메뉴에 어떤 식기가 필요한지 외워두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미리 셋팅해둬야 합니다.
굴에는 굴 포크가, 맑은 수프에는 부용 스푼이, 생선 요리에는 생선 포크가, 고기 요리에는 스테이크 나이프가 미리 준비되어야 하니까요.
"생각해봐! 엄청나게 맛있어보이는 무스 케이크가 앞에 놓였어. 그런데 스푼이 없어! 손가락으로 떠먹을까? 물론 손님이 스푼 좀 가져다 달라고 요청이야 하겠지. 하지만 이런 실수가 고급 레스토랑과 최고급 레스토랑의 차이를 만든다!"
홀매니저 담당 교수의 말이 귀에 울려퍼지는 듯 합니다.
한 손으로 와인글라스 옮기기.
손님들이 있을 때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고, 레스토랑 오픈하기 전에 와인글라스를 여러개 옮겨야 하는데 컨테이너가 없을 때 쓰는 꼼수에 가깝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와인글라스 전용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 옮겨야하고, 아니면 둥그런 쟁반에 담아 옮기는 게 정석이죠.
저는 일곱개 정도가 한계인데 열개 넘게 옮기는 사람도 있더군요.
어떤 학생이 "양손으로 이렇게 옮기면 두배 더 빠른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해서 그날의 바보에 등극했던게 기억납니다.
커피와 아이스티를 비롯한 각종 음료를 만들고 서빙하는 법도 배웁니다.
음료는 매일매일 학생 중 한명이 전담을 해서 준비합니다. 이른바 물당번.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생수, 탄산수를 병에 채워놓는 일부터 커피나 홍차 등의 음료 주문이 들어오면 만드는 바리스타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바쁠 때는 바쁘면서도, 또 익숙해지면 의외로 한가해서 중간중간 내가 마실 음료 한잔씩 만들어 마셔가며 일하기도 합니다.
홍차와 허브티 샘플러.
메뉴에 적혀있는 차의 종류를 보며 손님들이 "이건 어떤 느낌이냐"고 질문하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동작으로 이 샘플러 쟁반을 보여주면 됩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남겨먹을 수 있는건 아이스티입니다.
물장사가 마진 많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큰 통에 물 채워넣고 립톤 아이스티 가루를 퍼넣은 다음 유리잔에 얼음 채우고 레몬 한 조각 띄워서 몇 천원씩 받을 수 있으니까요.
"뉴욕에서 코카인보다 마진 높은 가루는 레스토랑의 립톤 아이스티 가루 뿐"이라는 농담이 생긴 이유입니다.
모든 음료 메뉴를 학생들이 다 맡아서 하는 건 아닙니다.
만드는데 나름 고급 기술이 필요한 칵테일이나, 한 잔 한 잔이 엄청나게 비싼 양주는 전문 바텐더가 전담해서 관리합니다.
하지만 웨이터 입장에서도 뭘 알아야 질문에 대답하고 팔아먹을 수 있으니,
메뉴에 올라와있는 칵테일을 종류별로 하나씩 만들어서 맛을 보게 해주더군요.
식당 입장에서는 진짜로 이윤을 남기는 건 음식이 아니라 와인이나 칵테일 같은 주류입니다.
그러다보니 웨이터의 말빨과 업셀링(더 비싼 물건 팔아먹는 기술)이 식당의 흑자에 기여하는 정도가 엄청나게 크지요.
아마 미국에서 아직도 팁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 아닐까 싶네요.
물이나 커피 뿐 아니라 와인과 맥주로 넘어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칵테일이나 위스키는 바텐더가 글라스에 따라 주지만, 와인이나 병맥주는 웨이터가 직접 서빙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때를 대비해서 와인 수업시간에 코르크 마개 잘 따는 법도 배우고 와인 따르는 연습도 했지만
술의 종류에 따라 글라스 모양이 바뀌는 바람에 신경 쓸 일은 자꾸만 늘어갑니다.
대략 십여종이 넘는 유리잔과 여기에 맞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디저트 와인, 샴페인 등을 매칭시켜서 기억해야 합니다.
유리잔 뒤에 보이는 단말기에는 주문사항을 입력하고 나중에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치입니다.
요리의 완성은 마지막 가니쉬 조각을 얹을 때도 아니고, 손님이 맛있게 먹어줄 때도 아닌, 돈 받아서 영수증 뽑아주는 순간입니다 ㅎㅎ
당연히 각 메뉴별로 사용되는 접시도 외워둬야 합니다.
물론 음식을 접시에 담는 건 요리하는 친구들이 알아서 하는데, 해당 메뉴에 맞는 접시를 미리 챙겨주는 건 FOH에서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미 BOH 수업을 마친 뒤라서 어느 요리에 어떤 접시가 사용되는지 거의 다 알고있다는 점입니다.
