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생활을 시작한 지 1년(PS2-6개월/XBox-8개월)이 지났지만, 액션이나 레이싱같은 장르에 비해 인연이 닿지 않았던 장르가 바로 1인칭슈팅(FPS)게임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PS2로는 메달오브아너와 고스트리콘을(소콤은 3인칭이므로 생략), XBox로는 헤일로와 언리얼 챔피언쉽을 해본 것이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헤일로를 할 때까지만 해도, 어딘가 모르게 FPS와는 잘 안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차라리 스플린터 셀이나 메탈기어 솔리드처럼 3인칭 시점으로 나오는 게임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1인칭으로 하는 게임들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생리적인 거부감(멀미/두통)을 불러일으키기가 일수였죠.
그러나 언리얼 챔피언쉽을 만났을 때, 나는 1일칭게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 것이 아니고, 그동안 해왔던 1인칭게임들 자체가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음을 간파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1인칭시점 효과를 표현함에 있어서의 사실성과 자연스러움에 있었습니다.
헤일로를 비롯한 대다수의 1인칭 슈팅게임들은, 무기를 들고 이동할 때, 비록 들고 있는 무기는 사실감있게 흔들릴지언정 눈앞에 전개되는 전망-배경은 고정되어있는 이율배반적 시점이며, 다시 말해서 1인칭시점과 3인칭시점의 충돌현상을 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진정한 1인칭 시점이라고 한다면, 걷거나 뛸 때 눈앞에 전개되는 전망과 배경도 함께 유동적으로 흔들려주어야 하는 것이며, 스탭을 밟아나감에 따른 음향효과(발자국소리)는 물론, 그에 맞는 적당한 진동효과도 따라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헤일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1인칭슈팅게임들이 선택하고 있는 흔들림없는 수평이동은, 사실 따져보면 매우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이동방식입니다.
마치 지면 위를 살짝 뜬 상태에서 유령처럼 전진한다고 상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또는 아주 기술적으로 잘 설치된 레일 위를 미끄러져가는 느낌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어설픈 1인칭 시각효과일뿐더러, 고정된 전망의 3인칭시점과의 충돌로 말미암아 게이머로 하여금 멀미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주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이머를 헤매게 하기 쉬운 미로와 같은 길찾기는 이러한 멀미증세를 더 악화시켜 줍니다.
그러나, 언리얼 챔피언쉽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1인칭시각효과가 어떠한 것인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핏 생각할 때, 스탭을 밟을 때마다 전망이 따라서 흔들린다면 오히려 멀미가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언리얼의 비주얼효과는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줄 만큼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있으며, 실재로 게이머 자신이 두 다리를 이용하여 걷거나 뛰어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다 줍니다.
언리얼의 무대는 그 어느 게임보다도 스피디하고 입체적인 공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각효과 덕분에 멀미를 거의 못느끼고 플레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점은, 멀미때문에 FPS게임을 멀리해 왔거나 미리부터 포기해 버리던 많은 게이머들에게 상당히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처럼 1인칭시각효과를 매끄럽고 거부감없이 구현해내는 것이 별것 아닌것 같아 보여도 굉장한 노하우와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력이 없이는 섣불리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언리얼은 1인칭 시각효과의 사실성과 자연스러움만으로도 이미 절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긴 하지만, 아직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이미 오리지널 PC버전 '언리얼 토너먼트'를 통해 확실하게 검증받은 게임성, 그래픽(언리얼)엔진 특유의 광원효과와 사실적인 비주얼...
이 모든 것을 콘솔게임환경으로 훌륭하게 이식해 놓은 게임이 바로 언리얼 챔피언쉽(Unreal Championship)인 것입니다.
언리얼엔 헤일로나 메달오브아너와 같은 스토리나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싱글플레이모드가 따로 있고 막상 해보면 그 어느 게임 못지않은 재미와 몰입을 갖다 주지만, 일정한 이야기구조를 따라 미션을 완수해 나간다는 개념의 시나리오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언리얼의 이러한 스토리 부재를 이유로 비추하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언리얼은 온라인대전이나 라이브만을 위해 태어난 게임이 아닌가 싶은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라이브환경이 구축되지 않은 저 역시 이 게임을 구입할 때 그 점이 찜찜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우려는 한낮 기우였음이 들어납니다.
굳이 싱글모드가 아니더라도, 인스턴트액션의 데쓰메치나 서바이벌모드만 건드려봐도 이 게임은 실로 엄청난 물건중의 물건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네가지의 난이도와 다채로운 옵션을 자기 나름대로 설정해놓고 플레이하면, 실재 라이브로 게임하는 느낌과 거의 다를 바 없을 만큼 박진감 넘치고 몰입도가 굉장합니다.
싱글모드는 거의 팀배틀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단순히 상대편을 제압하는 데쓰매치부터, 상대방의 진영에 잠입해서 깃발을 훔쳐오는 깃발뺏기를 비롯, 실로 다양한 방식의 팀배틀을 만끽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매번 스테이지를 깼을 때 느끼는 자부심과 포만감은, 개인적으로는 헤일로보다도 훨씬 낫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사실 언리얼이라는 게임은, 일찌기 PC버전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서 플레이되어졌고 그만큼 알려진 탓에, 뚜렷이 달라지거나 발전된 점이 없이 단순 이식만 해놓은 엑스박스버전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게임 자체가 지니고 있는 게임성이라든지 기타 기본적인 요소를 감안하면 결코 헤일로같은 대작에 비추어도 어느곳 하나 꿀릴 게 없는 대작중의 대작입니다.
때문에 이미 PC버전으로 충분히 플레이해본 게이머들에겐 굳이 강권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저처럼 낮은 PC사양때문에 언리얼을 못해봣던 분이나, 멀미현상과 길찾기의 짜증때문에 1인칭슈팅게임을 멀리했던 게이머들에겐 꼭 해볼 것을 권장하는 바입니다.
액션이나 기타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FPS역시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는 장르임을 언리얼 챔피언쉽이 확인시켜드릴 것입니다.
- 언리얼은 FPS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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