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첫날처럼
감나무도 잔디도 돌담 속에 박힌 돌들도 느티나무도 텃
밭의 배추도
팽나무도 박달나무도 오동나무도 누워버린 강아지풀도
한 계절 울면서 빈 몸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강변의 억
새도
산꼭대기 소나무도 바위 난간 참나무도
두릅나무도 붉은 찔레 열매도 버드나무도 실가지도 고춧대도
빈 논 지푸라기도 타다 만 비닐 뭉치도
지붕들도 굴뚝도 길가에 흙도 노란 왕겨 속 마늘 싹도
고장난 경운기도
바람을 따라가지 못한 나비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난날의 일들을
까맣게 다 잊었다는 듯이
오늘이 첫날이라는 듯이
서리를 하얗게 쓰고 있다
모두가 첫날처럼
김용택, 문학동네시인선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