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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감마의 강함에 대해서는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감마와 주인님이 겨룬다니, 말도 안 된다구요!
뭔가 기발한 전략이 있어서 선뜻 받아들이신 거죠? 네? 그렇죠?”
경악을 숨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던 알파가 사령관의 손목을 잡고 다그치듯 묻는다. 만에하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받아들인 거라면 어떻게 해서든 내기 자체를 무효화해야 했으니까.
“당연하지, 알파. 아무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승부를 받아들였겠어?”
하지만 사령관은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알파를 안심시켰다.
“닥터랑 티에치엔을 불러줘. 자세한 이야기는 그 둘 앞에서 설명해줄게.”
여전히 불안해하는 알파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사령관은 이 멋진 계획이 완벽하게 먹혀들었을 때를 상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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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제정신이에요?!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네? 저 홧병으로 죽는 꼴을 보고 싶으셔서 그런 거에요? 뭐라고 말좀 해보시라구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알파는 사령관의 설명을 듣자마자 격분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왜, 왜? 꽤 괜찮은 아이디어 아니야?”
알파가 이렇게까지 반발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사령관이 안절부절하며 알파의 눈치를 살폈다.
“음… 내가 한 번 정리해볼게.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게 있으면 정정해줘.”
닥터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알파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닥터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빠의 신체는 각종 강화 시술 덕에 감마 못지 않은 강도와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투의 달인 감마의 각종 격투술 때문에 압도적인 열세일 것이 분명하다….
그 기술의 격차는, 여기 있는 티에치엔 언니의 무술로 극복한다. 여기까지 맞아?”
“응….”
조금 의기소침해진 사령관이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 무술을 어떻게 한 달 안에 배우느냐?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티에치엔 언니와 오빠의 신체를 동기화해서 티에치엔 언니가 오빠를 조종하는 형식으로 싸운다. 멸망 전의 영화 [리얼 스틸]처럼.”
“그렇…지.”
닥터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린다. 어쩐지 그 모습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혹평하는 것 같이 보여서, 사령관은 더욱 주눅들고 만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그 동기화 기술은 오르카에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한 달 안에 만들어서 각종 세부 조정까지 끝내야 한다는 이야기고. 혹시나 감마가 이 부정행위를 알아챌지도 모르니까 은폐하는 것까지 신경써야겠네. 격렬한 난전 도중 고장나지 않도록 내구성도 챙겨야 하고. 내가 맞게 이해한 거야, 오빠?”
“...응….”
사령관의 목소리가 아주 바닥을 기고 있다. 닥터가 조목조목 따져드니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아이디어처럼 느껴진 것이다.
“진짜 바보같은 아이디어네.”
“거 보세요.”
“...나도 알아. 내가 잠깐 미쳤었…”
“당장 하자.”
“네?”
“...나 봐…. 응? 뭐라고?”
“당장 하자고!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가만 놔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닥터 양?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 잠깐 사이에 이런 기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낸거야? 내가 이래서 오빠를 좋아한다니까.”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즐거워하는 닥터, 그리고 안색을 새파랗게 물들인 알파의 표정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다, 닥터…! 그 말은?”
“나한테 맡겨! 오르카 최고 지성의 이름을 걸고 한 달 안에 완벽하게 만들어내 줄게!”
“우와아아아아! 닥터! 고마워!”
기쁨에 겨운 사령관이 닥터를 안아올리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알파는 그 광경을 멍하니 보다가 심각한 표정의 티에치엔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티, 티에치엔 양! 티에치엔 양도 뭐라고 한 마디 해주세요! 이 두 사람 좀 말려 달라구요!”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티에치엔에게 그리 부탁했지만….
“내 무도(武道)가… 감마에게 통할지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건가?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절대 놓칠 수 없지! 이 계획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게!”
“아아악!”
티에치엔 역시 감화된지 오래였기에, 알파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다들! 애초에 이런 꼼수가 통할지 말지도 모르는 일인데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한 건데요? 이런 실낱같은 가능성에 걸고 터무니없는 내기를 받아들인다니, 이게 가당키나 해요?!”
“알파.”
알파가 울다시피 하며 외치자, 사령관이 비장한 얼굴로 돌아섰다.
“꼼수가 아니야. 유대의 힘으로 이기는거지.”
“말꼬리 잡지 마세요. 진짜로 폭발할 것 같으니까.”
“...넵.”
사령관의 비장함은 알파의 서슬퍼런 목소리 앞에 곧바로 바스라지고 만다. 겨우 세 명이서 의기투합을 했는데, 이대로 없던 일로 해야 하는 걸까? 사령관의 눈동자에 짙은 슬픔이 새겨졌다.
“하아…. 이젠 저도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닥터 양, 티에치엔 양? 꼭 하셔야만 한다면 정말, 정말, 정말로 최선을 다해주세요.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분도 잘 알고 계실테니 구태여 부연설명을 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단 한가지, 일이 잘못되면 주인님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주세요.”
“응, 알파 언니! 걱정 마!”
“저도 온 힘을 다해 도울테니 걱정 마세요!”
알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크게 쉬고서 엄중하게 당부했다. 닥터와 티에치엔은 목이 부러져라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최선을 다해 임하리라 맹세했다. 알파는 작게 한숨을 한 번 더 쉬고 밖으로 나갔다. 이 정신나간 삼인조 사이에 일초라도 더 껴있다가는 머리가 정말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 우선 오빠의 신체 강도를 세심하게 측정할게. 그리고 조종장치를 어디에 어떻게 숨길지도 생각해봐야 해.
티에치엔 언니는 무술 동작을 전부 다 시연해 줘. 3D 스캔해서 오빠 체형에 맞게 조율하는 과정을 거칠거야. 그 다음은…”
알파가 떠난 후, 사령관과 티에치엔은 닥터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파가 지적한대로, 이 터무니없는 계획의 첫단추를 제대로 꿸 수 있는지조차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셋 중 누구도 실패하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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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스틸 아십니까? 정말 갓영화입니다.
감마는 호전적이지 잔인한 성격은 아닐거같긴한데, 덴세츠 아레나 콜로세움같은거 어떻게 생각했을까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