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흰 빛 강
슬픔을 껴안고 잠든 이가
이미 슬픔에 잠겨 있다면
슬픔은 어떻게 해야 할까
*
병세 형
저승생활은 어때요
골때려요
오늘은 수현이 돌잔치
떡볶이대첩 앞에서 택시를 탔어요
안길동 기사님께서
선생님 기다리셨죠
그래도 오늘은 날이 푹해
한결 살 만합니다
제아무리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지요
세월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카택 대신 티맵을 이용해주십시오
카풀 때문에 동료 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는 동료들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형, 안길동 기사님은 역사적인 자일까요
눈을 돌렸어요
진실은 미터기에
형, 그때는 어떤 진실함으로
총장실을 점거하고
삭발하고
의정부역 광장으로 뛰어가 효순이 미선이를 소리쳐 불렀
나요
형이랑 처음으로 데모 뛰던 생각이 꿈이 되어
잠결에 퉁쟁 삼창
집사람이 가슴을 툭 쳤습니다
이 남자 어딘가 사랑스러워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아줬습니다
그때 쳥와대 앞까지 돌진해서 형이 닭장차 위로 올라가
깃발을 흔들 때
제 마음도 펄럭였어요
요즘 것들은 마음이 나부낄 때마다
기모찌 기모찌
뜻 없는 감탄사를 내뱉지요
하
하핫
형의 시는 참으로 뜻있었죠
나약했죠
어느 날
형의 시를 읽고 전언을 썼습니다
형이 철없는 청춘이었다는 사실을 그땐 몰라서
형을 원했습니다
사랑은 아니에요
형은 형의 해방세상이 있고
제겐 저만의 이승이 있어서
형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형은 때때로 업신여겼죠
새벽까지 天地人에서 술을 마시고
청계천 8가를 부르고
옥상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고
투신
구겨진 리얼리즘으로
현대작가론을 듣다가
가슴을 툭 쳤습니다
형, 좀 깨어나세요
방년 사십오 세에
이승을 떠나는 심사는 어떠했을까요
손님
옆을 보십시오
저기 저렇게 다 서 있습니다
세상이 다 조용했어요
병세 형
수현이가 곧이어 들어올릴 것이
연필일까요 지폐일까요 실일까요
*
슬픔은 슬픔이 잠잠해질 때까지
잠든 이를 흔들어 깨우지 않고
멀리 더 멀리 빛나는 곳을 향해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김현, 문학동네시인선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