제과제빵쪽 메뉴와 접시들만 새로 외우면 되네요.
그리고 FOH에서도 와인 수업을 이어갑니다.
정식 와인 클래스에서 술의 특성을 중심으로, 정석적으로 배워나갔다면
FOH에서는 현재 레스토랑에서 팔고 있는 주력 와인들을 맛보고 음식과 페어링하는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알아봅니다.
학생들은 하루에 한 명이나 두 명씩 와인 한 가지를 맡아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자신이 생각한 와인 페어링을 선보이곤 합니다.
이건 학생이 발표한 건 아니고, 교수가 "이토스 페어링"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네요.
치토스, 도리토스, 도스티토스, 프리토스 등 끝부분이 이토스etos로 끝나는 스낵류가 의외로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였죠.
바삭한 식감에, 고소하고 짭짤한 곡물류 스낵인데다가, 치즈맛이 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나요.
경우에 따라서는 비싼 치즈보다도 더 페어링이 잘 맞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이건 제가 준비했던 불고기 페어링.
양념이 강한 불고기는 와인하고 궁합이 잘 맞습니다.
문제는 한인마트까지 갈 시간이 없어서 (차로 운전해서 두시간... 덜덜) 스테이크용 고기를 썼다는 거지만요.
그 비싼 고기로 불고기를 만들었는데 뭔들 맛이 없을까요 ㅠ_ㅠ
FOH 후반부로 접어들면 이렇게 바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며 간단한 칵테일을 만들어 파는 것도 하게 됩니다.
초반부에는 정신 없어서 허둥지둥대느라 일손이 부족하다가, 일주일쯤 지나서 자기 역할에 익숙해지면 남는 인력을 이쪽으로 돌리는 거지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물장사가 레스토랑에 가져다주는 이익이 무시무시한데,
특히 이렇게 카트 끌고 다니면서 "오늘의 스페셜 칵테일 한 잔 어떠신지?"라고 물어보면 주류 판매량이 훅 뜁니다.
게다가 칵테일 메뉴 선정부터가 이걸 노리고 만드는 방식이 화려한 칵테일 위주로 준비하거든요.
스모크 맨해튼은 위스키 배럴 조각에 불을 붙이고 글라스를 덮어서 불을 끈 다음 칵테일을 만들어 넣는 방식이라
이거 한 잔 만들고 있으면 주변에서 "나도 저거 한 잔"이라며 주문이 쏟아집니다.
FOH에서 하는 일은 대충 이정도네요.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과 직접 마주치며 내가 만든 (실제로는 다른 학급 학생들이 만들었지만) 요리를 팔고 그 반응을 살펴본다는 건 CIA 커리큘럼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딱 어울리는 수업이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불만이라면 FOH수업과 BOH수업을 두 번씩 거쳐야 했는데, FOH를 한 번으로 줄이고 그 대신 아메리칸, 프렌치, 이탈리안 세 곳의 수업을 모두 듣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아메리칸의 FOH와 프렌치의 FOH에는 다른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탈리안 주방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거든요.
그 외에 가장 놀란 점이라면 '서버의 수입이 어마무시하겠구나'라는 사실.
학교 규칙상 학생이 개인적으로 팁을 받는 건 금지라서 돈을 챙기지는 못했는데, 이 짧은 기간동안 억지로라도 돈 쥐여주려던 손님들이 꽤 많았습니다. 금액으로 쳐도 몇 십만원은 가볍게 될 정도.
이 수업을 듣기 전에는 미국의 팁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한 번 뛰어보니 그 구조가 좀 이해가 되더군요.
식당은 인건비 아끼면서 매출 오르고, 서버는 자기 능력에 따라 인센티브를 엄청나게 챙기고, 손님은 자기 기분 맞춰주는 종업원에게 보상할 겸 비싼 거 주문해서 먹는 그런 식입니다. 해외 패키지 여행에서 가이드가 싹싹하고 분위기 잘 띄워주면 기념품점 쇼핑 액수가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다만 이게 주방 직원과 홀 직원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요즘은 식당에서 일괄적으로 10%내지는 15% 서비스 비용을 걷어가서 직원들에게 균등하게 나눠주는 게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만요.
이렇게 해서 1년 8개월간의 CIA 수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요.
요리에 관심이 많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수준을 지나
"이제 요리의 기본 정도는 할 줄 안다"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회에는 진짜 마지막,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혹시 궁금한 점은 댓글 달아주시면 답변 드릴 수 있는 건 글 올리면서 함께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p.s. 요리사서의 추천도서, 잃어버린 고향의 맛 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https://www.nslib.or.kr/info/dataroom2.asp?mode=view&number=107&gub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