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중학교 1학년 2학기
학기말 고사 화학 시험 답안지를 백지 제출하고
담임선생님께 체벌을 받았다
올해 막 K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화학을 가르치게 된 선생님이었다
시험을 모두 마친 날
담임선생님과 나만 교실에 남았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 줄 몰랐고
선생님은 내가 철없이 저지른 일로
교장실에서 시말서를 썼다
선생님은 내일 어머니를 불러오는 것과
체벌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나는 독립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찾기로 했다
허리를 굽히고서 두 발목을 잡았다
선생님의 매질은 정열적이었다
밀대 자루가 떨어질 때마다
내 하얀 엉덩이는 선생님께
사랑의 편지를 썼다
어둑어둑한 12월이
살짝 얽은 그녀의 얼굴을 메우기 시작할 때
열등생은 깨닫는다
백지 답안지를 낸 이유를
눈 속의 구조대
장정일, 민음의 시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