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는 폭군도 아님
왕권강화를 위해 형제 죽이던거야 어느 왕조, 어느 왕이나 다 하던 짓이었고 특히 광해군 같은 경우는 선조 씹색히가 생전에 대놓고 광해 세자 폐위시키고 영창대군 세자로 책봉하려고 온갖 지랄을 다했으니 광해군 입장에선 정신병 걸릴 정도로 트라우마였음
임진왜란 전란 와중에도 분조 조정 이끄느라 골이 빠졌는데 선조 이 씹색히는 도와주는 것 없이 도망만 쳐놓고 종전 후에 뒤늦게 인목왕후가 아들 하나 낳자 얘한테 왕위 물려줄려고 광해군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으니
광해군이 아침 문안인사 드리러 찾아와도 무시로 일관했단 일화는 워낙 유명하니 넘어가고 인목왕후도 철딱서니 없이 내 아들 나중에 왕 된다고 온갖 어그로는 다 끌었으니 나 죽여달라 한 꼴이지
선조가 갑작스럽게 뒈지는 바람에 광해군이 예정대로 왕위에 오르긴 했는데 선조의 이 븅신같은 행적 때문에 권력기반이 불안한 건 사실이었고 영창대군은 언제든지 반란의 추후 구심점이 될 수 있어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지
뭐 영창대군 방에 가둬놓고 불 때워서 잔인하게 죽였다느니 하는 건 교차검증도 안 된 야사기록일 뿐이고 단순 병사했다는 기록부터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함
어쨌든 조선초기 이방원도 왕자의 난으로 자기 형제 다 쳐죽이고 왕 먹은건데 왜 유독 광해군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지 이해도 안 되고 왕조국가에서 반대파 숙청하고 경쟁자가 될 다른 형제들 죽이는거야 아주 당연한 일임
그리고 궁궐 짓는 것도 실드 좀 쳐보자면 임진왜란 이후로 기존의 5대 궁궐이 모조리 소실된지라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나라는 온통 폐허에 죶망이라 진짜 답이 없던 상황이었음
당장 임금이 지낼 곳이 없었고 국정 정사를 논의할 장소도 없었음
궁궐 복원은 무너진 국가기틀 세우기 및 왕실재건 같은 상징적 의미까지 포함해서 진행했을 거라 추정 중이고 당연히 전란의 피해가 채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착수했다보니 여러 불협화음과 불합리한 폭거가 이뤄질 수밖에
그래도 광해군 때 무리해서나마 궁궐복원을 한 덕에 후대 임금들은 이걸 두고두고 요긴하게 써먹었단 점에서 일말의 변명거리는 됨
경복궁은 임진왜란 이후 300년 넘게 지날동안 결국 구한말 대원군 때까지 복원할 시도조차 못했단 점에서 조선의 국력이 얼마나 쇠락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고 이때문에 광해군이 총대메고 무리하게나마 궁궐 복원한 덕에 조선국가의 기틀이라도 남길 수 있었단 개인적인 생각임
중국 폭군에 비하면 연산군이 한건 걍 애기재롱 그 자체임 ㅋㅋㅋ
한짓 자체는 중국에서 폭군 명단에도 못올라갈듯 근데 윗댓처험 조선은 중국이 아님
그 정도는 아님 근데 조선 땅도 중원이 아님
그 정도는 아님 근데 조선 땅도 중원이 아님
ㅁㅊㄴ중에 풋내기 수준
중국 폭군에 비하면 연산군이 한건 걍 애기재롱 그 자체임 ㅋㅋㅋ
한짓 자체는 중국에서 폭군 명단에도 못올라갈듯 근데 윗댓처험 조선은 중국이 아님
중국 폭군 레전드들에 비하면 광해 정도면 성군이지
중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광해군 정도면 좀 많이 망가진 왕 정도지. ㅋㅋㅋㅋㅋㅋ
명군 소리 듣는 강희제, 옹정제도 문자 하나 잘못썼다고 사람 썰어대는게 중국
중국 폭군들은 아예 백성을 사냥하드라
사람 젓갈 담그고 육수 우리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순한 수준임.
조선은 나름 수준있는 유교국가였고 유교슨 공자가 생전에 시발 순장이고 제물이고 사람 목숨 좀 애껴라 할정도의 막장 시대에 만들어진 학문이라. 최소한 그 급까진 안떨어짐.
광해는 폭군도 아님 왕권강화를 위해 형제 죽이던거야 어느 왕조, 어느 왕이나 다 하던 짓이었고 특히 광해군 같은 경우는 선조 씹색히가 생전에 대놓고 광해 세자 폐위시키고 영창대군 세자로 책봉하려고 온갖 지랄을 다했으니 광해군 입장에선 정신병 걸릴 정도로 트라우마였음 임진왜란 전란 와중에도 분조 조정 이끄느라 골이 빠졌는데 선조 이 씹색히는 도와주는 것 없이 도망만 쳐놓고 종전 후에 뒤늦게 인목왕후가 아들 하나 낳자 얘한테 왕위 물려줄려고 광해군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으니 광해군이 아침 문안인사 드리러 찾아와도 무시로 일관했단 일화는 워낙 유명하니 넘어가고 인목왕후도 철딱서니 없이 내 아들 나중에 왕 된다고 온갖 어그로는 다 끌었으니 나 죽여달라 한 꼴이지 선조가 갑작스럽게 뒈지는 바람에 광해군이 예정대로 왕위에 오르긴 했는데 선조의 이 븅신같은 행적 때문에 권력기반이 불안한 건 사실이었고 영창대군은 언제든지 반란의 추후 구심점이 될 수 있어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지 뭐 영창대군 방에 가둬놓고 불 때워서 잔인하게 죽였다느니 하는 건 교차검증도 안 된 야사기록일 뿐이고 단순 병사했다는 기록부터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함 어쨌든 조선초기 이방원도 왕자의 난으로 자기 형제 다 쳐죽이고 왕 먹은건데 왜 유독 광해군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지 이해도 안 되고 왕조국가에서 반대파 숙청하고 경쟁자가 될 다른 형제들 죽이는거야 아주 당연한 일임 그리고 궁궐 짓는 것도 실드 좀 쳐보자면 임진왜란 이후로 기존의 5대 궁궐이 모조리 소실된지라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나라는 온통 폐허에 죶망이라 진짜 답이 없던 상황이었음 당장 임금이 지낼 곳이 없었고 국정 정사를 논의할 장소도 없었음 궁궐 복원은 무너진 국가기틀 세우기 및 왕실재건 같은 상징적 의미까지 포함해서 진행했을 거라 추정 중이고 당연히 전란의 피해가 채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착수했다보니 여러 불협화음과 불합리한 폭거가 이뤄질 수밖에 그래도 광해군 때 무리해서나마 궁궐복원을 한 덕에 후대 임금들은 이걸 두고두고 요긴하게 써먹었단 점에서 일말의 변명거리는 됨 경복궁은 임진왜란 이후 300년 넘게 지날동안 결국 구한말 대원군 때까지 복원할 시도조차 못했단 점에서 조선의 국력이 얼마나 쇠락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고 이때문에 광해군이 총대메고 무리하게나마 궁궐 복원한 덕에 조선국가의 기틀이라도 남길 수 있었단 개인적인 생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